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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수부인(2)

* 창작공간/중편 - 팔수부인

by 여강 최재효 2020. 8. 24. 13:49

본문

 

 

              본 역사소설은 백제 제18대 전지왕(腆支王)의 부인이며, 제19대 구이신왕(久爾辛王)의

           생모인 팔수부인(八須夫人)과 그의 간부(姦夫)인 목만치(木滿致)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

           습니다. 팔수부인은 왜국 응신왕의 딸로 전지왕이 붕어한 뒤에 목만치와 더불어 백제의 정치를

           농단하여 백제를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합니다. 1600여 년 전에 백제 한성(漢城)에서 일어난

           희대의 사건을 소설로 엮었습니다. 많은 감상 부탁드립니다.

 

                                                                            _()_ 여강 최재효 拜

 

 

 

 

 

 

 

 

 

                                                 팔수부인

 

                                                                                                                                              - 여강 최재효

                                                    2

 

부여구이신이 백제 제19대 왕에 올랐지만, 백제 숫백성들의 삶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었다. 매년 되풀이되는 가뭄과 홍수로 인하여 수많은 백성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그 와중에 해씨와 진씨들은 권력을 쥐기 위하여 잠시도 쉬지 않고 암투를 벌렸다. 아신왕(阿莘王) 이후 전지왕 때까지 진씨들이 백제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지기는 했으나, 아주 몰락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구이신 왕을 은근히 눈여겨보면서 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진씨 세력들이 구이신 왕을 노린 것은 조정의 주요 직책을 모두 해씨들이 쥐고 있었고, 왕과 팔수부인 그리고 목만치가 해씨들에게 진저리를 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구이신 왕은 왕실이나 중신 중에서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속내를 터놓고 말할 벗이 별로 없었다. 그는 전지왕의 아들로 태어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백제 지존의 자리에 앉은 것이었다. 그가 궁궐 내에서 속내를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는 어머니 팔수부인과 목만치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이복 아우인 비유공과 정치적인 문제에 대하여 상의를 하기도 했다. 구이신 왕이 반백반왜(半百半倭)의 어중간한 입장의 왕이기는 했지만, 백제의 중흥을 위해 힘쓰려고 노력하였다. 서너 해가 지나가는 동안 해씨들은 노골적으로 기득권을 지키며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였고, 이에 맞서서 진씨들은 잃어버린 영화(榮華)를 만회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고구려 거련 태왕은 백제가 정치적으로 혼란한 틈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대륙의 북방과 서방으로 진출로 확보가 어렵게 되자 남진 정책을 고수했지만, 백제와 계림국을 크게 압도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한 상황은 백제와 계림국이 연합하여 고구려의 남진을 막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구려의 남진 정책은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계림국은 매우 혼란한 정국을 맞고 있었다. 계림의 눌지왕(訥祗王)은 소원해진 고구려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하고 국교를 재개하려고 노력했으나, 두 나라의 외교 관계는 예전 같지 않았다.

 

고구려의 거련 태왕은 눌지왕을 신임하지 않았다. 눌지왕은 고구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박제상을 시켜 인질로 갔던 친아우 복호(卜好)를 데려왔으며, 왜국에 역시 볼모로 간 다른 아우 미사흔(未斯欣)을 탈출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박제상은 미사흔을 빼돌린 사실이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다.

 

그 일로 왜국은 게림국을 수시로 침입했지만, 눌지왕은 슬기롭게 막아냈다. 고구려, 백제, 계림국, 왜국, 가야연맹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각국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왜국의 인교왕(允恭王)은 전지왕이 붕어하고 백제 조정이 불안하자 고모인 팔수부인의 신변안전을 위하여 검술에 능한 왜인 열 명을 친선 사절로 가장하여 한성에 파견하였다. 그들은 일단 한성의 상황을 보고 필요할 경우 왜국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한성에 장기 간 체류하며, 백제의 정치 상황을 살펴볼 예정이었다. 20대 중후반의 검술의 달인들로 구성된 왜국의 사절단은 한성에 도착하자마자 팔수부인의 처소부터 찾았다. 그녀는 고국에서 온 무사들을 보자 반가워서 어찌할 줄 몰랐다.

