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제(十濟)의 대부분은 온조에게 귀의하였고 해루와 십제가 아닌 신하들이 비류의 편에 가담했다. 태천(太泉), 최욱(崔旭), 성간(成干) 등은 졸본부여 출신으로 비류의 외조부(外祖父)인 연타발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비류와 온조 왕자가 주몽에게 어떻게 토사구팽 당했는지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십제 중 해루를 제외한 나머지 아홉 명은 온조를 따라 부아악으로 떠났다. 소서노는 어하라를 출발할 때 가져온 식랑과 자금도 동등하게 양분하여 두 아들에게 건넸다. 비류는 신하들과 상의한 끝에 우선 나라부터 먼저 세우기로 하였다.
소래는 해양으로 진출하기에는 알맞은 장소이기는 하나 천년 제국의 기틀을 세우기에는 다소 흠이 있었다. 바다를 통하여 외적이 침입한다면 적을 방어할 산이나 강 또는 협곡 등 천혜의 지형지물이 없었다. 외적의 침입만 없다고 가정한다면 소래는 그런대로 나라를 세울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비류는 어머니와 아우 그리고 아홉 명의 십제와 일만의 백성을 떼어주고 나머지 인력으로 나라를 세우고 발전시킬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는 최소한 서너 명의 십제가 자신의 편에 잔류할 것으로 예측했었다, 그러나 그 추측이 얼마나 순진하고 바보 같은 일이었는지 비류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인심은 잇속을 따라 움직이게 되어있지만, 비류는 그것을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인력의 규모로는 나라 건국 자체가 어려울 것만 같았다. 비류가 자신의 막사 안에서 두문불출하자 신하들은 불안하였다. 그는 믿었던 십제 중 해루 한 명만 자신에게 남았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소서노가 온조의 진영에 합세하여 부아악으로 떠나자 아홉 명의 십제도 어쩔 수 없이 동참하게 된 것 같기도 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십제는 소서노의 신하였다. 그녀가 두 아들을 대동하고 고구려를 떠나 번한(番韓) 지역으로 갈 때 동참한 십제는 대부분 오랫동안 그녀에게 충성해온 심복들이었다. 해루와 태천, 최욱이 실의에 빠진 비류를 찾았다.
“왕자님, 기운을 내시고 산적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합니다. 떠난 사람들에 대한 미련은 버리시는 게 좋습니다. 왕자님께서는 어하라를 다스린 경험이 있으니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르시면 성군(聖君)이 되실 것입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이곳 소래에서 우선 나라를 건국하시고 다음 일을 추진하시지요. ”
얼굴이 검은 해루가 허탈함에 빠진 비류에게 간청하였다.
“왕자님, 해루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빨리 통치 체계를 구성하여 인사를 하시고 만방에 나라의 건국을 선포하셔야 합니다. 백성들에게 나라가 있다 함은 설 땅이 있다는 뜻이며, 그들이 장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기틀을 세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태천도 해루의 의견을 지지하였다.
“신, 최욱도 두 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찬동합니다. 이제 지난 일에 연연하지 말고 왕자님의 나라를 건국하여 *우태(優台)님의 한을 풀어드려야 하옵니다. 왕자님, 한시가 급하옵니다.”
최욱은 낙랑국(樂浪國) 출신으로 사리가 밝고 우의가 있어, 어하라에서도 많은 무리가 그를 따랐다.
“왕자님, 두 분 대신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소인도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나라에 백성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사람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소인이 이곳에 오기 전부터 알아본 것이 있습니다. 마한은 54개 소국(小國)이 합쳐진 연맹체이며, 현재는 목지국(目支國) 진왕(辰王)이 마한연맹의 맹주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마한의 소국들은 규모가 큰 경우 일만 호(戶) 작은 경우는 수천 호로 총 호수가 10여만 호입니다. 우체모탁국은 3천 호의 규모라고 들었습니다. 한 가구에 5명씩 치면 대략 일만 오천 명이라는 수치가 나옵니다. 성인 남성 중 군대로 편입된 수 자가 약 삼 사천 명쯤 될 것으로 생각하옵니다.
