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에 내린 눈(최종회)
- 여강 최재효
오랑캐에게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정씨 가문의 며느리 박씨녀가 치욕
스러울 정도로 문전박대 당한 뒤 정씨 집안에서 누구 한 사람 박씨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박씨녀의 두 아들은 가끔 어머니 박씨녀가 보고 싶기도
하였지만 집 안에서는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
김씨는 정진경에게 다른 가문의 참한 처녀와 혼인 할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이 놈아, 그 정도면 한양에서 최고로 미색이란다.”
“어머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두 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결혼을 해요.
저애들 엄마가 버젓이 살아있는데요?”
“너 언제까지 혼자 살 셈이니? 그리고 그 계집이 우리집안과 무슨 상관이야?”
“어머니, 좀 더 두고 생각해 볼게요.”
“뭘 더 생각해? 손자 녀석들이 지난해 마진에 걸려 둘 다 벙어리가 되었는데
어서 장가들어 건강한 손자를 다시 봐야할 거 아니냐?”
“어머니, 알겠어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런 칠칠치 못한 녀석 같으니......’
그러나 마음 약한 정진경은 두 아들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선뜻 혼인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정진경은 아내 박씨녀에 대한 그리움이 병이
되어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달뜨는 밤이면 정진경은
장독대로 나와 오랜 시간 달을 바라보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하였다.
시아버지 정갑영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많은 재산으로 퇴직 후에도 조정에
출사할 때 사귄 많은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자주 주연(酒宴)을 열곤 했다.
많은 친구들 가운데 윤대감은 정갑영과 마음이 가장 잘 맞는 벗이었다.
두 사람은 평양이나 개성 부산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름 난 기생이란 기생은
모두 건드리고 다녔다. 정력이 좋은 두 사람은 회춘한다는 미명하에 기녀나
바람난 유부녀들을 품어 보는 것에 인생 최대의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추랑이 역시 한번 품어보고 싶은 여인의 명단에 들어 있었다.
‘아, 어찌하여야 하나? 시아버지 앞에서 그냥 아무것도 모른 체 평소와 같이
행동하여야 하나 아니면 원수를 갚아야 하나? 아니야, 우선 술을 많이 마시게
하여 집안 사정을 알아내야 겠다. 그래, 그게 우선일 거야.’
추랑은 춘설의 방으로 와 놀란 가슴을 진정하느라 냉수를 마시고 잠시 앉아
있었다.
“언니, 두 분 모두 지체가 높고 꽤 점잖게 생기셨던데, 언니 좋겠어요. 매일
지체 높은 양반님네만 모시니.”
“......”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추랑에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을 있음을 감지한
춘설이 추랑이 눈치를 살폈다. 평소에 활달하고 명랑한 표정이 아닌 우울하고
침통한 얼굴이었다.
“언니, 무슨 일 있어요?”
“......”
“언니, 손님들을 방에 있게 하고 여기 계시면 어떻게 해요?”
“......”
“추랑 언니.”
“으응? 내 정신 좀 봐 내방에 손님들을 모셔놓고.”
추랑은 빨리 자기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금방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추랑은 혹시 시아버지 정갑영이 알아 볼까봐 화장을 진하게
고치고 눈썹과 입술연지도 짙게 칠하였다.
“여보게 갑영이, 추랑이가 자네 자부(子婦)와 많이 닮은 듯 하이.”
같이 온 한량인 윤대감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예끼, 이 사람아. 그 년은 지금 쯤 구천을 떠도는 고혼(孤魂)이 되었을 걸세.
그 계집년 때문에 우리가문이 얼마나 망신을 당한 줄 아나? 그리고 두 손자 녀석
들이 지난해 그리된 것도 다 그 못된 년 때문일세. 그러니 다시는 그년 이야기를
꺼내지 말게.”
정갑영이 덤덤한 표정을 지으면서 심기가 불편한 듯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자네 처가 너무 심했으이. 그래도 친정이라고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찾아왔는데, 어찌 그리 문전박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사람아, 알지도 못하면 가만히 있게. 지금 한양에 청국에 포로로 잡혀갔다
온 계집들 때문에 젊은 것들이 얼마나 풍기 문란해졌는지 아는가? 주막마다
넘쳐 나는 게 환향년들이라네. 그년들이 하는 짓이 뭔지 몰라서 그러나 ?”
정갑영은 자신의 처가 며느리 박씨녀를 내 친일이 잘한 일이라고 강변했다.
“내 눈에는 아무리보아도 추랑이가 자네 자부랑 비슷해, 아니면 내가 벌써
노망(老妄)이 들었나? 내가 자네 집에 자주는 아니지만 아무리 보아도 추랑이와
자네 자부가 너무도 비슷하이.”
“윤대감, 잡생각 하지 말고 우리 오늘밤 질탕하니 놀아보세. 술값과 저년 행하
채는 내가 냄세.”
정갑영은 은근히 친구 앞에서 돈 자랑을 하였다.
“그런데 말이야. 저년 혼자 불러 놓고 사내 둘이서 어떻게 노누? 아 자네야 벌
써부터 추랑이와 한바탕 놀고 싶어 안달이 나서 찾아왔지만 난 혼자서 술이나
마셔야 하나?”
윤대감이 떨떠름한 표정이다.
“자네와 내가 누가 저년 마음을 사로잡는지 내기 하면 될 거 아닌가? 정 뭣
하면 한 년 더 부르던지 그럼.”
정갑영이 춘매를 불러 기생 한 명을 더 부르라고 했다.
“추랑아,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는 거니?”
