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일春日
- 여강 최재효
여인麗人 심중心中에 이미 춘화春花가 난만하고
화접花蝶이 어지러이 날며 상일祥日을 만끽하거늘
안중眼中에 보이느니 쓸쓸한 잿빛 만상萬象이라
화신花神은 저편에 있는데 언제 규중閨中에 오려나
마음 둔 곳은 조석朝夕으로 무너졌다 다시 쌓이고
허공의 상념想念은 눈 감으면 저 멀리 날아가네
밤새 걸어온 차가운 새벽달 서산을 베고 누웠는데
창가에 기댄 어떤 물외인物外人 하얗게 야위었네
세상 시끄러운 일은 질색이라 자주 외진 곳 찾는데
덧없는 일을 멀리 돌아가면 무위無爲가 유익하리
지명知命을 지나도록 할 일을 모르다가 눈을 뜨니
다기多岐의 여정旅程에 서서 어디로 향할지 몰라라
문 닫고 홀로 앉아 오랜 상심傷心을 위로하는데
시나브로 천지사방에 봄기운 스며들었는지
냉기 머물던 금침衾枕에 춘정春情 이는 걸 보니
몸은 소년의 몸이 아니어도 마음은 그대로여라
옛정도 지금 이 마음과 전혀 다를 바 없을 테고
앞에 가인佳人도 뒤에 올 사람과 다르지 않겠지
세상 모든 인연 끊어버리기에는 너무 이른 것일까
내일 무명無名 석자 달뜨는 강물 위에 깊이 새기리
- 창작일 : 2014.03.21.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