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그네(1)
- 여강 최재효
날카로운 햇살 속 허깨비와 싸우네
묵천(墨天) 아래 발가벗은 사내
태산 같은 이야기 주머니 어깨에 메고 휘청이는데
시선 주는 사람 없어도 흥이 절로 나네
찰라 허상(虛像)이 아닌 사람 누구일까
홍화(紅花)는 피었다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앙상한 가지에 통곡만 걸렸는데
폐가(廢家)에 달빛 시들고 별빛만 무성하여라
눈 감고 먼 뒤안길 그려보면
파리한 행화(杏花) 한 송이 가물거리고
눈 뜨고 아지랑이 같은 전도(前途) 바라보면
저기 저 안개 속 붉은 입술 해어화 한 송이 서있네
단심(丹心) 지우고 행성처럼 돌고 또 도는데
이제는 기쁜 마음도 내려야 하겠지
정처(定處) 잃고 평생 타관을 떠도는 외톨이
거친 북풍이 문을 두드리면 행여 임인 듯 달려가네
- 창작일 : 2018.12.11.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