어느새 춘매가 춘성의 방의로 들어와 얼굴빛이 안 좋은 추랑이에게 물었다.
춘매의 얼굴도 긴장되어 있었다. 평상시에 보지 못하던 추랑이의 안색에 춘매도
불안해 했다.
“어머니, 아무 것도 아니에요. 잠시 현기증이 있어 냉수 마시고 정신 좀 차리
려고요.”
“저런, 쯧쯧쯧......, 하루도 쉼 없이 네 방에 손님들이 몰려드니 나는 돈을 벌어
좋다만 네 몸에 무리가 올까 걱정되는구나. 그럼, 너 대신 딴 아이들을 들여
보내랴?”
“아, 아니에요. 저 두 분은 저를 보러왔다고 그랬어요.”
“그렇지만 네가 몸이 안 좋으니 어떻게 하니?”
“이젠 좋아졌어요. 어머니, 들어가 볼게요.”
“손님들이 준다고 넙죽 넙죽 술을 받아 마시지 말거라. 일 년 내내 그리 마시면
큰일 난단다.”
“네에 어머니. 명심할게요.”
“어머니, 추랑 언니는 술을 많이 안 마셔요. 요령껏 마시니 몸에는 큰 무리가
없을 거예요.”
“그럼 다행이고.”
“어머니, 이만 들어가 볼게요.”
“그래, 두 분 양반님네 잘 좀 모시거라. 보니까 돈도 좀 있고 품위가 있어 보이는
분들 같더구나.”
추랑은 춘설이의 방에서 가까이 있는 자신의 방까지 걸어가는 통로가 마치
저승 가는 길 같다고 생각했다. 한 발짝 한 발짝 옮길 때마다 추랑의 가슴은
쿵쾅거렸다. 마침 추랑이와 맞닥뜨린 덕칠이 추랑이의 안색이 안 좋아보이자
추랑이 앞을 막았다.
“아씨, 얼굴이 안 좋아 보이세유. 어디 아프신 데라도 있으세유?”
“덕칠아, 어찌하면 좋니?”
“왜유 아씨? 무슨 일 있어유?”
“근영이 할아버지가 내 방에 드셨단다.”
“네에? 대, 대감마님께서유?”
“그래,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빨리 들어가 봐야하는데......”
“아, 아씨, 그럼 대감마님께서 아씨를 몰라봤단 말씀이네유?”
“그래, 아직 몰라보는데 금방 알 것도 같아 불안해 죽겠어.”
“아씨, 화장을 진하게 하셔서 금방 알아보지 못하실 거에유. 이놈두 언뜻 봐서
아씨를 잘 몰라보겠는데유.”
“아, 그러니? 그럼 다행이고.”
“걱정하지마세유.”
“덕칠아, 이 어떻게 해야 좋으니? 생각 같아서는 술에 비상을 넣어 죽이고
싶다만 두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으니.......”
“아씨, 잘 생각하셨어유. 두 도련님들을 생각하면 참으셔야 해유. 만일 대감
마님께서 아씨 손에 독살당하신다면 아씨도 잡혀가 죽음을 면치 못하실거에유.
참으셔야해유. 아셨지유?”
“그래, 네 말대로 할게. 그러나 저 두 영감들이 빨리 가야 할 텐데.......”
“아씨께서 대감님에게 자꾸 술을 따라드려서 대감마님이 빨리 취하게 만드
세유. 취하면 빨리 집에 돌아가시겠지유.”
“덕칠아, 혹시 근영이 할아버지가 너를 볼지 모르니 너는 절대 내 방 앞에서
얼씬도 하면 안 된다. 알았니?”
“염려하지 마세유.”
“그래, 고맙구나.”
“아씨, 어서 들어가 보세유. 대감마님께서 찾으실텐데유.”
“그, 그래.”
추랑은 억지로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아니, 어딜 그리 오랫동안 다녀오는 길이냐?”
"송구하옵니다. 소첩이 불민하와 그만 복주머니 차는 것을 빠트렸지 뭐에요.
"
“아니다. 그 정도야 뭐. 험-.”
정갑영이 인심 좋은 체 하며 헛기침을 해댔고 추랑은 정갑영 앞에서 교태를
부렸다. 평소 추랑이를 시기하던 소월이 기방으로 들었다. 소월이 기방에 들자
추랑이와 신경전을 벌였다.
"음- , 과연 듣던 대로 네 자색이 뛰어나구나. 올해로 몇 살인고?"
‘그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내 한 맺힌 원한을 이제야 풀 수 있게 되었구나.
이제는 나와 이 늙은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이야. 기생과 손님 사이라고,
기생과 손님......’
추랑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느라 애를 썼다. 병자년 전쟁이 있기 전에는
감히 얼굴을 제대로 쳐다 볼 수조차 없었던 지엄한 시아버지였다. 그 엄하고
근엄한 시아버지 정갑영이 지금 바로 앞에 앉아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올해로 스물한 살입니다."
추랑은 나이를 속이며 혹시 시아버지 정갑영이 자신을 알아볼까 고개를 약간
숙였다.
"음-, 한창 좋은 나이로고……. 네 고향은 어디인고? 그리고 시문은 배웠
느냐?"
전쟁 전 평소에 듣던 시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거만함이 배어있는 목
소리가 추랑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윤대감은 소월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으며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져있다.
“고년, 참으로 허리가 나긋나긋 하구나.”
“아이, 나으리, 벌써 이러시면......”
“허, 저 사람은 성질도 급허이.”
