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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비(1)

* 창작공간/중편 - 부의 비

by 여강 최재효 2019. 7. 3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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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父)의 비(1)

 

 

 

 

                                                                                                                                                        - 여강 최재효

 

 

 

 

                                                                                1

 


 고려왕 왕거(王昛)가 음력 7월에 선어(仙馭)하였다. 그는 고려왕조

최초로 원나라 공주를 비(妃)로 맞이한 왕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들 왕장(王璋)과 겨끔내기로 고려의 왕위를 주고받기도 했다.

 

 고려가 원나라의 제후국으로 전락한 뒤로부터 고려 왕위 임면권(任

免權)은 원나라 황제가 쥐고 있었다. 일반 백성들의 눈에는 부자가 구

순하게 옥좌(玉座)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고 있을지 몰라도 내면에는

왕위를 두고 빙충맞게도 부자지간에 피를 튀기는 혈투가 있었다. 그

는 불행하게도 두 번째로 고려의 왕위에 있다 붕어한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왕위는 10년 전 고려의 왕으로 있다가 아들 왕장에게

왕위를 양위하기 이전까지 그는 24년간 고려의 25번째 지존으로 있

었다. 그에게는 두 명의 왕비와 두 명의 후궁이 있었다. 제1비는 원

나라 초대 황제 쿠빌라이(忽必烈)의 딸 쿠틀룩켈미쉬(忽都魯揭里迷

失)였고, 제2비는 고려 왕실 종친의 딸 정화원비(貞和院妃) 왕씨(王

氏)였다.

 

 또한, 후궁으로 전라도 태인(泰仁) 출신의 시무비(柴無比)와 최씨

무신정권 마지막 주자인 최의(崔竩)의 여종이었던 반주(盤珠)가 있

었는데 왕은 나이가 들면서 유독 시무비의 치마폭에 싸여 살다시피

하였다.


 쿠틀룩켈미쉬가 원인 미상의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갑자기 죽자 원

나라 수도인 연경(燕京)에 머물고 있던 고려의 세자(世子) 왕장이 개

경으로 달려왔다. 항간에는 왕비가 독살당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세자는 왕과 쿠틀룩켈미쉬 사이에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연경에 머물

고 있던 탓에 고려의 언어보다 몽고어를 더 유창하게 구사하였다. 그

는 늘 몽고풍의 의복을 착용하였고 몽고 음식을 즐겼다. 그는 생모 쿠

틀룩켈미쉬를 사망케 한 음모세력으로 친원파와 갈등을 빚던 친왕파

(親王派)의 중심인물 시무비를 지목하였다.

 

 왕장은 개경에 오자마자 생모의 사속인(私屬人)이었던 몽고 출신 겁

령구(怯怜口)와 친원파 중신들에게 부왕의 애비(愛妃) 시무비의 뒷조

사를 하여 생모 독살 음모를 버르집게 하였다.

 

 증거가 없이 시간만 흐르자 다급해진 왕장은 불충분한 증거와 궤변

으로 부왕의 재가(裁可)도 없이 함부로 시무비를 비롯해 친왕파 인물

로 함께 지목된 도성기, 김근, 최세연, 전숙, 방종저 등을 참수하였고

동조자로 몰린 수백 명을 원지에 부처 하였다.

 

 하지만 늙은 왕은 원나라 황제의 후광을 믿고 날뛰는 세자를 저지할

수 없었다. 왕비의 장례가 끝나고 원나라 황제는 죽은 고려 왕비에게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에 추증하였다.


 몽골인이나 다름없는 아들에 의해 총비(寵妃) 시무비를 잃은 왕은

모든 정사를 내려놓고 죽은 시무비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왕은 밤낮으로 개경 저잣거리의 유명한 기녀 적선래(謫仙來)

등을 궁으로 불러 음황한 일을 벌이며 무의미한 일상을 보냈다.

