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조 집단은 소래를 떠나 욱리하 이북의 부아악으로 향했다. 일만 명이 넘는 무리가 2백 리 길을 걷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맨 앞에 이천 오백 명의 군대가 포진하고 그 뒤를 지도부와 칠천 오백 명의 백성들이 따랐다. 일반 백성들 역시 비류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30대 이하 젊은 층으로 어하라에 있을 때부터 군사 지도를 받은 터라 언제든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전사나 마찬가지였다.
온조 집단이 동북쪽으로 향하던 중 소래산에서 욱리하 사이에 기존 마한의 세력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온조에게 통행세를 요구하며 앞길을 막았다. 그들은 온조 세력의 성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온조는 그들과 전투를 벌여 전멸시키고 그 지역을 잉벌노(仍伐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온조 세력이 욱리하까지 도달하는데 세 차례 마한 세력과 접촉이 있었다. 첫 번째 접촉에서 마한 세력을 몰살 시키자 온조 세력을 만만하게 보았던 마한 소국의 왕들은 협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온조와 소서노는 돈으로 일부 지역을 매입하기도 했다. 세 번째 접촉은 전투와 협상을 병행하였다. 온조 세력이 막강한 군사력을 지녔다는 사실에 토착 세력들은 큰 충격과 함께 일부 땅을 떼어 줄 수밖에 없었다.
정규 병력은 이천 오백 명이지만 나머지 백성들도 대부분 칼과 활을 지니고 있었기에 일만 명의 군사 집단이나 마찬가지였다. 욱리하와 인접한 마한 소국 중에서 일만의 대 병력을 지닌 나라는 없었다. 온조와 소서노 그리고 십제는 현명하게 대처하며 어렵게 부아악까지 진출하였다.
“신, 부여효는 대왕의 명을 받들어 소래산 아래 동쪽과 서쪽에 목책을 설치하고 함정을 파서 은폐해 놓았습니다.”
“목부장, 고생했소이다. 내가 현장을 직접 시찰하겠습니다.”
목부장(木部長) 부여효가 비류왕에게 전쟁 준비 상황을 보고하였다. 소래에 있던 비류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소래산 중턱으로 이주하여 임시로 병영(兵營)을 설치하였다. 소래에는 어하라에서 타고 온 배들을 관리하는 인력 일부만 남았다. 비류왕은 대보와 좌, 우보 대신과 함께 전쟁 준비 상황을 직접 살펴보았다.
소래산은 주변 산 중에서 가장 높았다. 산 정상에 서면 주변 백리 지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였다. 산이 남북으로 길게 산맥을 형성하고 가팔라서 성을 쌓거나 목책을 설치하여도 적은 군사로 능히 대군을 대적할 수 있는 지형이기도 했다.
“대왕, 우리 백성 중 다수가 젊은 층이어서 모두 전투 인력으로 충당하였습니다. 정규 군사 이천 오백 명과 그들을 합치면 일만 명의 대병력이옵니다. 소래산 동남쪽에 각각 삼천 명 서북쪽에 각각 이천 명을 배치하였습니다. 목지국과 우체모탁국 군대가 진입할 수 있는 예상로는 남동쪽입니다.
남동쪽에 기마병 삼백을 배치하였고 나머지 이백 명은 서북쪽에 배속시켰습니다. 군 지휘부는 정상에 설치하여 사방이 훤히 볼 수 있으며, 전시 상황에 따라 동서남북의 병력에 명령하여 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동쪽은 병법에 대가이며 전투 경험이 풍부한 목부장 부여효를 동군 대장으로 하고, 남군 대장 부여풍, 서군 대장 을지원, 북군 대장은 태천으로 하였습니다. 또한, 세작들은 동서남북 30리 떨어진 지점에 매복시켜 놓았습니다. 목지국과 우체모탁국의 군대가 목격되면 즉각 보고가 올 것입니다.”
대보 해루가 지도를 펼치며 비류왕에게 전쟁 준비 상황을 설명하였다.
