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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나라 바닷가에(소서노 어하라 미추홀 도래기) - (1)

* 창작공간/단편 - 남쪽나라 바닷가에

by 여강 최재효 2016. 11. 25. 00:46

본문














                                         

                                      














                     남쪽 하늘 바닷가에(1)

                          소서노어하라 미추홀 도래기




                                                                                                                                                            - 여강 최재효




                                                            1




 “어머니,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습니다. 아버님의 의중(意中)을 정확히 아셨잖아요.

어머님께서 졸본(卒本)에 미련을 두면 둘수록 저희 형제뿐만 아니라 어머님을 믿고 따르

신하들은 커다란 혼란에 빠질 뿐입니다. 어머니, 아버님은 냉혈한(冷血漢)입니다.

제발, 제발 정신 차리시옵소서.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신천지를 찾아 떠나세

요. 저희 두 형제가 어머님을 받들겠습니다.”


 큰아들 비류(沸流)의 말에 소서노(召西弩) 태황비(太皇妃)는 긴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저녁도 거른 채 황비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창문을 열어놓고 서너 시진(時辰)이 넘도록

서서 남녘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비(侍婢)들은 숨소리를 죽이며 소황후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어머니, 비류 형님 말씀이 정말로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씨(禮氏) 부인과 유리(琉璃)

가 아버님을 찾아온 이상 우리 형제는 이제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이곳에 있다

가는 언제 어느 때 유리를 추종하는 자들의 창칼에 우리형제가 어육(魚肉)이 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두렵습니다. 어머니께서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유리와 맞서 싸우라고

하면 싸우고, 이곳 졸본성을 뜨라고 하시면 미련 없이 떠나겠습니다.”


 소황후의 둘째아들 온조(瑥祚)는 형 비류에 비하여 다소 성격이 급한 편이었다. 8척 장신

(長身)의 온조는 불의(不義)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아아, 여보. 우태(優台) 장군님, 이제, 이제 저는 어찌해야 하나요? 당신이 전쟁터에서 한

(漢)나라 병사들의 기습을 받아 전사한 뒤로 당신이 저에게 남겨준 저 두 아이들을 남부끄

럽지 않게 키웠습니다. 단지, 제가 당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것은 동부여(東夫餘)에서

도망쳐 온 한 남자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아내로서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허망한

사랑에 눈먼 이유는 뿔뿔이 흩어져 한나라의 노예로 살아가는 북삼한(北三韓)의 불쌍한 백

들을 한데 모아 나라를 세워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였습니다.

 
 저 두 아이들 말대로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된 듯합니다. 이대로 졸본성에 주저

하고 있다가 유리와 그의 추종 세력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 같습니다. 친정 아버님과 소첩

(小妾)은 저 두 아이들의 장래를 위하여 심신(心身)을 바쳤고 재물을 모두 털어 추모왕(鄒

牟王)께서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적극 협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대가가 너무나 비참합니다. 당신의 혈손(血孫)인 비류가 추모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 제국을 운영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복병(伏兵)을 만났답니다. 지금의 지아비

추모왕이 원망스럽고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지만 차마 두 아이들의 장래를 위하여

그리할 수도 없는 저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답니다. 이제 이 어리석은 소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흐흐, 흐흐흐......’


 서기전(西紀前) 42년 이른 봄, 북쪽 대륙에서 불어오는 때늦은 눈보라가 졸본성을 휘감으

지나가고 있었다. 비류와 온조는 어머니 소서노 황후에게 자신들의 뜻을 말하였지만 묵묵

부답인 어머니를 채근하고 싶지 않았다. 도성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었다. 소서노

황후는 믿었던 지아비 추모왕(=주몽)이 얼마 전에 한 말을 곱씹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하지 못했다.


