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은 불꽃
- 蘭雪軒에게 부치다 -
- 여강 최재효
북쪽으로 발길을 돌려 백리 쯤 달려가다
산새 울음소리 강해 슬며시 뒤를 돌아보니
자녀와 산 중턱에 서서 손을 흔드네
아아, 몽계(夢界)의 거룩하신 선녀님이시여
명도(冥途)에 드신지 사백 성상이 지난 임이여
이승의 인연은 무의미 하나니
여견(汝見)도 님을 낯선 사람으로 볼 터
가시던 길 뒤돌아보지 마시고 곧장 걸어가소서
님께서는 본래 하늘 사람이었습니다
심성 고운 견우(牽牛)를 만나셔야 했습니다
하늘님 눈에 잠시 벗어났었다 한들
고고한 품성이 어찌 변할 수 있으리오
한 평생이 술잔에 취하다 끝나는 시기인 것을
만금같은 세월을 모두 허비하고 깨닭게 되나니
평등한 세 번의 기회도 가고
이제는 저 멀리 님에게 궁색한 하소연을 합니다
만인(萬人)이 만시(萬時)에 저마다 나오는 것을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맡으려니 병이 들겠네요
만년이 지나들 임을 잊을 수 있을까요
내가 있어 임이 있고, 임이 있어 내 눈가가 젖어드네
사람으로 태어나 귀신이 되고 싶어하나니
별 하나, 나 하나를 읊던 소녀도 보이지 않고
매서운 바람만 부는 산골
나그네 술 한잔 따르고 앞날을 걱정하네
- 창작일 : 2016.11.23.
경기도 광주군 초월읍 지월리 허난설헌 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