 

“*다케다상, 엔로 오츠카레사마데시타.”

“*하타히메미코사마, 오겡키데스까?”

 

다케다(竹田)는 인교왕의 서신을 팔수부인에게 전했다. 마침 그녀의 곁에 목만치가 있었는데, 목만치가 왜국에 머물 때 다케다와 마음이 맞아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다케다는 오진왕의 총신(寵臣)으로 검술, 창술, 표창술, 궁술, 무영술(無影術)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무예의 달인이었다.

 

그는 오진왕의 장자인 닌도쿠왕(仁德王)과 그의 아들들 리추왕(履中王)과 한제이왕(反正王)을 섬기고 현재의 닌도쿠왕의 막내아들인 인교왕을 받드는 세족(世族)이기도 했다. 그가 인교왕의 명으로 제자들을 이끌고 백제에 온 것이었다. 그의 부하들도 검술에 모두 경지에 오른 자들이었다. 다케다와 그의 제자들은 주인의 명령이라면 불구덩이라도 주저 없이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었다.

 

다케다는 오진왕을 비롯한 왜왕들이 정적(政敵)들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에 있을 때마다 그들을 보호했다. 그는 왜왕의 가족들까지도 보살피는 존재로 왜국에선 보이지 않는 실력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인교왕이 다케다를 특별히 백제에 파견한 이유는 그가 백제의 사정에 정통하고 백제 중신들하고도 안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 엔로 오츠카레사마데시타(遠路お疲れ様でした) - 먼 길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 하타히메미코사마, 오겡키데스카(八田皇女様, お元気ですか?) - 팔전황녀님, 건강하신지요?

 

“대왕은 무탈하시죠?”

 

“인교 대왕께서는 전지왕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늘 황녀님의 안위를 염려하시다가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저희는 대왕의 별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이곳 한성 백제궁에 머물며, 하타황녀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행여 어떤 불순한 무리가 접근하지 않는지 주변을 감시할 것입니다. 또한, 대왕께서는 장차 백제의 왕까지 겸하고 싶어 하십니다.”

 

팔수부인은 왜국의 오진왕과 그의 넷째 부인인 미야누시아카히메(宮主宅媛) 사이에서 큰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본명은 야타노(矢田)이고, 별명은 하타(八 田)이다. 오진왕은 한 명의 왕후와 열 명의 후궁들에게서 아들 11명과 딸 14명을 보았다. 하타는 열네 명의 오진왕 딸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하타는 부여전(扶餘腆)이 태자 시절 왜국에 있을 때 이름을 하치스(八須)로 개명하고 그와 혼인하였다. 오진왕 다음에 왜왕으로 즉위한 닌도쿠왕은 팔수부인의 배다른 오라비이고 현재는 닌도쿠의 넷째 아들 인교(允恭)가 왜왕으로 있었다.

 

팔수부인은 인교왕이 보낸 서신을 읽어보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환한 얼굴을 하자 목만치가 서신 내용을 무척 궁금해했다. 그러나 다케다 일행이 있는 자리에서 물어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케다는 그 서신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나는 백제국의 국사(國師)로서 태후와 구이신어라하를 잘 보필하고 있습니다. *천조(天朝)에서는 우리 백제가 무척이나 걱정되나 봅니다. 기왕 오셨으니 백제의 명산대천을 두루 구경하시고 선진 문물(文物)을 많이 배우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이 다케다상과 제자님들이 백제에 머무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특별히 신경을 쓰지요.”

 

목만치는 다케다와 그의 제자들을 마치 하인을 다르듯 오만하고 불손한 태도로 명령조로 말했다. 목만치는 주지육림에서 유희를 즐기는 데에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호탕하고 사내다운 면모를 보이지만, 칼이나 창 같은 흉기를 다루는 데에는 서툴렀다.

 

다케다는 팔수부인 옆에 앉아 자신들의 상전처럼 군림하려고 드는 목만치가 아니꼽고 자존심이 상해 부아가 났지만 참아야 했다. 감히 왜국의 공주이며 백제의 태후인 팔수부인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 천조 – 천자가 다스리는 왕국을 천조라고 하는데, 왜인들은 왜왕이 다스리는 왜국을 천조라 불렀다.