정갑영이 소월이를 껴안고 소월이 젖가슴을 지분대는 윤대감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자, 추랑아, 술 좀 따라 보거라. 에헴-.”
“네에.”
정갑영이 며느리를 부를 때 인자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근엄한 얼굴을 한 전형
적인 조선 사대부의 당당하고 거들먹대는 모습은 너무 가관이었다. 허위의식에
찬 시아버지의 얼굴에서 추랑은 추악한 양반들의 양면성을 보았다.
"고향은 개성 이옵고, 시문은 오라버니들 틈에서 어깨 너머로 조금 익혔나
이다."
"근자에 들어 한양에 네 명성이 자자하거늘, 오늘 네 재주를 좀 보아야겠다.
어디 술 한 잔하며 나와 시간을 보내 보자꾸나. 내 술값은 넉넉히 낼 터이니 염려
하지 말거라."
정갑영은 대대로 조선의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이고 조상 덕에 재물은 넉넉한
편이었음을 추랑이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는 인색하면서도 기방이나
술판에서는 돈을 물 쓰듯 하는 위인이었다. 그런 정갑영에게는 술친구가 많았다.
정갑영에게 빌붙어 기방에 들락거리는 것을 정갑영의 친구들은 큰 행운으로
생각했다.
"추랑아, 나와 오늘 밤 질탕하니 마셔보자, 네 가무와 시문을 구경하고 싶구나."
“소첩 어떤 노래로 나으리를 즐겁게 해드릴까요” “아무거나 다 좋다. 네가
노래뿐만 아니라 춤도 잘 춘다지?”
“부끄럽습니다.”
“아니다. 아무 상관하지 말고 네가 부르고 싶은 노래로 불러보려무나.”
추랑이 평소 즐기던 노래를 가야금을 연주하며 부르자 정갑영과 윤대감은
술잔을 기울이며 눈을 지그시 감고 추랑이의 노래에 취해 있었다.
公竟渡河(공경도하) 임은 그예 물을 건너고 말았네
墮河而死(타하이사)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當柰公何(당내공하) 임이여 이를 어이할꼬.
"좋다. 너 정말 잘하는 구나. 이리 가까이 와라."
노래를 마친 추랑이 시아버지 곁에 바짝 다가가 앉으니 정갑영은 옆에서 소월
이를 껴안고 노골적인 행위를 하는 윤대감의 행동에 자극을 받았는지 추랑이
허리를 껴안으며 속삭였다.
"추랑아, 너. 내 소실(小室)로 들어 올 마음 없느냐? 그리해 준다면 내 너를
평생 편히 먹고살게 해주마."
‘뭐? 소실? 이 늙은이가 제 며느리도 몰라보고 소실로 앉히겠다고? 지나가는
강아지가 웃을 일이로다.’
“추랑아, 뭘 그리 생각하느냐? 네 정도의 미색이라면 나와 딱 어울릴
듯싶구나.”
“나으리, 소첩은 기녀이옵니다. 기녀는 어느 한 분을 위하여 존재하지 않습
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꽃이라고 해야겠지요.”
“험-, 네 말도 일리가 있다.”
시아버지의 유혹에 추랑은 속이 메스꺼워졌다. 아무리 나이 먹은 남정네
지만 이 년 전 자신의 며느리를 몰라보고 소실로 들어오라는 말에 묘한
쾌감도 느꼈다.
‘그래, 어차피 이 한 몸 남편과 백년해로 하기는 틀린 일, 내 한 몸 희생하면서
조선의 잘난 사내들에게 치욕을 안겨 주는 거야......’
추랑은 속으로 다짐을 했다.
"자자, 추랑아, 술 한 잔 쳐보거라. 흐미……. 요 귀여운 것. 오늘은 나 말고
아무도 받지 말거라."
정갑영은 며느리인 추랑이 엉덩이를 주물러 댔다. 윤대감은 옆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소월의 저고리를 거의 벗기다 시피하면서 소월이의 허여멀건 젖가
슴을 핥으며 희희낙락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정갑영은 추랑이의 미모에 반해
술 마시는 것도 잊고 빨리 음심을 채우려했다.
"아이 -, 나으리, 벌써 이러시면……."
정갑영의 손을 물리치려 하자 정갑영은 더욱 손에 힘을 주며 며느리 허리를
껴안으며 며느리의 젖가슴을 주물러대고 속곳으로 손을 집어넣어 한참동안
추랑의 은밀한 부위를 자극했다. 이미 기생다루는 데 이골이 난 정갑영 앞에
며느리 추랑은 아무 저항이 없이 시아버지의 거친 손길을 받아 주었다. 참으로
가관이었다. 한 방에서 두 쌍의 남녀가 거의 반라(半裸)의 상태로 짐승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덧 밤이 깊어가고 황촛불도 너울너울 졸며 춤을 추었다. 벌써 태상주(太常
酒)가 네 주전자나 들어왔고 이어 두견주(杜鵑酒)가 다시 한 주전자 들어왔다.
윤대감과 아무리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고 하지만 정갑영은 어쩐지 마음이
유쾌하지 않았다. 추랑을 빨리 안고 싶은 생각에 자꾸 추랑에게 술잔을 권했다.
정갑영은 며느리를 끌어안고 시시덕대며 마치 신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스스로 일어나 춤도 추고 시조도 읊으며 호탕하게 굴었다. 박씨녀도 술에 취해
서서히 도덕과 불륜의 경계를 잊어 가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윤대감은 소월을
거의 전라의 상태로 만들어 놓고 욕심 채우기에 급급했다.
