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
- 여강 최재효
두 다리 두 팔 다 잘리고
두 눈 양쪽 귀 막힌 것도 운명인지라
오로지 몸통 하나로
오뚝이처럼 다소곳하게 앉아 있어라
바람 불면 바람에 깎이고
비 내리면 비에 씻겨 한곳만 응시한 채
하늘이 꺼지고 땅이 움푹 파여
그 아래 하늘이 휑하니 보일 때 까지
묵묵부답 돌덩어리로 있어라
아, 이것이, 이것이 진정
나의 예정된 한 평생 삶이나니
금불상金佛像 보기 싫어 돌아앉고
달콤한 공치사 듣기 싫어 귀 틀어막고
춘화春花에 혹할까 팔다리 자르고
절구통 같은 몸통 하나가 자존自尊이라
바람의 먹이로 소임을 다하는 날까지
구름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까지
그렇게 허무하면서
화려하게 내 한 생애를 가꾸리
어쩌다 나와 눈길 마주치는 이 있으면
천만 억년을 또 결가부좌 틀어도
전혀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으리
- 창작일 : 2012.1.24. 15:00
도봉산 만월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