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사랑
- 여강 최재효
내 유년의 그림자는
담쟁이 넝쿨처럼 아버지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시간이 멈춘 듯
서쪽 방향으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지
유령같은 어린 그림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아지기는 했지만
내가 청년이 되고
세상에 나가기 전까지 변함이 없는 듯 보였네
얼마전 해가 중천中天에 있을 때
우연히 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너무 놀라 귀신에 홀린 듯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말았네
험로險路 중간에 서있는 요즘
해가 먹구름과 눈보라에 오래 가려진 탓인지
내 중년의 그림자는 동쪽으로
안개 자욱한 미로迷路에 길게 누워 있네
내 그림자가 앞으로 얼마나 더 길어질수 있을까
유년의 그것보다 길게 보일까
혹시, 그림자가 바람에 날아가면 어떻게 하나
세상에 그림자 없는 사람도 있다던데
무수한 행인이 땅 위를 걸어다니네
어찌된 일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드문 드문 그림자 없는 사람들도 보이고
투명인간도 자주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네
몸이 달고 조바심이 나네
훗날 나의 비문碑文에 무슨 내용의 이력이 씌여질까
‘뼈대 없는 사람으로 한평생 살다’
이 정도라면 그냥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 창작일 : 2015.01.29. 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