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고(考)
- 여강 최재효
당신께서 본래의 길로 떠나신 지 벌써 오년이 됐어요
아버지께 사주단자 새로 들이던 날 자식들 통곡했고요
탁배기 한 사발 김치 한 조각, 행복해 하시던 농삿꾼
어린 아들은 김치 반찬 도시락을 무척 무서워했어요
그 아들이 가정을 꾸리고 집안에 치즈 냄새만 났지요
아이들에게 김치의 추억담을 차마 말 할 수 없었어요
식인종은 인육에서 단백질을 섭취해야 살 수 있다죠
예의지국 백성들, 하루라도 김치를 멀리 할 수 있나요
이제 크로마뇽인들 김치 맛에 반해 해동에 온답니다
서역에 가서 달포 쯤 치즈만 먹었더니 병을 얻었어요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아들은 도시락을 떠올렸지요
부정할 수 없는 혈통, 농군 아들, 이녁 백의민족 맞죠
지난 설날 차례상, 진설(陳設)하며 김치전을 올렸어요
두 분 계신 유실(幽室) 앞에 술과 그것을 같이 놨어요
음복하면서 손자들 먼 하늘 보고 자식은 전을 들었죠
봄부터 가을까지 아버지 어깨에 태산이 앉아있었어요
미련한 불초는 아버지 탁주에 어머니 김치를 맛봅니다
파마머리 손자들, 위스키와 오드볼에 빠져 있답니다
- 2019.2.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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