 

 실정이 이어지자 결국 원나라의 압력에 굴복하여 고려왕은 세자 왕

장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태상왕(太上王)으로 물러나 앉았다. 아들이

시무비를 죽인 일로 부자지간은 늘 냉랭한 긴장감이 흘렀다.


 “태상왕 전하, 이제 노여움을 푸시고 전하의 문후도 받으시며 부자지

간을 돈독히 하십시오. 백성들 보기 민망하나이다. 또한, 태상왕 전하

께서 곁에 시무비 마마가 없으시니 늘 허수해 하시는 것을 아시고 전

하께서 김취려(金就礪)의 증손녀를 새로 간택하여 들이고자 한답니다.”
 측근인 왕유소(王維紹)가 태상왕에게 아뢰었다.


 “흠-, 김취려의 손녀라면 위위윤(尉衛尹)을 하던 김양감(金良鑑)의

딸로 절세가인으로 소문이 자자한 여인이 아니오?”


 주색을 밝히는 태상왕은 자신의 적적함을 달래주기 위하여 아들 왕

장이 미인을 간택했다는 말에 입이 금방 함지박만 해지면서 응어리가

어느 정도 섟 삭은 듯 보였다. 왕장은 가인(佳人)을 부왕에게 바쳐 부

자지간의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려고 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어떤 부류의 여인이라도 절대 마다하지 않는 태상

왕이었다. 이미 보령 예순을 넘겼음에도 아들이 절세가인을 후비로 들

여 준다는 말에 벌써 태상왕의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하였다. 태상왕

은 후궁을 들이는데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김씨 녀를 곧바로 궁궐

로 들도록 하였다. 태상왕의 요구 사항이 곧바로 대전에 전해졌다.

 


 “허-, 노인네가 아직도 여인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왕은 부왕의 여성 편력을 잘 알고 있었다. 왕은 즉시 내시부에 일러

밤 안으로 김양감의 딸을 불러들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문을 열어라. 대궐에서 나왔다.”


 그녀는 지아비가 죽자 개경에 있는 친정 오라비 김문연(金文衍)의

집에 와 있었다. 김문연은 과부가 된 여동생 김씨가 측은하기도 하

고 미인이라고 소문난 탓에 불량배들에게 능욕이라도 당할까 걱정

되어 자신의 집에 기거하게 하였다.

 

즉시 입궐하라는 명을 받자 오라비 새룽이 김문연은 속으로 쾌재

를 불렀다. 그는 예전부터 개경 저잣거리를 다니며 자신의 누이동

생이 고려에서 제일가는 미인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다.

 

 그는 누이동생이 과부가 되자 여동생을 왕실 사람의 측실로 앉히

고 싶어 대전 내관을 잘 아는 인사와 줄을 대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

다. 그의 정성 덕분인지 김씨 녀에 대한 소문이 왕의 귀에까지 들어

가게 되었고 왕은 은밀히 그녀를 불렀다. 김씨 녀가 왕의 부름을

받자 김문연의 집은 부산해졌다. 서천에 개밥 바라기가 외롭게 떠서

반짝거렸다.


 “아가씨, 들으셨죠? 왕실에서 아가씨를 오늘 중으로 궁에 들이라는

분부가 떨어졌답니다. 지금 사랑채에 궁에서 나온 낭장(郎將)이 있어

요. 빨리 칠보단장을 하셔야 해요. 이제 아가씨 팔자가 필 모양입니다.

축하해요. 궁에 들어가시면 저를 잊지 마셔요.”


 돈바르지 못하고 달랑쇠 같은 김문연의 처는 속종을 털어놓고 몸이

달아 아랫것들을 재우치며 속히 입궐할 채비를 하라고 나부댔다. 시누

이가 친정에 와 있는 것이 늘 불만이었던 그녀는 춤을 추었다.

 

 지아비가 죽어 친정으로 돌아온 까다로운 시누이에게 하루 세 끼 식

사나 옷을 챙겨주는 것이 그녀에게는 꽤 버거웠다.