“고생했습니다. 전투의 총 지휘는 대보께서 맡아주세요. 부여효를 좀 불러주세요. 부여효는 병법에 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대보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부여효의 의견을 한번 듣고자 해서입니다.”
부여효가 금방 나타났다. 비류왕은 그가 병법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보와 좌, 우보 등 세 중신은 부여효의 입에서 어떤 묘책이 나올지 상당히 궁금해했다. 비류왕은 지도를 펼쳐놓고 부여효에게 현재 소래산에 배치된 병력의 전체 상황에 대하여 일러주고 그의 의견을 물었다.
“대왕, 손자병법 지형편(地形編)에 이르기를 ‘가이왕(可以往), 난이반(難以返), 왈괘(曰挂)’라 했습니다. 진격하기는 수월하지만 퇴각하기는 어려운 지형이 괘형입니다. 소신이 보기에 소래산이 바로 그러한 지형입니다. 동남쪽은 가파른 비탈이지만 적군이 얼마든지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퇴각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아군이 산 위에서 바윗돌 하나만 굴려도 적군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급급할 것입니다.
이런 지형을 이용하면 천명의 군사로 십만의 군사를 대적할 수도 있습니다. 소신에게 적을 대패시킬 묘안을 제시하라 하오시면 목지국과 우체모탁국 군대가 진격할 길은 동남쪽이 확실한바, 아군이 고전하거나 적들이 패하여 퇴각할 경우를 예상하여 퇴각로에 아군을 매복시키는 방안도 고려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부여효는 해루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였다. 중신들이 부여효기 이견(異見)이 있음에 다시 작전 회의를 개최하였다. 서너 번의 회의 끝에 부여효의 의견이 반영되어 미추국의 전술이 수정되어 해루가 발표하였다. 전술은 미추국의 존폐가 결정될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다.
“소래산은 고도는 낮으나 상당히 산세가 험하고 가팔라 기마병이 크게 쓰일 수 없어 북서쪽 계곡에 은둔해 있다가 본영의 명에 따라 적군이 퇴각할 때 번개처럼 나타나 기습전을 펼칠 예정입니다. 기마병은 유구(劉仇) 군관이 맡을 것입니다. 이미 말 오백 필(匹)이 준비되어 철갑기병(鐵甲騎兵)으로 출전 준비를 마쳤습니다.”
기마병의 지휘를 맡은 유구는 어하라에서도 한나라와 국지전이 있을 때마다 기마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연전연승한 백전노장이었다. 동군에 소속되어 전투 준비에 투입되었던 유구가 비류왕 앞에 모습을 보였다.
“유군관이 기마대를 맡아 적군을 진압해주시게. 이번 전투에 철기의 활약이 기대되네.”
“소신, 목숨을 바쳐 적군을 섬멸하겠습니다.”
소래산 일대를 둘러본 뒤에 비류왕은 대소신료는 본영으로 돌아왔다. 내일이 목지국과 우체모탁국의 최후통첩 기한이었다. 소래와 소래산 일대에 전운이 감돌았다. 산은 온종일 혼탁한 애분(埃氛)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지루한 하루가 마감되고 있었다. 날이 저물자 동남쪽으로 나갔던 세작들이 적정(敵情)을 보고하였다. 먼저 동쪽의 세작이 보고하였다.
“보고합니다. 목지국 군대가 30리 밖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전열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군대의 규모는 대략 삼천 명 정도인데, 보병(步兵)이 약 이천이고 기병이 일천으로 상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남쪽의 세작이 보고했다.
“소래 해안에서 남쪽으로 십 리 떨어진 곳에 우체모탁국 군대가 도착하여 진영을 설치 중인데, 병력은 대략 이천 쯤 되며 모두 보병입니다.”
비류왕은 즉각 작전 회의를 소집하였다. 비류왕은 최종적으로 부대장과 군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했다. 대보가 세작들의 보고를 종합하여 현재 상황을 알렸다. 전후 사정을 인지한 각 부대장과 군관들이 묘안을 제시하였다.
