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엑스X(7)

* 창작공간/장편 - 엑스

by 여강 최재효 2008. 12. 6. 18:11

본문

 

 

 

 



 

 

 

               

 

 

 

 

 

           엑스X(7)

 

 

                                                                                                                                                                                   - 여강 최재효

 

 



 “여보, 왜 이래요? 제발 그냥 자요. 저 컨디션이 아주 좋지않단 말이예요.”
 “정말, 왜 그러는 거야? 난, 당신 남편이고 당신은 내 마누라야. 마누라는 어떤

경우라도 남편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당신이 예뻐서 안아주겠다는데 가만히,

얌전하게 굴면 안 돼?”



 “아무리 당신이 남편이지만 원치 않는 부부관계는 거부할 권리가 있어요.
아내

가 컨디션이 안 좋을 경우에는 아내를 위해 배려 정도는 할 줄 아는 게 신사도 아

가요?”


 “뭐, 신사도?”
 “그래요. 부부는 물론 합법적으로 섹스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일지 몰라도 
상대

방의 의사를 무시해가면서 강제로 섹스를 하려 든다면 그건 강간에 해당하는 거

몰라요? 강간은 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되겠죠?”


 “허어? 당신 이상해졌어. 남편을 고소하겠다? 너, 남자라도 생긴 거야?”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아요. 이제 의처증세 까지 보이시는 군요? 외국에 오래

나가있으면서 한국에 있는 마누라가 누구와 바람이라도 피울까 적정했나 보죠?

그런 사람이 육개월이 지나도 전화 한통 없다는 게 말이 되요?”


 “너는 나의 소유야. 세상에 나 말고 그 어느 놈이 너를 소유하려 든다면 난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명심하라고. 그놈이 귀신이라 할지라도 난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절대로”


 남편은 끝내 나의 옷을 모두 벗기고 머리 위로 내 두 손을 넥타이로 묶은 뒤 욕심을

채우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남편은 내 두 다리를 묶거나 두 손을 묶어 침대에 고정

시킨 뒤 가학적인 행위를 즐기곤 했다. 장롱 안에 가득한 각종 성기구(性器具)들이

남편의 요상한 취미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마치 대역 죄인이라도

된 것처꼼작도 하지 못하고 남편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가련한 여자가 되어야 했

다.


 마치 걸신들린 사람처럼 나의 육신 이곳 저것을 지분거리며 기기묘묘한 체위를

요구했다. 더 이상 남편과 언쟁을 벌릴 경우 아이들에게 부모가 싸우는 것으로 오인

될 까봐 나는 할 수 없이 남편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대낮보다 더 밝전등

을 밝혀 행여 누가 들여다보지나 않을까 자꾸 문으로 신경이 쓰였다.


 묘한 취미를 가진 남편이 마치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불을 꺼도 부자연스러운데 마치 무대 위에 있는 연극배우에게 비춰주는 스

포트라이트 보다 더 밝은 불빛은 나의 신경을 극도로 자극하고 있었다.


 남편은 외국에 장기간 있다가 들어 올 때 마다 이전의 체위와는 전혀 다른 해괴한

형태의 성교 체위를 요구했다. 내가 차마 민망해 남편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응해주

지 않으면 강제로 욕심을 채우고야마는 집요함을 보였다.


 남편은 포르노 잡지나 성인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해괴한 자세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죽은 송장처럼 축 늘어진 채 두 눈을  꼭 감고 남편의 이상한

행동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렸다. 남편은 나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응할 수 없는

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나는 남편이 어떤 행동을 요구해도 따르고 싶은 마음

이 없었다.


 한 시간 넘게 요상한 행동을 하더니 나를 엎드리게 했다. 해외에 나가 있으면서

현지의 환락가 여자들에게서 어떤 이상한 행위를 경험하였는지 모르지만, 남편은

늘 이상한 성인용품을 가지고 들어와 나에게 충격을 주기 일쑤였다. 마치 성도착증

환자처럼 보이는 남편이 불쌍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성인용 영화를 틀어 놓고 영

속 여배우처럼 나에게 비슷한 행위를 요구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수

심이 극에 달해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는 나의 나약

함에 절망하기도 했다.
 