이곳 소래는 공식적으로 우체모탁국의 영토입니다. 엄밀하게 따지고 본다면 우리는 무단으로 남의 영토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우체모탁국에서 사람이 나와서 항의할 때 우리는 삼 개월 있다가 다른 지역으로 갈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이미 삼 개월이 지났습니다. 우체모탁국은 왕이 없고 신지(臣智)가 왕 노릇을 하며 백성을 다스리고 있는데, 조만간 그가 군사를 이끌고 오지나 않을지 우려스럽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것이 아니면 조속히 나라의 건국을 선포하시고 외침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부여효(扶餘孝)는 비록 십제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고구려 계루부 출신으로 비류를 따르며 견마지로를 맹세한 인물이었다. 그는 병법(兵法)에 조예가 깊고 무예에도 뛰어난 기량을 지닌 인재였다. 부여효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비류는 신하들 의견을 종합해 보았다.
‘세 사람 말이 모두 맞다. 내가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앉아 있을 여유가 없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일만 여 명의 어하라 백성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나라를 열고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내가 갈 곳이 없다. 우체모탁국 신지에게 삼 개월 후에 다른 곳으로 이주할 거라고 말은 했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
비류는 생각은 가다듬고 자신의 뜻을 밝혔다.
“세분,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나 역시 나라를 빨리 세우고 율령을 공포하여 나라 다운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나는 세 분과 긴밀히 논의하여 이곳 소래에 나라를 세울 것입니다. 나라 이름은 미추국(彌鄒國)이라 할 것입니다. 나라 이름은 내가 예전부터 생각했던 바입니다.”
“왕자님, 잘 생각하셨습니다.”
“왕자님의 결단을 환영합니다.”
“왕자님의 나라는 온조 왕자님 나라보다 여러 면에서 우위에 있을 것입니다. 이곳이 소래이며 동시에 미추홀입니다. 경하드립니다.”
세 신하의 주청에 비류는 그날부터 오랜 염원인 나라 건국에 관련한 일에 박차를 가했다. 해루를 총 단장으로 하여 건국단(建國團)을 결성하였다. 건국단에는 재정(財政)담당, 병부(兵部)담당, 외교담당, 건설담당 등 국가 건설에 필수 요인을 선정하였다. 해루가 재상이나 마찬가지였고, 태천이 좌보 겸 병부를, 최욱이 재정을 담당하였으며, 부여효가 건설을, 부여효의 아우 부여풍(扶餘豊)이 외교 담당이 되었다.
부여풍은 고구려에서 외교 관련 일을 경험이 있는 국제 정세에 밝고 고구려와 한나라에도 인맥이 있는 등 재주가 많은 자였다. 비류와 여러 신하가 밤낮으로 연구한 끝에 드디어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비류는 신하들을 모두 한자리에 소집하였다.
소서노는 오천의 군사 중 절반인 이천 오백 명을 비류에게 주고 나머지는 온조에게 배속시켰다. 그녀의 군사는 활만 다루는 게 아니고 칼과 창을 다루며 때에 따라서는 말을 타며 기마병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어하라에서 배편으로 소래 지역으로 오는 관계로 말을 가져올 수 없었다.
태천은 비류에게 조속히 말 오백 필을 구할 것을 요청하였다. 기마병 한 명이 보병 스무 명 역할을 하며, 속도전에서는 반드시 필요하였다. 비류는 태천의 제의를 받아들여 사람을 사방으로 풀어 말을 구하도록 했다.
