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비(2)
- 여강 최재효
“폐하, 공주를 모시고 다녀오겠습니다.”
“오라버니, 다녀올게요.”
아침 일찍 공주 만(曼)과 상대등 위홍은 대전에 들어 임금에게 인사
를 올렸다.
“숙부, 만이를 잘 부탁합니다. 예부(禮部)에 명을 내려 두 사람의 뒷
일을 조치하였으니 부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상대등과 공주를 태운 화려한 마차가 서라벌의 주작대로(朱雀大路)
를 가로질러 천천히 달렸다. 연도에는 소문을 듣고 수많은 백성들이
서라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두 사람의 행차를 보기 위하여 몰려들었
다. 위홍과 공주가 금장으로 치장한 마차에 함께 타고 좌우 전후에 호
위무사가 삼엄한 경계를 섰다. 100여명의 시비들과 관리들도 두 사람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행차는 왕의 행차와 비슷한 수준이어서 신라
조정의 실권자인 상대등의 위세를 보여주었다.
“어머나, 자세히 보니 공주마마가 보통 예쁜 게 아니네 그려. 상대등
도 나이는 좀 들었어도 인물이 훤하니 참으로 보기 좋네.”
“공주님이 너무 부럽다. 나도 꿈에서라도 저렇게 해봤으면…….”
구경꾼들은 마차가 지나 갈 때마다 수군거리며 두 사람을 부러워
했다.
“개똥어멈, 공주가 상대등의 아이를 낳았다며?”
“어디, 상대등 자식만 낳았수? 다를 진골출신 고관들의 자식도 낳았
다는 소문이 있던데?”
“시집 안 간 공주는 서방을 세 명이나 둘 수 있잖수? 그 옛날 선덕여왕
님은 배우자를 세 명씩 둘 수 있는 그 삼서제(三壻制)로 용춘(龍春), 흠반
(欽飯) 그리고 을제(乙祭)등 진골에서 내로라하는 미남(美男)들을 씨내리
로 골라서 즐기지 않았수?”
“아니, 개똥어멈은 아는 것도 많구랴.”
“왜? 돌쇠어멈도 서방을 세쯤 두고 싶어서 그려?”
“어머나, 이 여편네가?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런데 맨 앞에 백마를
탄 잘 생긴 남자는 누구지?”
“몰랐수? 양패(良貝)라고 공주의 막내아들 같은데, 상대등 위홍님과 사
이에 태어난 아들.”
“어머나, 참말로 잘 생겼네 그려. 우리 딸하고 맺어주면 얼마나 좋을꼬?”
“개똥어멈, 꿈도 꾸지 마시구랴. 이 나라는 성골과 진골등 뼈로 그 사람
의 값어치가 매겨지는 나라인데 우리처럼 길거리에 흔하게 나뒹구는 개
똥같은 뼈로 어찌 저런 분들과 혼사를 맺는단 말이유?”
“하긴 그렇기는 하지만, 저 총각이 너무 늠름하고 잘 생겼어, 탐이 나네.”
아낙들은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수근거
렸다.
“숙부, 이 서라벌 어디를 가도 호화로운 기와집으로 꽉 차있어요. 비록
도처에서 비적들이 날 뛰기는 하지만 지금이 태평성대(太平聖代)가 맞기
는 맞죠?”
“공주, 그렇사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지금이 최고의
태평성대입니다. 백성들은 배불리 먹고 집집마다 노랫소리가 흘러 나온
답니다. 다만, 폐하의 건강만 좋아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텐데......”
상대등은 말끝을 흐리며 공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숙부, 만약에 오라버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지요?”
“어떻게 하다니요, 마마?”
“오라버니에게는 후사(後嗣)가 없잖아요. 하루가 다르게 오라버니 건강
이 악화되는 것 같은데......”
