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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무정(2)

* 창작공간/단편 - 월하무정

by 여강 최재효 2014. 7. 2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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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하무정

 

                                                                 여강 최재효

 

 

                                                                                    2

 




 무휼은 구다국과 개마국 등 약소국弱小國들에대한 정벌을 마치자 이번

에는 낙랑국에 대하여 정벌의지를 드러냈다. 요동에서 돌아온 무휼은 자

주 이에 대하여 회의를 개최하였다. 고구려는 여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낙랑국 만큼은  쉽게 침범할 수 없었다. 고구려 군이 낙랑국의 국경을 넘

기만 하면 어느고구려군의 약점을 파악하고 강력한 대항을 하였기 때

문에 번번이 낙랑국 정벌에 실패하고 말았다.


 태왕 무휼은 여러 갈래로 세작細作들을 파견하여 낙랑국의 방어체계를

알아보았다. 세작들이 보고하는 정보에 의하면 낙랑국에는 자명고自鳴鼓

가 있어 외적에 침입을 하면 자명고가 스스로 울려 국가 위급상황을 알

려준다는 것이었다.


 세작들의 정탐보고를 무휼은 반신반의半信半疑하고 있었다. 생명이 없

는 북이 어떻게 외침이 있으면 스스로 울면서 위급상황을 알려 줄 수 있

단 말인가. 무휼뿐만 아니라 고구려 국상 을두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고

구려 군사들은 자명고의 실체를 믿지 않았다.


 또 다른 간자間者들이 무휼에게 올린 정탐보고에 의하면 낙랑국에는

드러나지 않는 무영단影團이란 정보조직이 있는데 이는 군사 조직이

아니라 낙랑국왕이 직접 운영하는 그림자 같은 비밀조직으로 누구도

그 조직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지 않다고 하였다.


 무휼은 자명고와 무영단을 두고 고민하였다. 간자들이 올린 정보가

과연 정말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무휼은 낙랑국왕 최리崔理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책을 세웠다. 그 계책이란 다름 아닌 호동

을 이용하여 낙랑국왕에게 접근 시키는 것이었다.


 “너는 그동안 이 아비를 따라 여러 전장을 누비며 많은 경험을 쌓았

다. 네가 이번에 공을 세워그동안 네가 아비와 왕실에 끼친 염려

와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야 한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아버님의 명령을 수행하여 우리 고구려가 낙랑국

을 정복할 수 있도록 목숨을 고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무휼은 호동의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비록 부자지간이기는 하나 부자

지간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끈이 사라진 뒤에 서먹한 관계가 오랫

동안 이어졌었다.


 태왕 무휼이 아들 호동왕자에게 언급한 염려와 의구심은 부자지간에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일이었다. 호동은 아버지 무휼이 왕후와 자신간

의 은밀한 관계에 대하여 눈치를 채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무휼은 단지 왕후가 계모季母이기 때문에 호동왕자를 헐뜯기 위하여

모함을 하고 거짓된 말로 호동을 괴롭히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왕후가 아들을 출산한 뒤로 몇 차례 왕후는 호동을 음해하는 말을 하

였었지만 무휼은 그때마다 적당히 넘어가곤 하였다.


 계모 송 왕후의 유혹은 집요하였다. 태왕 무휼이 전장에서 돌아와 궁

궐에 머물고 있는데도 시녀를 보호동을 왕후의 처소를 불러들였다.

호동이 왕후의 초대를 거절하면 별의별 말로 호동을 겁박하였다.

이 왕후와 동침하는 날은 정해져 있었다.


 태왕에게는 송 왕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왕권 강화 차원에서 정략적

으로 연나부椽那部 이외 다른 나부那部의 여인들을 후궁으로 들여야

했다. 고집이 세고 탐욕스러운 송 왕후에게 식상한 태왕은 다른 여인

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송 왕후는 태왕이 궁궐에 있으면서 자신을 찾지 않는 날이면 시도 때

도 없이 호동을 불렀다. 왕후에약점이 잡힌 호동은 왕후의 말에 따

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왕후 송씨가 아들을 출산한 시점에서 자신의

위치가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왕후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힘 없는 갈사부여 왕의 손녀 출신이 어머니를 호동은 원망하기도 했지

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태왕의 눈을 피해가며 모자母子는 이상

행동을 이어갔다. 태왕이 다른 여인을 찾는 것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왕

후는 호동을 음욕의 제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대담해져가는 계모의 유혹이 호동은 싫지만은 않았다.

