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월하무정(1)

* 창작공간/단편 - 월하무정

by 여강 최재효 2014. 7. 21. 19:32

본문

 

 

 

 

 

 

 

 

                                            

 

 

  

 

 

 


                             월하무정

                                                            - 여강 최재효

 

 


                                                                                     1

 
 ‘폐하, 소비小妃는 이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소첩과 폐하의 큰아들 중

에서 한 사람을 택하세요. 더 이상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어미를 넘

보는 짐승만도 못한 자식을 용서할 수 없어요. 폐하께서 이런저런 핑

로 계속해서 그 잘난 아들을 두둔하고 계시니 소비는 내일 당장 친정으

로 돌아가겠어요.’


 한나라와 길고 지루한 싸움을 끝내고 돌아온 태왕 무휼無恤은 왕후 송

씨의 투정에 골머리가 아팠다. 전에서 적군의 목을 베는 일보다 궁궐에

 돌아와 왕후의 잔소리를 듣는 일이 더 힘들었다.


 왕후의 투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예전에도 증거도 없이 큰

아들을 음해하는 일이 있었지만 태왕 무휼은 적당한 말을 둘러대며 왕

후의 불평을 무마하곤 했었다. 그러나 잠잠하던 왕후가 다시 골치 아픈

이야기를 꺼내자 태왕은 왕후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연나부椽那部 출신의 왕후 송씨는 친정의 후광을 믿고 방자하게 행동

하고 있었지만 왕비족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태왕은 왕후를 함부

로 대할 수도 없었다. 자칫 왕비족의 신경을 건드려 자신에게 지지를

보내주지 않는다면 무휼의 원대한 계획에 큰 차질이 예상되고 있었다.


 태왕 무휼은 지존至尊의 위치에 있었지만 5부연합체에서 다른 나부

那部의 협조 없이는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왕족과 왕비족이

5부 연합체에서 가장 큰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태왕의 위位를 지

가기 위하여 왕비족의 후원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태왕 무휼은 나

이 어린 왕후의 철없는 행동이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무휼은 왕후 송

씨에게 호동好童의 행동을 감시케 하여 증거를 잡겠다고 하여 간신히

를 달랬다.


 ‘아들이 아비의 여자를 음흉한 시선으로 보아도 안 될 일이거늘 아무

리 나이 어린 계모季母라 하여도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

러나 왕후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 아이를 모함하고 있으니 이일을

찌하면 좋단 말인가? 말로 타일러서 들을 왕후가 아니야. 그렇다고

왕후의 말만 듣고 그 아이를 벌할 수도 없고. 일단 더 두고 보다가 감

찰부에 명해서 그 아이의 뒤를 조사하도록 해야겠어.’


 무휼태왕은 궁궐내의 사소한 일로 자신의 영토 확장이란 원대한 계

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태왕에게는 낙랑국 정벌征

伐이란 대사大事 이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태왕 무휼은 고주몽의 큰 아들 유리琉璃 태왕의 셋째아들로 태어났

다. 유리왕에게는 큰아들 도절都切과 둘째아들 해명解明이 있었다.

태자였던 도절은 유리태왕과 사이에 갈등을 빚어 자살하였고 둘째

해명은 황룡국黃龍國 왕이 유리 태왕에게 선물한 활을 훼손시킨 문

제로 역시 자살하고 말았다.


 위로 두 형이 자살하자 무휼은 자연히 태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

다. 15세 어린 나이로 고구려 제3대 태왕의 지위에 오른 무휼은 어려

서부터 신동神童이라 불릴 만큼 총명하였다. 무휼이 고구려 태왕

자리에 오를 때 대륙은 격변기혼란 속에 있었다.


 한나라 황실의 인척으로 재상宰相으로 있었던 왕망王莽이 한나라

를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세운후 스스로 황제가 되어 중국을 통치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만큼 왕망이 국정을 잘 펼치지 못하

자 전국에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다.


 산동山東에서는 번승樊崇이 ‘적미赤眉의 난’을 일으켰고, 녹림에

왕광과 왕봉이 ‘녹림綠林의 난’을 일으켰다. 전한前漢의 붕괴는

고구려와 부여夫餘에게 영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고구려는 고주몽이 북부여 제7대 황제에 등극하면서 북부여의 국통

을 고스란히 잇고 있었다.


 동부여東夫餘와 개인적으로 원한이 많았던 주몽은 살아생전에 동

부여를 복속시키고자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큰아

들 유리 태왕도 생전에 아버지 주몽의 유지를 해결하지 못하고 말았

다. 유리 태왕의 셋째 아들 무휼은 조상의 한恨을 풀고자 와신상담

하면서 동부여 정복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기원후 21년 12월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무휼은 동부여 정벌을 감

행하다. 고구려의 장수 괴유怪由가 동부여의 왕 대소帶素를 참살

였다.