 윽-. 일방적이고 지루한 행위가 끝나자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나가 떨어졌다.

편은 만족한 표정을 짓더니 금방 코를 골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면 ‘수

고했어.’ 라든가 ‘고마워.’라는 말 한마디 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운 뒤 코를 고는 남

편이 한없이 미웠다. 도대체 나를 돈 몇 푼에 몸을 파는 창녀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아,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 남자가 과연 나의 남편이란 말인가? 내 그리도

간청을 했건만 끝내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나 몰라라 하고 코만 골 있으니…….’


 나는 인격적 모욕감과 함께 수치심에 부르르 떨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마치 기

찌꺼기가 몸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 같이 바디샴푸로 두 번 세 번 닦아냈다.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복수라는 단어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단어의 이면(裏面)에 두 아이들 미래의 이미지가 불투명하게 떠올

랐다.


 남편은 예전에도 나의 의사는 전혀 무시한 채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데 급급해

했었다. 나를 아내로, 인격적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달 보내주는

일정한 금액을 화대로 생각하고 나를 한낱 창녀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는 비애를 느껴야 했다. 자신이 이국에서 가족의 평안을 위하여 헌신하는 데

 '남편에게 몸 한번 주기로서니 뭐가 그리 대수냐'는 남편의 일방적 사고방식에 진

저리가 쳐졌다.


 거울 속의 여인이 처참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울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발가벗겨진 채로 철저하게 짓밟힌 집시같은 내 몰골에 화가 치밀었다. 나는 거실로

나와 코냑을 마셨다. 독한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

았다.


 마시면 마실수록 속은 더 타들어갔다. 남자들의 의식구조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

다. 이 땅의 모든 기혼 남자들이 남편같이 제 욕심만 채운 뒤 나 몰라라 하는 식으

로 일관한다면, 그들의 의식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남자나 여자나 어린 시절에는 눈으로 세상을 본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남자들은 여자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못살게 함으로서 일종의 성적 만족감을 얻

는다. 하지만 차차 나이를 먹어 2차 성징이 발달하면서 남자나 여자들은 생식이 가

능한 단계에 접어드는데 여기서부터 양성 평등이 철저하게 무너지기 시작한고 볼

수 있다.


즉, 남자는 성적으로 탁월하다고 자부하며 이성을 지배하려고 하고 이에
부응해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성의 보호 아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식기로 이성을 지배하려는 남자들은 일부다처의 세상을 동경하거나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고 싶어 한다.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은밀한 행동으

로 한 남자가 동시 다발적으로 10여명이 넘는 여성을 거느리기도 한다. 21세기는

원시사회처럼 변질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하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돈과 권력으로 성을 팔고 사는 사회가 도래된 현시점에서 황금성을 가진 남자

들이 한 여인만을 편애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내 남편은 진실로 나 하나만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어수룩한 여인들이 있는 한 양성 평등은 요원하리라.


 자신의 씩씩한 생식기 하나로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남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부부간 원만한 섹스는 두 사람의 가장 중요한

언어소통이자 가장 신성한 행위이며 가정이라는 보금자리를 원만하게 유지

시킬 수 있는 방법인 동시에 자녀들의 먼 장래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을. 남편

처럼 화장실에서 뱃속에 충만한 오줌을 배설하듯 상대의 의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행위는 독약이며 자살 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코냑 한 병이 다 비워졌을 때 나는 구토 증세를 느끼며 머리까지 아팠다. 화장실

에 들어가 억지로 뱃속의 내용물들을 토해냈다. 아스피린을 복용하니 두통이 좀 가

라앉은 것 같았다. 침대에 누었으나 금방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가 깜박 잠이 들었다. 하체가 좀 이상하다고 잠결에도 느끼고 있을 때 벽시계가 6시

를 알렸다.


 “다, 당신 뭐하는 거예요?”

 “남편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한창 쿠니링구스를  시도하고 있었다. 내가 잠에 취해

있는 사이 남편은 음심이 발동하여 나를 지분거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내가 저항하

려고 하자 완력을 써가며 기어코 자신의 욕심을 채워나가고 있는 남편이 무섭기 조

차했다.


 “여보, 제발 그러지 말아요. 제발……. 
여보, 싫어요. 전 그런 거 싫단 말이예요.”