궁궐에서도 호동이 이야기를 주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유모乳母나 자신의 시비侍婢를 제외하고 가슴 속 이야기를

토론할 사람은 그래도 계모 송왕후 밖에 없었다.


 아버지 무휼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왕후는 호동의 취향에 맞는 여인

이었다.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은 남의 눈을 피해 애증愛憎 행각을 이

어가고 있었만 무휼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왕후, 소자 이제는 왕후마마의 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
 “뭐라고? 왕자는 나 말고 다른 여자를 알았다는 것인가요?”


 “그, 그게 아니고. 더 이상 왕후마마와 비정상적인 일을 이어가고 싶

지 않기에......”


 “절대로 안 될 일. 왕자가 나의 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왕자보다 더

잘생긴 남자나에게 바치면 되는 겁니다. 그 이전에는 절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요.”


 호동은 국내성의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언제 태왕

무휼에게 왕후와의 일이 탄로죽임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궁

녀들 사이에 호동과 왕후의 은밀한 관계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

에 호동의 조바심은 날로 더해갔다. 하루 빨리 낙랑국으로 도망치고 싶

다. 아버지 무휼의 지엄한 명을 수행하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무휼은 봄이 되자 호동을 다시 불렀다.


 “간자들이 보내온 정보에 의하면 낙랑왕 최리가 내년 봄에 옥저沃沮

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너최리의 옥저 방문과 때를 맞춰서 옥저

로 가서 최리를 만나 보거라. 만나서 먼저 아비가 일러준 대로 최리에게

접근하여 그의 딸과 혼인한 다음 낙랑국의 비밀병기를 반드시 파괴하거

라. 아비는 너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네가 큰 공을 세워 이 아비에

게 효도하고 세간에 떠도는 추악한 잡음을 잠재웠으면 한다. 아비는 너

를 믿고 싶구나.”
 태왕 무휼은 아들 호동에게 손수 술을 따라주었다.


 “아버님, 소자 내일 옥저로 떠나 아버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저간

에 떠도는 풍문도 말끔하게 사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나는 네 어미가 죽고 난 뒤로 너를 챙기지 못하였구나. 네가 이

아비가 도성을 비우면 왕후를 모신다고 들었다. 나는 자주 전장에 나

가니 비록 계모라고 하지만 네 어미이니 네가 나중에라도 극 정성으

로 보살펴드려야 한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호동은 아버지 무휼 태왕의 말에 식은땀을 흘리며 어서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호동은 종자從者 두 명과 함께 동옥저로 향했다. 동옥저는 고구려 동남

쪽 낙랑국의 북동쪽에 위치라였다. 고조선이 망하고 한반도에 수많

은 성읍국가城邑國家가 출현하였다. 반도의 북동쪽에 위치한 성읍국가

중 규모가 꽤 큰 나라가 바로 동옥저였다. 동옥저의 북동쪽에는 북옥저

가 있었는데 규모컸으나 국력은 동옥저만 못했다.

 

 대개 옥저라 하면 동옥저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동해안을 따라 동

북으로 길게 뻗은 해안 평야에 위치하여 오곡五穀이 생산되고 해산

물이 풍부한 지역조건을 지니고 있었으나 주변에 강대한 세력들이 있어

잇달아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왕망王莽의 반란으로 한나라의 세력이 미약해지고 고구려를 비롯한

주변국들의 간섭이 미미해지자 조현夫租縣을 중심으로 점차 독자적

인 성장을 꾀하면서 이 지역은 옥저로 불리게 되었지만 곧이어 개마

원을 넘어온 고구려에 예속되어 그의 간접지배를 받게 되었다.