 대소와 왕위 다툼에서 밀린 대소왕의 동생은 대세가 기울어진 것을

눈치 채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갈사국을 침범하여 갈사국

왕을 죽이고 갈사부여를 건국하였다. 나라라고 하지만 국력은 실로

미미하여 보잘 것이 없었다.


 이 무렵 전한前漢 황실의 후예인 유연劉淵과 유수劉秀 형제가 군사

를 일으켜 왕망에게 대항하고 있었다. 신나라와 격돌 끝에 유연의 형

제가 이끄는 세력이 왕망을 제거하였고 유수가 황제에 등극하니 그

가 바로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였다.


 대륙이 급격한 혼란에 휩싸여 있는 동안 태왕 무휼은 내치에 힘쓰

면서 주변의 약소국들을 차례로 속시켰다. 무휼은 몸소 병사들과

전장에 참가하면서 꾸준히 팽창정책을 견지하였다. 기원후 26년 무

개마국蓋馬國과 구다국九多國을 복속시켰다. 무휼의 휘하에는

걸출한 국상 을두지乙豆智가 있었다. 무휼과 을두지의 최대관심사

는 역시 낙랑의 정벌이었다.     

 

 태왕 무휼은 원비元妃인 송씨를 들이기 이전에 여인이 있었다.

갈사부여왕의 손녀인 해씨解氏였다. 보잘 것 없는 나라 출신으

로 고구려에 시집온 해씨는 무휼에게 총애를 받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난 아들이 바로 호동왕자였다. 해씨가 병으로 죽자

무휼은 왕비족에서 여인을 간택하여 들였는데 바로 재의 왕후 송

씨였다.


 연나부에서는 왕비의 자리를 빼앗길까 걱정되어 10세 초반의 여

인을 왕비로 들여냈다. 하지만 태왕 무휼과 왕후 송씨의 나이 차

가 커 무휼은 오랫동안 왕후를 여인으로 대하지 않았다.


 태왕 무휼이 잦은 원정으로 궁성을 비우자 독수공방의 신세가 된

후 송씨는 자연히 비슷한 나이 또래인 호동왕자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왕후는 호동왕자보다 두 살 위였다. 아버지 무휼을 닮아

호동은 기골이 장대하고 외모는 가히 고구려 최고의 미남자 였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무휼을 따라 전장에서 잔뼈가 굵어 십대 중반

의 나이였지만 장년壯年과 맞먹는 완력을 지니고 있었다. 무휼은

송씨가 궁궐에 들어온 이후로 호동을 왕후 곁에 두고 왕후를 안전

게 모시게 하였다.


 태왕 무휼에게 최대의 위협 세력은 요동태수였다. 한나라는 신흥

강국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고구려를 의식하여 요동에 상당히 신경

을 쓰고 있었다. 요동태수가 군사 백만 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

범하기도 하였으나 무휼은 국상 을두지와 합심하여 한나라 군대를

잘 막아내고 있었지만, 언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태왕은 연중 대부분의 날을 요동과 대치하고 있는 국

경에서 보내고 있었다.


 “왕자, 오늘밤 내 처소로 놀러와요.”
 호동은 계모季母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고 망설이고 있었다.


 어머니가 죽자마자 아버지 무휼은 송씨를 원비로 들였다. 그러나

왕후는 나이가 어리고 질투심이 많아서 자신의 뜻에 잘 따르지

않는 궁녀를 자주 매질을 하거나 가혹할 정도로 다루었다.


 ‘아버님도 안 계신데 왕후가 나를 초대하다니. 안 갈수도 없고,

가자니 궁궐의 수많은 눈들을 조심해야 고......’  


 하루 종일 어머니 생각에 빠져있던 호동은 저녁을 먹고 말을 타

고 국내성을 빠져 나왔다. 압록수를 향해 을 달렸다.


 귀에서 윙윙거리는 바람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해가 졌지만 낮 동

안 덥혀진 대지에서 지열熱이 피어올라와 훅훅 숨을 막히게 했다.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여인에게 어머니라고 부르기에는 호동

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수하도 대동하지 않고 호동은 말을 달려 압록수鴨綠水에 도착하였

다.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하여

말을 강으로 끌고 갔다. 백로 떼들이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소리를

며 날아올랐다.


 멀리 압록수를 경계로 고구려와 마주하고 있는 낙랑국 영토가 희뿌

연 연무煙霧 속에서 보일 듯 말듯 하였다. 아버지 무휼은 곧 저 낙랑

국을 향하여 말을 몰아갈 것이 분명했다. 궁성에 돌아오면 휼은 여

러 신하들 에게 낙랑국 정벌을 입버릇처럼 외쳤다.