공주가 말끝을 흐리자 상대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공주말 대로 왕이 갑자기 졸(卒)하는 날이면 누구를 세워 대통
을 잊게한다? 만약 형님의 핏줄 중에서 왕위를 이을 만한 재목은 현재로
서는 헌강왕(憲康王)의 아들 요(嶢) 밖에 없는데 너무 나이가 어리니,
참으로 큰일이로다.’
“아버지, 불국사에 거의 다 온 듯 합니다.”
“오, 그래. 금방 온 것 같구나. 양패야, 네가 고생이 많았다.”
위홍은 공주와 사이에 태어난 아들 양패에게 많은 애정을 쏟았다. 두
사람에게 많은 자식들이 있었지만 그중 양패는 문무(文武)에 뛰어 나 어
릴 적부터 각별한 정을 주었다. 불국사 주지는 예부(禮府)로부터 협조 문
서를 받고 공주와 상대등 위홍의 일행을 맞기 위하여 경내를 정갈하게
청소를 시키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나무아미타불, 소승 공주마마와 상대등 어른을 뵙습니다.”
“대사, 이리 반겨주시니 정말로 고맙소이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공주
를 모시고 국가의 안녕과 폐하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올리려 하오. 나와
공주마마가 머무는 동안 많은 협조가 있으면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머물도록 하십시오. 이미 모든 준
비를 마쳤습니다. 조금도 불편이 없도록 소승,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대사님. 부처님께서도 이 불국토(佛國土)를 지켜 주시리라
믿어요. 나무 관세음보살.”
“공주, 폐하께서 곧 쾌차하실 것입니다. 너무 심려하지 마소서.”
“대사님, 고맙습니다.”
“두 분, 대웅전으로 드시어 부처님을 뵙도록 하시지요.”
입구부터 대웅전까지 두 사람이 걷도록 붉은색 천이 깔리고 신선한
꽃으로 대웅전은 장식되어 있었으며 향 냄새가 진동했다. 많은 승려들
이 공주와 상대등의 행차에 바쁘게 움직였다. 다보탑과 석가탑에는 오색
의 화려한 장식들로 단장되어있었고 비로전과 대웅전등 전각마다 알록
달록한 깃발이 줄로 연결되어 펄럭거리며 두 사람의 손님을 맞았다.
"숙부, 저 서편에 있는 저 탑에 대한 전설을 아세요?"
"네에, 공주, 알고 있습니다."
"그때 누가 아사달이 신라의 공주와 결혼한다는 헛소문을 퍼트린거죠?
소문만 내지 않았더라도 아사녀가 영지(影池)에 몸을 던지지 않았을
텐데……."
"가슴 아픈 전설입니다."
"그때 부터 저 석가탑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치지 않는다면서요?"
"그래서 일명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하지요. 공주."
"너무 가슴 아파요.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자연적이지 않은
, 어떤 인위적인 힘에 의해 방해를 받는 다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일이
예요."
공주는 경덕왕 때 만들어진 석가탑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자신과
숙부의 사랑은 무영탑의 전설처럼 되지않기를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폐하, 공주와 상대등이 공식적인 절차 없이 불국사로 갔다함은 국법을
무시한 처사이옵니다. 속히 귀환을 명하소서.”
“명하소서.”
평소 상대등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중(侍中) 준흥(俊興)과 몇몇 신하들
이 임금이 누워있는 편전에 들었다.
“공주와 상대등의 일은 이미 짐이 승낙하였소이다. 그러니 더 이상 쟁론
으로 삼지 않았으면 하오.”
“하오나, 폐하, 상대등과 공주의 불국사 행차는 백성들에게 좋지 않은 인
상을 줄 뿐더러 왕실의 체통이 떨어질까 염려되옵니다.”
“짐이 그대의 깊은 속 뜻을 모르는바 아니요. 이 번일은 나라의 안녕과
짐의 건강을 위한 일이니 이쯤에서 덮어두시기 바래요. 시중.”