 남편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집요하게 나의 은밀한 부위를 지분거렸다. 한참
동안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던 남편이 정상위 자세를 취하더니 그것을 들이 밀었다.


  ‘아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 의사는 전혀 무시한 채 저렇게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그래, 이번만 창녀가 되었다고 치자. 그러나 앞으로는 절대로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거야. 이런 식의 부부행위는 절대로 응할 수 없어.’
 나는 남편의 거친 숨소리를 들어가며 이를 악물었다.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집중하던 남편이 밭은 숨소리와 함께 벌렁 나가 떨어졌

다. 남편은 한마디 말도 없이 씩씩거리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부부간의

성(性)이 어느 한편의 일방적 행동으로 표출되어도 무방하다고 판단하는 남자들의

성격에 큰 장애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나를 강간하다시피 일을 마친 남편은 샤워

를 하더니 운동을 하고 오겠다며 집을 나갔다.

 
 “당신 언제 가실거예요?”
 아침상을 차려 아이들 먼저 먹이고 학교를 보낸 뒤 나는 남편과 함께 식탁에 
 마

주 앉았다. 신문을 보던 남편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왜 내가 빨리 나갔으면 좋겠

어?’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음 주 수요일 저녁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예정이야. 이번에 나가면 연말이

나 돼야 할 걸.“
 “그래요?”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당신 집에서 취미생활 정도만 하면서 지내고
있어

야 해. 취직이니 뭐니 하고 싸돌아다니면 안 돼. 알았지?”


 “…….”
 “왜 대답이 없어? 당신 남편 말이 말 같지 않은 거야?”


 “왜 말 같지 않아요? 하늘같은 당신의 말씀인데?”

 나는 아침을 들다말고 일어나 커피를 타서 거실로 나갔다. 멀리보이는 산이 구름

모자를 쓰고 있는데 손을 길게 뻗으면 손아귀에 잡힐 것 같았다.



 아아, 나도 저 구름같이 자유로울 수 있다면…….
 식사를 마친 남편이 거실로 나왔다. 나는 정색을 하고 소파에 앉아 남편을 쏘아

 보았다. 나의 강렬한 시선에 남편은 흠칫하더니 슬그머니 내 옆에 앉았다.


 “여보, 다시 한 번 부탁해요. 나 좀 이제 풀어줘요. 나도 여자이고 싶고, 사회인이

되고 싶어요. 이제는 새집 같은 이 집안이 지긋지긋해요. 나도 남들처럼 나가서

성하게 사회활동도 하고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요. 당신도 내 성격 잘 알잖아

요.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제 앞가림도 할 줄 안다고요.  직장에 다니며 내 사회적

성취 욕구를 채우고 싶다고요. 제발, 나 좀 그만 집구석에만 붙잡아두려고 하지 마

세요.”


 “뭐야? 아니 당신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만. 이 사회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당신처럼 솥뚜껑이나 운전하던 여자가 어디 가서 뭘하겠다는거야 도대체?”


 “당신, 내가 미술을 전공하였고 인테리어디자인을 공부하여 건축사자격증
취득한

것을 아시잖아요. 이만하면 관련 업체에 취직해서 얼마든지 내 자신을 알릴 수 있다

고요.”


 “허허, 모르는 소리. 아무 실전 경험도 없는 나이 먹은 아줌마를 이 서울 바닥에서

누가 알아준다고?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집안에서 빨래하고 밥 짓고 아이들 뒷바

라지나 해요 글쎄.”


 “싫어요.”
 “싫어?”
 남편은 갑자기 안색이 변하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요. 어제도 어머니와 당신 앞에서 말 했듯이 난 절대로 그냥 집안에만 있지

않을 거예요.”
 “안 있으면?”


 “당신이 계속해서 내 앞을 가로막는다면 나도 생각이 있어요.”

 “생각?”


 “그래요. 난 집에만 가만히 있다가 몇 개월에 한편 들리는 당신의 성적 노리

개가 아니란 말이에요? 나는 여자이며 사람이라고요. 인간이며 인격체란 말이

에요. 왜 나를 집 지키는 강아지로 만들려고 하느냐고요?”