 갈사국 공주 출신의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호동의

어깨는 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왕후 송씨가 아들을 낳으면

서부터 호동의 입지는 이상하게 되었다. 늘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

주면서 어려운 일을 잘도 처리해 주던 을두지 국상도 호동을 바라

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았다.


 왕후가 아들을 생산하기 전까지 무휼의 후계자는 당연히 호동이

었다. 왕후가 아들을 낳은 뒤부터 대신들은 호동을 경계하기 시작

하면서 마치 길가는 행인 대하듯 하였다.


 “왕자, 잘 왔어요. 내가 왕자를 얼마나 기다렸다고. 어서 이리 앉아

요. 어서.”
 “네. 고맙습니다.”


 왕후는 아버지 무휼이 환궁했을 때처럼 진한 화장에 가장 고급스

러운 옷으로 치장하였다. 거실에는 은은하면서 남자의 양기陽氣를

자극시키는 향내가 가득했다. 갓난아기 왕자는 보이지 않았다. 둥

근 탁자에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술을 즐기지 않는 호동은 생전 처

음 보는 이름 모를 술들을 보고 놀랐다. 남녀 악공 네 명이 악기를

연주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자, 왕자, 이 어미가 따르는 술을 받아요. 아버지가 원정길에 나

가계시어 적적하던 차에 왕자가 내 곁있으니 마음이 든든해요.”


 “왕후, 소자 역시 왕후마마께서 이리 보살펴 주시니 고마울 따름

입니다. 앞으로도 소자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소서.”


 금잔이 부딪히면서 맑은 소리를 냈다.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들어

가는 독한 미주美酒에 왕후는 기분이 금방 좋아진 듯 했다. 두 뺨이

잘 읽은 복숭아처럼 붉게 달아오르더니 왕후는 진한 농담까지 건넸

다. 


 술이 가득 담긴 술병을 시녀가 가지고 왔다. 궁성에는 호동과 나이

가 비슷한 궁들이 많았다.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데 신분의 차

이는 고구려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호동이 여자를 알게 된 시기는 무빨랐다. 왕자라는 신분을 이용

마음에 드는 궁녀나 고관대작의 여식女息을 언제나 취할

다. 남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나이는 보통 10대 중반 쯤 이지만

영양이 좋거나 타고난 체력이 탁할 경우 10대 초반의 나이에도 충

분하였다.


 처음으로 계모의 주연酒宴에 초대받은 호동은 왕후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왕후가 손수 따르는 잔에 자주 손이 갈 뿐이었다.

10대 후반의 왕후는 아이를 낳은 여자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

는 듯 였다.


 왕후 보다 자주 호동은 주전자를 들고 왕후의 잔을 채우기 바빴다.

어머니에게 한 번도 술을 따적이 없는 호동이었다. 점점 더 짙

어가는 왕후의 농담 속에 호동을 얕잡아보는 희롱이 다분했다.


 “얘들아, 너희들은 밖에 나가 있어라.”
 “왕후, 소자, 잠시 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고구려 제일의 헌헌장부이며 미장가인 호동은 처음 보는 여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혼란에 빠뜨리는 재주가 있었다. 그 대상이 나이 어린

여자 아이부터 이빨이 다 빠진 할머니까지 다양하였다. 호동이 볼일을

치고 다시 내실에 들어왔을 때 새로운 술병이 탁자에 올려져 있었

다.


 “왕자, 나는 왕자의 어미입니다. 어미가 자식을 인애하는 일은 당연한

거랍니다. 이리 가까이 오세요. 우두 사람 이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소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왕자는 나의 아들입니다. 아들은 어미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요. 아버

님께서 원정에 르실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지요.”
 왕후의 빨간 입술에 잘 익은 앵두가 물려있었다.


 “송구하와......”
 어린 시절부터 자주 술을 마셔온 왕후의 주량을 호동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왕후가 석잔을 마실 때 예의상 호동도 한잔 정도는 마셔야 했

다. 아버지 무휼만큼은 아니지만 호동왕자도 술에 금방 항복을 하는

질은 아니었다. 또 새 술병이 들어왔다. 아들 호동에게 술을 따르는 어린

왕후의 뽀얀 손등이 호동의 시을 잡고 있었다.


 “영웅호걸은 여자도 잘 다루고 술도 잘 마셔야 한다고 했어요.”
 “아, 그런 말이 있긴 합니다.”


 “세상에는 여자도 많고 독초毒草도 많아요.”
 왕후의 말에는 진한 여운이 배어 있었다. 호동은 왕후의 말을 그냥

흘려버리면 큰 실수를 할 것 같았다.