“황공하옵니다.“
준흥과 신하들은 왕의 부탁과도 같은 하명에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물
러나왔지만 공주를 데리고 떠난 상대등의 행동을 두고 불만이 가시지
않았다.
“이제는 폐하의 기도를 핑계 삼아 떳떳하게 애정행각을 하는군.”
“시중, 이번일은 그냥 모른 체 합시다. 오래전부터 두 사람의 사이는 온
신라 사람들이 다 아는 일 아니오? 또한 국사의 안녕과 폐하의 쾌유를 빈
다는 명분이 있으니 더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흠, 흠. 백성들 창피한 줄 알아야지 원…….”
족내혼(族內婚)이나 근친혼(近親婚)이 공식화 된 신라에서는 숙부와 조
카 사이의 염문(艶聞)이나 결혼은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왕이 현재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만약 공주가 왕이 될 수도 있다는 계산을 하
고 있는 귀족들은 위홍과 공주가 사이좋게 붙어 다니는 것에 불안을 느
꼈다.
특히 상대등과 적대관계에 있는 준흥은 어떻게 해서라도 두 사람에게
흠집을 내어 차기 왕권에 두 사람을 배제시키려고 하였지만 먹혀들지 않
았다.
‘흥, 그것들이 궁궐에 눈이 많으니까 이제 신성한 불국사까지 더럽혀 놓
으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군. 정말로 눈꼴셔서 못 봐주겠네.’
명분이 약해진 준흥은 할 수 없이 다음번 기회를 노리기로 하였다. 주지
스님은 공주와 위홍을 앉혀놓고 법문(法門)을 설하기 시작했다.
“두분께서 익히 잘 아시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불국사를 창건한 김 대성
님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해드리겠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고맙습니다. 스님.
”나무관세음보살.“
김대성은 신라 문무왕 때에 모량리라는 가난한 여인 경조의 아들로
태어났다. 머리가 크고 이마가 너무도 평평해서 '큰 성'이란 뜻으로 대성
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대성은 집이 워낙 가난했으므로 부잣집에 가서
고용살이를 하고 그 대가로 약간의 밭을 얻어 생활의 밑천을 삼곤했다.
그런데 때마침 흥륜사라는 절에서 큰 법회를 베풀기 위해서 시주를 받
으려고 점개라고 하는 큰스님이 대성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대성의
어머니는 베 50필을 시주하였다. 점개 스님은 주문을 외우면서 시주의
복을 빌어 주었다.
"그대가 보시를 좋아하니, 천산이 늘 지켜 줄 것이요, 한 가지를 보시
하면 그 만배를 얻게 되니, 이 공덕으로 안락하고 장수하게 될 것입니다."
대성은 밖에서 이를 듣고 뛰어 들어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제가 문간에 온 스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한 가지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는다 하셨지요. 저는 전생에 지은 바 선업이 없으므로 지금에
와서 곤궁하니, 지금 또 보시하지 않으면 내세에는 더욱 곤란할 것입니
다. 제가 고용살이로 얻은 밭을 법회에 보시해 뒷날의 응보를 도모함이
어떻겠습니까? 어머님."
어머니의 승락으로 김 대성은 생활의 밑천인 밭을 전부 절에 시주하
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성이 갑자기 죽었는
데, 이날 밤 신라의 재상 김문량의 집에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
다.
"모량의 대성이란 아이가 네 집에 태어날 것이다."
이 소리를 듣고 김 문량과 그의 처가 매우 놀라 사람을 시켜 모량리에
가서 알아보니 대성이 과연 죽었는데 비로 그가 죽은 날이 하늘에서 외치
던 날과 같은 날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김문량의 부인은 임심을 하였고, 달이 차서 아들
을 낳았는데 갓난아이는 왼쪽 손을 꼭 쥐고 펴지 않다가 7일 만에야 주먹
을 폈는데 손 안에 금으로 된 쪽지가 있었고 거기에는 대성(大成)이란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김문량은 아기의 이름을 다시 대성이라 지었고,
김문량은 대성의 전생 어머니를 모셔다 함께 봉양하게되었다.