“아이, 윤대감님, 좀 참으시어요. 여기서 어떻게......”
소월이 정갑영과 추랑이의 눈치를 보며 앙탈을 부렸다.
“원, 사람도 뭐가 그리 급하담?”
“소첩은 재미있어 죽겠어요. 그냥 두시와요. 본시 남녀의 관계는 하늘이 정해
주는 법 아니겠사옵니까? ”
“하늘이 정해준다?”
“네에, 나으리.”
“그럼, 오늘밤 내가 네와 정분을 나누면 그것도 하늘이 정해준 인연 아니겠느냐?”
“네에 그렇지요. 나으리.”
기분이 좋아진 정갑영은 주전자를 들어 추랑이에게 술을 따라주면서 추랑이
분 냄새를 맡았다.
“이보시게 윤대감.”
“술 좀 마시고 노세나. 너무 열 올리지 말고.”
“그럼세. 험-, 험-.”
윤대감이 그제야 의관을 정리하며 큰 기침을 해댔다. 추랑이와 소월이 두 남자의
곁에 바짝 달라붙어 술을 따르고 안주도 입에 넣어 주었다.
“이보게, 자네 아들이 다시 장가를 든다는 소문이 있으이. 정말인가?”
“제 어미가 바짝 서두르는가 보이. 난 별로 관심 없네.”
“아니, 왜 관심이 없어?”
“그 녀석이 좀 답답하지 않나? 늘 제 어미 치마폭에 쌓여 사니 어디 사내구
실을 제대로 하겠나?”
“듣자하니 자네 두 손자가 말을 못한다고?”
‘뭐라고? 그럼 근영이 근수가 벙어리가 되었단 말인가?’
추랑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두 아이들이 벙어리가 되었다는 말에 앞이 캄캄
해지더니 속이 울렁거렸다.
“말도 마시게 작년에 이상하게 우리 집안에 마(魔) 끼더니 결국 손자 놈들까지
그 모양이 되었어. 이게 다 그 못된 년 때문이야.”
정갑영은 두 손자가 벙어리가 된 것이 모두 며느리 박씨녀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 전에는 예뻐하던 며느리 박씨녀 였으나 오랑캐에게 잡혀갔다 돌아온
뒤로는 정갑영과 시어미니 김씨는 박씨녀를 벌레처럼 여기며 집안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했다.
“아니, 나으리, 무슨 병에 걸렸는데 두 손자님들께서 벙어리가 되셨나요?”
추랑이 떨리는 목소리로 정갑영에게 물었다.
“작년에 마진인가 뭔가가 한양을 휩쓸었을 때 그리된 모양이야. 참 안된 일이야.”
윤대감이 정갑영 대신 두 아이들에 대하여 대답하였다.
‘아, 근영아, 근수야.’
추랑이 갑자기 목이 메면서 눈물이 나자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소, 소첩,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서......”
추랑이 휘청거리며 간신히 춘설이의 방으로 들었다.
“근영아, 근수야, 이 못된 어미를 용서해다오. 너희들이 벙어리가 되었다니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이냐?”
추랑이 두 아들들이 벙어리가 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방바닥을 치며 통곡
하였다. 마침 춘설이도 다른 기방에 들어 손님들을 모시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내 너희들을 그냥 둘 수 없어. 이젠 한 가닥 희망
마저 없어져버렸으니 내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이냐? 그 아이들이 장성하면
이 어미를 찾을 것으로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살았건만. 이제는 모든 것이
수포가 되었으니 무슨 낙이 있을꼬?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다 내 탓이라고?
나쁜 인간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도저히.’
추랑은 감춰 두었던 비상(砒霜)을 복주머니 속에 챙기고 다시 독기를 품고
기방으로 들었다. 방에 들었을 때 정갑영과 윤대감은 현 시국에 대하여 이야
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오랑캐에게 잡혀갔다 돌아온 아녀자들을 모두 용서해주고 다 받아
들여야해. 그들이 누구 때문에 오랑캐에게 잡혀갔나? 다 그 무능한 상감과 나라
밖 정세에 밝지 못한 위정자들 때문에 그리 된 건데 어째서 불쌍한 환향녀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이냐고?”
윤대감이 자신의 소감을 피력하자 갑자기 심기가 불편해진 정갑영이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건 자네가 몰라서 그러이. 생각해보게. 조선 여인이라면 환장하는 떼놈들
에게 잡혀갔으니 그놈들이 가만둘 리가 있겠어? 그년들이 뱃속에 떼놈들 자식을
담아와 내질러놓은 호로(胡虜) 자식들이 장차 이 나라를 말아먹을 거여. 그 호로
자식들을 모두 오랑캐 놈들에게 갔다 줘야돼.”
“자네 자부(子婦)도 뱃속에 호로자식을 담아왔던가? 아니면 그리 무정하게
내칠 수 있어?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자네가 너무했으이. 제집이라고
찾아온 며느리를 어떻게 그리 매몰차게 문전박대하여 쫓을 수 있어?”
“이보게 술 맛 떨어져 그년 이야기는 그만함세. 험-.”
“나라에서 환향녀들을 자 보살펴 줘야해. 안 그러면 두고두고 우환거리가 될
거야.”
“소첩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는지요?”
윤대감이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추랑이 입을 열었다.
“그래, 추랑이 여자니까 여자들 시각에서 보는 조정의 처사에 대하여 말해보
거라.”
