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不語
- 여강 최재효
여인旅人의 공방空房에 사람 없어
달빛을 벗 삼아 앉아있네
붕정만리 날아가다 지친 새처럼
가엾은 심신이 금방 무너질 듯 하네
세파에 밀려 떠다니다가
진퇴進退를 몰라 하늘 노여움 받고
세치 혀 헛되이 놀려
천지신명 미움 한 몸에 받은 듯 하네
구름이 비가 되고
물이 불이 되는 것이 상정常情이라
아침이면 하늘 보며 세상 운수 살피고
밤이면 별을 헤며 앞길을 보네
풍진風塵에 야박한 인심 널리 퍼지고
고개 넘어 겨우 세사世事를 알게 되었는데
소와 말에게 말을 걸어도 대답 없으니
술 맛이 자꾸만 이상해지네
창 밖에 겨울나무 묵상黙想 중이고
온실에 목인木人 회상回想하고 있으니
꽃 피고 새 날아오면
하늘 보며 파안대소할 수 있으리
[주] 不語(아닐 불, 말씀어) / 旅人(나그네 려, 사람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