 “언니, 이 야심한 시각에 궁궐에서 누가 나를 찾는다고 그래요? 대전

군관이 찾나요? 아니면 술 취한 대호장이 찾나요? 그렇다고 나라님이

과부인 나를 찾을 리가 없잖아요. 오빠에게 일러 내일 간다고 하면 안

돼요? 낮에 벗들과 어울려 술을 좀 마시고 놀았더니 머리가 아파 죽겠

어요. 난 좀 쉬고 싶다고요. 아휴, 예쁜 것도 탈이야.”
 김씨 녀는 툴툴거리며 베개를 베고 벌렁 누웠다.


 “아가씨, 나라님이 아가씨를 찾는대요?”
 “네에? 그게 정말이어요?”
 김씨 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맞다. 전하께서 너를 대궐로 들이라는 어명이다. 드디어 우리 언양(彦

陽) 김가 집안에 서기(瑞氣)가 비추는구나. 잘난 조상님들 영욕의 부침

(浮沈)으로 콩케팥케된 집안을 네가 일으켜 세워야 한다.

 

 예쁜 동생아, 어서 준비해라. 이 오라비가 너를 대궐까지 호위할 것이

다. 지금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다. 빨리 가야 한다. 왕씨 성을 가진

놈들은 성질이 급하고 지랄 같아서 언제 마음이 변할지 모른단다.”


 김문연이 불콰한 얼굴로 누이동생에게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그는

매일 같이 술로 살아가는 한심한 인생이었지만 동기간 의초는 매우 돈

독했다. 고려의 권문세가인 최씨 집안과 사돈을 맺으면 그럴듯한 벼

슬이라도 한자리 얻을 요량이었지만 매제 최문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그의 의도는 수포가 되고 말았다.

 

 김씨 녀가 탄 화려한 마차가 만월대를 향해 먼지를 날리며 달렸다.

마차를 호위하는 기마병들이 있었지만, 김문연은 그들을 따라 대궐까

지 따라갔다. 김씨 녀는 대궐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대궐이 무

척 낯설었다.

 

 그녀는 궁인들을 따라 왕이 머무는 대전으로 들었다. 젊은 왕도 김씨

녀가 고려 최고의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기대하는 바가 컸다. 부왕

에게 직접 소개하기보다 왕이 먼저 김씨 녀를 간품하고 싶었다.


 “네가 김양감의 딸이렷다. 내가 누구인지 잘 알렸다.”
 은은한 황촛불이 대전을 밝히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사이가 약간 떨

어져 있는 탓에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전하를 뵙습니다. 소녀, 김양감의 여식이옵니다.”
 김씨 녀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왕을 바라보았다. 은은한 불빛에 두 사

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불꽃이 튀었다.


 “과연 소문대로 네가 여낙낙해 보이면서도 천하절색이로구나. 혼인

했다고 하니 이미 사내를 잘 알렸다. 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너와 네 집안의 흥망성쇠가 달렸다. 과인의 뜻을 잘 감득하기 바란다.”


 왕이 그녀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 김씨 녀의 붉은 입술이 유난

히 반짝거렸다. 왕은 그녀의 붉은 입술을 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

았다. 


 ‘전하는 헌거롭고 야생마같이 생겼다. 밤새 초원을 달리거나 비단 금

침 위를 누벼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을 것 같구나. 여색을 무척이나 밝

히는 인상이야. 내가 드디어 임자를 만났나 보다.’
 김씨 녀도 용안(龍顔)을 자세히 바라보고 속으로 마뜩해 했다. 


 “전하, 성심성의를 다해 전하를 모시겠습니다.”
 김씨 녀는 일어나 왕에게 큰절을 올렸다.


 ‘아깝도다. 개경에 이렇게 뛰어난 미색이 있었다니. 부왕에게 한 약속

을 파기하고 내가 이 여인을 취해야겠다. 부왕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

밤마다 주색질에 양기(陽氣)도 모두 고갈되었다고 들었다.

