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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에게 보내는 시선

* 창작공간/Essay 모음 1

by 여강 최재효 2014. 10. 1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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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나에게 보내는 시선

 

 

 

 

 

                                                                                                                                                                                       - 여강 최재효

 

 

 

 

 

 

 

 잠자리가 서늘해졌다.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한 다음 습관처럼 창문을 연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때문인지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따금 소슬바람에 우수수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만 들려

온다. 서천에 반쯤 사그라진 하현달이 배시시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다. 별들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모양이다. 내가 마치 잠이 없는 노인이 된 느낌이 든다.

 

 지난해 이맘 때 미수米壽의 연세로 돌아가신 어머님은 하룻밤에 열두 번도 더 앉았다 눕기를 반복하

셨다. 가지 많은 나무는 미풍微風에도 시달리기 마련인가 보다. 이제 겨우 지천명知天命의 가운데

서서 바라보는 캄캄한 밤하늘. 보이는 이는 나와 달 뿐이다.


 “이보시게, 이승에 살면서 마음 상해할 거 없네. 생生은 한번이 아닐세.”
 눈치 빠른 효월曉月이 내 등을 토닥거리며 상심傷心한 중년을 달래주고 있었다. 야심한 시각 사람이

아닌 영물靈物에게 위안을 받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듯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군청색 하늘 바다를

홀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거인巨人이나 만상萬象이 주변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이 예토穢土에 한

티끌처럼 조용히 살아가는 이 몸이나 크게 다를 게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지 않다.


 나는 이미 과거의 나를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다. 정확히 백 년 전인지 천 년 전인지 또 어디에 살았

었는지 그리고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미물微物이었는 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재 내가 사람의 형체

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과거의 나도 역시 사람이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백일몽白日夢 같은 무의식

에서 나는 분명 내 옛 흔적을 어렴풋하게나마 만날 수 있었다. 그 동안 내가 경험한 여러 정황으로 보

아서 나는 분명 과거에 사람이 아닌 듯 했다. 그렇다고 과거 생에서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육도六道

중에서 삼선도三善道를 걸을 수 있는 선행善行을 쌓아 남섬부주南贍部洲에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말

하려는 게 아니다.


 요즘 한국에 사는 사람은 보통 80년 정도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생을 산다. 백 년 전인 조선 말기에는

평균 수명이 오십 안팎 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에 회갑연回甲宴을 열 수 있는 사람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에도 큰 행운이었다. 만일 없는 집안에서 백세를 살았다면 그는 자식들에게 고려장高麗葬

대상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자신에게 탓하는 수밖에 별 수 없었으리. 가만히 내

가 사는 주변을 살펴보면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일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가문에도 축복이 분명

하다.


 언젠가 나는 BBC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인류의 진화進化에 관한 영상물을 접하고 큰 감명을 받

은 적이 있다. 45억 년 전 삼천대천 우주 허공에서 먼지, 얼음덩어리, 가스 등 여러 가지 물질요소들

떠돌다 한데 뭉쳐 지구라는 암석 행성이 생성되었다. 지구 탄생 당시 화산이 폭발할 때 흘러나오는

용암鎔巖처럼 지구는 불덩어리였다. 연옥煉獄이며 불지옥 즉, 화탕지옥火湯地獄이었다.

 

 지금의 태양처럼 표면온도가 6000도가 넘는 이글거리는 불덩이였다. 탄생 이후 수억 년 동안 지구는

태양계와 태양계 밖에서 날아드는 각종 혹성, 혜성, 유성, 암석덩이 등 무량수無量數의 공격을 받았다.

지구가 서서히 식으면서 물이 고이고 단백질과 아미노산 등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인자들이 생겨나

면서 생명체가 탄생되었다.


 그리고 수억 년이 지나면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현재의 인류로 발전하였다. 지금 세상은 성경의

창세기를 믿는 사람들과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분파로 갈라져 있다. 삼엽충三葉蟲이나 아메바 같

은 하등 생명체에서 진화하여 현생인류가 나왔다는 사실은 분명 기적이며 끈질긴 인류의 생명력을 보여

주는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주변의 생명체들을 보면 그 수가 수백 수천만 종류로 다양하다.

단지 그들의 조상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사람, 개, 소, 돼지, 원숭이, 뱀, 새, 물고기

등 다양한 형태로 이 지구촌에 공생共生하고 있다.


 나의 먼 조상이 돼지였다면 나는 현재 돼지우리에서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언제 인간

들의 맛있는 음식이 될지 모르는 채 하루하루 살아가리라. 언젠가 나는 인간의 식탐食貪으로 살은 잘

게 썰려 불판에 올려져 구워질 테고, 피는 맛있는 선짓국이 되어 그릇에 담겨 사람의 한 끼 식사로 흔

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을 맞이하리라.


 석가모니가 사위국舍衛國에 계실 때 제자 아난阿難과 길을 걷다가 한 무더기의 인골人骨을 보시고

공손히 절을 하였다. 곁에 있던 아난이 석가의 기이한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자 부처는 ‘이 뼈는 과거

세過去世에 부모님의 뼈가 아니겠느냐?’라고 하였다. 사람의 뼈이니 그 뼈와 인연이 되어 그 뼈로 인

하여 사람이 태어났을 터. 그러니 그 뼈의 주인공이 나의 조상님이 될 수도 있을 터. 아난은 그제야

스승의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석가모니께서 육도六道의 순환 원리를 이해하셨기 때문에 인골이 아니더라도 똑같이 행동하

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생을 금하고 고기를 먹지 말도록 제자들에게 가르쳤으리라.

