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에 허시를 쓰다
- 여강 최재효
행인들 어찌 내속을 알 수 있으리
봄에 메꽃 꺾어 화병에 꽂고
여름에 복사꽃 향기에 잠시 취해 있었더니
어느덧 찬바람이 뼛속에 스며들었네
순식간에 불어온 풍우에 한철 꽃이
무참히 떨어지고 난 뒤에도
차마 세상에 눈길 내려놓을 수 없어
옛 추억 가슴에 깊이 새겨 놓았었지
백년 갈 줄 알았던 인연의 끈 풀어지고
생명의 끈도 반쯤 느슨해진 요즘
빈번히 독잔獨盞을 잡고 눈을 감으니
빈천한 이력은 백지白紙로 보일 뿐이네
한때 소년의 호시절을 부정하거나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린 편월片月을 보면
만물의 섭리는 천지신명만 알 뿐이라
성에 낀 유리창에 허시虛詩를 써놓고 크게 웃네
- 창작일 : 2014.12.27.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