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自吟
- 여강 최재효
어느 봄날 같은 겨울밤을 홀로 읊네
두견새 우는 밤에 옥수玉手 살며시 잡았고
배꽃 떨어지는 날 남몰래 별루別淚 뿌렸더니
밤마다 월하빙인月下氷人 꾸중 듣네
어쩌다 거짓말 같은 눈빛에 연연하고
억지로 숙연 끊은 사연 가슴 깊이 묻어야 했지
달도 없는 겨울밤이 천년 같아서
머리가 다 세도록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네
억지로 재갈을 물고 지난 고운 이력
흥이 나서 탕탕蕩蕩했던 화려한 전철前轍
달팽이 뿔 위에서 수유의 춘몽이었고
하룻밤 서럽도록 행복한 추몽秋夢이어라
무지갯빛 고운임 본래 가던 길로 돌아가고
무시로 무명無名 꽃잎 날아들어 쌓이는데
만물의 이치 곰곰이 따져보니
눈물 마른 정인情人은 언제나 외인外人이라네
연인은 허전함을 달래주는 붉은 입술이어라
행인行人은 꿀맛을 탐하는 불나비여라
어찌 불치의 병 얻은 사내가 한 사람 뿐일까
이제는 귀신도 속는 참된 세상이라네
반쯤 와서 내가 그린 벽화壁畵를 바라보니
한쪽은 만화방창 수려하고
나머지 한쪽은 추상秋霜으로 얼룩져 있어
누가 볼까 부끄러워 얼른 감추고 말았네
천지신명께서 장차 이 나그네를 어찌 하시려나
몸은 길을 가면서도 생각은 멈추었는데
근원을 잃은 가련한 부도옹不倒翁 같아서
언제까지 넘어졌다 일어나길 계속해야 될까
흥이 없으니 마시는 잔 마다 독으로 변하고
취하면 밤인지 낮인지 알 수가 없어
광인狂人 되어 고래고래 소리치면
죽음 같은 적막寂寞이 반갑게 달려온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