 “소후(召后) 나의 뜻을 분명히 해야겠소. 유리는 나와 예씨의 핏줄을 이어받은 나의 적통

(嫡統)이오. 비록 지난 세월 동안 그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어 내가 입을 다물

고 지냈지만 이제 유리가 나를 찾아온 이상 나는 장차 고구려 태황의 위(位)를 유리에게 물

줄 계획이랍니다. 나의 뜻에 반하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폐하, 그, 그게 무슨 말씀이온지? 소첩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사옵니다. 다시 한번 말씀

해주세요.”
 추모왕의 말에 정신이 반쯤 나간 소후는 추모왕의 말이 얼른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후, 나의 황위(皇位)를 나의 적장자(嫡長子)인 유리에게 물려줄 계획이오. 그러니 소후는

나의 뜻에 따라주시오.”
 “뭐라고요? 유, 유리라고요?”



 “그렇소. 어험-”
 소서노 황후를 바라보는 추모왕의 한쪽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경련이 일었다. 낮에 다른

궁들 처소에서 마신 술이 오르는지 추모왕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폐하, 어떻게 소첩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폐하와 소첩이 일군 고구려의 황위를 죽었는지

살았는지 오랫동안 소식도 없다 불쑥 나타난 유리에게 물려주신단 말이에요? 그럼, 폐하의

대업(大業)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온 우리 비류와 온조 그리고 졸본부여의 계루부(桂婁部)

사람들은 장차 어찌하라고요? 그들은 지난 세월 폐하의 얼굴만 쳐다보고 살아온 사람들입

니다. 폐하, 재고(再考)하여 주세요”


 “소후, 재고라니요? 짐은 이 나라의 황제입니다. 황제의 말은 곧 이 나라의 법이란 사실을

으셨소? 이제는 소후를 따르는 계루부 보다 짐을 따르는 계루부 무리들이 더 많습니다.

짐의 결정은 번복될 수 없소. 그러니 소후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어험-.”


 “폐하, 소첩, 억울하옵니다. 소첩은 동부여에서 망명하신 폐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내놓

았습니다. 소첩뿐만 아니라 소첩의 친정과 소첩을 따르던 계루부의 무리들도 폐하께 모든 것

을 바쳤습니다.”


 “으허험-, 짐이 그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오.”
 추모왕은 다른 곳에 시선을 맞추고 소황후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빨리 소황후가

주기를 바라는 눈치가 역력해 보였다.
 “폐하, 사정을 그리 잘 아신다면 어찌 저희 모자(母子)에게 냉정하실 수 있는지요?”


 소후는 차마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자 무릎을 꿇고 추모왕에게 사정하듯 비굴한 표정

까지 지어 보였다. 소후의 태도에 추모왕은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소후,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소후와 소후의 가족 그리고 소후를 추종하던 세력들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고구려는 천년을 지탱할 수 있는 큰 나라로 성장하였습

니다. 짐은 소후와 소후의 일족들이 대거 포진되 있는 계루부의 노고에 늘 고마워하고 있습

니다.


 유리가 장차 짐의 뒤를 이어 고구려의 황위를 물려받는다 하여도 소후와 비류, 온조 그리고

소후를 따르는 계루부에 대한 대우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짐이 그 점은 장담하리다. 그러니

소후는 짐의 뜻을 깊이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소.”


 추모왕은 소후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멀뚱히 천정을 바라보면서 소후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소후의 답변에 따라 신흥국인 고구려는 왕자들 간의 피비

린내 나는 골육상쟁의 혼탁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는 극도로 긴장 상태였다. 침묵이 두 사

람의 어깨를 짓눌렀다. 소후가 침묵을 깼다.


 “폐하, 소첩에게 며칠간의 말미를 주세요. 갑작스런 말씀에 소첩은 정신이 무척 혼란스럽습

니다.”
 소황후의 안색(顔色)이 하얗게 변하면서 금방이라도 지아비 추모태황 앞에서 쓰러질 것만 같

았다. 소황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그 자리에 서서 길게 숨을 들이켜고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하리다. 소후는 괜히 엉뚱한 생각일랑 하지 마시길 바라오.”
 기름기로 번질거리는 추모왕의 얼굴에 소후는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소후는 후둘 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바로 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황금빛으로 찬란한 권좌(權座)에 앉아 있는 추모

왕은 곁눈질로 소황후를 힐끗 쳐다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척 하였다. 평상

시처럼 며칠이 흘러갔다.


