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페타꽁쁠리(1)

* 창작공간/중편 - 페타꽁쁠리

by 여강 최재효 2012. 8. 5. 00:33

본문

 

 

 

  

 

 

                                   

 

 

 

 

 


                       페타꽁쁠리

 

 

 

  

                                                                                                                                                                    - 여강 최재효

                                       

 


                                               1

 


 예상했던 것 보다 두 시간이 더 걸려 오후 4시경 나는 제일 먼저 속초

 D콘도에 도착하였다. 물론 하계휴가철이라 땡볕아래 서울서 속초까지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대학 동창에게 부탁하여

간신히 동창 소유의 콘도에 도착하자마자 프런트에서 약속한 일행을

찾아보았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끈적거리는 몸을 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적당히 시원한 맥주

를 마시며 온통 회색으로 덧칠된 동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다

저 멀리서 올봄에 이혼한 전처(前妻) 진옥의 환영이 보였다. 그녀는

긴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의 이혼은 전격적으로 이루어 졌다. 물론 아내의 심중에는 오래전

부터 이별의 씨앗들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있었을 테다. 나는 길게 심

호흡을 하고나서 단숨에 캔을 비우고 담배를 빼물었다. 결혼생활 23년

만에 나는 다시 홀로되었다.  물론 나와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이

들이 있지만 오랜 세월 아내의 세뇌교육을 받은 탓에 내가 콩으로 메주

를 쑤어도 아이들은 나를 믿지 않는다.


 반대로 아내가 팥으로 메주를 쑤어 두 아이들에게 내놓으면 당연히

두 아이들은 ‘우리엄마가 만든 메주가 최고다’라고 할 정도다. 나는 결

이후에 장만한 손바닥만 한 아파트 두 채를 미련 없이 아내에게 위

료로 생각하고 넘겨주었다.


 아내는 두 아이들이 결혼할 때 까지 맡아서 키우겠다고 했다. 나는

아무래도 세상을 낚으려고 불철주야 천로역정(天路歷程)하는 내가 데

리고 있는 것 보다 백번 낫다고 판단했다.


 나는 요즘 들어 조상님들이 말씀하신 인생에 관한 온갖 종류의 금언

(金言)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대부분 지당하

고 금과옥조같은 말씀들이지만 더러는 핀트가 어긋난 말씀도 있다. 물

론 시대가 변하고 인간의 생활 행태가 수백 년전 조상들께서 상상도 못

했던 문명이라는 괴물들이 빈번히 나타났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나같이 법이 없어도 살아가는 순진한 사람들은 조상님들 말

씀을 생명처럼 여기고 살다가 피해를 당하는 부류일지도 모른다는 피

해의식이 엄습할 때도 있다. 부창부수, 해로동혈, 현모양처 같은 지극

히 유교적 냄새가 진한 말을 힘주어 말하는 부류는 베이비붐세대를

포함한 그 이전 세대들에게 국한되어야 한다.


 수천 년 동안 우리사회를 이끌던 가부장 사회가 빈사상태에 이르고,

철기문화의 도래로 슬그머니 자취도 없이 사라진 모계사회가 예고도

없이 부활되어 현대 가장들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세상이 변하면 변한대로 맞추어 살아가야하는데 오랜 세월 남성위주

사회에서 잔뼈가 굵은 나를 비롯한 내 또래 사내들은 선뜻 가정에서

지존(至尊) 자리를 내어주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여왕벌이 된 아내들은  남편의 완고함을 뒤로하고 아이들을 품에 안고

미련없이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서 떠난다. 요즘 한 집 건너 독거세대

살고 있다. 대부분 시류(時流)에 영합하지 못한 고집 센 남정네들이

다.