저 유현幽玄한 하늘을 대기권에서 슈퍼망원경으로 보면 별들의 탄생과 죽음 등 충격적인 장면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공간에서 보면 티끌에 불과하다. 그 티끌 안에 60억

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다. 나는 1/6,000,000,000에 해당하는 미미한 존재라니, 티끌 안에 또 다른 티끌

이다. 그러나 지구에 터전을 두고 사는 모든 생명체를 포함하여 나의 존재를 살펴보면 가히 그 존재의

의미를 가늠할 수 없다.


 내가 즐겨 쓰는 숫자에 항하사恒河沙란 말이 있다. 풀어보면 항하사는 인도 갠지스 강의 모래알을 뜻

한다. 항하사만큼 지구에는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다. 인간 중심에서 봤을 때 60억 인구지만 지구내의

모든 생명체를 합한 숫자로 보았을 때 나(1)는 갠지스 강의 모래알 하나의 존재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어떤 이는 잠시 살다 가면서 비석에 그간의 족적들을 화려하게 남긴다. 결국 자신을 과거세에 잡아

두고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고 있다. 인류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현재까지 겨우 10만년

정도 살았을 뿐이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무량수의 암석 띠가 존재하고 있다. 그 어마어마한 돌덩이 중

에 직경 20Km 쯤 되는 것이 지구로 떨어지는 날에 인류는 멸종하고 만다. 우주에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별들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다.


 나의 과거세過去世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게 되었지만 여전히 두려운 일이 있다. 그것은 나의 미래세

未來世이다. 어떤 한 사람의 현재 삶의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의 과거세와 미래세가 보인다. 사기를 치거

나 정도正道가 아닌 사술邪術로 한 평생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삶은 곧 미래세의 불행을 의미한다. 세

상에 비밀이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천지신명 즉, 하늘, 땅, 자기 자신, 달, 별, 바람,

나무, 바위, 유정有精과 무정無精의 정령들이 보고 있다. 삼라만상이 모두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한 사

람의 일탈逸脫은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생명들과 그의 자자손손에게 그 악기惡氣의 영향을 받게

다.


 시간이란 개념은 별들의 이동을 보고 사람들이 매 순간순간을 잘게 쪼개놓은 것에 불과하다. 우주

어느 곳에서 보면 지구도 하나의 별이다. 단지 사람들은 태양과 지구 그리고 달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시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지구를 벗어나면 무의미 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구의 시간과

수치 개념으로 온 우주를 가늠하려고 한다. 또한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생명의 기원과 그 생명들의 운

명을 붙잡아 두려고 한다. 시공을 초월한 삼천대천의 공간에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다. 또 다른 내가

과거세의 나이며 곧 미래세의 내가 된다. 그러나 그 모습은 사람, 개, 돼지, 소, 닭, 새, 악어, 뱀처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양이 아니다.


 지구 중력에 의해 사람은 현재의 사람의 모양으로 뱀은 현재의 뱀의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일 뿐이다.

지구 중력의 수백 또는 수천 배 되는 다른 행성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양을

띠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는 뜻은 삼천대천의 광활한 우주 어느 곳에 본래의

모습 혹은 또 다른 모습의 자신으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어느 별의 먼지가 될 수도 있고 지구 대서양

깊은 해연海淵의 미물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수천 년 후에 운이 좋아 부귀영화의 복락을 누리는 여

인의 자궁子宮에 들면 다시 극락왕생하는 일이 되고 불행하게도 돼지의 자궁에 들면 돼지로 태어

나게 된다. 


 이왕 돌아갈 운명이라면 굳이 지구에 남아있는 가족이나 지인知人 또는 이승에서 인연을 맺거나

관계를 가졌던 주변의 모든 유정有精 혹은 무정無精들에게 욕먹을 짓을 하면 어떻겠는가. 아마도

홀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비록 내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악행을 멀리하

고 사람처럼 살면 시공을 뛰어넘어 과거세나 미래세 혹은 현세에 왕후장상王侯將相의 가문에서

시 태어날 수도 있다.

 

 그 반대의 인생은 인간이 아니거나 영원히 우주를 떠도는 티끌로 머무를 수도 있다. 1억 광년光年

쯤 떨어진 한 은하銀河에 내가 살고 있다. 또 다른 무수히 많은 내가 저 삼천대천에 흩어진 별들에

살면서 서로 왕래를 하고 있다. 수많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은 뱀일 수도 있고 호랑이 일수도 있으며

어느 별에 우주인 일 수도 있다. 혹은 영靈의 존재로 겁의 세월을 허공에서 떠돌 수도 있다.


 이 탐욕스럽고 부조리 가득한 별에서 본래의 내 자리로 혹은 전혀 다른 유정有精 혹은 무정無精의

존재로 돌아가는 날이 올 때 나는 홀연히 미련 없이 어느 새벽에 바람처럼 돌아가고 싶다. 물론 그 돌

아가는 자리는 현재의 내 행동과 생각에 따라 내가 의도하는 방향과는 전혀 달라질 수도 있다.

 

 만약 천지신명께서 그 동안의 나의 행적들을 살펴보고 북구로주北俱盧洲에 보내주신다면 1000년

은 능히 살 수 있으련만. 알 수 없는 사람의 미래세는 결국 현재의 마음 씀씀이에 달려있다. 나는 독

실한 불제자佛弟子가 아니지만 명산대찰名山大刹에 가면 나 아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유정의

생명체와 무정의 생명체들의 복락을 빈다. 

 

                                                                                                                                               - 창작일 : 2014.10.15.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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