 “어머니, 날씨가 무척 차갑습니다. 어서 침전으로 드세요.”
 비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머니 소서노 황후에게 안으로 들기를 권하였다.
 “어머니, 침소로 드셔서 저희들과 향후 일을 진지하게 모색하세요. 담비로 만든 겨울옷

한 벌 걸치시고 한데서 이렇게 장시간 계시면 탈이 날까 소자들은 두렵습니다.”
 몸집이 큰 온조가 소후에게 다시 독촉하였다. 그러나 소후는 돌부처처럼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깊은 사색에 빠져있었다. 


 ‘소서노, 앞으로 내 인생은 당신의 것이나 다름없소. 나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당신의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나의 자식으로 입적시키고 친자식처럼 대할 테니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그대가 가섭원에 있는 동부여 궁궐에서 우태 왕자의 비(妃)로 살 때부터 나는

먼발치에서 그대의 빼어난 미모를 흠모하여 남 몰래 훔쳐보곤 했었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나와 친구들을 거두고 나라를 세우는데 당신과 장인어른 그리고 그대를 따르는 모든

신하들이 적극 도왔으니, 나 주몽은 영원히 그대의 충심(忠心)과 애정을 잊지않을 거요.

정말로, 정말로 고맙소.’


 소황후는 고추모와 백년가약을 맺던 첫날밤의 언약(言約)을 떠올렸다. 비단 이불 속에서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며,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면서도 지아비 주몽은 소서노에게 달콤한

말로 속삭였다. 소서노는 주몽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믿고 또 믿었다.


 두 사람은 첫날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크게 만족해 하였다. 밖에

서는 술이 어량하게 취한 연타발이 두 번째로 첫날밤을 보내는 딸의 새 출발을 흐뭇한 마음

으로 몰래 엿보고 있었다. 연타발은 과부의 몸으로 점점 나이만 먹어가는 딸 소서노가 안타

깝기만 하였다.


 연타발은 둘째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았다. 소서노를 여염가(閭閻家)의 평범한 여인들

처럼 키우고 싶지 않은 연타발은 어린 소서노에게 뛰어난 무예의 고수들을 고용해 마술(馬術),

검술(劍術), 봉술(棒術), 궁술(弓術) 등 사내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예를 연마하게 하였다.

특히 연타발은 동예(東濊)나 옥저(沃沮)에서 생산되는 각궁(角弓)인 쇠노의 위력을 알아보고

딸에게 각궁을 연마케 하였다.


 연타발은 자신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딸 중에서 가장 용모가 뛰어나고 총명한 둘째딸

소서노에게 각별한 부정(父情)을 쏟았다. 연타발은 자신이 이끄는 졸본부여의 계루부(桂婁部)

통치권을 장차 딸에게 주든지 아니면 걸출한 사윗감을 골라 통치하게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

지만 호걸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연타발은 동부여(東扶餘) 왕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인 우태(優台)가 인물도 출중하고

무예 또한 뛰어나며 지도력도 갖춘 인걸(人傑)이라는 소문을 듣고 동부여 왕을 직접 찾아 우

태를 사윗감으로 달라고 요청하였다. 동부여왕 금와(金蛙)는 연타발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

들여 우태를 소서노의 배필로 삼을 수 있었다.


