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주 한잔 비우는 사이에
- 여강 최재효
‘어느새 내가 또 세사世事에 적당히 타협하고 간사奸邪해진 걸까? 나도 저 사바娑婆의
범인凡人과 같이 어쩔 수 없는 속물俗物이 분명할 거야. 아아, 여긴 봄기운이 완연 하건만,
내 가슴에는 언제 훈풍薰風이 불꼬......’ 차갑게 식은 깁밥과 쌀뜨물처럼 밍밍해진 감주甘
酒에 앙상한 손이 간다. 벌써 네 시간 째 양지바른 봉분封墳 사이에 앉아 남녘으로 흘러가
는 구름에게 불초不肖의 소식을 띄우기도 하고, 산새와 무언無言의 대화를 하면서 내가 어
찌하여 지금 이 시간에 이 곳 쓸쓸한 사자死者의 영토에서 위안慰安을 얻어야 하는지 자문
自問하고 있다.
내가 사는 만수동 아파트단지에서 평범한 산 하나 넘으면 20만 선인先人들이 입주入住해
있는 부평가족공원이 있다. 알파벳 S자를 여러 개 이어놓은 듯 하늘선과 닿은 산의 경계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봄이면 진달래, 산수유, 개나리, 목련 등 봄의 화신花神들이 빼어
난 자태를 자랑하고, 여름이면 녹음綠陰이 울창한 수목 사이에 아담하고 단정하게 가꿔진
유택幽宅들이 마치 꿈속에서 본 선계仙界 같다. 하지만 만추晩秋의 공원은 세상을 거만하
고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꼭 가봐야 할 듯하다. 또한 엄동嚴冬의 모습은
이유도 없이 방문자의 누선淚腺을 자극하여 나 처럼 여린 가슴을 지닌 사람에게는 큰 부담
이 될 수 있다.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는 부부와 가족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단어를 하루 종일 곱씹어
보기 위해서라면 어떤 사람은 나를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회색
화강암과 오석烏石에 대한민국 모든 성씨姓氏의 현주소가 단단하게 각인刻印되어 있
다. 나는 이곳에 올 때 마다 각 그 가문家門의 내력來歷을 파악하기에 분주하다. 화려하
고 단단해 보이는 검은 비석에 자식들과 손자, 사위, 자부子婦 등 선인先人께서 살아생
전 가꿔놓은 인연의 끈들이 얽히고 설켜 있다. 비록 저승에 들었지만 참으로 행복한 분
들이 분명하다. 천수天壽를 다 누리고 속세에 확실한 뿌리를 남겼으니 병고病苦나 뜻하
지 않은 사고事故로 세상을 등진 사람들에 비한다면 어찌 여한餘恨이 있으리오.
이곳에 드나들면서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의 본질은
비슷한 시기에 이승에 태어나 부부夫婦의 인연을 맺고 호적戶籍에 올라 있던 아내나
남편의 이름은 어느 가문의 묘비석墓碑石에도 불구하고 뒷면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아들, 딸, 손자, 며느리, 사위의 이름은 쓰여 있는데 어째서 가장 가까웠던 생전의 배우
자 이름은 없는 것일까. 언젠가 수많은 비문碑文을 하나 하나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
을 흘린 적이 있었다.
비문 뒷면에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탄哀歎해 하는 남편의 자작自作 연시戀詩
가 있었다. 자신의 사랑이 부족하여 아내가 세상을 떠서 너무나 슬픈 나머지 훗날 저
승에 들면 다시 부부의 연을 맺어 사죄謝罪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
리에 서서 그 애절한 시구를 수 없이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 두 사람의 연정
戀情이 너무 깊은 나머지 질투심 많은 세상이 갈라놓았을 테지......’