“그녀들이 어쩌다 오랑캐에게 잡혀갔다 돌아왔지만 지금 나라님이나 유림(儒林)
들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들이 누구인지요? 이 조선의 자식들 아니
던가요? 위정자들이 잘못해 놓고 어찌하여 불쌍한 환향녀들을 못된 여자들이라고
손가락질 하는지 모르겠어요. 조금 전에 나으리께서 하신 말씀대로 나라에서
그 여인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여인들 가슴에 남아있는
한을 누가 풀어주겠는지요?”
“다 팔자소관이니라.”
정갑영이 추랑의 이야기에 찔리는 것이 있는지 환향녀들의 팔자소관이라고 하였
다. 추랑은 정갑영이 환향녀들에게 최소한의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기를 기대
했었다.
“그럼, 그들이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나으리, 이 조선이라는 나라는 위로는 청나라 아래로는 왜가 있사옵니다.
언제든 또 지금과 같은 비참한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조정에서는 그동안 청나
라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청과의
전쟁을 주장한 주전론자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
에게 충신이니 뭐니 하는 허울 좋은 존칭을 붙여주고 있습니다.
아직도 조선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임진년에 왜놈들이
바다건너 조선을 침입한지 얼마 안 되어 이번에는 대륙에서 떼놈들이 쳐내려
왔습니다. 먼저 상감이었던 광해군이 더 오래 금상의 자리에 있었더라면 병자
년의 호란(胡亂)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두고 보세요. 위정자들이 파당을
지여 싸움이나 하고 있는 한 저 왜놈들이나 오랑캐들에 의해 이 조선은
또 한바탕 분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일개 기녀인 네가 제법 정세(政勢)를 보는 눈이 있구나.”
윤대감은 추랑이의 의견에 동조하였지만 정갑영은 심기가 불편한지 술잔만
들었다 놨다하며 추랑이 이야기를 들으려하지 않았다. 자신의 며느리가 직접
적으로 연관된 일인지라 정갑영은 더 이상 환향녀에 대하여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자,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마십시다.”
“좋지요. 술도 마시도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윤대감이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이 사내답다는 것을 뽐내려하는 듯 했다.
다시 술 두 주전자가 들어오고 산해진미가 더해지면서 술상은 푸짐해 졌다.
윤대감은 거걸스럽게 옆 사람에게 먹어보란 말도 없이 혼자 맛있는 안주를
먹어 댔다.
“으이그, 나으리, 천천히 드시와요. 누가 안 뺏어 먹습니다.”
보다 못한 소월이 한마디 하였지만 윤대감은 못 들은 체 하였다.
“이보시게 술 도 마셔가며 드세나. 그 사람 참......”
정갑영도 이에 질세라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금방 술 두 주전자 비워졌다.
곧 술이 들어왔고 주연은 질퍽하게 이어졌다.
“자네 그 곱사등이춤을 잘 추지 않는가? 추랑이와 소월이 앞에서 한번 추어
보세나.”
얼큰하게 술이 오른 정갑영이 윤대감에게 춤 출 것을 권했다.
“그럴까? 너희들 한번 구경해볼래?”
“좋아요. 나으리”
소월이 반색을 하며 좋아하였다.
“그럼, 소월이 네가 쾌지나칭칭나네를 불러보렴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느니.”
“소첩이 장구를 치며 흥을 돋궈보지요.”
추랑이 얼른 일어나 장구를 메었다.
쾌지나칭칭나네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쾌지나칭칭나네 이수 건너 백로 가자
쾌지나칭칭나네 시내 강변에 자갈도 많다
쾌지나칭칭나네 살림살이는 말도 많다
윤대감이 등에 바가지를 넣고 구부정한 자세로 겅중겅중 뛰면서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소월이 노래하다말고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였다.
정갑영과 추랑이도 윤대감의 우스꽝스러운 곱사춤에 배꼽을 잡았다.
쾌지나칭칭나네 하늘에다 베틀을 놓고
쾌지나칭칭나네 잉어 잡아 북을 놓세
쾌지나칭칭나네 정월이라 대보름날
쾌지나칭칭나네 팔월이라 추석날은
쾌지나칭칭나네 세월은 흘러도 설움만 남네
쾌지나칭칭나네 쾌지나칭칭나네
정갑영도 신이 나는 지 벌떡 일어나 장구를 치고 있는 추랑이의 뒤태에 홀려
슬며시 추랑이의 엉덩이를 주물러 댔다. 휘청거리며 추랑이 육덕을 지분대는
정갑영의 모습은 발정난 수캐나 마찬가지였다. 추랑은 그런 정갑영의 행동을
모른 체하며 받아주고 있었다.
쾌지나칭칭나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쾌지나칭칭나네 우주 강산에 비친 달아
쾌지나칭칭나네 강변에는 잔돌도 많다
쾌지나칭칭나네 솔밭에는 공이도 많다
정갑영의 외설스러운 행동에 자극을 받은 소월이 일어나 곱사춤 추는 윤대감
앞에 서자 윤대감은 소월의 허리를 끌어안더니 소월이 엉덩이를 주물러 댔다.
소월이 눈을 하얗게 흘기면서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네 명이 뿜어내는 열기로
기방 안은 열기로 휩싸였다. 어느새 모여들었는지 손님이 없는 기녀들이
방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질척한 놀음에 넋을 빼고 훔쳐보고 있었다.