소서노는 지난 십년 동안 어하라의 여왕으로 있으면서 이웃 나라들을 상대로 무역하면서 막대한 부(富)를 축적하였다. 그녀는 어하라에 약간의 자금을 남겨두고 모두 금으로 바꿔 가지고 왔는데, 비류와 온조에게 공평하게 백만 냥씩 분배했다. 백만 냥 정도면 웬만한 나라를 살 수도 있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최욱은 나라의 곳간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비류의 신임이 없다면 불가한 일이었다.
“나는 내일 나라의 개국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해루 건국 단장께서 설명이 있겠습니다.”
비류의 소개에 이어 해루가 문서를 들고 일어났다. 비류 아래에는 십제인 해루 이외에도 부여효의 형제와 이십 여 명의 신하가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구려에서부터 어하라 그리고 이곳 소래로 오기까지 비류와 마음을 나눈 동료들이었다.
“지금부터 비류 왕자님의 명을 받아 나라 개국 선포에 앞서 조정을 구성한 결과를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해루의 말에 신하들은 침을 삼켰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와 같았다. 누가 어떤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최고 통치자의 신임의 향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향후 비류가 건국하는 나라의 발전 방향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이기도 했다. 해루가 뜸을 들이자 여기저기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비류도 그가 뜸을 들이자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드디어 해루가 입을 열었다. 비류 왕자가 세우는 나라의 조정 중신들이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대보(大輔) 겸 병부장(兵部長)에 해루, 좌보에 태천(太泉), 우보에 성간(成干), 재무부장에 최욱, 목부장(木部長)에 부여효, 외사부장(外舍部長)에 부여풍, 사군부장(司軍部長)에 을지원, 전내부장(前內部長)에 소소리 등 주요 직책이 발표되었다. 그 이외의 관직과 소속 장은 공고문을 통해 공표되었다.
대보는 왕 다음으로 가장 높은 관직이고 병부장은 나라의 군대를 운영하는 자리였다. 좌보는 대보 아래 관직으로 주로 나라 내부적인 관부를 통괄하고, 우보는 나라의 외적인 사무와 궁궐 수비, 범죄 등을 통괄했다. 이로써 비류는 나라의 외적인 체계는 갖추어졌지만, 아직 만방에 알리지 않은 과도기적 형태의 국체(國體)를 갖추게 되었다.
“신, 해루 대왕의 하해와 같은 성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견마지로를 다하여 미추국이 장차 해양 제국으로 발전하도록 신명을 다하겠나이다.”
“소신을 좌보(左輔)에 제수하여 주신 대왕께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태천이 비류왕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신, 성간은 우보(右輔)에 만족하며 미추국 발전에 분골쇄신하겠나이다. 다시 한번 대왕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재무부장을 맡게 되었으니, 대왕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최욱이 비류왕에게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신, 부여효 미추국의 영광을 건설하겠나이다. 도성과 궁성뿐만 아니라 미추국의 모든 축조물을 반드시 삼한 제일의 명품으로 만들겠나이다.”
“신, 부여풍은 마한의 모든 소국과 통교하고 멀리 변한과 진한까지도 선린 외교를 꾀하겠나이다. 대왕의 은총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부여풍은 벌떡 일어나 비류왕에게 반쯤 고개를 숙였다. 곁에 있던 그의 형 부여효는 흡족한 표정으로 수염을 쓸어내렸다.
“신, 을지원(乙支元)은 사군부장으로서 대보를 보필하며 나라와 궁성 수비에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대왕의 성은에 머리 숙입니다.”
“신, 소소리(蘇小里)는 전내부장으로 대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국정을 수행하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힘쓰겠습니다. 또한, 중신들과 백성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대왕께 아뢰겠습니다.”
전내부장은 왕명의 출납과 조정 내 각종 일들을 맡아 처리하는 직책으로 늘 왕의 가까이서 보필해야 했다. 미추국에서 주요 직책을 맡게 된 인사들의 가족은 아직 어하라에 있었다. 그들은 미추국이 기틀을 잡으면 가족을 데리고 올 예정이었다. 조정의 조직이 구성되어 발표를 마치자 비류왕은 조촐한 자축연을 열고 신임 부서장과 중신들을 위무하였다.