 옥저는 고구려·동예와 같은 예濊貊 계통의 종족으로, 언어·음식·의

복·가옥·예절 등이 고구려와 유사한 점이 많았으며 사회발전단는 동

와 비슷했다. 대군장大君長 없이 읍락별로 나뉘어 살았다.


 옥저에는 민며느리제가 있었으며,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풀이나 흙

으로 덮어 가매장했다가 시체가 은 뒤 남은 뼈만 추려 나무덧널에

넣어 장사지내는 복장複葬의 풍습도 있었다. 고구려에는 해마다 여러

차례 공물을 바치는데 맥포貊布·생선·소금과 기타 해산물 등이 있었

으며, 때로는 여자를 바쳤는데, 그들은 고구려 귀족의 첩이 되기도

했다. 옥저의 읍락민들은 고구려에 의해 일종의 예민隸民과 같은 대

우를 받았다.


 호구戶口가 5천여 호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던 옥저는 비옥한 자연

조건에도 불구하고 통일세력을 성하지 못하고 고조선·부여·고구려

등 주변 강대한 세력의 지배를 번갈아 받은 까닭에 지속적인 발전

이루지 못했다. 족장층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일반민과 함께

읍락에 섞여 사는 등 뚜렷한 회분화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사회

전체가 공동체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대는 혹시 북국신왕北國神王의 아들 호동왕자가 아니오?”
 낙랑국왕 최리는 이미 호동이 옥저에 들어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최리는 동옥저에 많은 을 들이고 있었다. 국가의 힘을 기르

기 위한 가장 빠르면서 확고한 수단은 영토 확장이었다. 광활한 영토

와 많은 백성은 강대국 구성을 위해 필요한 요소였다.


 해마다 최리는 금은보화와 수많은 곡식을 가지고 옥저를 방문하였다.

옥저의 여러 족장族長과 군장君長을 만나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최리

호동이 초저녁 무렵 한 주점에서 마주쳤다. 옥저에서 가장 크고 화

려한 주점이었다.


 “그러하옵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대인께서는 이곳 분이 아닌듯 합니

다?”


 “나는 낙랑국왕 최리라 하오. 천하의 헌헌장부로 소문난 고구려의 왕

자를 이곳서 만나게 될 줄 상상도하지 못했소이다. 우리가 이렇게

타국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내가 왕자에게 술 대접을 하도 되겠소

이까?”


 “대왕의 초대를 어찌 감히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자, 저기 대청으로 드십시다.”
 낙랑왕 최리가 가리키는 주점 대청에는 이미 호화로운 주안상이 차

려져 있었다.


 ‘이자가 내가 이곳에 올 줄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나에게 미리 기

별을 넣고 술상을 준비한 것처럼 완벽할 수가 있단 말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구나. 내가 여우에 홀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정신

바싹 차려야지 자칫 잘못하다간 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겠어.’


 “호동왕자, 어서 오르시지요.”
 “아, 네. 알겠습니다.”
 “얘야, 뭐하느냐? 어서 왕자님을 모시지 않고서?”


 “네에. 아버님.”
 ‘아버님? 그렇다면 저 처자가 낙랑왕의 딸이란 말인가? 아니지 낙랑

국 공주라고 해야 정확하겠지. 그런데 가만히 보니 보통 미인이 아닌걸.

계모 보다 훨씬 예쁜데. 그렇다면 낙랑왕이 딸까지 미리 이곳에 데려다

놨단 말인가? 허허, 무엇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원.’


 “호동왕자, 내 딸 애랑愛娘이라하오.”
 “아, 네. 그렇군요. 경국지색이 따로 없군요.”
 호동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하였다.


 ‘아, 정말로 아름답구나. 천녀天女가 하강하였구나. 이제까지 고구

려의 왕후가 세상에서 가장 예줄 알았는데 이런 곳에서 천하의

절색絶色을 만나다니. 어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낙랑왕이 나

유혹하려고 일부러 꾸민 일은 아니겠지.’
 호동은 애랑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서있

었다.


 “애랑아, 뭐하느냐. 어서 호동왕자께 인사 올리지 않고?”
 “소녀, 낙랑국에서 온 애랑이라 하옵니다. 이런 곳에서 북국의 왕자님

을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낙랑공주 애랑이 얼굴을 붉히며 호동에게 큰 절을 하였다.