쾌지나칭칭나네 각각 집으로 돌아가서
쾌지나칭칭나네 풋고추 단 된장에
쾌지나칭칭나네 보리밥 찰밥 많이 먹자
쾌지나칭칭나네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
월출동령 달 솟는다 쾌지나칭칭나네
소월이 노래하다말고 치마를 벗어 던졌다. 하얀 속치마가 흔들거리면서
속곳이 보일락 말락 하자 윤대감은 더욱 신이 나서 침을 질질 흘리며 겅중겅중
뛰면서 방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이에 질세라 추랑이도 저고리를
벗고 치마끈을 풀자 하얀 비단 속치마가 나풀거리며 속곳이 언뜻 언뜻 비치자
정갑영은 눈이 뒤집어 졌다.
“흐미-, 고 것이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지피는구나.”
마른 침을 꼴깍 넘기며 정갑영은 혼자 중얼거렸다. 정갑영이 추랑이의 하얀
속곳이 보이면 얼른 손을 속곳 속으로 집어넣고 은밀한 부위를 지분댔다.
‘흥, 양반 나부랭이나 천민이나 무에 다른 게 있단 말인가? 계집 앞에서는
왕후장상이 따로 없구나.’
한바탕 소동을 벌인 네 명은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며 술잔을 들었다.
“자자, 너희들도 수고혔다. 한 잔씩 들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자구나.”
윤대감이 숨을 고르며 추랑이와 소월에게 잔을 건넸다.
“추랑아, 너의 시문이 뛰어나다고 들었다. 한번 보여주겠느냐?”
정갑영이 추랑이의 시문이 어느 정도 인지 은근히 보고 싶었다.
“그래, 그래 그것도 좋을 듯하구나.”
윤대감도 정갑영을 거들고 나섰다.
“소첩은 시문에 약하니 그냥 술이나 따르겠사옵니다.”
“소월아, 이리 가까이 오려무나. 네 육덕이 튼실하니 한참 물이 오른 듯하
구나.”
“나으리, 소첩, 물이 너무 올라 이년 밤마다 고통스럽습니다요.
”
“그러냐? 내 오늘 네년 봄물이 터지게 해주겠다.”
“나으리, 정말입죠?”
소월이는 오랜만에 행하 채를 듬뿍 받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윤대감의
품에 안기다 시피 했다.
“추랑아, 방금 우리 네 명이서 신나게 놀았으니 뭐 질탕하니 멋진 시문을 한번
읊어보거라.”
“소첩, 한번 써보겠습니다.”
“그래, 어서 써보거라. 내 너의 시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꼭 봐야겠다.”
“......”
추랑이 붓을 잡더니 일필휘지로 써내려 갔다. 그 글 쓰는 모습이 너무나 고고
하고 아름다워 다른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작시(作詩)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으리, 여기 있습니다.”
“아니, 벌써 다 썼느냐? 참으로 빠르기도 하구나. 허허허......”
추랑이 정갑영에게 시를 건넸다. 만취한 정갑영이 추랑의 시를 보더니 호탕
하게 웃었다.
郞嚥其高 婦嚥其底(랑연기고 부연기저)
남자는 위것을 빨고 여자는 아래것을 빤다
高底不同 其味卽同(고저부동 기미즉동)
아래위는 다르나 그 맛은 같구나
郞嚥其貳 婦嚥其壹(랑연기이 부연기일)
남자는 두 개를 여자는 한 개를 빤다
壹貳不同 其味卽同(일이부동 기미즉동)
하나와 둘은 다르나 그 맛은 같도다
"오호라! 사내는 위를 핥고 계집은 아래를 핥는다? 그리고 남자는 두 개를
핥고 여자는 하나를 핥는다?"
“나으리, 재미있어요?”
“그으래, 너 정말 시를 제법 지을 줄 아는구나.”
“이보시게 나도 좀 보여주게나.”
정갑영이 추랑이 지은 시를 건네주자 두 눈이 휘둥그레 졌다.
“아, 과연 멋진 시로구나.”
“어머나? 망측해라. 이런 시도 다있어요?”
소월이 윤대감에게 묻자 윤대감은 시의 내용을 흉내 내면서 소월이에게 덤벼
들려고 하였다.
“허, 그 사람 참으로 급한가보이.”
“이보시게, 그 시를 좀 풀이해 주시게나.”
“나으리, 소첩이 풀이해 드릴까요?”
"그래, 그래라. 네가 풀이해 보거라.“
소월이 추랑이 쓴 시를 보더니 듣기 민망할 정도로 풀이했다. 거의 벌거숭이가
된 윤대감과 소월이도 추랑의 시를 풀어보고 배꼽을 잡았다.
추랑의 음탕한 즉흥시에 잔뜩 흥이 고조된 정갑영은 다시 며느리인 추랑을
끌어안고 젖가슴을 희롱하며 좋아했다. 추랑은 그런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시아버지의 희롱을 받아주며 가만히 있었다. 추랑은 다시 한 수를 지어 윤대
감에게 보여주었다.
妓房乃甫知(기방내보지) 기방을 잘 알고 있지요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방안에는 모두 존경하는 분인데
閑郞諸未十(한량제미십) 한랑은 모두 열 명 못 되는지라
牡頭皆不軋(모두개불알) 남정네는 제 정신이 아니네
“오, 이것이 네가 방금 지은 시란 말이냐 이것이? 과연, 과연 네 재주가 한양
에서 초고로다. 최고야.”
윤대감은 그 시가 자신들을 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제법 시에 대하여
나는 척 하였다. 그 뜻을 풀이해 보면 그럴 듯하지만 소리 내어 읽으면 욕이라는
것은 대취한 두 남자들은 모르고 있었다.
“추랑아, 시 짓느라 수고했다. 내 술 한잔 받거라.”