 

 한창나이의 여인을 보내면 부왕은 그저 침만 흘리고 바라만 볼 것

이야. 억지로 용을 쓰다 무슨 탈이라도 난다면 나는 불효를 저질렀다

고 중신들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야.

 

 늙은 부왕보다 젊은 내가 이 엉거능측한 여인에게는 어울려. 부왕과

한 약속은 없었던 거로 해야겠어. 젊은 여인에게는 과인처럼 팽팽한

육신이 어울려. 그럼.’


 왕은 김씨 녀의 얼굴을 살피고 그녀의 가슴과 허리 그리고 둔부를

더듬다가 신음을 토해냈다. 실팍한 육덕의 촉감이 왕의 촉수에 닿아

전해질 때마다 왕은 소름이 돋았다. 짜릿하고 달뜬 흥분이 왕의 오

감을 들쑤셔놓았다.

 

 왕은 이미 원나라 출신 공주 보탑실련(寶塔實憐)과 원나라 여인 의

비(懿妃), 고려 출신으로는 정비(靜妃)와 조비(趙妃), 순화원비(順和

院妃) 등 후비(后妃)가 있었지만 모두 김씨 녀의 미모를 따르지 못

했다.


 “오늘 밤 과인과 운우지정을 나눠야 하느니. 가능하렷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김씨 녀는 다시 한번 왕에게 절을 하며 감격해 하였고 도저한 왕은

그녀의 자색과 행동에 크게 마뜩해 했다. 김씨 녀도 왕이 상당한 호

색한(好色漢)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터라 내심 기대와 걱정이 교차

하였다.

 

 김씨 녀는 최문에게 시집가 서너 해 살면서 제대로 된 부부간의 정

을 나눠보지 못했다. 지아비는 주색(酒色)보다 서책을 가까이하는

인사였다. 그는 부인이 뛰어난 미색의 소유자였지만 오감(五感)을

탐하고 시류에 아부하는 인사가 아닌 점잖은 벼슬아치였다.


 ‘여자는 남자의 속마음을 훔치면 되는 거야. 얼굴만 예쁘다고 남자

들이 달려드는 게 아니라, 묘술(妙術)을 터득해야 하느니. 이 기술만

금침(衾枕) 위에서 잘만 구사하면 나라님 마음도 가질 수 있느니.’


 김씨 녀는 최문과 혼인하기 전에 생모와 유모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미태술(美態術)과 규중의 방술(房術)을 익혔지만 한 번도 지아비와

남흔여열(男欣女悅)한 방사를 치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지아비가 비명횡사하고 오라비 김문연의 집에 있으면서도

벗들과 어울려 자주 외출을 하면서 자유로운 활동에 구애받는 것이

없었다.

 

 밤마다 살아나는 오감의 진득한 욕망의 화신에 몸 둘 바를 모르고

방황하며, 개경의 돈바르지 못한 권문의 자제들이나 돈푼깨나 있는

덩둘한 부상(富商)의 자제들과 어울려 술로 무의미한 세월을 보내

고 있던 차였다. 유유상종은 만고의 법칙이 틀림없었다. 


 “전하, 오늘 밤은 정비 마마님 처소로 드셔야 하옵니다.”
 내관의 말에 습습한 왕은 주저함도 없이 하명하였다.


 “정비에게 과인이 오늘 밤에 몸이 좋지 않아 다음에 든다고 일

러라. 그리고 간단한 다과상을 올리고 대전에 금침을 준비하라. 과

인이 오늘은 이곳에서 밤을 지새워야겠다.”


 왕장도 원나라 황제를 숙위하기 위하여 어릴 때부터 연경에 있었

고 그곳에서 일찍 여인을 알았기 때문에 여인 후리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간단한 합환주를 나눠 마신 두 사람은 곧바로 베게 하나를

베고 비단 금침을 덮었다.