대성은 장성하자 사냥을 몹시 좋아하였는데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가 곰
한 마리를 잡고서 산 밑 마을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귀신
으로 변한 곰이 나타나서 대성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네가 어째서 나를 죽였느냐 ? 내가 이제 너를 잡아먹겠다."
대성은 빌면서 용서를 해주기를 청했더니 귀신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
습니다.
"너를 살려주면 네가 나의 넋을 위해 절을 하나 지어 주겠느냐 ?"
"좋습니다."
그날 이후로 대성은 사냥을 중단하고 곰을 위해 그 곰을 잡았던 자리에
장수사를 세웠고, 그로 인해 감동받아 이승의 양친을 위해 불국사를 세우
게 되었다. 이 처럼 김대성은 한 몸으로 전세와 현세의 양대(兩代)에 걸쳐
부모에게 효도를 했니 부처님께서도 크게 감화를 받으셨을 거라고 세인들
은 한결같이 김대성을 칭찬하였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공주와 상대등 위홍은 법문이 끝나자 주지스님에게 삼배를 올리고 부처
님 전에 천 배를 올렸다.
“나무 석가모니불, 부처님이시어 부디 우리 신국토를 헤아려 주시고 오라
버니의 병마를 퇴치시켜 주시어 천년왕국을 부흥시킬 수 있도록 자비를 베
푸소서.”
위홍과 공주의 공양이 끝나자 요사(寮舍)로 물러나왔다. 이미 밤늦은 시
각이었다. 긴 시간 올린 천배로 두 사람은 몹시 지쳐있었다.
“숙부, 피곤해 보이세요.”
“공주께서 더 피곤해 보이십니다. 어서 쉬셔야지요.”
“아버님, 어머님. 밤이 늦었습니다. 이제 그만 쉬세요. 두 분 피로해
보이세요.”
“오, 양패야. 네가 오늘 고생이 많구나.”
“아닙니다. 어머님. 간단한 주안상을 준비했습니다. 편히 쉬소서. 소자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오냐, 고맙구나.”
위홍은 양패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공주, 잔 드시지요.”
위홍이 당에서 수입 된 고급 술인 오량액(五粮液)을 술잔에 가득 따라
공주에게 건넸다.
“숙부, 오늘 너무 고생하셨어요. 노령에도 불구하시고 천 배를 하시다니 그
냥 쉬시지 않고서요?”
“공주도 천 배를 올리는데 내 어찌 앉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아직도 정력이 출중해 보이세요.”
“그렇습니까?”
금잔이 부딪히며 나는 '쨍'하는 맑은 소리가 향긋한 방안에 울려 퍼졌다.
밖에는 시녀들이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의 정겨운 광경을 못본체 하면서 실눈
으로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아, 숙부. 사랑해요. 영원토록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공주…….”
술잔이 몇 번 부딪히고 나자 위홍은 공주 곁으로 다가와 뜨거운 정염의
불꽃을 지폈다. 천 배를 올렸지만 위홍은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어보였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창문에 하나로 비쳐지고 별들이 토함산에 하나씩 내
려앉았고 새벽달이 남산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버님, 어머님. 주무세요?”
“아버님? 급한 일이옵니다.”
새벽달이 졸음에 겨워할 무렵 긴 시간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고 곯아
떨어져 공주와 위홍의 침소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자, 양패이옵니다. 아버님.”
“숙부, 누가 부르는 것 같은데요?”
잠에서 깬 공주가 코를 골고 있는 위홍을 흔들었다.
“으응? 이 밤에 누가?”
“아버님, 어머님. 소자입니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양패가 아니냐? 이 밤에 웬일이냐?”
“폐하께서 위독하다 하십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냐?”
“방금 집사부(執事部)에서 사람이 왔다갔습니다. 급히 대전으로 드셔야
할 줄로 압니다. 아버님.”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공주마마, 함께 궁궐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자칫 때를 놓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닥칠 것입니
다.”