 “이 여자야. 당신 나하고 결혼할 때 혼인서약서에 맹서하지 않았어?”
 “물론 했지요.”


 “그럼, 그 서약서대로 따르면 되지. 무슨 말이 필요해?”
 “싫어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어요.”


 “혼인서약이 뭐야. 어떠한 경우라도 서로 믿고 이지하며 남편으로 아내로서
도리

를 다하겠다고 맹세한 것이 혼인서약서 내용이잖아. 내가 남편으로서 당신에게 못

한 게 뭐있어? 말해봐. 내가 무얼 남편으로서 잘못한 게 있는지.”


 “잘못한 게 없다고요?”
 “없어. 난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당신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무섭다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해봐.”
 “그만해요. 당신이 뭐라고 하던 난 내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예요.”
 “아니, 이 여자가 정말.”


 남편은 벌떡 일어나 나의 뺨을 때리려고 하였다. 내가 두 눈을 부릅뜨자 남편은

 차마 때리지 못하고 손을 내렸다. 아직까지 한 번도 나를 때린 적은 없었지만 남편

의 태도도 변하고 있다는 것이 틀림없었다. 마누라 하나쯤은 얼마든지 신의 의지대

로 휘어잡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던 사람이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내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당신 사회진출하려면 나하고 이혼하고 나가.”
 “당신 정말 끝까지 나를 실망시킬거에요?”


 “난 남편의 뜻을 따르지 않는 여자하고는 더 이상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

니까 직장을 가지려고 한다면 깨끗이 이혼하고 나가. 그게 나하고 당신에게 또

아이들에게도 좋을 거야.”


 “세상에나, 마누라가 직장에 나간다고 이혼 요구하는 남편은 당신 밖에 없을거

예요. 참으로 가슴이 아려오네요. 내가 왜 당신 같은 사람에게 넋이 나가 결혼을

했는지 참담하네요.”
 남편은 나에게 엄포 비슷하게 무시무시한 말을 마음껏 퍼붓고 정장을 하고 나가

버렸다.


 남편이 나가고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평소 자주 가던 도봉산으로 행선지를 잡고 전철에 몸을 실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상당히 많은 산사람들이 전철에 가득했다. 대부분이 삼삼오오 모여 주고받

는 호칭과 그들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니 요즘 한참 인기 있는 인터넷 카페 모임

회원들 같았다.


 도봉산역에 내리니 역과 인도는 산사람들의 울긋불긋한 등산복 물결로 장관이었

다. 가만히 서있어도 뒷사람에게 밀려 저절로 움직였다. 초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녀들이 산을 찾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혹시 하고 미진이에

게 전화를 하니 이제 막 아침상을 치우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미진아, 나 도봉산인데 너 나올 수 있니? 너희 집이 이 근처니 금방 올 수 있잖아.”

 “귀찮은데. 빨래도 할 거 있고. 청소도 해야 하고, 임도보고 뽕도 따야하거든…….”


 “얼른 나와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정말? 뭐 사줄 건데?”


 “글쎄, 나오기만 해. 아주 맛있는 거 맛보게 해줄 테니까.”
 “그럼, 너 먼저 올라가. 나 얼른 택시타고 갈 테니.”


 “그럼, 나 입구에 있는 광륜사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리로 와라.”
 “오케이-”
 “빨리와. 나 무지 심심하거든.”
 나는 광륜사 안 들어가 부처입상을 보고 합장한 채 반배(半拜)를 올리며 속
으로

빌었다.


 부처님,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살면서

제가 이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그 존재가치를 타인이나 저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현재의 가정을 해체하거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끌고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렇게 있는 듯 또는 없는 듯, 한 남자의 늘에 가려 그림자처럼 사

느니 차라리 뛰쳐나와 나만의 세계를 꾸려가고 싶습니다.


 찌해야 하는지요? 남편의 말대로 모든 것을 접고 늘 집지키는 강아지처럼, 살아있

는 송장처럼 아무 말 없이 남편이 물어다 주는 먹이만 받아먹으며 고분고분 숨소리

조차 죽이고 살아가야 하나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명한지요? 남자들의 입발린 소리인 현모양처로

살아가야 하나요? 그러기에는 너무 억울합니다. 결혼과 동시에 여자는 한 남자의

부속물로 전락한다는 것이 저는 견딜 수 없는 굴욕처럼 여겨진답니다. 이제까지

아이들  어려서 참고 살아왔지만 이제 어느 정도 아이들이 커서 제가 그 아이들을

위하여 낮에 해줄 것이 없는 이 시점에서 예전처럼 그냥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지요? 부처님께서 좋은 답을 주세요. 이렇게 간절히 빌고 비옵나이다.