맞벌이로 인하여 부창부수夫唱婦隨니, 남부여대男負女戴니, 거안제미擧案齊眉니, 현
모양처賢母良妻니 하는 남성 위주의 전통적인 생활의 양식樣式이 변해 버렸다. 그야말
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할 수 있겠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내에게 된장찌개를 끓여
달라고 말할 수 있는 간 큰 남편이 얼마나 될까. 아내에게 일찍 귀가하여 저녁밥 차려 달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남편이 또 얼마나 될까. 필자筆者의 경우도 20년째 맞벌이
인데 대개 아침 식사는 혼자 차려 먹거나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저녁 식사 역시
거의 회사에서 해결하고 귀가 한다. 한 달에 아내와 밥상을 마주하는 횟수는 서너 번이
고작이다. 금수강산에서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차차 사라지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斟酌할 수 있겠다.
부부의 최고 미덕美德은 한 평생 동고동락을 함께하고 동시에 같은 무덤에 들어가는
일이다. 필자의 고향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점봉리 청마루 양지 바른 곳에 해주최씨좌
랑공파海州崔氏佐郞公派 선영先塋이 있다. 많은 조상님들 묘소 중에 나는 한 기基로 있
는 고조부高祖父님의 산소에 정이 간다. 다른 조상님들 묘는 부부가 산과 들녘을 경계로
따로 떨어져 후손들에게 안타까움을 주는 반면 고조부는 내외가 동혈同穴에 영면永眠해
있어 성묘省墓하는 후손들에게 안정감과 인간적인 연민憐憫을 느끼게 한다.
짐작하건데 날로 증가하는 묘소墓所로 국토가 묘지화墓地化 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정
부政府는 화장火葬을 적극 권유하고 있으며, 현재 사망자 70% 이상이 자의반 타의반으
로 화장을 선호選好하는 추세趨勢라고 한다. 물론 사후死後 자신의 유택幽宅을 수시로
관리해 줄 후손이 없거나, 경제적 여유가 없어 화장을 하는 경우도 있으리라.
장례葬禮의 방식이야 어떠하든 죽어서도 생전처럼 부부가 함께 한다는 것은 현재의
사회 분위기로 볼 때 앞으로는 더욱 어려울 듯 싶다. 신혼여행 다녀온 뒤 곧 바로 이혼
하는 부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아이들이 대학교에 진학하는 시기에 맞춰 이혼하
는 중년 부부들도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핵가족, 여권신장
女權伸張,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 등 여러 여건으로 미루어 이러한 상황은 당분간 지
속될 것으로 본다.
황혼黃昏에 접어든 부부가 이혼 한다는 것은 파천황破天荒에 버금가는 일이요, 당사
자뿐만 아니라 부모형제, 자식들 더 나가 후손들에게 오랜 세월 커다란 멍에를 씌우는
일이다. 이혼한 부부의 90%가 곧 바로 후회한다고 한다. 당장은 홀가분하고 자유롭겠
지만, 그 상태는 곧 우울증과 폭음暴飮, 자책自責, 상실감, 배신감, 고독 등, 범인凡人
의 삶과 동떨어진 상황에 빠지게 된다. 다른 이성과의 재혼再婚 역시 만만치 않다. 황
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의 재혼은 사랑이 아닌 경제력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연령대 구조를 보면 종형鐘形에서 역삼각형으로 변해가고 있다.
일반회사원이 54세에 정년을 맞고 공무원들은 60세에 정년停年을 맞는다. 즉, 사회에서
용도폐기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의료기술 발달로 정년이후 30년 긴 경우 4,50년을 더 산
다는 데 있다. 정년 이후 노후준비老後準備가 안 된 사람들의 경우 사회의 시선에서 멀
어져 그들의 삶은 지금의 생활수준의 1/3에서 길고 긴 세월을 힘들게 살아가야 한다.