“이렇게 빨리? 오라버니께서…….”
위홍은 준흥의 음흉한 얼굴을 떠올렸다. 위홍은 만약을 위하여 조정의 각
부처에 자신의 심복들을 심어 놓고 있었다. 각부에서 뿐만 아니라 대궐 곳곳
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즉시 위홍에게 보고하게 되어있었다.
‘혹시, 그 놈이 선수를 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하필
이면 이때 폐하께서…….’
“숙부, 어서 들어 가셔요. 한시가 급한 일이잖아요?”
“공주마마, 같이 가셔야 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공주와 헌강왕의 아드님이신 요(嶢) 왕자이십니다.”
“양패야, 너는 이 길로 즉시 병부(兵簿)와 사정부(司正府)로 가서 내 명
을 전하라.”
“네, 아버님.”
“병부장관은 즉시 반월성의 경계를 두 배로 강화하고, 이 시각 이후부터
내 승낙이 없이는 아무도 궁궐의 출입을 금지시키라고 전하라. 또한 요 왕
자를 철저히 보호하라고 하고, 사정부장관은 이 시각 이후 각부 장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고 전하거라.”
“네에, 아버님, 즉시 전하겠습니다.”
임금이 있는 침전에는 아직 각부의 장관이나 귀족들이 들어있지 않았다.
제일 먼저 위홍과 공주가 왕의 편전에 들었다. 왕은 간신히 숨을 넘기고 있
었지만 위홍과 공주를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 어찌 하루 밤 사이에 이리 몰라보도록 병세가 악화 되었단 말입
니까?”
“오라버니…….”
“만아, 내 명이 이제 다되었는가 보다.”
“오라버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어서 쾌차하시고 일어나셔야지요?”
“아니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내가 유조(遺詔)를 남겨야 하겠다.”
“폐하.”
“오라버니.”
“속히 집사부의 시중을 들라 하라. 어서, 시간이 없다.”
급보를 받은 시중 준흥과 집사부 관리들이 들었고 이어 병부와 사정부 등
각부 장관들이 속속 임금의 침전으로 들었다. 상대등과 시중 그리고 병부,
사정부 장관등 조정의 실세와 공주, 만(曼)이 임금 앞에 꿇어앉았다.
“경들은 들으오.”
왕은 궁녀들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입을 열었다.
“짐이 죽거든 왕위를 내 여동생 만(曼)이에게 계승토록 하시오. 내 유조는
하나의 어그러짐이 있어서는 아니 되오. 아시겠소?”
“황공하옵니다.”
“오라버니? 어찌 저에게 그런 막중한 중책을 ......”
‘아, 그래서, 먼저 황룡사에서 오라버니가 그런 운을 떼었구나? 그러나
왕자로 헌강 오라버니 아들 요가 있는데?’
“소신들, 여왕폐하께 하례 올립니다.”
상대등 위홍을 비롯한 시중 준흥 그리고 각부 장관은 즉석에서 일어나 새
로운 여왕이 된 공주 만(曼)에게 절을 하였다. 왕은 흐믓한 표정으로 여왕이
된 동생, 만과 신하들을 바라 보았다.
“만아, 그 옛날 선덕여왕과 진덕여왕께서 삼국을 통일하는 기틀을 만드
신 적도 있었다. 나는 후사가 없으므로 너에게 보위를 물려준다. 신라를 다
시 한번 중흥시키도록 해라. 잘 부탁한다.”
“오라버니.”
신라 50대 왕 김황(金晃) 재위 2년만에 이렇다할 치적도 없이 승하하자
조정에서는 정강왕(定康王)이란 시호를 내렸고, 경문왕의 딸, 만(曼)이 신라
제51대 왕으로 등극하였다. 신라 사직에서 제27대 선덕여왕과 제28대 진덕
여왕에 이어 세 번째 여왕이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