 나 같은 경우는 정말로 억울하고 원통한 경우에 해당한다. 지난 23년

간 마누라와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느라 변변하게 좋은 옷, 좋은

음식, 해외여행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회사 다니면서도 남들처럼

푸른 초원을 누비며, 골프채를 휘두르거나, 스킨스쿠버나, 승마 같은

제법 경제적 부담이 되는 취미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오로마누라와 아이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앞만 바라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마누라에게 이혼 요구를 받고 나서 지난 결혼생활을 뒤돌

아 볼 틈도 없이 며칠 고민하다가 협의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말았

다. 나는 2년만에 아내에게 두 번째 이혼 요구를 받고 혼란스러웠다.


 처음 이혼을 요구받았을 때 나는 무조건 아내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

각 뿐이었지만 이제는 아내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고 싶었다.  이미 마

음이 떠난 사람을 잡고 있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테라스에 빈 맥주 캔이 쌓일 때 즈음 내 휴대폰이 진동하였다. 부산에

서 출발한 대현이라는 남자에게서 10분 내로 도착한다는 문자였다. 서

울서 출발했다는 혜진이란 여인만 도착하면 우리의 거창한 파티를 개최

할 예정이다. 나는 프런트에 연락하여 냉장고 안에 맥주와 음료수를 더

채워 넣었다.


인터폰이 울렸다. 대현이란 남자였다. 머리가 약간 벗겨진 대현의 육중

한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다시피 했다. 대현은 나와 악수를 마치고 곧바

로 샤워를 하겠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

는 혜진이란 여인이 걱정되었다. 번개가 치고 나면 곧 천지가 흔들렸다.


 나는 10일전 일을 떠올렸다.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외로운 사람들이 사이버에서 만나 자신의 허전한 가슴을 채워주는 카

페에 들어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카페에 세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나

는 흑기사란 닉네임을 가진 사람에게 채팅을 신청하였다.


 흑기사는 채팅방에 들어와 대화를 기다리는 듯 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와 피안(彼岸)으로 떠나보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피안이

디인지 모르는 흑기사는 물음표만 몇 개 남겨놓고 인사도 없이 나

버렸다. 나는 속으로 무식한 사람이라고 분노하며, 방을 나가려다

선화라는 닉네임에게 채팅을 신청하였다. 닉네임으로 보아 여자

가능성이 높았다.


 수선화가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다고 인사를 한 뒤에 곧

바로 ‘수선화님, 저와 피안을 여행해 보실래요?’하고 제안하자 수선화

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좋아요’라는 화답을 보냈다. 내가 말하는 피안

이란, 오탁악세(五濁惡世)인 차안(此岸)의 반대말로서 저승을 가리

는 말이었다.


 나는 수선화가 나의 의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장난으로 하는 말로

인식하였다. 내가 재차 피안으로의 여행을 장황하게 설명하려하자 수

선화는 만날 시간과 장소를 말해달라고 하였다. 나는 10일 후 강원도

속초 D콘도로 오후 5시까지 오라고 했다. 수선화와 채팅을 마치고

나는 나의 휴대전화 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쪽지로 전송했다.


 웹서핑을 마치려고 하자 수선화에게서 쪽지가 배달되었다. 나는 묘

한 기분으로 쪽지를 열어 보았다. 나에게 얼른 이메일을 열어보라는

내용이었다. 정말로 그에게서 이메일이 와 있었다. 자신은 서울 은평

구에 사는 46세로 평범한 가정 주부로 얼마전에 남편에게 이혼당한

여자라고 했다.


 하루 빨리 세상을 뜨고 싶다는 내용과 함께 지난 10년간 주식투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며, 간략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 없이 주식 투자를 하면서 한때는 여왕벌이 되기도 하였고, 거지가

되기도 하였으며, 기사회생하여 투기꾼으로 또는 사기꾼으로 전락

하여 남편에게 이혼 당하고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이 병든 몸으로 하

루하루 모진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2년 전 나의 상황을 돌아보았다. 나 역시 증권에 대하여 문외

한(門外漢)이었다. 고향 친구 녀석이 어느 날 퇴근 무렵 회사로 찾아

왔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 친구와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던

사이면서 대학입시 공부를 함께하며 미래에 대한 청운의 꿈을 함

꾸기도 하였다.


