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섬 전경
누에섬에 가다(1)
- 여강 최재효
21세기를 사는 사람의 가슴 깊은 곳에 섬 하나 쯤 키우고 있지 못하다면 도둑놈
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나는 도둑의 누명을 쓰고 싶지 않아 그곳엘 가게 되었고,
도둑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예수가 요한의 손에 이끌려 세례를 받듯 나는 그날 서해 용왕의 딸에게 이끌려
물세례를 받음으로 해서 아직도 내가 세상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다는 인간의 기원(起源)이 있는 곳이고 누구나 태어나면 사대
(四大) 즉, 물, 불, 바람, 흙으로 흩어져 결국 최종 귀결점이 바다가 된다는 것에
나는 추호도 의심이 없다.
좀도둑에는 관심이 없을뿐더러 어쩌다 본의 아니게 좀도둑의 누명을 썼다면
하루 세끼 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나는 그날 유년시절부터 나를 괴롭혀 온
뇌리 속에 숨어 있던 섬을 찾아냈다. 아니, 비록 내가 찾고 있던 완결 무결한 섬은
아닐지 몰라도 거의 근사 점에 이르는 섬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한반도 가장 한가운데인 경기도 여주에서 탯줄을 끊은 나는 섬이라고 하면 왠지
낯설고 동화나 신화(神話)에 등장하는 미지의 땅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좀처럼 나
에게 다가오지 않던 섬이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것이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2년 전 어느 사진작품 전람회에서 였다. 나는 그날 지인(知人)
의 부름을 받고 늦은 오후에 혼자 갤러리에 갔다. 내가 개인사정으로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였을 때 그는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었다. 사진에 문외한인 나는 그냥
되돌아 가기 아쉬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작품 한 점 한 점 둘러보기로 하였다.
작가의 혼(魂)이 담긴 감명 깊은 작품이 내 발목을 잡았다. 50여점의 작품을 모두
보려면 최소한 한 시간을 투자해야 할 듯 했다. 나는 어둑해진 밖의 황혼(黃昏)에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작가의 영혼을 들여다보기로 하였다.
나의 동공(瞳孔)을 한 곳에 집중시킨 작품은 일몰을 촬영한 작품이었다. 거대한
불덩이가 바닷물을 부글거리며 끓게 만든 뒤 서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작품이
었다. 지금까지 수십 수백의 일몰장면을 보아왔다.
인터넷이 일상화 된 지금 검색창에 ‘일몰’이라고 검색어를 써 넣으면 수천 개의
이미지나 관련 웹사이트가 뜬다. 또한 구글(google)이나 알타비스타(altavista) 등
외국에 서버를 둔 사이트에 ‘sunset'라는 검색어를 찾아보면 수백만 개의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다. 나는 넋을 잃고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붉은 덩어리는 잘 익은 홍시(紅柿) 같기도 하고, 언젠가 사진에서 본, 1953년 구,
소련이 만들어 실험하였다는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수소폭탄 ‘짜르 봄바(Tsar
Bomba)’의 폭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나를 유혹하고 있는 불덩이는 평소
무감각하게 보아오던 그런 태양이 아니었다.
2차대전 당시 남태평양을 잠시 지배하였던 일본군의 일장기 같기도 하였고
언젠가 꿈속에서 보았던 화탕지옥의 펄펄 끓는 쇠물같기도 하였으며, 제2의 천지
개벽하였을 때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단숨에 삼켜버릴 거대한 마왕의 붉은
입같기도 하였다. 환희와 소름끼치는 전율이 내 몸에 전선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흐르는 혈관을 변화 시켰다.
또한 붉은 덩어리는 이상과 현실에서 크게 괴리되어 있는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욕망의 덩어리 같기도 했다. 내가 온갖 망상에 사로 잡혀 있을 때 나는 순간
적으로 진한 향기를 맡았다. 내 오감은 내 뒤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정보를 수집
하여 뇌리에 전달했다. 순간 적으로 나는 잠시의 몽상에서 탈출하여 일몰을 응시
하는 자세를 유지하였다.