비류왕과 제신(諸臣)은 나라의 터전을 완전히 잡은 것은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나라의 기틀을 완성했다는 데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제 내일이면 정식으로 개국을 선포하게 된다. 비류왕은 나라의 체계와 관등(官等)을 고구려와 부여의 것을 모방하였고, 미비한 조직은 계속해서 보완해 나갈 예정이었다.
자신을 따라온 일만의 백성들이 아직도 움막 형태의 임시로 지은 거처에 머물고 있으므로 빨리 나라의 터전을 확정하고 토목공사 등을 일으켜야 했다. 비류왕과 신하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을 때 한 군관이 달려왔다.
“대왕, 목지국과 우체모탁국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수백 명이나 되는 군사를 이끌고 왔습니다.”
“뭐라, 군사를 이끌고 왔다고?”
자축연이 한창 진행 중이던 막사 안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비류왕과 신하들은 언젠가 이런 일이 오리라 예상은 했었다. 비류왕은 중신들과 함께 두 사람을 만나 보기로 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는 대략 짐작은 하고 있었다. 별도의 장소에서 비류왕과 두 사람이 접견했다.
“목지국 사신 한수(韓壽)라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우체모탁국에서 온 풍패(豐貝)가 왕자를 다시 뵙습니다.”
비류왕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에 미추국 신하들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비류왕에게 절은 커녕 고개도 숙이지 않고 말로만 예를 갖추는 시늉을 했다. 비류왕은 행여 불상사가 일어날까 봐 신하들에게 자제를 주문하였다. 그런데도 성질 급한 사군부장 을지원이 차고 있던 칼을 빼려고 했다.
“이보시오. 왕자가 아니라 대왕님이시오. 내일 우리는 미추국의 개국을 만천하에 선포할 것이며, 비류대왕께서 미추국의 초대 국왕으로 즉위할 것이오. 예의를 갖추고 대왕을 알현하시오. 너무 무례하오.”
대보인 해루가 큰소리로 두 사람을 향해 꾸짖었다.
“마한 전체를 대표하시는 목지국의 진왕과 우체모탁국의 대군장이신 신지(臣智)께서는 그대들이 이곳에서 나라를 개국해도 좋다는 승낙을 하지 않았소이다. 그리고 삼 개월 전에 이 사람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대들은 곧 이곳을 떠난다고 했소이다. 그런데 아직도 소래를 떠나지 않고 나라를 세운다니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요?”
풍패도 두 눈을 부릅뜨고 물러서지 않았다.
“풍패 대인의 말이 하나 틀리지 않습니다. 나라를 열기 위해서는 땅과 백성이 있어야 하며, 통치 체제가 완비돼야 합니다. 그런데 그대들은 나라를 열 땅은 고사하고 백성들도 남부여대한 무지렁이들만 있소이다. 이런 상태에서 무슨 나라를 열겠다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소이다.”
한수도 역시 물러서지 않고 소리쳤다. 사신의 자격으로 왔으면 당연히 예의를 갖추어 상대국 최고 지도자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대화가 오가기 전에 고성부터 일자 비류왕은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두 분께서 오시느라 고생하시었소이다. 무슨 일로 오신 게요?”
비류왕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먼저 한수가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목지국의 진왕께서는 그대와 어하라 백성들이 즉시 소래에서 나가기를 바라시오. 앞으로 닷새 간의 말미를 주겠소.”
“나는 우체모탁국 신지의 명을 받고 왔소. 신지님의 뜻도 목지국왕의 뜻과 같소이다. 그대들이 닷새 안으로 소래에서 나가지 않으면 우리는 군대를 움직일 것이오.”
닷새 내로 소래에서 나가라는 두 사람의 말에 비류왕과 중신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땅히 갈 곳도 없는 상태에서 닷새 안에 일만 명의 백성을 이끌고 이주할 일이 난감했다.