 “정미야, 나야.”
 내가 묵상을 하고 있을 때 내 뒤에서 미진이 목소리가 들렸다.


 “어, 빨리 왔구나.”
 “너 뭐하고 있었니?”


 “응, 부처님께 너에게 멋진 남자가 생기게 해달라고 빌었어.”
 “어머, 계집애 너 어쩜 내속을 그리도 잘 아니? 너 정말로 하나밖에 없는
내 친구 맞

는 거 같어.”

 

 우리는 소풍 나온 초등학교 학생처럼 장난도 치며 도봉산을 올랐다. 멀리 만장봉

아래로 구름이 날고 신록의 싱그러움이 기분을 들뜨게 했다. 중간 중간 쉬면서 한

시간 정도 오르니 평소 자주 들렸던 암자가 멀리 눈에 들어왔다.


 전에는 가끔 혼자 오던 곳이라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살며시 나오곤 했다. 그러

던 어느 날 주지 스님과 마주치면서 스님에게 차(茶) 공양을 받고 법문(法問)까지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미진아, 너 스님이 타주시는 차 공양 받아 본적 있어?”
 “계집애, 난 교회 나갔었어. 너도 잘 알잖아. 나 모태신앙인거. 그래서 산에
와도

절에는 안 들려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지.”


 “미진아, 우리가 한 세상을 살면 얼마나 산다고 어떤 신은 떠받들고 또 어떤

신은 거부하니? 잘 살아야 백년 인생인데. 저 분들은 겁의 세월을 사시는 분들이야.

우리 같은 하루살이들이 이러쿵 저렁쿵 하는 것 자체가 큰 불경죄에 해당하지.

난 독실한 불교 신자도 크리스천도 아니지만 종교를 창시한 성인(聖人)들의

말씀에는 아무런 토를 달고 싶지 않아 그냥 그 분들의 말씀을 존중하고 따르면

되지 내가 어느 종교에 신자가 되었다고 해서 다른 신을 핍박하거나 비난

한다면 죽어 저승가서 후환이 두려워.”


 “뭐?”
 “너 요즘 옛 애인 만나더니 많이 변한 거 같다.”


 “어머? 계집애야, 종교하고 그 사람하고 무슨 상관이니?”
 “아냐, 내가 보기에 너 요즘 예전에 비해 엄청 예뻐졌어. 너 기성이하고 열애에

 빠졌지? 난 다 알아. 네 눈빛을 보면 네가 무지 행복해 하는 것 같어.”


 “계집애 점점?”
 “내 눈은 못 속여.”
 “네 마음대로 생각해.”


 나는 산에 오르면서 미진이에게 어제 남편과 이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어느 한편의 의사를 무시한 부부간의 섹스에 대하여 토론을 벌였다. 미진이는 남편

이 없어 요즘 부부간의 성적인 문제에 대하여 자신은 없지만 자신은 예전에 남편

과 은밀한 행위를 하기 전에는 남편이 사전에 자신에게 의사를 반드시 묻거나 암

호로 뜻을 전해왔다고 했다.


 “너 자신 있어? 이제 사회에 나오면 적응하려면 좀 힘들 텐데?”
 “각오하고 있어.”
 “난, 사회활동하고 있는 네가 부러워.”


 “계집애. 너 이 나라에서 여자들이 돈을 번다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알고 그런

 이야기 하는 거야?”

 “꼭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야.”
 “그럼 돈도 안 벌려면 무엇하러 직장을 가지게?”


 “돈은 누구든지 한 분야에 최고가 되면 저절로 따라오는 거 아니니?”
 “어머? 너 사회생활도 안 하면서 손바닥 보듯 한다? 마치 세상을 달관한
여자 같

애?”