 고급 외제차를 타고 온 친구는 거의 20년 동안 연락이 없었다.

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녀석과 밤을 새우며 술집을 전전하면서 그간

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녀석은 주식을 하여 일확천금을 거

머쥐었다면서 자랑이 대단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주식에 대하여 관

심을 가지고 평소에는 읽지도 않던 일간 신문의 경제란을 읽기 시작

하였다.


 그러나 경제면을 접하면 접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아무리 읽어보

아도 주식과 나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일주일 쯤 그 죽마고우로부

터 전화가 왔다. 나에게 책을 보냈으니 꼭 읽어 보라고 하였다. 불알

친구가 보내온 책은 증권에 관한 초보자 입문서였다.


 슈퍼개미 X가 단돈 500만원으로 5년 만에 100억 원을 거머쥐었

다는 다소 허황되면서 공허한 내용을 접하면서 나 역시 재벌이 된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X는 전처와 이혼하고 미스코리아 출신

의 여인을 새 반려자로 맞아들였다고 했다. 300평이 넘는 저택에

살면서 IT관련 벤처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의 부러움을 한 몸

에 받고 있다. 직원 100여명을 거느린 회사의 오너, 일부 금융권도

그의 말 마디에 죽는 시늉을 하한단다.


 나는 아내 몰래 그간 저축해 놓은 돈을 인출하고 회사동료에게 돈

을 빌려 간신히 2천만을 마련하였다. 나는 친구가 보내준 책을 10번

도 더 읽어 보았다. 지긋지긋한 회사원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

생을 항해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코스닥에 상장된 S전자 주식에 2,000만원 모두를

투자하였다. 겁도 없이 한 회사주식에 몰빵한 것이다. 나는 3개월째

강세(强勢)를 보이며 끝을 모르게 치솟고 있는 주식을 주시하며 밤

잠을 잊어야 했다.


 낮에는 직장상사와 동료들의 눈을 피해 주식에 전념하였다. 점심

시간이면 으레 그런 것처럼 회사를 빠져나와 차를 타고 집에 가서

컴퓨터 모니터를 켜고 가슴을 졸였다. 천지신명은 분명히 나의 편

이었다. 나는 첫 번째 투자에서 보름 만에 20% 이상의 순이익을

보았다.


 이런 추세로 5년만 투자, 아니 투기를 한다면 나는 정말로 재벌

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하였다. 나는 친구를 불러 밤새 주식 이야

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친구도 나의 대박에 축하한다며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나는 마누라에게 용돈 하라고 200만원을

건넸다.


 마누라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며 ‘혹시 내가 어디서 도둑질하여

번 돈이 아닌가?’ 하는 ,의혹에 찬 시선을 보냈다. 나의 장황한 설명

에 고무된 아내는 이제야 내가 제대로 된 인생길에 접어들었다며,

나를 추켜세웠다. 실로 오랜만에 아내에게서 환대를 받았다.


 나는 다시 원금을 테마주인 D물산주식에 몰빵하기로 했다. 지난해

D물산의 회계 관련 자료를 내 방식대로 기술적 분석을 해보기도

하였다. 지난해 말부터 5개월간 박스권에서 횡보(橫步)하며, 등락

을 거듭하다가 하락세에 접어들어 바닥권까지 내려간 상태여서 나는

이상 저가(低價)를 형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女神)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최저가를 형성

하던 D물산의 주식은 잠시 상승세에 접어들더니 끝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잠시의 조정기(調整期)를 상승추세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

한 것이다.


 나의 허술한 기술적 분석으로 나는 피같은 종자돈을 날리고 말았다.

허탈하였다. 죽고 싶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나를 비웃는 듯 했다.