 

“다케다상과 여러 제자가 먼 길 오느라 수고했으니, 저녁에 술 한잔하면서 고향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팔수부인이 목만치를 의식하며 한마디 던졌다.

 

“하타히메미코사마, 고맙습니다. 신이 황녀님께 드릴 말씀이 참으로 많습니다만, 이 자리에서는 좀…….”


왜인 무사들이 팔수부인에게 할 중요한 듯한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흘낏흘낏 목만치의 눈치를 보았다. 다케다는 인교왕이 서신에 적어 보낸 것 말고 긴히 전달할 시안이 많았다. 인교왕의 야욕을 아직 백제 조정의 중신들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는 욕심이 많은 왜왕이었다.

 

“나는 잠시 저잣거리에 좀 나가서 백성들이 어찌 살고 있는지 시찰을 다녀오지요. 태후는 무사들과 고향 이야기를 나누세요.”

 

눈치 빠른 목만치가 한마디 던지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팔수부인은 궁인들을 불러 화식(和食)과 술을 들이게 했다. 백제궁에는 팔수부인이 왕비가 된 뒤로 왜의 음식만 전담으로 하는 부서가 따로 생겨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최고급 요리만 먹고 자란 탓에 백제의 음식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대왕께서는 장차 백제를 왜국의 속국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다. 해서, 구이신 왕의 배우자로 우리 왜국 왕실녀를 생각하고 계신답니다. 구이신 왕도 우리 왜국 왕실의 피가 섞여 반백반왜이고, 장자 구이신 왕과 왜국의 왕실녀가 혼인하여 아들이 태어난다면 명실공히 완벽한 왜인이 백제를 통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케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실로 엄청난 내용이었다. 팔수부인은 조카인 인교왕의 야욕이 하해와 같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백제까지 넘보고 있다는 말에는 약간 기분이 언짢았다. 친정의 조카가 백제까지 넘본다면 자칫 혈육간 싸움이 될 수도 있었다. 팔수부인은 장차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들이 대대로 백제의 왕이 되기를 바라는 판에 인교왕이 판을 깰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고민이 깊어졌다.

 

‘조카가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20여 년 전에 아버님께서 나를 죽은 전지어라하에게 시집 보낸 것도 목만치와 떼어 놓기 위한 수단이 아니고, 장차 백제를 어찌해보려는 뜻이 있었단 말인가? 과연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로구나.’

 

“다케다상, 나도 예전부터 아버님과 닌도쿠 오라버니 그리고 조카들의 그러한 생각을 어느 정도는 간파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인교왕이 생각하고 있는 왜국 왕실녀가 구체적으로 누구입니까?”

 

“나카시노히메미코(中磯皇女)입니다.”

‘뭐라? 리추 큰조카의 딸이라고?’’

 

나카시노 황녀라는 말은 팔수부인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그녀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만약 팔수부인이 큰조카의 딸을 며느리로 맞는다면 다케다 말대로 백제 왕실은 후손들은 대대로 왜국을 외가로 두는 셈이 되고 마는데, 문제는 백제 중심들이었다. 백제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집권 세력은 해씨들인데, 그들이 인교왕의 계획을 알면 어찌 반응할지 알 수 없었다.

 

아신왕이 태자 부여전을 왜국에 보낸 것은 인질이 아닌 선린외교 차원에서 보낸 것인데, 왜왕은 그러한 백제의 정책을 오해하고 있는 듯 했다. 팔수부인도 인교왕의 의도가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백제는 나와 목만치만 있어도 충분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다만, 해씨들과 진씨들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대고 있기는 합니다. 나의 아들이 이미 백제의 지존이 되었으니, 누가 감히 우리 모자를 해치려 하겠습니까? 백제 음식도 그런대로 먹을 만합니다. 물론 우리 왜국의 풍부한 산해진미에 비하면 보잘 게 없지만요. 많이 드세요.”