 “네에. 그렇습니다.”
 “왕자, 왕자는 내가 어미로 보이나요? 내가 여자로 보이나요? 오늘밤

은 밋밋한 모자母子 지간이 아니고 싶어요. 호걸은 때를 잘 잡아야 해

요. 달이 휘영청 밝은 시원한 밤에 명주名酒가 있고, 경국지색이, 미장

부美丈夫가 있고, 아름다운 음률이 있어요. 그 한가운데에 정염의 불꽃

이 타오르고 있고요. 이리 가까이 오세요. 이 어미는 늘 쓸쓸하답니다.”


 왕후의 노골적인 언행에 호동은 당황하였다. 왕후는 악공도 물리고 호

동과 단 둘이 잔을 주고받았다. 왕후는 지그시 눈을 감더니 노래를

렀다.


 翩翩黃鳥(편편황조)   -   펄펄나는 저 꾀꼬리여
 雌雄相依(자웅상의)   -   암수가 서로 정답구나
 念我之獨(염아지독)   -   외로운 이 내몸은  
 誰其與歸(수기여귀)   -    누구와 함께 돌아갈꼬


 “왕자, 이 노래가 나는 마음에 들어요. 시아버님이신 유리 태왕께서

지으신 이 노래가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해요. 세상에는 많은 영

웅호걸들이 있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헌헌장부는 아무리 찾아보아

보이지 않아요. 태왕은 너무 큰 영웅호걸이라 나에게는 너무 버겁

답니다.”


 “왕후, 소자 많이 취한 듯 합니다.”
 호동의 동문서답에 왕후는 속이 끓었다.


 “대장부가 그까짓 술 몇 잔에 심기가 흐려진다면 어찌 장차 대사를

맡아 볼 수 있으리오?"

 “왕후, 송구하옵니다.”


 새로운 술병이 또 들어오면서 왕후와 호동은 평상심平常心을 잃고 말았

다. 날이 밝을 때 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결국 왕후의 교묘한 간계에 의해

진행되었고 왕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앗, 여기가? 여기가 어디지?”
 호동이 일어난 시각은 다음날 오후가 훨씬 지난 뒤였다.


 “왕자, 여기는 왕후의 처소랍니다. 간밤에는 코까지 곯더군요. 많이 취

한 듯 보였어요.”


 “아니, 왕후......”
 호동은 알몸으로 왕후의 침상에 누워있었다. 왕후도 거의 알몸으로 앉아

서 빗으로 긴 머리를 빗고 있었다.


 호동은 아무리 간밤의 일을 생각하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것도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머리가 띵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얼른 손을 아래로 가져갔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가슴팍에는 손톱으로 할퀸 자

국이 선명하고 어지럽게 나 있었다. 몸에서 향긋한 여인의 체취가 솔솔

피어올라 호동의 후각을 자극하였다.


 ‘내가, 내가 계모인 왕후마마와 동침을 하였단 말인가?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음모야. 말도 안 되는 거대한 음모라고. 아들이 어찌 아버지

의 여인을 탐할 수 있단 말인가. 고구려에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는 허용

되지만 부사취모제父死娶母制란 말은 들어보지 못했어. 부사취모는 흉

노족 같은 미개한 종족들이나 하는 부도덕한 일이야. 아, 나는 왕후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구나. 그러나 이일은 나와 계모의 목이 달

린 일. 왕후도 함부로 발설하지 못할 테지.’


 “왕자, 간밤에 좋은꿈 꾸었어요? 그래, 어미가 아닌 여인을 껴안고 잔

기분이 어떻든 가요? 나는 간만에 꽃을 보았어요. 그 무엇으로도 끌 

수 없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을요.”


 “왕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이럴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니에요. 여인이면서 어미의 자격으로 왕자를 가슴에 안고 오랜만에

단잠을 잔 걸요. 괘념치 말아요.”


 호동은 비틀거리며 억지로 왕후의 침상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왕

후의 시비侍婢들이 호동의 초췌한 골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고 자기들 끼리 모여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대단한 것을 발견한 양

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하였다. 


 “저번에는 왕후께서 계루부 고추가高鄒加를 불러들이시더니 어제는 호

동왕자님을 불러들이셨네. 도대 내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남자들

마다 코피가 터지고 마치 전쟁에서 패하여 도망치는 패잔병 모습까?”


 호동이 왕후의 처소에서 하룻밤 묵은 사실이 궁녀들의 입소문을 타고

삽시간에 궁궐 안에 퍼지고 말았다. 사흘 뒤에 왕후는 다시 주연을 준비

하고 호동을 초대하였다. 왕후의 초대는 마치 저승사자의 부름과 같아

서 호동은 감히 거역할 수가 없었다.

 

  


                                                                                 - 계속 -




















'* 창작공간 > 단편 - 월하무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하무정(終)  (0) 2014.08.17
월하무정(5)  (0) 2014.08.03
월하무정(4)  (0) 2014.07.26
월하무정(3)  (0) 2014.07.23
월하무정(2)  (0) 2014.07.2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