“동군 대장 부여효 아룁니다. 목지국 군대가 삼십 리 밖에 주둔했다면 내일 새벽에 아군 진영을 기습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들은 목지국에서 소래까지 천릿길을 오느라 상당히 지쳐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아군이 먼저 선제공격을 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남군 대장 아룁니다. 목지국 군대는 기병과 보병 삼천이고, 우체모탁국 군은 보병 이천입니다. 아군은 정규군 이천 오백에 예비 병력 칠천 여 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목지국 군의 진영으로 삼천의 기보(騎步)를 보내 야간 선제공격도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또한, 동시에 우체모탁국 진영으로 아군 사천을 보내 포위 공격으로 적을 섬멸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부여효와 부여풍 형제의 방안에 여러 장수와 중신들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군사를 잘못 이동할 경우 미추국은 개국 선포도 해보지 못하고 사라질 수도 있기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소장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적군도 이미 우리가 소래산 중턱에 포진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병력의 수자로 본다면 아군이 월등히 유리합니다. 동시에 두 진영을 기습 공격하면 아군이 분산되어 공격력의 약화를 부를 수 있습니다. 아군은 정규 병력 이천 오백에 준 병력으로 칠천 오백이 있습니다. 먼저, 목지국 진영으로 육천의 기병과 보병을 보내 전격적으로 기습 전을 펼치고 승기를 잡으면 곧바로 우체모탁국군 진영을 기습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십시오.”
서군 대장 을지원이 새로운 전술을 제시하였다. 비류왕은 여러 장수의 의견을 빠짐없이 경청하면서 지도를 살펴보았다.
‘적군이 소래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아군을 기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저들도 기습 전을 노리고 있다면 우리가 성동격서 전술을 이용하면 어울릴 것이다. 좋다 이왕 전쟁하는 것이니 아군이 승기를 잡기 위해 선제공격을 감행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비류왕이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여러 장수와 중신들은 주군(主君)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비류왕이 부여효를 불러 몇 가지를 상의하더니 결론을 내린 듯 했다.
“아군이 산 중턱에 앉아 밤새 잠도 못 자고 불안에 떨며 적을 기다리기보다는 선제 공격하는 방안을 채택하겠습니다. 부여효와 부여풍 대장의 의견과 을지원 대장의 의견을 종합하였습니다. 선제 공격하기 전에 유구 대장은 철기를 오백을 이끌고 내일 새벽 *축시(丑時)에 목지국 군 진영 남쪽을 공격하십시오.
목지국 군 진영이 혼란에 빠졌을 때 부여효, 부여풍 대장은 각각 보병 이천 명 씩 이끌고 북쪽을 공격하고, 을지원, 태천 대장은 목지국 군 진영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보병 천 명을 지휘하여 공격하십시오. 선제공격에서 아군이 승리하면 각 대장은 곧바로 전군을 지휘하여 우체모탁국 군 진영으로 진격합니다.”
비류왕의 전격적인 전술 수정으로 막사 안은 잠시 술렁였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대보인 해루가 다시 한번 선제공격에 대하여 부대 별로 주의 사항을 전달하고 즉시 행동에 옮기도록 했다. 대보는 미리 기마병 두 명 씩 한 조를 이루어 목지국과 우체모탁국군 진영으로 급파하여 적의 동태를 감시하도록 했다.
* 축시 -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
“새로 사들인 말들이 아직은 철갑 걸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일 동안 철기를 조직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해왔다. 기병은 칼과 각궁 두 개씩 준비하고 전통(箭筒)에 화전 열발, 일반 화살 사십 발을 채워둬라. 곧 자시(子時)가 된다. 자시가 시작되면 목지국 군 진영을 향해 출발한다.”
기마 대장 유구가 오백 명의 철갑 기병을 향해 세부 사항을 공표했다. 부여효 형제와 을지원 그리고 태천도 정규병과 젊은 백성 중에서 각자 맡은 수효만큼 병사들을 차출하여 출전 준비를 마쳤다.
“병사들은 병장기를 단단히 챙기고 나를 따르라.”