“좋소이다. 닷새 안에 우리 어하라 백성들이 소래에서 나가지요. 두 분은 돌아가서 그리 전하시오. 하지만 나가는데 끝마무리를 하려면 열흘은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비류왕이 즉석에서 응답했다. 신하들은 비류왕의 응답에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닷새 안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 무슨 궤변이오? 무조건 닷새 안에 모두 나가야 합니다.”
“비류 왕자는 사태의 본질을 잘 알아야 하오. 닷새가 지나도록 그대들이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 두 나라의 군대가 소래로 진격해 올 것이오.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은 전적으로 그대의 책임이오. 그동안 삼 개월의 기간을 주었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소이다. 잘 판단하시오.”
한수와 풍패는 비류왕에게 최후의 통첩을 남기고 휑하니 돌아가 버렸다. 축하연 자리는 긴급 사태를 논의하는 자리로 바뀌고 말았다. 비류왕은 신하들을 소집하였다. 비류왕은 신하들이 모두 모이기 전에 대보인 해루와 좌보 태천 그리고 우보 성간을 불렀다. 그들은 비류왕의 속마음까지 훤히 알고 있는 복심이기도 했다. 비류왕이 일단 닷새 안으로 소래를 떠나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신하들은 잘 알고 있었다.
“좌보, 지난번에 말을 구매하라고 지시한 건은 어찌 되었습니까?”
비류왕이 태천에게 물었다.
“대왕, 미추홀과 우체모탁국 그리고 멀리 목지국까지 다니며 군마(軍馬)를 사들였는데, 아직 사백 마리밖에 안 되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매입 중입니다. 조만간 오백 마리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천의 말에 비류왕은 안색이 풀어지는 듯 했다.
“좋습니다. 좌보께서는 닷새 안으로 말 백 마리를 마저 구매하여 오백 마리를 전부를 철기(鐵騎)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세요. 잘 훈련된 철기 한 기는 보병 수십 명의 전력과 같습니다.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천 오백 명의 보병이 있습니다. 그중 오백 명을 선발하여 즉시 철기병으로 무장시키고, 나머지 이천 명은 좌군과 우군으로 나누어 소래산 아래에 포진시키세요. 좌, 우군에 철기 이백오십 명씩 전방에 배치하여 돌격대로 운용해야 합니다.
전쟁입니다. 그리고 대보께서는 지금 즉시 부아악으로 사람을 보내 우리의 긴급 사태를 어머니와 온조 아우에게 알려 파병을 요청하세요. 목지국의 진왕과 우체모탁국의 신지가 우리를 만만히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 그들의 콧대를 꺾어놔야 합니다.”
“대왕, 바른 판단을 하셨습니다. 혼을 내주는 선에 끝낼 것이 아니라, 우체모탁국을 정벌하십시오.”
“대왕, 우리 군사들은 천하무적입니다. 어하라에 있을 때 한나라와 고구려 그리고 말갈과 흉노족을 상대로 국지전을 벌이며, 전투 경험을 쌓았습니다. 소신의 판단으로는 목지국과 우체모탁국은 우리의 상대가 못 되옵니다. 우리 군사들은 모두 말을 타는데 능숙합니다. 별도로 훈련을 시키지 않아도 말만 타면 무적의 기마병으로 변신합니다.”
구수회의를 끝낸 비류왕은 전쟁을 선포하고 신하들에게 전쟁 준비를 하라고 주문하였다. 비류왕은 일만 명의 백성들을 소래산으로 이주시키고 전쟁 준비에 전력을 기울였다. 미추국의 개국 선포는 미뤄지고 말았다. 비류가 어하라에서부터 인솔해온 백성들은 30대 이하의 젊은 층으로 손에 병장기만 쥐어주면 언제든 전사(戰士)로 바뀔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