“관심이 많으신 것 같으시네요.” 여인의 세련된 음성에 나의 일몰에 대한 감상은
순식간에 중단되고 내 뇌는 그녀에 대한 대강의 정보를 추론하게 했다. 나는 장승
처럼 서서 일몰 사진에 심취해 있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녀의 상큼한 장미향이
나의 추론을 빠르게 하였다.
동시에 내 기억의 정보 창고에서 거의 삭제되다시피 한 가슴 아픈 향수를 되살
리는 효과를 발휘하였다. 사진 분야에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가장 적당할까를 고민하였다. 잠시 뜸을 들이며 나는 사진 앞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정말로 사진에 심취해 있는 것 처럼 위장하였다.
‘30중후반, 도회지가 고향인, 술은 와인 정도, 키는 160cm정도, 얼굴은? 글쎄
얼굴은......’
머리속의 소프트 웨어가 잠시 멈추는 듯 했다. 오랜동안 방기 했던탓일까. 안간
힘을 쓰면서 한때 기름을 치지않아도 잘 굴러가던 머리를 탓해야 했다.
“네, 아침에 뜨는 해보다 저녁에 뜨는 달이나 일몰을 사랑합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였다. 말하고 난 뒤에 나는 내가 한
말을 다시 주워 담고 되새김질 해보았다. 물론 그녀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한 말
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치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그녀와 1m정도 간격을 유지해가며 마
치 게처럼 옆걸음으로 마지막 50번째 작품까지 동공에 각인시켰다.
저도 일출보다는 일몰이, 월출보다는 월몰이 좋아요. 해가 뜨는 장면은 가슴
벅찬 감동과 희열을 느끼게 하지요. 보름달이 뜨는 장면 또한 일출과 비슷한
감정을 불러 오기도 하고요. 그러나 해나 달이 바다로 숨는 장면은 눈물을 자아
내게 해요.
특히 보는 사람이 없는 새벽에 달이 쓸쓸히 바다 속으로 잠기는 모습은 왠지 모를
슬픔과 서러움을 느끼게 해요. 물론 그런 감정은 일몰이나 월몰을 바라보는 사람들
대부분이 느낄 거예요.
50번째 사진을 다 볼 때 까지 나는 그녀의 옆얼굴만 바라보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나의 추론은 99.9% 정확도를 자랑했다. 갸름한 얼굴에 희고 고운 피
부를 지닌 도회지풍 미인이 었다. 나는 감히 그녀에게 작품이 이렇고 저렇다는 내
나름대로의 감상 소감을 말한다는 게 얼마나 실례가 될까를 고민하였다.
반쯤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미소를 짓거나 괜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어느 정도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사표시를 해야
했다. 사진을 모두 보고 나서 그녀의 어깨에 카메라가 매달린 사실을 알았다. 니콘
(Nikon)에서 제작된 카메라 였다. 나는 집에서 잠자고 있는 나의 애물단지인 캐논
(Canon) 450D를 떠 올렸다.
지난해 거금을 들여 장만한 카메라였다. 나는 그것을 품기 위하여 일부러 서울
명동에 들렀다. 국내에서 가장 큰 캐논 카메라 매장 같았다. 가지고 다니기 간편
하고 다루기 쉬운 디지털카메라만 사용하던 나는 그 놈을 친구로 영입한 뒤부터
골치가 아팠다. 밤낮으로 그놈만 끼고 노는 통에 아내와 두 딸들은 은연중 불평
불만을 드러냈다.
좋은 DSLR(Digital Single Lense Replex)을 구입하면 나도 일류 사진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나타났다. 카메라를 사온 날
부터 나는 밤낮으로 그놈을 자랑스러운 듯 어깨에 메고 가까운 소래포구를 종횡
무진 누비고 다녔다.