 “사회가 뭐 별거겠니? 나도 결혼하기 전
 직장생활도 해봤어. 나름대로 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려고 노력도 했고. 나 아무 준비도 없이 사회에 진출하겠다고

하는 무모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야. 몇 년 동안 준비를 해 왔어. 너도 알잖아 나 그

동안 틈틈이 디자인 공부한 거.”


 “그래도 불안하다. 너 처럼 섹시하고 매력적인 미시가 사회에 진출한다면
어떤

남자가 가만 두겠니?”


 “어머? 너 정말 못하는 말이 없구나? 밖에는 영계가 수두룩한데 누가 나 같은

 노계(老鷄)를 쳐다나 보겠니?”
 “너, 정말로 네가 얼마나 예쁜지 몰라서 그런 말 하는 거니? 같은 여자인
내가 보아

도 너는 정말로 탐나. 내가 남자라면 널 꼬이기 위하여 별짓을 다하겠다.”


 “너 자꾸 놀릴래?”
 “아냐, 네가 내 동창이지만 너 정말 매력적인 미시야. 우리처럼 쭈그렁방탱이가

 아냐. 정말이야. 가 너에게 맛있는 거 어먹고 싶어서 아양 떠는 게 아니라고.”


 “얘, 그런 말 그만 좀 해. 부처님이 다 들으셔.”
 “들으시면 어때?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뭐?”


 “알았어, 알았으니 그만 좀 해라.”
 나는 싫다는 미진이 등을 떼밀다시피 해서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지갑
에서

지폐를 꺼내 불전함(佛典函)에 넣자 미진이도 얼른 지폐를 꺼냈다.


 “미진아, 나 따라서 아홉 번 절해. 알았지.”
 부처님께서 그윽한 시선으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띠고

 계셨다.


 “나무아미타불.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공양을 막 마치고 나오려는데 주지 스님이 우리를 보고 잠시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미진이는 안 들어가겠다고 하는 걸 억지로 끌고 들어갔다.


 “스님, 평안하셨어요.”
 나는 스님에게 삼배를 올리자 미진이도 할 수 없이 나를 따라 주지스님에게 절을

 올렸다.


 “나무관세음보살.”
 “…….”
 

 주지스님은 손수 보이차를 달이며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사바세계의

번뇌가 많이 어려 있다고 하였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라 마음먹기에 따라

사바세계는 천국도 될 수 있고 생지옥도 될 수 있으니 부디 초심(初心)을 잃지

말라고 하였다.


 “보살님,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살맛이 나는 거지요. 세상만사

가 뜻대로 된다면 살아야 할 가치가 없어지는 거랍니다. 부처님은 왕자의 신분으

로 왕궁을 나오셔서 인간의 본질과 죽음 등 많은 문제를 풀기 위하여 참기 힘든 고

행을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잠시 이승에 나와서 다시 수지화풍(水地火風), 즉

사대(四大)의 원소로 복귀하지요. 그 복귀하는 시간이 참으로 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부부의 연을 맺고, 부모가 되고, 우정을 쌓고, 악연을 쌓아 원수

가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우주의 장구한 시간에 비하면 우리 인간의 삶은 루살이

보다 짧습니다. 그 찰나 같은 세월 속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맛 볼수 있기에

인간의 삶은 더욱 가치가 있고 그래서 잘 살아야 하는 거랍니다. 이승의 귀중하고

황금 같은 세월을 구더기처럼 시간을 함부로 파먹는 그런 삶은 참으로 어리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잘 산다고 하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자비와 사랑으로 나 자신 먼저 다스리고 난 후에 타인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면서 평등한 사바세계를 꾸려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안 나 자신은

신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즉, 일체유심조라고 했듯이 만물이 조화를 이루고 살아

가는 것은 나라고 하는 자아를 중심으로 해서 가능한 거랍니다.


  몸과 혼이 이승을 떠나 사대로 돌아가고 나면 세상도 없고 우주도 없는 것이지요.