이번에는 정갑영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시를 한번 읽어보더니 추랑이에게 술잔을
건넸다.
“나으리, 고맙사옵니다.”
“아니다. 즉석에서 재미있는 시를 짓느라 네가 수고했지. 우리야 술 마시고
노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고.”
정갑영은 추랑이의 허리를 안 더니 추랑의 은밀한 부위를 지분거렸다. 정갑영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추랑이 허리를 꼬았다.
“아이, 나으리, 앞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있어도 상관없느라. 윤대감하고는 막역한 사이니 신경 쓸 것 없느니.”
아- .
정갑영이 추랑의 속치마 속으로 손을 더 깊이 집어넣더니 추랑의 은밀한
부위를 노골적으로 지분거렸다. 추랑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고
얼굴이 빨개졌다.
‘짐승같은 자들, 내 오늘 당신들의 그 잘난 가문에 먹칠을 해주리라.’
추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갑영이 큰소리로 춘매를 불렀다. 친구와 한방
에서 추랑과 합방 할 수는 없는 터였다.
"내 오늘 이 아이와 밤을 지새울 터, 다른 방에 주안상을 준비하도록 하고 윤대
감은 소월이와 함께 밤을 새도록 조처를 해주시오."
춘매는 지체 높아 보이는 양반의 지시에 아무 소리하지 못하고 물러 나와 춘설
이 방에 원앙금침을 깔고 주안상도 준비하며 내일아침 정갑영이 두둑이 내 놓을
행하(行下)를 생각하며 즐거워했다. 취한 정갑영이 추랑이와 함께 합환주가
마련된 춘설이 방으로 들었다.
"추랑아, 오늘밤 네 머리를 올려주어야겠다. 괜찮지?"
‘이미 올린 머리를 또 올린다고?’
추랑이 속으로 웃었다. 호탕하게 한바탕 웃고 난 정갑영이 방에 들어오자 술이
거해 잠시 쉬어야겠다며 누웠다. 순간 추랑은 복주머니 속에 있던 비상을 주전
자에 털어 넣었다. 추랑은 옆에 앉아서 시아버지 정갑영이 일어나기만 기다
려야 했다.
‘그래, 당신을 죽이고 나도 가는 거야. 이 빌어먹을 세상을 뜨는 거야. 나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과 바보 같은 남편을 만난 것 그리고 여자로 태어난 것이
너무나 원통하고 억울해. 한 세상 잘 살아보려고 하였지만 뜻하지 않은
전쟁이 일어나 나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어.
이제 그 잘난 조선과 양반들에게 멋지게 한방 먹이는 거야. 그러나 나를 믿고
있을 박대서, 덕칠이, 춘설이에게는 미안하다. 두 아이들이 벙어리가 된 마당에
나에게는 더 이상의 산다는 것은 무의미해. 그래, 이 한 많은 인생 저 원수 같은
인간과 같이 가는 거야.’
정갑영이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더니 다소곳이 앉아있는 추랑에게 달려들
었다. 순식간에 비단금침 위로 며느리 박씨녀를 눕히더니 옷을 벗겨 내렸다.
“아이, 나으리, 천천히, 천천히 하셔요. 소첩, 숨 막혀 죽겠어요.”
“지금 나는 급하구나.”
“나으리, 천천히......”
추랑의 속곳이 드러나자 정갑영을 마른 침을 삼켰다.
“오, 기가 막힌 육덕이로다. 내 지금까지 수많은 유부녀와 기녀들의 육덕을
탐해왔지만 너처럼 풍덕하고 튼실한 육덕은 처음이로구나.”
“......”
“추랑아, 이제부터 너는 나만 받아들여야 한다. 알았느냐? 내 너를 호강시켜줄
거야. 그러니 나 말고 다른 사내를 받거나 인애하면 안 된다. 알겠지?”
“......”
정갑영의 까칠한 턱수염이 추랑이의 젖가슴을 스쳤다. 시아버지 정갑영의 나이를
잊은 듯한 단단한 육신이 추랑의 나긋하고 촉촉한 몸을 덮었다.
정갑영의 뜨거운 혀가 며느리 박씨녀의 젖가슴과 둔부 그리고 거웃이 풍성한
부위를 자극할 때 마다 추랑은 전율하였다. 한 평생 전국을 돌며 기녀들을 섭렵해
온 위인답게 정갑영은 금방 추랑을 들뜨게 했다. 황촛불이 너울대자 벽에 묘한
그림이 덩달아 출렁거렸다.
추랑이 막 신음을 토할 때 방 앞에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방안을 기웃거리며 방안
에서 들려오는 신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방안에서 사내와 여인의 신음
소리가 점점 더 거칠게 들릴 때마다 검은 그림자 역시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이상한 행위를 하였다.
아-.
정갑영의 그것이 추랑의 속살을 파고들면서 추랑은 비음(鼻音)을 토했다.
‘이것이, 이 짐승 같은 행위가 무슨 짓이란 말이더냐. 이것이 며느리와 시아버
지가 할 짓인가? 천벌을 받으리라. 당신네 가문은 이제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야. 천벌을......’
추랑이 바위처럼 누르고 있는 정갑영의 육신 아래서 거친 신음을 토해내자
정갑영은 자신의 사내다운 면모에 추랑이 반응하는 줄 알고 더욱 몸을 놀려
댔다.
추랑은 정갑영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비록 말을
못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훌쩍 자라있을 두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 아이
들은 추랑을 보며 울고 있었다.
엄마-.
‘아, 이 못난 엄마를 용서해다오. 너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
지만 너희 할머니를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구나.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해다오.’
