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춘(非悱春)
- 여강 최재효
동장군(冬將軍) 소리 없이 사라진 뒤로
밤이 온줄도 모르겠고
날이 밝은 줄도 모르겠는데
행여, 눈을 감으면 온통 꽃밭에서 뒹굴고 있네
오늘은 고향 두 벗이 망각(忘却)의 강을 건넜다는
무거운 소식이 풍문을 타고 들려와
대낮부터 주선(酒仙)이 되기로 작정하였지만
독주(毒酒) 삼백여 잔(盞)도 소용이 없는 듯하네
봄은 원래 비정(非情)하여 세상에 벗이 없고
봄은 끝내 다정(多情)하여 오지랖이 넓다하지만
그래도 사계(四季)에 봄이 으뜸이라
꽃 피고 지는 것이 오로지 봄의 의중에 달렸어라
그대에게 어렵게 불혹(不惑)이 멀리 지났다면
눈을 반쯤 감고 봉사가 되거나
입을 반쯤 벌리고 벙어리가 된것 처럼 사시게
피차(彼此)가 이미 유령으로 살고 있는 것을
오늘 아침 뜰에 붉은 꽃잎 가득했거늘
잠시 비바람 지나가니 암운(暗雲)만 가득하네
내일 춘지(春枝)에 새잎 돋아나면
나그네 시름 가볍고 헛된 소리 없어질 테지
- 창작일 : 2016.4.8. 01:40
[주] 1. 悱(표현 못할 비)
2. 春(봄 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