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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섬에 가다(2)

* 창작공간/중편 - 누에섬에 가다

by 여강 최재효 2010. 1. 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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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에섬 일몰 : 필자 직접 촬영

 

 

 

 

 

 

 

 

     누에섬에 가다(2)

 

 

 

                                                                                                                                                                              - 여강 최재효  

 

 

 

 가을 하늘이 너무 높이 올라가 있어서 나는 한참 동안 고개를 들고 바라보

아야 했다. 천고마비라는 한자성어가 떠올랐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이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봄에 받은 위 절제수술 후유증이 오래 지속되

면서 나는 점점 더 겨울나무처럼 변해가는 나 자신에 은근히 부아가 나기도

했다.

 

  나는 K와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 전에 안산시청 앞에 나와 있었다. 주말

이라 청사는 조용했다.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나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헐, 내가 소풍가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이성에 대하여 호기심 많은 고등

학생도 아닌데 왜 이럴까?’


 행여 누가 나의 이런 어쭙잖은 모습을 훔쳐보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주변

을 살피며 두리번거렸다. 오후의 햇살이 자꾸만 이마와 머리에 쌓여갔다.

직도 20여분이나 남아 있어서 나는 청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행인도 별로

없었다.


 ‘그녀가 장난으로 문자를 보낸 건 아니겠지? 아냐, 장난일지도 몰라. 나를

놀리기 위하여 심심풀이로 문자를 보냈을지도 몰라. 그녀의 심성으로 보아

장난질 칠 여인은 아닌데......’


 나는 그녀의 뽀얗게 웃는 모습을 떠올렸다. 파란 하늘 호수에 그녀의 세련

된 도회지풍의 이미지가 투영 되면서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서서 목에 힘을

주었다. 목이 뻣뻣해 졌을 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감지 되었다.


 [선생님, 거의 다 왔어요. 차가 좀 밀리네요. 선생님은 지금 어디세요?]


 K의 문자 한방에 나의 의심은 사그라졌고 방금 전까지 조급해 했던 나의

간사함에 괜히 미안해 하였다. 행여 내가 약속을 잊고 낮잠을 자는 것은

아닌지? 또는 약속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할 경우 미리 나의 소재 파악을

위하여 보낸 문자는 아닐까 궁금했다.

 

 4시 5분 전이었다. 나는 5분 후면 약속 장소에 도착할 것 같다고 답신을

보내고 차 안에 들어가 앉아서 그녀가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차 안을 환기

키고 음악을 틀어 음울했던 분위기를 환하게 바꾸었다. 비상등을 켜놓고

시선을 차창 밖으로 돌리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맞추었다. 약속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K가 저쪽에서 나타났다. 나는 두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것

처럼 위장하였다.


 “죄송해요. 늦었죠?”

 K가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니에요. 2분 밖에 안 지났는걸요? 보통 십분 정도 까지는 약속시간 범주

내에 포함시키잖아요. 요즘 차가 하도 많기도 하고, 전철도 종종 지연되더라

고요.”


 나는 생각에도 없는 말을 주워 담으며 K의 미안함을 희석 시켰다. 타이트한

청바지에 갈색 점퍼를 입고 보라색 스카프를 맨 K의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

였다.

 

 나는 운전 중에도 흘낏거리며 K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베이지색 모자가

참으로 어울린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모자를 쓸 때와 안 쓸 때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보였다. 여자들의 변신은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며,

남자들이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배가 시키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게

분명했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더니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 시간 하얀

시트 위에 누워 멍청하게 천정만 바라보던 결과일 것이다. 밤새 고통에 시달

리다가 새벽에 여명이 병실의 문을 은은히 회색빛으로 물들이고 나타나는

불덩이에 나는 익숙해졌다. 늘 떠오르는 불덩이만 봐 온지라 바다 속으로

서서히 모습을 감추는 장면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내가 만약 서해 바닷가에서 유년의 시절을 보냈다면 일몰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내륙지방에서 자란 나는 일출이나 일몰 혹은 월출과 월몰(月沒)의

장면에 생소했다. 늘 중천에 떠 있는 일월성신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선생님, 컨디션도 안 좋은데 제가 괜한 약속을 잡은 것 같아요. 지금은 좀

어떠세요?”