 “나, 나는 고구려 왕자 호동이라 하오. 나 역시 낙랑국 공주를 만나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호동이 얼른 일어나 낙랑공주 애랑에게 맞절을 하였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쌍 이로고. 천생연분이 따로 없도다. 오늘 당

장 혼례를 올려도 무방할 듯 하도다.”
 호동은 낙랑왕이 호쾌하게 웃으며 떠들어대는 소리에 정신이 멍했다.


 ‘혼례라? 나는 나의 계모이면서 고구려의 왕후 이외에는 그 어떤 여인

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로 했는데. 갑자기 혼례라니? 그것도 낙랑국

왕이 자신의 딸을 앞에 두고 큰소리로 떠들다니. 나의 의중을 떠보려는

수작이란 말인가? 아니면 나를 희롱하는 말인가?’


 “대왕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미장가인 이 사람은 가슴이 뛰고 숨이 턱턱

막힐 지경입니다. 내 생전에 이렇게 고운 처자는 처음입니다. 제가 따님

을 달라고 하면 주시겠습니까?”


 “왕자, 내가 바라던 바요. 저애가 그래도 낙랑국에서는 제일가는 미색

이오. 왕자원한다면 오늘 당장 저애와 부부의 연을 맺어도 좋습니다.”
 “대왕, 진정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한 나라의 왕이 어찌 한 입으로 두말을 할 수 있겠소이까?”
 호동과 최리의 대화 가운데 낀 낙랑공주 애랑은 어찌할 줄 모르고 고

개만 푹 숙이고 서 있었다.


 “고맙습니다. 어젯밤 꿈에 동쪽에서 귀인을 만났는데 그 귀인이 낙랑

국 공주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왕자는 역시 큰 그릇이오. 이렇게 만난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

는 것도 다 인연이 있기 때문이오. 나와 이 아이는 앞으로 보름을 더 옥저

에서 머물 예정입니다. 왕자만 좋다면 왕자도 이 사람과 동행해 주시오.

앞으로 남은 일정은 옥저의 군장들과 사냥을 하면서 옥저의 이곳저곳

둘러보는 일이오.” 

 “대왕께서 저를 그리 봐주시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음-, 말로만 듣던 호동왕자가 보기 보다는 배포가 크구나. 웬만한 사내

같으면 사양하거나 이런저핑계를 둘러대고 빠져나가려고 할 텐데 전혀

그러지 않는 것을 보면 배포도 크고 진정한 장부丈夫틀림없구나. 저

정도면 세상 제일의 세상 제일의 신랑감이로다. 애랑이 호동왕자와 인연

을 맺는다우리 낙랑국은 든든한 사돈을 얻게 되는 거지. 나는 딸을 내

주고 우리 낙랑국은 국가의 안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는 거야. 그야

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게야.’
 “얘야, 뭐하니? 어서 술을 따르지 않고?”


 “공주, 고맙습니다. 정말로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가 틀림없군요.”
 호동왕자는 주전자를 들고 술을 따르는 낙랑공주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

다. 호동은 술잔을 받다가 자신도 모르게 섬섬옥수를 살짝 스쳤다.


 “소녀를 예쁘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낙랑공주는 호동을 한번 올려다보고 들릴듯 말듯 속삭였다.


 “자, 왕자 우리 건배합시다.”

 “그리하시지요. 오늘은 정말로 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군요.”
 ‘아아, 이렇게 고운 여인이 다 있단 말인가. 계모가 농염한 복숭아꽃이라

면 공주는 초봄에 핀 매梅花로다.


 “우리 낙랑은 그동안 한나라가 왕망의 신나라에 정권이 넘어가면서 많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어찌 보면 고구려나 우리 낙랑이나 영토를 넓힐 수 있

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 낙랑국 보다 급속하게 국력이 팽

창하는 귀국을 보면 부럽습니다.”