소래포구 물량장에서 금방 귀항한 어선에서 내리는 물고기를 찍기도 하였고,
어시장에서 물고기를 팔고 있는 여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기도 하다가 여인들의
거센항의를 받기도 하였고, 여인들의 남편들에게 카메라를 빼앗길 뻔도 하였으며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오인받기도 하였다.
또 어떤 날은 소래신도시를 사진으로 찍어 소래의 발전된 모습을 인터넷에
널리 알리려고 늦은 밤, 카메라 후레쉬를 터트려 대다가 경찰에게 검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앙증맞게 걸려있는 니콘카메라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캐논 기종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니콘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했다.
저는 프로는 아니지만 사진 촬영하는데 무척 관심이 많답니다. 이게 제 블로그
주소인데요, 선생님께서 시간 나실 때 한번 구경 오세요. 그럼, 저는 다른 데 갈
일이 있어서요. 나와 K는 전시장 입구에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 나누며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K는 명함크기 메모지에 자신의 불로그 주소를 남기고 도심
으로 바람 처럼 사라졌다.
나는 잠시 꿈을 꾸고 있었다고 생각하며 갤러리를 나섰다. 공허가 밀물처럼 밀려
들면서 나는 잠시지만 어떤 미인과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다는 행복감에 젖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손아귀에 있던 파랑새가 날아간 느낌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선생님, 오후 4시가 좋겠어요. 오후 6시면 해가 지니까, 해 지는 모습을 보려면
일몰 한 시간 전 쯤 미리가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내가 K를 다시 만난 것은 평소 내가 잘 알고 있는 지인의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였다. 지인은 나를 자신이 총무이사로 있는 문예지에 단단히 매어 두고 싶어했다.
5년전 부터 나에게 지성을 드리고 있는 지인의 성의를 봐서라도 나는 반드시 참
석해야 했다.
출판기념회에서 나는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지난 수년간의 나의 노고와
지대한 관심을 문예지 주주들이 높이 사게 된 결과물이었다. 망설임 끝에 초췌한
모습으로 나는 출판기념식장에 참석키로 하였다. 나의 모라보게 변한 모습에
사람들은 놀라워 하였다. 좋은 일도 아니어서 나는 나이 발병 사실을 친한 사람
몇몇에게만 알렸다. 그간 몰라보게 변한 나의 모습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며 일일이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 하였다.
안내 데스크에서 기념회 행사 팜플릿과 문예지를 나눠주는 K를 나는 처음에
알아 보지 못했다. 진녹색의 투피스에 보라색 스카프로 포인트를 준 세련된
여인이 출판기념회장 입구에 서서 내빈을 맞고 있었다. K는 2년 전 보다 더욱
원숙하고 온화해 보였다. K가 먼저 아는 체 하지 않았다면 나는 2년 전 어느
갤러리에서 잠시 만났던 K를 그냥 어렴풋한 기억 속에 잠재워 두고 있었을 것
이다.
출판기념회는 시인의 프로필 소개, 내빈 소개, 시인이 몸담고 있는 각종 문학
단체의 문인들 축사 및 격려사로 이어졌다. 다과회 중간에 서너명의 여류시인의
유명시 낭송과 평소 친분이 있는 시인들의 시 낭송으로 이어졌다. K도 시를 낭송
하였다.
낭랑하고 세련된 음성에 축하객들의 박소가 우렁찼다. 나는 그날 여인들은
팔색조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헤어스타일, 옷, 개성 있는 화장(化粧)
으로 여인들은 얼마든지 왕비에서부터 무수리까지 분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K씨 블로그에는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방문 했었습니다.”
나는 K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한 번도 그녀의 블로그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건넨 블로그 주소가 적힌 메모지는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 조차 없었다. 딱
히 나를 반기는 그녀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무엇을 보
았느냐고 반문할까 두려웠다.
“어머나, 그러셨어요? 그럼, 흔적 좀 남기시지 않고요?”