전생의 인연과 업(業)에 의해 육도(六道)를 걷게 될지는 소승도 아직 가보지 못해

알 수 없습니다만, 주어진 시간을 절대로 허무하게 낭비 한다는 것은 조물주와 조상

님 그리고 나 자신에게 큰 죄를 짓는 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새들은 세상에 나와서 먹이를 먹고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하여 어미로서 새끼들

이 창공을 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지요. 그럴진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제가 낳은 자식도 버리는 비정한 행동도 서슴없이 저지르지요. 모두가 욕심이 지

나친 탓도 있겠으나 이승에 태아 날 자격이 안 되는 영혼이 잘 못 온 거지요. 보살

님께서 현재 어떤 문제에 봉착하였는지 모르지만 부디 잘 판단하시어 잘 살기를

부처님께 빌어드리지요. 세상은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도 극락도 될 수 있다는 것

을 명심하세요.


 나는 미진이와 주지스님에게 차 공양을 받고 산에 올라 가져 온 김밥과 음료수를

마셨다. 저 멀리 서울 시내가 희뿌연 스모그 아래 놓여있었다. 다행히 구름이 낀 탓

에 날씨는 덥지 않았다. 야호를 외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을 내려오면서 더

많은 번뇌에 빠졌다. 도봉산을 다 내려와 포장마차가 비한 동네에 이르자 미진이

한 잔만 하고 가자고 했다. 빈대떡과 탁주로 속을 달랬다.


 “정미야, 너 그래서 직장을 잡을 거야? 네 남편 다시 해외 나가면?”
 “응. 결심했어.”
 “잘 생각해. 굳이 남편이 말리는데…….”


 “몇 년을 두고 생각했어. 나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아.”
 “걱정된다 얘.”
 “고마워 걱정해줘서.”
 “자, 한잔 마시자.”


 나는 미진이와 서너 시간 동안 대 여섯병의 탁주를 비우고 전철에 올랐다. 전철 안

은 올 때보다 더 많은 중년의 남녀들로 북새통이었는데 무엇이 그리들 즐거운지 끼

리끼리 모여서 옆 사람 아랑곳 하지 않고 큰소리로 떠들어 댔다. 나는 집으로 들어

가기 싫어 배낭을 맨 채 서울역에서 내려 무작정 걸었다. 걷다보니 예쁜 칵테일 전

문 주점이 눈에 띄었다.


 “어서 오세요.”
 “저어, 섹스 온더 비치 한 잔 주세요.”


 “네에.”
 바텐더가 만들어 준 것은 약간 쓴 맛이 돌았다. 기성이 만들어준
섹스 온더 비치

가 그리웠다.


 ‘기성이 에게 전화해서 이리 나오라고 할까? 아니지, 오늘은 나 혼자 마시면서

 생각 좀 해보자. 그래 가끔 이렇게 홀로 바에 와서 술을 즐기는 멋도 있어야지.’


  는 바텐더에게 섹스 온더 비치 석 잔을 마시고 싱가폴슬링과 보드카선셋을

 차례로 주문하였다. 등산복 차림의 여인이 들어와 다양한 칵테일을 주문하자

 젊은 남자 바텐더는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여기요. 커티샥이란 위스키 있어요?”
 “네에. 있습니다.”


 “간단한 안주 하나 알아서 주시고요. 커티샥 한 병 주세요. 차암, 말보로 한 갑도

주세요.”
 “네에.”


 담배를 꼬나물고 커티샥을 스트레이트로 마시자 곁에 있던 남자들이 자꾸

나를 쳐다보면서 내가 무엇하는 여자인가 무척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커티샥

한 병을 모두 비웠을 때 밤 12시가 훨씬 넘었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간신히

바를 나와 택시를 잡았다. 집에 도착했을 대 남편은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서 TV

보고 있었다.


 “아니, 당신 이렇게 늦게 산에서 오는 거야? 거기다 술까지 마시고.”
 “왜요? 난 산에 가면 안 되나요? 술 마시면 안 되느냐고요?”
 

 항의하듯 남편에게 톡 쏘자 남편은 멍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 볼 뿐이었다.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베개를 들고 둘째 아이 방으로 건너가려고

하자 남편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 계속 -

 

 

 

 

 

 

 

 


 



'* 창작공간 > 장편 - 엑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엑스X(9)  (0) 2008.12.10
엑스X(8)  (0) 2008.12.07
엑스X(6)  (0) 2008.12.04
엑스X(5)  (0) 2008.12.02
엑스X(4)  (0) 2008.11.28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