 낙랑왕 최리는 승승장구하며 주변의 약소국들을 집어삼키고 있는 고구려

의 태왕 무휼이 려웠다. 최리의 판단에도 이제 고구려가 대부분의 주변

약소국들을 정복하였으니 조만간 낙랑국이 무휼의 야욕의 화살이 자신의

나라로 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무휼의 아들이 제 발로 옥저에 왔으니 이 기회를 절대 놓친

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고구려의 국경을 어지

럽히기 하였지만 낙랑국의 전력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한 일은 없었

다.


 “대왕,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골치 아픈 정치 이야기는 그만 하시고 옛

날이야기나 들려주시지요.”
 “옛날이야기라? 어떤 이야기를 해야 왕자가 좋아할까?”


 “저는 낙랑국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또한 낙랑국에

는 보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보물의 정체도 알고 싶습니다.”


 “우리 낙랑국에 보물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 보물은 만약 왕자가 저

아이와 인연을 맺게 된다면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음 내가 낙랑공주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되면 자연 알게 된다?’
 “대왕께서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럼 낙랑의 보물은 천천

히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낙랑국의 건국 비화秘話를 들려주십시오. 낙랑국

이 우리 고구려와 맥이 같다고 들었습니다만 누구도 나에게 자세하게 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낙랑국과 고구려는 뿌리가 같습니다.”
 “뿌리가 같다고요?”
 호동왕자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낙랑국은 천왕랑 해모수解慕漱께서 북부여北夫餘를 건국한 44년 후에

번조선의 호족이던 최숭崔崇이 번조선을 탈출하여 막조선莫朝鮮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는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劉邦 죽자 유방의 처 여

태후呂太后가 유씨劉氏 일파와 공신들을 숙청하던 때였다.


 그위만衛滿은 숙청을 피하여 번조선으로 들어와 번조선의 기준箕準

왕에게 항복하자 기준 왕은 위만에게 박사博士라는 관직을 주어 한나라

와 번조선의 국경지역 수비를 맡기게 되었다.


 그러나 번조선 조정 몰래 세력을 키운 위만은 배은망덕하게도 번조선

도읍지인 왕험성王險城으로 쳐들어가 번조선을 멸망시키고 왕위를 찬탈

하게 된다. 소위 위만조선이 출발이다.


 번조선에서 오랜 세월 인덕을 쌓고 명망이 높았던 최숭은 위만 일파의 가

혹한 학정에 시달리다가 많은 무리와 함께 바다를 건너 지금의 압록수와

백아강白牙岡 사이에 나라를 세웠다. 이후 190년 가까이 낙랑국은 존속하

면서 북부여와 북부여의 국통을 이은 고구려에게 조공을 받치며 우호관계

를 유지해 왔다.


 북부여와는 그런대로 평온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주몽이 북부여를 넘

겨받고 고구려로 나라이름을 바꾸면서 차차 상황이 악화하기 시작하였다.

고구려 3대 태왕에 등극한 무휼은 고구려의 국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방

편으로 영토확장 정책을 세우고 동정서벌하며 고구려의 영토를 넓혀갔

다.


 송양국宋陽國, 구다국九多國, 개마국蓋馬國 등 주변의 수많은 성읍국

가들을 복속시킨 고구려의 태왕 무휼의 시선은 낙락국과 옥저로 향하

고 있었다. 옥저는 왕이 없는 여러 명의 부족장들이 다스리는 약체의

국가라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고구려 영토로 복속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낙랑은 여타 소수 성읍국가와 달랐다.


 고구려에 파견된 간자間者들을 통해 전해지는 고구려의 정국을 손바

닥 보듯 살피고 있던 낙왕 최리는 곧 무휼의 칼날이 자신을 향할 것

이라고 판단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였다.


 구려라는 나라가 세상에 생겨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낙랑국은 역대

왕들이 안정과 평화를 기로 내세우는 바람에 건국 초기의 영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최리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국토확장

을 꾀하려고 몇 차례 시도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날로 확장 되가는 이웃 국가 고구려의 팽창에 수세에 몰린 낙랑

최리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옥저의 군장君長들을 자신의 편으

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옥저의 지배층들은 고구려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여 최리는 목적을 달성하기 쉽지 않았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서는 딸을 호동왕자에게 시집보내려고 하는 최리의 의도는 시작이

좋았다.