 

팔수부인은 다케다와 그의 제자들에게 손수 술을 따라주며 노고를 격려했다. 왜인들은 그녀의 치하에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맸다. 악사들이 들더니 왜색풍의 노래를 연주했다. 기모노를 입고 눈웃음을 살살 쳐대는 팔수부인의 태도에 왜인 무사들은 묘한 분위기에 취하고 독주에 취해 여기가 왜국인지 백제의 궁성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케다 한 사람만은 정신이 온전하여 주연을 벌이는 내내 주변을 살피는 등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가 팔수부인에게 술을 따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타히메미코사마, 저희도 밖에서 백제 조정이 돌아가는 사정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구이신 왕과 황녀님이 목만치에게 권한을 위임하여 그가 국사(國師)로 있지만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됩니다. 그자는 야심이 큰 자입니다. 소신의 느낌에는 황녀님께서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그자는 임나에서도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고, 우리 왜국과 무역하는 중소 상인들의 등골을 빼먹으며 치부하였습니다. 요즘도 그의 부하들이 비리를 저질러 임나 백성들뿐만 아니라, 국제무역을 하는 상인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자의 흉중에 뭐가 들어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소신보다 백제 조정의 사정을 황녀님께서 훤히 알고 계시겠지만, 해씨들을 제압하는 방법은 진씨들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봅니다. 진씨들은 아신왕 이후로 백제 조정에서 축출되었습니다. 그들은 한때 백제국을 쥐고 흔들었던 집단입니다. 권력의 맛을 아는 자는 쉽게 그 맛을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황녀님께서 진가들과 은밀하게 교통하면서 해씨들을 제압하시고 여차하면 목만치도 제거해야 합니다. 백제 조정에서는 누구도 믿으시면 안 됩니다. 다만, 그들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하여 정치 판도를 잘 조정하는 것이 뛰어난 치세술(治世術)이라 사료됩니다.”

 

다케다는 팔수부인에게 손짓과 발짓을 해가며 자기 뜻을 전하느라 열을 올렸다. 그의 뜻은 곧 왜왕 인교의 심중이기도 했다.

 

“다케다상은 만 리 밖에서 백제의 사정을 잘도 파악하고 계시군요. 걱정하지 마시어요. 나는 내 아들 구이신만 믿습니다. 목만치는 나의 소모품에 불과합니다. 구이신이 성장하고 국사를 직접 챙길 시점이 되면 그자를 가차 없이 쳐낼 것입니다. 지금은 나에게 그가 필요합니다. 그자는 양면(兩面)에서 아주 쓸모가 많은 사내랍니다. 나랏일도 잘하지만, 그 일도 상당히 뛰어나답니다.”

 

“네에?”

다케다가 팔수의 말에 당황하자 그녀는 배꼽을 쥐고 깔깔거렸다.

 

‘양면에서 쓸모가 있다? 그렇다면 황녀께서 목만치와 아직도 지저분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인가? 하기사, 남편인 전지왕이 죽었으니 무주공산의 처지가 되었지. 그자는 재주도 좋구나. 처녀였던 황녀를 건드려 임신까지 시킨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주 대놓고 불륜을 맺고 있구나. 한창 사내를 밝힐 나이에 긴긴밤을 혼자 보내는 것도 뜨거운 여인에게는 고통이겠지.’

 

왜인들과 팔수부인은 술에 취하자 자세가 흐트러지며 상·하의 분간을 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팔수부인은 기모노가 거추장스럽다며 훌훌 벗어던지고 속옷 차림 상태가 되어있었다. 왜인 사내들도 웃통을 벗고 *훈도시(褌)만 걸친 상태였다. 그들은 팔수부인의 요염한 자태에 넋이 반쯤 나가 침을 흘렸다.

 

그러나 상대는 왜국의 황녀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한 사내가 일어나 춤을 추자 나머지 사내들도 일어나 손뼉을 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이 몸을 흔들 때마다 양물(陽物)이 불쑥 튀어나올까 봐 시중을 들던 나인들은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가슴을 졸였다.

 

팔수부인도 신이 났는지 일어나 사내들과 어울려 몸을 흔들어 댔다. 그녀가 몸을 흔들 때마다 풍만한 젖가슴이 흔들리며 사내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녀가 빙빙 돌며 춤을 추자 사내들도 그녀의 뒤를 따르며 춤을 추어댔다. 뒤에 있는 사내들은 그녀의 뇌쇄적인 뒤태에 그만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주연장이 된 팔수부인의 처소에는 팔수부인과 왜인 그리고 시중을 드는 나인(奈人)과 악사들뿐이었다. 오후에 시작된 주연이 늦은 저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팔수부인의 처소에서 흘러나오는 왜인들의 웃음소리와 풍악 소리가 담장을 넘어 궁성으로 퍼져나갔다. 그 바람에 궁성의 관예(官隷)들과 궁인들이 팔수부인의 처소로 모여들어 문틈으로 해괴한 놀음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 훈도시 – 주로 왜인 사내들이 입는 속옷으로 앞부분은 성기만 겨우 가리고 뒤에는 끈으로 되어있다.