K는 나의 말을 진담으로 알아 듣는 것인지, 아니면 인사치레로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반가운 척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관심
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그녀는 굉장히 기뻐하는 눈치였다.
K는 선뜻 나에게 명함을 건넸다. 나는 명함이 없었다. 대신 그녀의 명함 뒤에
내 블로그 주소를 적어서 건네 주었다. K는 나를 고리타분한 남자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블로그를 다 가지고 계세요?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것은 현대인의
자신의 표출인 동시에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적합한 방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 군요?’ K의 두 눈은 나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건네고 있었다.
블로그 주소를 써서 건네는 내 얼굴이 순간 홍조를 띠었다. K에게 시간나면
한번 방문해달라는 인사와 함께 나는 지인들 틈에 섞여 문학에 대한 지극히 평범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 이번 주말 오후에 나오시는 거죠? 일기예보를 보니까 날씨도 좋을 것
같아요. 가을이라 비바람도 없고 구름도 없을 것 같아요. 안산시청 앞에서 4시 정
각에 뵐게요.]
K는 이틀전에 내가 그녀의 블로그에 남긴 방명록에 답신을 달았다. 물론 그녀
만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고맙다는 인사와 꼭 시간에
맞춰 나가겠다고 하였다.
일회성의 전화로 통보하는 것 보다 글자로 남기면 혹시라도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나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나는 다시한번 K의 휴대전화에 약속은 정확
한 시간에 나타날 것이니 걱정 말라는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놓고 먼지에 쌓
여있던 녀석을 꺼내 사용설명서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깨알만한 글자를 다 읽는 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와 노력을 요구했다. 처음 두서너
쪽을 읽다가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사진 잘 찍는 사람들의 두뇌 구조는 아마 보통사람들과 다른 것 같았다. 나는 카메
라를 메고 소래포구로 나가 무조건 셔터를 눌러댔다.
지나가던 연인들이 나의 카메라렌즈를 발견하고 얼른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어떤 중년의 커플은 나를 노려보았다. 포구 옆 벤치에 앉아 방금 촬영한 사진을
보면서 왜 초점이 흐리게 찍힌 이유와 움직이는 피사체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은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실력없는 목수가 대패 탓을 한다더니 내가 바로 그 짝이었다. 기계가 아무리
고가의 제품이더라도 그 사람에게 맞는 제품이 있고 그렇지않은 제품이 있다.
나의 보물은 그런대로 내 손에 잘 맞는 편이었다. 다만 내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에서 다운 받아 하나하나 감상하면 어느새 심사가 뒤틀려 한숨이 나오기
일쑤였다.
'도대체 나는 왜 사진을 이리도 못 찍는 것일까? 천부적으로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인가? 아니야, 그렇지는 않을거야. 수천 만원대 하는 고가의
카메라와 슈퍼 망원경을 구입하면 나도 일류 사진작가 못지않게 명작을 만들 수
있을거야. 그러나 샐러리맨 입장에서 언제 그런 고가의 명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인가?'
늘 나는 같은 결론을 내놓고 답답한 심사를 억누를 수 없었다.
나는 K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K의 블로그에는 고정적으로 방문하는
지인들이 여러명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최근에 촬영한 K의 작품을 천천히
일별해 보면서 여인의 미세한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다소 추상적인
면이 있다는 K의 작품 하나 하나에는 현실을 반영한 사실주의적 경향이
강한 뉘앙스가 풍겼다. 예술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그림, 음성, 문자, 기호
또는 행위로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나는 인식해 왔다.
K의 내면세계가 꽃, 나무, 문고리, 가구, 한복, 어린아이 얼굴 등 다양한
소재에서 은은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나의 블로그를 찾는 분들도 꽤 있는
편이어서 나는 종종 답방하는 형식으로 그들의 블로그에 머문는 때가 자주
있었는데 보통 1시간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K의 블로그에 가면 보통 2시간
이상 장기 체류하면서 K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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