각종 경조사慶弔事, 친목회, 여가할동 등 상당 부분에 투입되는 지출을 할 수 없게 된
다. 각종 보험, 연금이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 보험과 연금이 2,30년 후 물가상승 폭을
감안하여 인간다운 삶을 유지 시켜줄지 의문이다. 부부에게 있어 최고의 연금이자 보
험은 현재 살을 맞대고 살고있는 배우자配偶者라 할 수 있다. 황혼 이후 단독세대가 점
차 증가하고 있다. 서로의 부담은 부부 서로 나눠야 한다. 자식과 형제들에게 그 무겁고
힘든 짐을 전가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판단착오가 분명할 테다. 빈 털털이 부모에게 어
떤 자식이 효도를 할까.
대개 황혼 이후 단독세대는 협의協議 또는 소송訴訟으로 부부 관계를 청산淸算하였
거나 배우자 사별死別이 그 원인이 된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도 요즘
들어 부쩍 홀로된 노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가장家長, 아버지, 엄숙嚴肅, 독단獨斷,
카리스마, 마쵸, 집안의 중심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한 즉,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탓에 스스로 홀로된 외롭고 쓸쓸한 영혼들이다. 20대 이하 자녀들은 뉴스
보다 개그를, '홍도야 울지마라' 같은 흘러간 옛 노래보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가 부
르는 K-Pop을 선호 한다.
고정관념을 탈피하지 못하면 아내나 자식들로부터 외면받기 쉽다. ‘아, 옛날이여!’라
고 아무리 외쳐봐야 공산空山에 메아리에 불과하다. 배우자 있는 노년층과 그렇지 않
은 경우는 삶이 질에서 부터 차이가 난다. 요즘 노부모가 아프면 거의 요양소에 모신
다. 들어가면 죽어서 나올 때 까지 자식들의 감시를 받는다. 홀로된 경우는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늙어서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그러하다.
빈 털털이 부모에게 자식들은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나 역시 시대의 흐름에 적시適時에 편승便乘하지 못한 우둔한 탓으로 이곳에 자주 찾
아와 산새 소리를 듣고, 부질없는 옛 일을 떠올리며 구름이나 바람을 벗으로 두고 있다.
부부는 무촌無村이기에 심신心身이 일치된, 가장 가까운 동반자同伴者로 지극한 복락福
樂을 누린 뒤 해로동혈偕老同穴하거나 또는 무시무시한 가시고기가 되어 서로를 찔러
상처를 내는 악연惡緣으로 변질되어 이승에 태어난 사명使命을 망각忘却한 채 방황하는
불쌍한 영혼이 되기도 한다. 남편이 먼저 죽거나 혹은 아내가 세상을 등질 때 나중을 생
각해서 문중門中에서는 배우자의 이름을 비문碑文에 적지 않는다.
남편 사별 후 청상靑孀이나 과부寡婦가 된 배우자는 또 다른 인연을 찾아가야 하기 때
문이다. 20세기 중반에는 청상을 보쌈해가도 큰 죄가 아니었다. 만약 지금 그런일을 시
도한다면 납치범이나 성폭행범으로 몰려 감옥에 가야 한다. 그러나 천륜天倫인 자식들
은 그렇지 않다. 한번 누구의 자식이 되면 수억만 년 흘러도 여전히 누구의 자식이 된다.
어쩌면 배우자 이름을 비석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살아있는 배우자에 대한 마지막 배려
配慮 차원 이리라.
봄꽃 만발한 윤사월 사자死者의 마을에 무례하게 들어와 산새, 춘풍春風, 흰 구름, 바위,
잎싹이 파릇한 나무, 아기자기하게 단장해 놓은 무수한 가문의 봉분封墳 그 곁에 텁텁한
탁주濁酒 한사발이 제법 어울릴 듯 싶다. 오랜 시간의 결가부좌結跏趺坐로 다리가 저려
온다. 산 중턱 쯤 내려왔을 때 따뜻한 비문碑文이 눈에 들어왔다. 비석 앞면에 “全州李公
00之墓 / 孺人密陽朴氏之墓”라고 적혀 있었다. 시커먼 돌이 이상하게 하얗게 보이는 까
닭이 무엇인지, 나는 부평가족공원을 나설 때 까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끝내 알
수 없었다.
- 창작일 : 2012.4.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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