 

 두 사람이 소곤대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진득하면서도 길고 긴 탄

식이 이어졌다. 왕과 김씨 녀의 합방은 이미 100년 전부터 예정되

어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내관들과 지밀전 나인들은 왕의

임시 침전이 마련된 장소를 몰래 엿보기 위해 하나둘 몰려들었다.

 

 나인들은 왕이 정비(正妃)를 맞이하거나 새로 후궁을 들이면 서로

지밀전에서 일어나는 도화경(桃花景)을 서로 훔쳐보려고 혈안이었다.

그녀들은 왕과 왕비들 그리고 후궁들의 밀실에서 벌어지는 개인적

취향이나 특징을 잘 알고 있었다. 상궁들도 나인들에게 왕이나 왕의

여인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물어볼 정도였다.


 “박 나인, 이제 나 좀 봅시다. 뭘 그렇게 오래 훔쳐보는 거요?”


 “햐-, 저 여인 몸짓 하나하나가 소녀경에 나오는 그 몸짓이야. 아이

고, 저 몸놀림은 정비 마마님 특기인 어접린(魚接鱗) 자세가 아닌가.

오라, 다시 토연호(兎吮毫)를 구사하네. 저 자세는 순화원비 마마 특

기인데. 기가 막혀라.

 

 사가에서 갓 들어온 여인네가 어찌 저리도 대담하게 방술을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놀랍다. 우리 전하는 밤마다 쌍코피 터지게 생겼다.

어의들은 전하께 보약지어 바치느라 죽어나게 생겼구나.”
  나이 많은 나인은 침전을 훔쳐보면서 쉴 새 없이 입을 놀려댔다.


 “언니, 정비 마마님 특기는 어접린이 아니고 호보(虎步)랍니다.”
 “금이 언니, 이제 자리 좀 비켜줘요. 전하가 어떻게 여인을 후리는지

나도 궁금하다고요. 나도 좀 봐요.”
 왕의 임시 침전에서 나인들이 몰려들자 한 내관이 다가왔다.


 “여봐라. 경을 치기 전에 어서 제자리로 돌아가거라. 감히 전하께서

치르는 등하색(燈下色)을 엿보다니.” 


 나인들의 수다에 밖에서 경계를 보고 있던 내관들이 나인들을 나무라

며 쫓아냈다. 나인들이 물러가자 내관들이 침전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요지경(瑤池鏡)을 훔쳐보느라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최내관, 그만 좀 보구려. 왕이라고 뭘 별수 있소. 종놈이나 상민 그리

고 왕후장상도 그 짓거리는 다 똑같이 한다고.”


 “햐-, 고년 허리 돌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저러니 문약에 빠진 서

방을 잡아먹었겠지. 아이고, 환장하겠네. 저년 샅하고 삼사미가 오늘 밤

불이 나겠어. 음황한 사내를 만났으니 거기가 무사할 리가 없을 거야.”


 내관들도 침전 안을 은근히 엿보며 흥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늘 겪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양물이 거세된 반쪽이었다.


 “전하, 소녀는 이제 전하의 여인입니다. 소녀를 오래오래 아껴주셔요.”
 “네가 보물덩어리구나. 너처럼 착착 안겨 오는 여인은 처음이구나.”


 “전하, 오늘 밤은 소녀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밤이 될 겁니다. 날이 밝

을 때까지 많이 은애해주셔요.”


 왕은 흐벅진 김씨 녀의 뒤태를 간질이며 밭은 숨을 토해냈다. 한바탕

격랑이 몰아치고 잠잠해졌다. 잠시 고요가 땀으로 촉촉이 젖은 두 육신을

감쌌다. 왕과 김씨 녀가 운우(雲雨)의 아쉬움을 삭히고 있을 무렵이었다.

 

 태상왕전에서 사람이 왔다며 밖이 시끄러웠다. 태상왕은 아들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으며 김씨 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밤이 이슥

토록 대전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자 사람을 보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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