 

“어머나, 어머나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다 있을꼬?”

 

“태후께서 거의 알몸 상태로 사내들에게 둘러싸여 요염하게 몸을 흔들어 대고 있네. 태후께서 야하게 노신다는 말은 들었어도 직접 목격하는 건 처음이다. 정말로 대단하신 몸매를 가지고 계시다. 흐벅진 육덕에 사내들이 모두 넘어가게 생겼다. 젊은 왜인들이 태후의 풍만한 엉덩이며 젖가슴을 훔쳐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참으로 기이한 족속들이네.”

다른 처소의 궁인이 기가 막힌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댔다.

 

“지난번 새벽에는 태후가 목만치 국사 어른하고 운우의 정을 나누는 것을 훔쳐본 적이 있는데,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돌려대는 모습을 보고 기가 막혔단다. *거각준좌(擧脚蹲坐) 자세로 왼쪽 오른쪽 다리를 번갈아들며 몸을 놀려대는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수춘성(水湷聲)이 궁궐 담장을 넘어 저자까지 퍼졌다는 말도 있어. 아마도 그날 밤 태후의 홍목단(紅牧丹)에 불이 났을 거야.”

이번에는 팔수부인 처소에서 오랫동안 있던 나인이 입을 놀렸다.

 

“태후의 감탕질은 이미 궁궐에 소문이 자자해. 전지어라하께서 돌아가시던 날 밤에도 목만치와 알몸으로 뒹굴었다고. 목만치 어른의 그것이 어마어마하고 어찌나 절륜하던지 그 일을 치를 때마다 태후는 하룻밤에 열두 번 정도는 까무러친대.”

 

* 거각준좌 - 다리를 들고 걸터 앉음

 

젊은 나인들은 팔수부인에 대하여 아는 바를 귓속말로 소곤거리며 배꼽을 잡기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팔수부인과 목만치가 매일 동침하는 것은 아니었다. 팔수부인이 꽃물이 끊어지는 날에 맞춰 보통 달포에 서너 차례 합방하는데, 그날은 나인들이나 궁인들이 몰래 찾아와 두 사람의 사랑놀음을 훔쳐보곤 했다. 목만치가 팔수부인의 처소에서 밤을 보내는 날이 잦아지면서 궁인들의 관심은 온통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야릇한 장면에 쏠려있었다.

 

“비유공(毗有公), 이제는 공의 존재감을 세상 사람들에게 확실히 알려야 할 때입니다. 구이신어라하는 백제를 제대로 이끌어 가기에는 너무 유약합니다. 그는 팔수와 목만치의 그림자에 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스물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대리청정하고 있습니다. 조정 내의 인사는 온통 목만치와 팔수에게 아부하는 자들로 가득합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우리 백제가 왜의 분국(分國)이 되는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맞습니다. 구이신을 대신할 분은 오로지 비유공뿐입니다. 팔수부인이나 구이신어라하가 목만치의 말만 듣고 있습니다. 목만치는 백제의 왕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대로 두면 나라는 망조가 들게 틀림없습니다.”

 

“목만치는 수시로 왜국을 드나들면서 저급한 왜국문물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정의 제도를 왜국의 제도에 맞추려 하고 있습니다. 조속히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팔수는 목만치의 어녀술(御女術)에 길들어 있어 그자 말이라면 무엇이든 무조건 따른다고 합니다. 그는 임나에 있을 때부터 색마(色魔)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부여비유는 전지왕의 별자(別子)였다. 전지왕이 왜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그의 곁에는 팔수부인 한 명이었으나, 곧 해씨 집안의 여인을 후궁으로 들였다. 전지왕이 즉위하는데, 해씨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 그 후궁의 몸에서 비유공이 태어난 것이다.

