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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부처

* 창작공간/Essay 모음 1

by 여강 최재효 2007. 8. 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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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부처


                                                                                                       - 여강 최재효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동경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우리는 수백 수천 년 동안 가장 위대한 스승이면서 성자(聖子)를 한낱 노래가사에 포함

시켜 평가절하 하여 왔다. 나 역시 불혹(不惑) 이전 까지 그래왔다. 맨 위 동요는 여덟

살 때 초등학교 입학하여 처음으로 배운 노래이고, 두 번째는 철이 약간 들어 술에 취하면

흥얼거리던 달 타령이며, 다음은 신라 헌강왕 때 지어진 향가(鄕歌), 처용가(處容歌)의

일부다. 모두가 달을 소재로 하거나 소품으로 취급하고 있다. 고금(古今)에 시인들이나

호사가들은 달을 하찮은 장식품 정도로 생각한 탓이리라.

 

  평소에도 달을 좋아하는 나는 밤하늘에 달이 없는 동안은 연인(戀人)이 오랫동안 소식

조차 없이 연락이 끊긴 것처럼 허전하다. 한 여름에 어쩌다 임을 마주하면 자주 구름 속에

숨어 마음을 초조하게 한다. 그런날은 서운한 감정을 가누지 못해 독작(獨酌)을 하거나

방황을 하기도 한다. 귀뚜라미가 문지방을 슬슬 넘어오고 해가 어느 정도 식어지면 하늘이

유리알처럼 영롱해 지면서 임을 대할 수 있는 기회가 잦아진다. 고운임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보름달이나 반달보다 초승달을 좋아한다. 항룡(亢龍)보다 이제 막 여의주를 입에

물고 하늘을 날기 시작한 비룡(飛龍)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달에게 똑같은 의미를 부여한

탓일 게다. 평소 나름대로 시적(詩的) 영감이나 문향(文香)을 배가시키기 위하여 임을 귀찮

하였다. 그렇게 어머니같고 할아버지 같으며 때에 따라 누이나 또는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을 첫사랑의 소녀를 연상시키기도 하던 임깨서 최근에 종교와 철학(哲學)으로다가 왔다.

 

  올 여름에는 휴가기간을 이용해 배를 타고 일본 오사카 근처를 다녀왔다. 부산서 대한해협

건너 갈 때 동쪽 바다에서 거의 보름달에 가까운 초대형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늘 남산

이나 뒷동산에서 떠오르는 평범한 달을 보아 온 탓에 나의 고정관념에 달은 쟁반만 했다.

그러나 바다 한가운데서 맞이한 임의 모습은 경이롭고 신비한 광경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

합장(合掌)을 하고 수 없이 임을 불렀다. 평소 보아온 임의 모습 보다 열배더 커 보였다.

결코 동요나 유행가 가사에 등장할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시(詩)이며, 성자(聖

子)이며, 종교이며, 조물주이며, 연인(戀人)이며, 대웅(大雄)의 모습으로 다가와 있었다.

나는 저녁 식사도 잊어버린 채 갑판에 앉아 존경하는 마음으로 임과 대작(對酌)하면서 임이

빨갛게 상기되어 서해로 거룩한 자태를 감출 까지 밤이슬을 흠뻑 맞아야 했다. 

 

  삼일간의 열도(列島) 남부지방을 둘러보고 배편으로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시

임과 동행하였다. 오사카를 출항하여 혼슈(本州)와 시코쿠(四國)사이 세토나이카이(瀨戶

內海) 중간 쯤 왔을 때 지치고 피곤한 기색의 거대한 임이 붉은 얼굴이 이름 모를 작은 섬

위로 살며시 솟아 오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합장한 채 갑판에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임 얼굴 오른쪽 위 부분에 마치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은 듯 몹시 상해 있었다. 삼일간의

고단함도 잊은 채 안타까운 마음나는 자판기에서 시원한 맥주를 뽑아 선상(船上)으로

했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임은 자신의 모습으로 무언의 교시(敎示)를 하고 있었다.

수십억 년의 무상한 세월을 임은 끝없이 윤회를 반복하면서 지상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들

에게 가르치고 또 가르쳐왔다. 그러나 우리는 임의 가르침은 잊은 채 오락이나 여흥을 위

여 임의 이름을 함부사용하여 왔다. 송구한 마음에 빈 잔에 공손히 술 한 잔 따라 임이

떠있는 방향 갑판 위에 올려놓았다. 현해탄을 건너는 내내 새벽 늦게 까지 이어진 임과의

수작(酬酌)에 나의 얼굴은 불콰해졌임도 만취하여 비틀거리며 서해(西海)로 간신히 몸을

숨겼다.

 

  내가 느끼고 감지한 임은 부처이며 창조주 였다. 내가 알고 있는 부처란 깨달은 사람, 눈

사람, 완전한 인격자, 절대적 진리를 깨달아 스스로 이치를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인간의 자궁(子宮)에서 태어난 분 중에는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유일하다.  또한 부처는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해주어 깨달음과 실천을 두루 갖춘 분으로서 진리, 즉 법을 증득

하고 실천하는 분이다. 나는 어머니 자궁에서 열 달 만에 출세(出世)하였다. 임이 없다면

지상의 모든 생명들은 태어날 수 없다. 임의 모습으로 치면 불혹이 훨씬 넘은 나는 보름달

에서 우측  부분이 막 삭아 들어간, 오늘처럼 허공에 떠서 은근한 시선으로 속세를 내려다

보는 임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고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세상에 무한(無限)한 것이

어디 있던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고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했거늘......



                      2007. 7. 31  03:45 현해탄을 건너면

 

 

 

 

     

 

[주]

1. 제법무아 - 모든 것이 무상하니 이 세상 어떠한 것도 영원한 것이 없으며, 나라는

                    것도 결국 사라지는 것이니 나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제행무상 - ‘우주 만물은 항상 돌고 변하여 잠시도 한 모양으로 머무르지 않음’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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