 K가 말없이 운전대를 잡고 앞만 보고 있던 나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으로

데이트를 하는 사이에 침묵이 너무 길다고 느낀 것 같았다.


 “아, 아닙니다. 요즘은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어요. 식사량도 공깃밥 반 이상

으로 늘었고요. 운동도 열심히 한답니다.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씩 운동을

하니까 심신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나는 K를 안심시켜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나의 상태를 보아가며 K는 예정에

도 없던 약속을 만들어 일찍 돌아가

려고 할 것이다.


 “그래요? 참으로 다행이에요. 저희 작은 아버지도 몇 년 전에 선생님과 같은

으로 위를 거의 다 잘라 냈어요. 그런데 지금은 보통사람과 똑같이 생활하

셔요. 담배도 피우시고 술도 마시세요.”

 K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제스처를 써가며 자신 있게 말하였다. 나는 그런 그

녀의 오드리헵번 같다고 생각했다.


 “아이고 저런, 술 담배까지나요? 전 담배는 십 년 전에 끊었어요. 술도 이번

기회에 아주 끊으려고해요. 의사는 앞으로 오년내로 재발이 없고 예전의 상태

로 회복되면 완치되었다고 본대요.”

 내가 미소를 지으며 답하자 K도 엷은 

미소로 답하였다.


 “선생님, 오래 즐기시던 술까지 단주하시면 창작하는 데 무료하시거나 지루

하지 않으세요? 시를 쓰는 분들은 대개 술과 인연이 깊으시던데?”


 “그분들은 조금씩 마시니까 오래 마시는 거고, 저는 앞으로 30년 더 마실량

한꺼번에 다 마셔 버렸기 때문에 미련은 없어요.”


 “말이 되네요.”

 웃음소리는 금방 적막했던 차안의 분위기바꿔놓았다. 차는 전곡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해마다 요트 경기가 열리곳인데 주말이라 그런지 입구부터 행락객들을

태운 차들로 붐볐다.


 “탄도로 직접 안 가세요?”

 예정에도 없던 코스로 차를 몰자 K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지도를 보니 탄도까지는 십분도 안 걸릴 것 같아서 전곡항에 내려 바람 좀

쐬고 시험삼아 사진 몇 컷 찍고 가려고 했는데, 차가 많아 그냥 가야겠어요.”


 나의 궁색한 변명에 K는 약간 당황하는 눈치다. 미리 말도 안 하고 마음대로

차를 모는 상대의 행동에 약간은 어색해 했다. 나는 미안한 얼굴을 하고 씩

웃었다.


 “선생님, 만약 전곡항에 들렸다 가면 늦을지도 몰라요. 그 섬에는 일몰을

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일찍 가서 좋은 자리를 잡아야

해요.” 


 “그 섬에 자주 다녀보셨나봐요?”

 K는 그 섬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저도 오늘 그 섬이 처음이에요. 그 섬에 갔다 온 분들이 그러더라고요. 좋은

자리는 사진을 촬영하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혼잡하데요.”


 K는 가방에서 박하사탕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 K의 핑크색 루즈가 곱게 칠해

진 촉촉한 입술과 하얀 치아 사이에서 나는 미인이 조건을 보았다.


 “그럼, 얼른 갈 걸 그랬나 봐요. 지도에는 아주 가깝게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가을이지만 오후의 햇살은 팔월의 햇살과 다름

없었다. 육지가 된 탄도에 도착했을 때 의외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어머나, 마침 잘 되었네. 주말 오후인데도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네요.”


 K는 소풍 나온 소녀처럼 좋아하였다. K가 카메라가 든 가방을 나에게 맡기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나도 사정이 급하지만 K가 올 때 까지 아랫도리에 힘을 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주차장은 차량들이 일으킨 먼지로 어수선했다. 남자

여자의 방광을 비우는 속도는 분명 차이가 있는 듯 했다. 속을 시원하게 비운

K가 미안한 듯 뛰어 왔다.


 “선생님, 저기 좀 보세요. 저기가 누에섬인거 같아요.”


  K는 신이 나서 멀리 있는 섬을 가리켰다. 섬은 탄도에서 1.5KM쯤 떨어진

듯 했다. 연인이나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시멘트를 비벼서 만들어진 바닷길

을 걷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바다 한가운데로 나 있는 길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어 졌겠지만 섬은 그 길로 인하여 우스운 모습이 되고 말았다.