 

 최리의 말대로 옛날 대단군大檀君이 삼조선三朝鮮 즉,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을 통치하던 시절 낙랑왕 최리는 번조선의 후손이고 고구려는 진

조선이 후에 대부여大夫餘로 바뀌고 대부여가 다시 북여로 국맥이 이

어져 오늘의 고구려가 되었으니 최리와 무휼은 뿌리가 같았다. 최리의

말을 가만히 경청하던 호동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자, 왕자, 우리 건배합시다. 내가 방금 이야기 했듯이 우리 낙랑국과

고구려는 한 뿌리랍니다. 주몽왕과 우리 선대 최숭 할아버님 또 그분들

조상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주 가까울 거요. 오백을 거슬러 살펴보

면 분명 고씨와 최씨는 인척일 수도 있다오.”


 “그,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암, 그렇고말고요.”
 최리는 무엇이 그리 경쾌한지 목젖이 보이도록 웃었다.


 ‘음-, 낙랑왕의 마음이 다급한 듯 하구나. 아버님의 영토팽창 정책이 낙

랑왕이나 낙랑사람들에게 불안을 주고 있겠지. 나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아버님이 낙랑국을 복속시키는데 공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아버님 칼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어.


 낙랑공주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중에 내가 아버님의 뒤를 이어 고구려

태왕의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렇지만 나의 야망을

위하여 한 여인의 순정을 짓밟아야 하는 내 운명도 참으로 험난하구나. 먼

후세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나는 내 장래와 내 마음

속 연인戀人인 계모를 위하여 인내해야 해.’


 “왕자님, 잔 받으시어요.”
 “아네네. 고맙습니다.”
 “안주가 다 식어갑니다. 어서 드셔요.”


 낙랑공주 애랑이 손수 안주를 집어 호동의 입에 넣어주었다. 낙랑왕 최리

는 딸의 행동을 흐뭇한 으로 바라보았다. 낙랑공주의 애잔한 모습에서

호동은 방금 전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왕자, 아직 거처할 곳을 정하지 못한 듯 한데 오늘은 내 처소에서 주무시

도록 하시지요.”


  “아, 아닙니다. 찾아보면 머물 데가 있을 겁니다.”
 “내가 머무는 처소는 꽤 조용하고 안전합니다. 옥저에 머무는 동안 왕자가

사용해도 좋습니다.”


 “왕자님, 그리하세요. 마땅히 가실 곳이 없으신 것 같은데요. 이미 밤도 깊

었습니다.”


 낙랑공주 애랑은 호동에게 넌지시 의중을 물었다. 자신이 마음에 들면 호동

이 자신들의 처소에 물 거라고 판단하였다. 호동은 상당히 취한 상태였다.

애랑의 말대로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어찌한다? 내가 낙랑왕의 정중한 제의를 거절한다면 일이 꼬일 수도 있지

만 그렇다고 사내가 처음 본 낙랑왕을 냉큼 따라 간다는 것도 우습고. 내가

낙랑왕을 따라가면 나는 낙랑공주와 인연을 게 될 텐데. 절호의 기회를 체

면 때문에 놓친다면 크게 후회할 수도 있어. 에라, 모르겠다. 오늘 밤은 우선

낙랑왕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내가 대왕의 처소에 머물게 되면 여러 사람이 불편할 텐데요?”
 호동이 곁에서 고개를 숙이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낙랑공주 애랑을 쳐다

보았다.


 “왕자,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낙랑 사람들은 손님 하룻밤

을 머물도 정성을 다하여 지극정성으로 모신답니다.”
 “얘야, 오늘밤은 네가 왕자님 수발을 들어 드리렴.”


 “네에. 아버님. 그리하겠습니다.”
 “대왕, 아니오. 나에게는 종자從者가 두 명이나 있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

오. 잠자리를 제공하신 만 해도 미안한데......”
 술자리가 파하자 낙랑공주 애랑은 호동왕자를 부축하여 주점에서 가까운 숙

소로 향하였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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