 연타발이 우태를 사위로 맞이한 것은 비록 해부루 왕의 서손이기는 하지만 장차 동부여와

동맹을 맺어 졸본부여의 세력을 키우고자하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주변이 모두 적국(敵國)

인 상태에서 연타발의 고충은 날로 더해만 갔다. 그러나 아깝게도 우태는 소서노와 사이에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남기고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한동안 남편의 죽음에 식음을

전폐하다 시피한 소서노는 살아가는 낙이 없었다. 남편 우태의 전사 소식을 들었을 때 소서

노는 믿으려하지 않았다.


 미망인이 된 소서노에게 동부여 도읍지 가섭원(迦葉原)에서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하루

하루를 보내는 일은 무의미 했다. 금와왕에게는 대소(帶素)를 비롯하여 여러 명의 왕자들이

있었다. 동부여 왕은 과부가 된 소서노를 무척 아꼈다. 수시로 좋은 옷감과 귀중품을 보내

소서노를 위로하였으며, 자주 대전으로 불러 말동무를 하였다. 동부여 왕자들은 황제에게

귀여움을 받고 있는 소서노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폐하, 소신 연타발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금와는 서손(庶孫) 우태가 죽은 뒤 한참 후에 찾아온 연타발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짐이 먼저 말하리다. 그대 여식을 내 손자며느리로 들이고 두 황실의 혈손까지 얻어 짐이

무척이나 기뻤다오. 하지만 우태가 전장에서 전사하여 짐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금와왕은 연타발이 무슨 말을 할 것이라는 것은 대충은 짐작하고 있는 눈치였다.


 “모두가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덕입니다. 하옵고, 소신의 사위가 전장에서 전사하여 소신

의 여식이 홀몸이 되었습니다. 하여, 소신이 소신의 여식과 두 외손자를 졸본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살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연타발의 청에 금와왕은 며칠 동안 응답이 없었다.


 “할아버님, 손부(孫婦)는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친정인 졸본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물론

여자는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이곳 가섭원에는 정이

가질 않사옵니다. 할아버님께서 허락하여 주신다면 두 아들을 졸본의 왕자로 잘 키워 장차

동량지재(棟梁之材)로 만들어 동부여로 보내겠습니다. 부디 허락하여 주십시오.”
 소서노의 말에 금와왕은 금방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손부(孫婦)가 조금 전 짐에게 한말을 약속할 수 있겠느냐?”

 “비류와 온조는 할아버님의 핏줄입니다. 당연히 그래야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좋다. 네 애비를 따라 친정으로 가거라. 가서 나의 두 핏줄, 비류와 온조를 잘 키워 장차

큰 사내로 성장하거든 가섭원으로 보내야 한다.”
 “할아버님, 고맙습니다. 감히 누구의 명이라고 손부가 거역하겠습니까.”



 연타발은 동부여로 시집갔다가 과부가 된 둘째딸 소서노와 외손자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졸본부여로 돌아왔다. 졸본부여에서는 소서노와 두 왕자를 대대적으로 환영하였다. 연타발

은 두 왕자가 장차 성인이 되면 동부여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금와왕과의 약속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했다.


 “아버님, 언제 죽을지 모르는 늙은 왕과 한 약속은 별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절대로 비류와

온조를 가섭원으로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저 아이들은 제가 열달 동안 배아파 낳은 제 자식

입니다. 금와왕 서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만 생각하여도 억울한데, 돌려보내다니요.

돌려보내면 대소같은 왕자들이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동부여 궁궐에 주몽이라는 금와왕하고 먼 친척의 자식이 있는데 지금 그 사람은 말 사육

하는 일을 하며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비류와 온조를 동부여로

돌려보내면 주몽이란 자와 똑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그래, 비류와 온조는 어떠한 경우라도 동부여로 돌려

보내지 말자. 이곳 졸본부여의 왕자로서 당당하게 키우자. 네가 그 아이들이 장차 졸본

부여를 다스릴 수 있도록 왕재(王才)로 키우거라.”
 “아버님, 고맙습니다. 아버님 말씀 명심하여 두 아이들을 잘 훈육(訓育)하겠습니다.”