 

 섬은 섬이지만 마치 긴 꼬리를 가진 바다 거북같았다. 멀리서 보면 마치 그

모습이 누에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누에섬 정상에 화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타고 왔을 법한 비행접시 모양의 전망대가 떡하니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틀고

앉아서 누에섬의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나와 K는 마치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정하게 걸었다. K는 무엇이 그리

재미 있는지 내가 듣던 안 듣던 연신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대개의 연인

들이 손을 맞잡고 걷는데 반해 나와 K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걸었다.  

기차의 좌우 바퀴가 종착점까지 도착하여도 결코 닿지 않는 것처럼.

 

 나는 중간 중간 자랑스럽지 못한 시멘트 길 위에서 렌즈를 돌렸다. K 역시

누에섬과 주변 풍광을 담느라 분주했다. 도로 중간쯤에 대형 굴삭기가 무슨

시설물을 설치하려고 하는지 터파기 공사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천연 풍광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누에섬을 왜 쓸데없이 상처를 입히는지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바닥을 파고 있는 굴삭기를 바다 저 멀리 집어 던지고

싶었다. 누에섬이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누에

섬은 이방인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하였다. 분명 섬은 심기가 편치 않아보였다.

곱고 우아했던 자태에 인간들이 강제로 만들어 놓은 긴 뱀꼬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까?

 

 혹은 누에섬 정상에 마치 비행접시를 얹어 놓은 것처럼 인간들 임의 대로

만들어 놓은 등대와 전망대의 무게에 눌려 힘에 부친 걸까? 40도 경사처럼

보이는 급한 경사길이 누에섬 정상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그 급경사를 타며 오르고 있었다. 나는 K에게 먼저 산

정상에 있는 비행접시를 살펴보자고 하였다. 산 정상에 까지 오르는데 상당히

숨이 가빴다. 경사진 길이 멀리서 보기와는 전혀 틀렸다. 남자 직원 한명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둘러보라고 하였다.

 

 정상 전망대에서 보는 제부도와 대부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나와 K는

시원한 전망을 렌즈에 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해가 서천 하늘에 낮게

드리워지면서 서해를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황금 은박지를 곱게 펴 놓은

것처럼 바다는 일렁이지 않고 순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선생님, 여기 보다 저 아래로 내려가면 일몰 장면을 더 잘 볼 수 있을 거

예요. 우리 저 아래로 내려가요. 여기 전망대 관람 시간도 다 된거 같아요.”

K는 서쪽으로 난 선착장 쪽을 가리켰다. 나는 누에섬 정상에서 보는 일몰보다

바닷물이 출렁대는 바닷가에 내려가서 보면 거대한 불덩이가 수직으로 잠수

하는 장면이 더 장엄하고 환상적이며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서둘러 카메라 가방을 정리하고 우주선에서 내려왔다. 누에섬을 빙

둘러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대여섯 명의 젊은 남자들이 산책로 중간에

설치된 원두막 모양의 갈색 파고라 안에 텐트를 쳐놓았다. 그들은 낚시를

핑계로 장기간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텐트 주변이 그들이 버린 소주병,

빈 깡통, 라면 봉투 등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새카맣게 그은 그들의 피부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들이 뭍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이곳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혹은 세상에

불만을 품고 낚시로 한 세월 낚아 올리는 게 아닌가 여러 가지 추측을 해보

았다. 나와 K가 텐트 앞을 지나가자 낚시꾼들의 묘한 시선이 우리의 등에

깊게 꽂혔다.


 우리는 제부도 방향으로 난 간이 선착장 우측에 자리를 잡았다. 두 명의

사진 전문가로 보이는 남자들이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장착하여 삼각대에

고정한 뒤 석양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각자 가장

좋다고 판단한 지점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50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 자리 잡았다.

 

 K는 누에섬과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제부도를 렌즈에 담느라 분주해 보였

다. 나는 삼각대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해가 수면과 10미터 쯤

떨어졌을 때부터 나는 카메라 렌즈를 붙잡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파란색, 노란

색, 무채색으로 카메라를 설정하고 다양한 장면을 포착하였다. 구름이 짙은

회색의 구름이 잠시 나타났기도 하였지만 일몰의 장엄한 광경을 포착하는데

크게 방해되지 않았다.