부여효가 군사 이천을 이끌고 소래산 중턱을 내려가 동쪽으로 사라졌다. 부여효에 이어서 부여풍도 이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였고, 을지원과 태천도 그 뒤를 따라 군대를 움직였다. 육천 명의 군사들이 움직이는데도 먼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기병들은 말에게 재갈을 채워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다.
“자, 마음 놓고 한잔 듭시다. 아마 내일 아침이면 비류와 그의 수하들이 달려와 백배 사죄하며 살려달라고 할 것이오. 그놈들이 마한 땅에서 갈 곳이 어디 있겠소? 그놈들이 몰려오면 즉시 생포하여 모두 도륙을 낼 것이오. 설령 안 온다고 하여도 열흘만 기다리면 배가 고파서 모두 산에서 기어 내려와 투항할 것입니다. 참으로 멍청한 놈들이오. 물 한 모금 없는 산 중턱에 진영을 꾸리다니, 비류 놈은 병법서(兵法書)를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 게 분명하오.”
그 시각에 목지국군 진영은 왁자했다. 병사들은 소풍 나온 것처럼 진영마다 술을 퍼마시며 떠들어 댔다. 지난번에 목지국의 진왕 특사로 비류를 만났던 한수(韓壽)는 이번에 목지국 장수의 자격으로 출전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번에 소래에 들렀다가 비류를 따라온 어하라 백성들의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그의 눈에는 비류의 백성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한수 장군께서는 백전노장이오니, 이 싸움은 하나 마나입니다.”
“암요. 목지국 최고 지장(智將)이며, 덕장(德將)이신 한수 장군을 당할 자는 마한에 아무도 없습니다.”
부하들의 칭찬에 한수는 입이 벌어졌다.
“그놈들은 변변한 병장기도 없습니다. 또한, 소서노인가 뭔가 하는 무당년과 그의 둘째 아들 온조 놈도 조만간 마한 연합군에게 잡혀 도륙을 당할 것입니다. 진왕께서는 그놈들이 가져온 재물을 모두 차지하게 되겠지요. 내일 출전해서 비류 놈을 박살 내고 곧바로 진왕에게 건의하여 욱리하 부아악으로 진격할 것입니다. 여러 장수도 나의 명령을 수행하여 군공을 세우고 돌아갑시다. 진왕께서 전리품을 여러분들에게 나눠 줄 것입니다.”
한수의 말에 지휘관들은 기뻐서 어찌할 줄 몰랐다.
“제일 예쁜 계집은 내가 차지할 것일세.”
“어허-, 우리는 한수 장군께서 먼저 간을 보신 다음에 남는 년들을 차지해야지. 냉수 마시는 데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네.”
“그렇지요. 나도 금덩이보다는 미끈하게 빠진 계집년이면 족합니다.”
술에 취한 목지국 군관들은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다. 이미 밤이 깊었는데도 목지국 장군 막사에는 술잔이 넘쳤다. 한수는 대취하여 잠자리에 들었고, 그의 휘하 군관들이 늦게까지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시간이 거의 자시 중반에 가까웠을 때 술자리가 파했고, 모두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천릿길을 달려온 목지국 병사들은 모두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보초를 서는 군졸들도 피곤하여 땅바닥에 주저앉아 잠이 들어 누가 업고 가도 모를 지경이었다. 목지국군 진영 남쪽 가까이에 비류의 철기(鐵騎)들이 도열하여 유구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목지국 진영 앞에 있다. 곧 축시에 접어든다. 내가 명적(鳴鏑)을 발사하면 모두 적진의 막사를 향해 화전(火箭)을 쏴라. 한 사람이 화전 열발을 쏘고 즉시 진영 안으로 돌진한다. 나머지 화살 사십 발은 목지국 놈들 사십 명의 심장을 뚫어야 한다. 준비하라.”
유구가 하늘의 별을 보며 시각을 측정하고 있었다. 기마대 오백 명이 손에 땀을 쥐고 두 눈을 부릅떴다. 비류왕이 남삼한에 상륙하여 처음으로 마한과 전투를 벌이는 순간이었다. 그때 명적 한 발이 ‘삐익-’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쏴라.”