나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나는 아내에

게 출근한다고 속이고 하루 종일 집근처 PC방에서 주식관련 사이트

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최근에 주식으로 대박을 터트려 수백원의 수익을 올렸다는, 어느

투기꾼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여 카페에 올려진 무수한

투자기법을 하나하나 탐독하였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혼란에 빠졌다.


 내가 지나간 나의 비사(悲史)를 회고하는 사이에 대현은 샤워를

마치고 캔 맥주를 입에 물고 있었다. 대현의 거대한 비곗덩어리가

가뜩이나 뜨거운 날에 실내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대현

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나는 맥주로 가득한 내 뱃속에

차가운 맥주를 더 들이부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대현은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부산에서 횟집을 운영한다고 했다. 물론 대현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는 이메일로 받아서 알고 있었다. 지난 10년간 30억

원을 주식에 탕진한 뒤 아내와 이혼하고, 무일푼이 되어 밤거리를

전하는 가련한 신세라고 하였다. 우리가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

들고 있을 때 인터폰이 울렸다. 혜진이라는 여인이 분명했다. 대현

얼른 현관으로 뛰어 나갔다.


 약속시간 보다 늦게 도착한 혜진은 40대 중반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발랄하면서도 얼굴에 주식 투기에 실패한 우울한 모습은 찾

아 볼 수 없었다. 하얀바지에 붉은색 티셔츠 차림의 혜진은 새치름

해 보이면서 금방 바다에서 잡아올린 생선같았다.


 의뭉스러워 보이는 눈빛을 가진 대현은 그녀와 초면이면서도 마치

10년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인것 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혜진의

생머리는 나를 추억속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까지 내 뇌리속에서 잠자고 있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긴 생머리를 가

진 여자들이었다. 나는 혜진과 악수를 하면서 그녀의 손 등에 살짝 키

스를 하였다. 서울서 쉬지않고 달려오느라 지칠법도하건만 그녀는

소풍나온 소녀처럼 생글거렸다.


 세 사람의 생체시계는 동시에 시장기를 느끼게 했다. 나는 멀리 가지

말고 가까운 회집에 가서 저녁을 들고 2차로 단란주점에 들리자고 하

였다. 이미 내가 이메일로 대략적인 스케줄을 보내준터라 두 사람은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았다.


 우리는 시원한 바다가 손에 잡힐 것 같은 전망이 좋은 회집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차안(此岸)에서의 마지막 만찬(晩餐)이라 우리는 가

장 비싼 메뉴로 선정하여 술을 곁들이며, 저녁 식사를 시작하였다.


 빈 소주병이 테이블 위에 마치 전신주처럼 길게 일렬로 서자 먼

저 대현이 혀가 반쯤 꼬부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주식

으로 가장 재미를 보았던 시절을 마치 무용담(武勇談)하듯 떠들어

댔다.


 우리가 회집에 들어올 때부터 혼자 소주잔을 홀짝거리던 남자

가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를 몰래 듣고 있는 듯 했다. 무슨 사연이

있는 남자인지 모르지만 바닷가 회집에서 우수에 찬 눈빛으로 홀로

술을 마시는 걸로 보아서 평범한 사람같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 남자를 의식하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 하였다. 우리는 돌

가면서 어찌하다 주식에 몰두하여 오늘같은 처참한 모습이 된 내

력을 이야기하였다. 대략적인 내막은 서로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

용은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오늘의 모임을 주선한 입장으로 모임을 재미있게 이끌 책임이

있었다. 더 취하여 인사불성이 되기전에 대현의 입에서 그의 파란만

장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계속 -

 

 

'* 창작공간 > 중편 - 페타꽁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타꽁쁠리(終)  (0) 2012.08.10
페타꽁쁠리(5)  (0) 2012.08.09
페타꽁쁠리(4)  (0) 2012.08.06
페타꽁쁠리(3)  (0) 2012.08.06
페타꽁쁠리(2)  (0) 2012.08.05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