추랑은 정갑영의 거친 몸짓을 이를 악물고 받아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끙-.
정갑영이 한 번의 거친 신음을 토하더니 추랑이에게서 떨어졌다. 숨을 헐떡
거리면서도 정갑영은 추랑이의 손을 잡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네가 아주 사내들을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비술(秘術)을 지니고 있구나.
참으로 뛰어난 육덕이로고.”
정갑영이 추랑의 젖가슴을 만지작거리면서 속삭였다.
“나으리, 만족하셨습니까?“
“그래, 그래. 내 태어나 오늘 밤처럼 행복에 겨워보기는 처음이로구나. 네가 앞
으로 나와 자주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눠야 하느니.”
“나으리, 소첩이 그리도 마음에 드세요?”
“그럼, 그럼. 이제는 너 없으면 못 살 것 같구나.”
“그리 예뻐하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아니야. 너는 진정한 여인이로다. 정말로 네 육신이 사내들을 위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 같구나. 어이구, 요 예쁜 것.”
정갑영은 알몸으로 누워있는 추랑이 볼을 꼬집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병풍속
새들이 추랑과 정갑영의 부끄러운 모습을 지켜보며 날고 있었고, 모란꽃이 더욱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새벽 첫닭이 울자 두 사람은 그제야 피곤이 엄습해오고 있음을 느꼈다. 초저녁
부터 시작한 술판이 새벽까지 이어진 셈이었다.
“나으리, 목마르지 않으세요?”
“으응? 좀 그렇구나.”
“그럼, 한잔 하셔요. 소첩이 주안상을 준비했습니다.”
“그래? 그럼 목 좀 추겨야겠다.”
추랑이 속치마 바람으로 주안상을 가져왔다.
“나으리, 한잔 드셔요. 차가우니 속이 시원하실거에요.”
“그래, 그래. 고맙구나.”
정갑영이 술 한 잔을 단숨에 마시더니 갑자기 두 손으로 목을 감싸 잡았다.
두 눈에 시뻘건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니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옆으로 쓰러져
버둥거리던 정갑영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너, 너, 술에 무얼 탔기에......”
“아버님, 저는 청국에 잡혀갔다 돌아온 아버님의 며느리입니다.”
“뭣, 뭐라고? 윽 -.”
“아버님께서 그리도 미워하던 며느리입니다. 이제 아셨습니까? 추랑이 바로
아버님 며느리라고요.”
추랑이 흐느꼈다.
“네가, 네가, 어떻게 네가......”
피를 토하며 버둥거리던 정갑영이 일어나려고 하자 추랑이 얼른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 만약 사람들이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오면 큰일 날 것 같았다. 이불속에서
한참 버둥거린 던 정갑영이 잠잠해졌다. 추랑이 이불을 쳐들자 정갑영이 계속
피를 흘리며 간신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추랑은 숨이 넘어가려는 정갑영을
반듯하게 눕히고 입가에 피를 닦아 주었다.
“아버님, 왜 그래셔야 했는지요?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문전박대를 하셔야
했는지요? 아버님을 이렇게 까지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젠 저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근영이, 근수가 그리된 것이 제 탓이라고요? 그 모든 것이
어째서 제 탓인지요? 저는 참을 수 없습니다.”
추랑은 일어나더니 숨이 막 넘어간 정갑영에게 큰절을 올리고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정갑영의 눈을 감겨 주었다. 정갑영의 두 눈에서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추랑은 다시 일어나더니 친정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을 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이 불효 여식 한 많은 생을 마감하려합니다.
부디, 부디 만수무강하시옵고 이 못난 여식을 용서하소서.”
추랑은 비 오듯 쏟아지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오열하였다. 지난 이 년간 일어
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이춘연, 정진경, 덕칠이, 박대서...... 박씨녀는 태어나서 자신의 육신을 탐했던
남자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불러보며 악연이든 선연(善緣)이든 그들의
무탈을 기원하였다. 많은 남자들 중에서 이춘연이 가장 보고 싶었다. 비록 오랑캐
군관이었지만 자신을 스친 남자들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가슴을 소유한 자였다고
생각했다.
또한 박대서는 단 하룻밤의 정사를 가졌지만 먼 타국에서 자신을 그리며 조선
으로 오고 있을 것인데 만약 자신의 죽음을 알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 것인지 생각
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박씨녀는 주전자를 들어 술잔에 술을 따랐다. 떨어지는
소리가 폭포소리 같았다.
‘가는 거야. 아무 미련 없이 가는 거야.’
안 돼-, 엄마 안 돼-.
박씨녀가 술잔을 들려고 할 때 두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청이었다.
“근영아, 근수야. 이 못난 엄마를 용서해다오.”
엄마, 안 돼-.
“아니야, 난 네 할아버지를 독살하였단다. 난 이제 이승에서 살 수가 없어. 먼 훗날
저승에서 보자. 정말로 미안하구나.”
박씨녀는 두 눈을 감고 단 숨에 술잔을 비웠다. 황촛불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병풍속
학 한 마리가 긴 울음소리를 내며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 끝 -
_()_ 지금까지 긴글 읽어주신 임에게 머리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본 글을 문예지나 신문에 연재하시고자 하는 분은
cjhoy6044@hanmail.net로 연락 주세요. 참고로 제 소설 ‘홀로
아리랑‘이 2009.1.16일부터 호주일보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마치고 며칠 쉰 다음 다른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09.2.2.
인천 소래포구 뜨란채에서 여강 최재효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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