 ‘아아, 저 이글거리는 불덩이, 저 불덩이가 있어 내가 숨 쉴 수 있고, 이 지구

라고 하는 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야. 어찌 보면 저 불덩이는 창조자 이면서

파괴자일지도 모르지. 나는 태양계의 세 번째 별인 지구라는 곳에 지금 서 있고

그 주인인 태양을 마주하고 있어. 이 얼마나 장엄한 순간이란 말인가?’

 

 망원렌즈에 빨갛게 타면서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있는 거대한 불덩이는 희열

이면서 슬픔으로 다가왔다. 환희의 장면을 마주대하면서 왠지 모를 슬픔이

전신을 휘감았다.


 2년 전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큐슈지방으로 향할 때 였다. 시모노세키를

지나 내륙 해안으로 접어들 때 지금처럼 커대한 불덩이가 멀리 야트막한

산 위로 솟아오르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불덩이는

보름달이었다. 나는 그때 달도 태양처럼 거대한 불꽃으로 이글거린다는 사실

처음 알았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태양이 모습이  펄펄 끓는 용광로의 쇳물이라면 그때

보았던 불덩이는 원형의 주물(鑄物) 틀 안에서 서서히 식으며 제 모습을 잡아

가는 불덩이였다. K도 셔터를 눌러 대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우리와 50미터

거리에서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해가 너무 예뻐요. 저렇게 예쁜 해는 난생 처음 봐요. 어때요?

저 해님이 너무 예쁘죠? 오늘 정말로 날짜를 잘 잡은 것 같아요. 그쵸? 우리의

데이트를 하늘이 도와주는 것 같아요.”

  K는 눈을 카메라에 붙인 채 나를 쳐다보지 않고 혼자서 자문자답하였다.  


 “그런 거 같아요. 오늘 정말로 날짜 하나는 잘 잡았어요. 오늘 저녁은 제가

살게요. 날짜를 잘 잡은 공을 생각해서요.”

 나는 K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하여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머나? 정말이요? 저녁은 전곡항이나 제부도로 가요. 아까 탄도 오면서

보니까 이 근처에는 괜찮은 식당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그래요. 그럼 전곡항으로 가요. 그곳에 갈만한 횟집도 있는 거 같더라고요.”

 

 나는 속이 출출해지는 것을 느꼈다. 해는 바다를 붉게 물들여 놓고 자취를

감추었다. 대략 200여장의 일몰 장면을 찍은 것 같았다. 나와 K는 해가 사라

진 뒤에도 여운이 남아 멍하니 해가 잠수한 바다 끝을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겼다.


 “선생님, 우리 이제 나가요. 저쪽에서 사진 찍던 사람들은 안 보이네요?”

 K가 침묵을 깼다.


 “그래요. 나가요.”

 사방이 이미 어둑해진 것이 괜히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바닷물이 운동화를

적셨다. 밀물 들어오는 속도가 정말로 빨랐다. 꾸물 거리다가 이대로 바다 한

가운데 감금되고 말 것 같았다. 우리는 서둘러 카메라를 정리하고 산책로 위

로 올라왔다.

 

 어둠에 완전히 파묻힌 제부도에서 반짝거리는 불빛이 은하수처럼 고왔다.

간이 선착장에 낚시꾼들이 램프를 밝혀놓고 낚시에 전념하는지 일정한 간격

으로 서서 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우리는 오늘 성과에 대해 만족해

하면서 탄도를 향해 걸었다.


 K는 아쉬운지 자꾸만 해가 숨은 바다를 돌아보면서 섭섭해 했다. 누에섬

전망대가 마왕처럼 떡 버티고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탄도섬과

누에섬의 거리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였다. 나와 K가 간신히 누에섬

에서 탄도까지 이어진 시멘트 길로 나왔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랐다.


 “아, 이럴 수가?”
 “어머나, 이일을 어째?”


 탄도와 누에섬을 잇는 시멘트 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

지고 없었다. 나는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망연자실하였고 K는 충격을 받은 상태

에서 길 바닥에 주저앉아 멀리 탄도에서 명멸하는 불빛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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