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
- 여강 최재효
여태껏 한 번도 뜻대로 된 일이 없었노라
천지 사람들 모두 화수분을 지녔다는데
이녁처럼 빈손 가진 자가 또 어디 있을까
세월이 풍부했던 시절 술에 취해 잠들고
살쩍 빛이 바랜 뒤 시름에 절어 잠드는데
비로소 안심하니 무모한 잠꼬대 사라졌네
그때는 개밥바라기와 벗 삼아 청담 나누고
잔월(殘月)에게 부질없이 삿대질 해댔지
신명(神明)이 크게 노한 것을 알지 못하고
온 몸에서 잡털이 듬성듬성 빠져버리니
세상 소리에 귀머거리 되어 두 눈을 감고
철옹성 밖에도 호시(虎視)를 박아 놓았네
벗에게 충언 하나니, 먹물은 무익한지라
서둘러 버리고 몸을 보전하는 게 이롭네
곁에 유령(劉伶)이 있다면 말해 무엇하리
예전에 왕후(王侯) 씨앗은 따로 없으나
이즈음 장상(將相)의 혈통은 보전되나니
재주가 하해 같으면 헛되이 몸만 축나네
- 2019. 1. 19. [02:30]
[주] 유령 - 중국 위, 진 시대 죽림칠현 중 한 사람으로 그의 인생은
'술에 젖은 것'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항상 술을
마신뒤에 수레를 타고 다녔는데 시종에게 "내가 죽으면
그 자리에 묻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