 

비유공은 키가 칠 척에 선풍도골로 무척 칠칠한 젊은이로 성장해있었다. 그는 여러 스승 밑에서 사서삼경뿐만 아니라, 점성학, 도학, 병법,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여 학식이 무척 풍부하였고, 틈틈이 무예를 익혀 명실공히 문무를 겸한 인재였다.

 

특히, 언변은 청산유수 같아서 자기 뜻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의 말에 감화되기 일쑤였다. 그에게는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 시시풍덩한 구이신 왕이 조정 중신들과 한성의 백성들에게 신실하지 못한 언행을 보일 때마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비유공을 입에 올리곤 했다. 비유공의 추종자들이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에 한성의 모처(某處)에서 비밀 회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형님을 믿습니다. 곧 친정(親政)할 것으로 봅니다. 경들이 나에게 하는 조언(助言)은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아직은 우리가 움직이거나 경거망동하면 안 됩니다. 목만치는 좀 더 두고 보겠습니다. 내일부터 그자에게 사람을 붙여 그의 일거수일투족 예가 주시하게 하겠습니다. 그가 왜국의 제도를 우리 백제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단호히 차단해야 합니다.”

 

비유공은 형 구이신 왕에게 험담하거나 비난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가 그러한 말을 함부로 할 경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권좌에 욕심을 내고 있다고 오해를 살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목만치와 팔수부인이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가는 꼴을 그도 더는 두고만 볼 수 없었다.

 

“비유공, 지난번에 지시한 대로 우리 해씨 가문뿐만 아니라 왕실 인사들과 비유공을 따르는 자들로 편성한 사병이 이천 명이 조금 넘습니다. 단체명은 백제를 구한다는 의미로 ‘백구단(百救團)’이라 명명했습니다. 백구단의 총수는 소신이고, 그 아래 열 명의 대장들이 포진되어 소신의 명을 받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단원들은 모두 한성에 거주하는 관계로 평상시에는 생업에 관여하다가 내가 가끔 비상 연락망을 통해 소집 점검을 할 때면 일각(一刻) 이내로 모여듭니다. 모두가 검술과 궁술에 상당한 실력을 소유한 청년들입니다.

또한, 최근 들어 진씨 일족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사람을 풀어 그들의 행동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한성에 사는 진씨들이 소유한 가병(家兵)의 규모는 대략 삼백 명 정도입니다. 가병은 가노(家奴)와 그들의 땅을 부쳐 먹고 사는 하호(下戶)들이 대부분으로 병장기를 다루는 기술은 형편없습니다. 하지만 진씨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으므로 소신이 각 지역 현령들에게 전통을 보내 진씨들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이상이 있을 때는 즉시 보고하라고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비유공과 해씨들은 시국이 점차 혼란스럽게 변질되자 백제 왕실을 지키고 팔수부인과 목만치를 지지하는 세력을 견제할 목적으로 사병을 모아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비밀결사인 백구단의 총수는 병관좌평 해구가 맡고 중요직책은 왕실의 부여씨와 해씨가 분담하도록 했다. 물론 백구단의 주인은 비유공이었다. 비밀결사인 백구단의 존재는 외부에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단원들은 점조직으로 되어있어 조직원 간에도 소통할 수 없었다.

 

“소서노 여제(女帝)와 온조대왕께서 건국하신 백제를 왜색화(倭色化)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총수는 첫 조치로 목만치의 행동을 제어하는 방편으로 벽서를 작성하여 한성 주요 장소에 게첩(揭貼)하세요. 목만치와 팔수부인의 반응을 보면서 후속 조치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단호하고 강력한 수단이 필요할 경우 나는 주저 없이 물리력을 사용할 것입니다.”

 

비유공의 단호하고도 곡진한 태도에 사람들은 한마디의 이의도 없었다. 비유공과 그의 추종자들은 이미 팔수부인과 목만치의 전횡을 용서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공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병관좌평 해구(解丘)가 비유공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비유공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그는 이미 백제의 왕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들은 목만치의 전횡이 더욱 극성스러워 조정과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기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밀 회동은 극도의 보안이 필요하여 모임이 끝나면 모두 바람처럼 흩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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