 졸본부여의 통치자 연타발은 아들이 없었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연일 한탄만

하고 있던 차에 둘째딸 소서노의 두 왕자를 얻어오는데 성공하자 연타발은 하늘의 계시

믿으며, 비류와 온조에게 사랑을 쏟았다. 그러나 한창 나이에 홀로 살아가는 딸의 모습

볼 때마다 연타발의 가슴은 멍이 들어가고 있었다.


 ‘저 아이에게 새로운 짝을 맺어줘야 할 텐데......’ 

 친정 졸본부여에 돌아와 심신의 안정을 되찾은 소서노는 두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을 곤두세우며 행여나 학습과 무예에 게을리 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어머니 소서노의

기대에 반하지 않으며 비류와 온조는 성장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무리를 이끌고 동부여를 탈출하여 졸본에 주몽이 나타났다. 주몽일행은 졸본

부여의 토착 주민들에게 경계의 대상이었다. 계루부(桂婁部) 사람들 역시 주몽 일행을 달

갑지 않은 무리로 보았다. 그러나 연타발은 건장한 체격과 백발백중의 활솜씨를 자랑하는

주몽의 자질(資質)을 알아보고 두 외손자를 데리고 쓸쓸히 살아가고 있는 딸, 소서노의 새

로운 배필로 생각하였다. 졸본 부여의 계루부 수장으로서 연타발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하고 있었지만 과부가 된 딸, 소서노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졌다.


 연타발은 소서노와 주몽이 부부의 연을 맺도록 정성을 쏟았다. 물론 소서노는 주몽의 훤

칠한 모습과 뛰어난 무예에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동부여 가섭원에 있을 때 주몽

과 소서노는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개 마구간 지기로서 주몽은 감히

금와왕의 손부(孫婦)인 소서노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연타발은 소서노가 주몽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나섰

다. 졸본부여 백성들과 정치세력들에게 이해를 시키면서 주몽을 자연스럽게 졸본부여의

사람으로 만들어 나갔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졸본부여 사람들은 주몽에 대한 적대감이

나 반감을 품지 않게 되었다. 주몽은 언행에 주의를 하며 차차 졸본부여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시작하였다.


 눈치 빠른 연타발은 주몽이 어느 정도 백성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입장이 되자 소서노와

주몽의 혼인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미 대부분의 백성들은 예상하고 있던 터라 정략결혼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부부가 된 주몽과 소서노는 금슬이 무척 좋아 백성들로 하

여금 질투심을 유발시킬 정도였다. 연타발과 소서노의 도움으로 주몽은 졸본부여의 왕이

되었고 새나라 고구려를 만드는데 탄력이 붙었다.


 졸본성 궁궐에는 어여쁜 미인들이 많았지만 주몽은 오로지 소서노 한 사람만 애정을 쏟

았다. 소서노는 자신보다 여덟 살이나 어린 주몽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

을 받으며 주몽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노라고 다짐을 하였다. 주몽은 소서노와 혼인한 후

에도 수시로 비류와 온조를 자신의 친자식으로 여기겠노라고 말하였고 소서노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아아,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굳게 언약을 해놓고 상황이 바뀌니 엉뚱한 말씀을 하

는구나. 이대로 내가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비류와 온조는 졸본을 떠날 궁리를 하는데,

이대로 두 아들들과 떠나야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비류야, 온조야, 이 어미는 이삼일 더 고민을 해보고 중대 결단을 내리려 한다. 그때까지

절대 경거망동을 하여서는 안 된다.”
 “네, 어머니. 염려하지 마세요.”
 “둘째아들, 온조도 어머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소서노와 비류, 온조 그리고 시비(侍婢)들이 내전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 번

개가 치기 시작하더니 대궐 담장 아래에 있던 노송이 벼락을 맞고 쓰러졌다. 후궁과 술을

 마시고 있던 추모왕은 귀청이 떨어질 듯한 천둥소리에 두 눈이 휘둥그레 졌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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