명적이 발사되자 오백 명의 미추국 기마대가 불화살을 날렸다. 목지국군 진영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마침 바람까지 불어 군 막사는 화염에 휩싸이며 불지옥으로 변했다. 미추국의 기마대가 진영으로 뛰어들어 화살을 날리며, 진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잠을 자던 상당수 목지국 군사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고 도망치던 자들은 기마대의 칼에 목이 떨어졌다.
적 진영에서 화염이 치솟자 부여효와 부여풍이 지휘하는 보병 사천 명이 함성을 지르며 목지국군 군영으로 난입하여 닥치는 대로 목지국 군을 살해하였다. 동시에 을지원과 태천이 지휘하는 미추국 보병 이천 명이 동서 쪽에서 난입하며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목지국 군사들은 지리산 가리산 하며 우물쭈물하다가 미추국 군사들이 쏜 화살이나 칼을 맞고 쓰러졌다.
“장군, 적의 기습입니다.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어느 나라 군대가 쳐들어온 것이냐?”
“진한의 사로국 군대가 쳐들어온 듯 합니다.”
“사로국 군대가 여기까지 무엇 하러 왔단 말이야? 어서 내 말을 가져오너라.”
잠을 자다 놀란 한수가 수하에게 소리쳤다. 목지국 기마대 소속 말 천여 필이 모두 놀라 도망치다가 미추국 병사들에게 붙잡혔다.
“장군, 말들이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냥 걸어서 도망치셔야 합니다.”
한수를 비롯한 목지국 장수들은 우두망찰 허둥대다가 모두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전투를 시작한 지 반 시진도 안 돼서 모든 것이 끝났다. 목지국 군사 대부분이 전멸 당하고 겨우 수십 명이 도망쳤다. 목지국 기마대가 타던 말 천 필과 상당량의 군량미와 병장기가 수습되었다.
목지국군 진영은 철저히 파괴되어 불탔고 사방에 목지국 군사들의 목이 굴러다녔다. 미추국 병사들은 서너 명이 넘어졌을 뿐 한 명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미추국의 완벽한 승리였다.
“이놈, 무릎을 꿇어라. 미추국 대보 어른이시다.”
부여효가 잡혀 온 목지국 군관들과 병사들을 포박하여 무릎을 꿇렸다. 포로의 수가 백여 명이 넘었다. 갑옷 차림의 해루가 포로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였다. 그가 한 군관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이게 누구신가? 목지국의 한수 어른이 아닌가? 그 당당했던 태도는 어디 가고 어찌하여 비루 먹은 강아지 꼴이 되었는가?”
“살려주시오. 대보 어른과 나는 구면이 아니오?”
한수가 해루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미추국 군사들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이놈, 한 나라의 장수가 되어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구나. 너는 장수답게 죽는 편이 좋을 것이다. 여봐라, 저 한수 놈만 압송하고 나머지 놈들을 모두 참수하여 목을 나뭇가지에 매달라. 전군은 즉시 소래 해안 남쪽으로 간다. 유구 대장은 먼저 달려가 적들의 전황을 살펴라. 우리가 곧 뒤따라 달려갈 것이다.”
미추국 기마대가 빠져나가고 해루는 보병 육천 오백 명을 이끌고 소래 남쪽으로 달려갔다. 기마대가 바람처럼 달려가 우체모탁국군 진영 주변에 집결하여, 보병들을 기다렸다. 우체모탁국 군영(軍營)은 조용했다. 유구는 오십 명의 척후들을 풀어 진영 가까이 접근하여 군영 내의 정황을 염탐케 했다.
군영 내에는 바람 소리와 병사들의 코 고는 소리만 진동했다. 우체모탁국군 지휘관들도 야밤에 미추국 군대가 기습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비류의 휘하에는 변변한 군대도 없고 남루한 백성들과 창칼을 든 오합지졸만 있는 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