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3.1 18:40 강화도 장화리에서 필자 직촬
해에게서 소년에게
- 여강 최재효
“오오, 천지신명이시여, 조물주시여, 나의 생명이시여, 이제야 진정으로 임을
뵙습니다.” 나는 후둘 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고정시키고 찰라에도 변하는 임의
거룩하고 황홀한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숨이 막히고 정신이 몽롱하며 마
치 구름 위에서 황홀경을 보는 듯 하여 잠시 나를 잊기도 하였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아니어도 좋고 내가 이승에 없어도 좋았다. 합장(合掌)한 손이 나도 모르게
부르르 떨렸다.
양볼 위로 뜨거운 액체가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임의 장엄한 얼
굴이 완전히 바다 속으로 사라진 뒤에야 나는 눈물을 닦아 낼 수 있었다.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이면서 서서히 바다로 잠기는 임의 모습은 한편의
시(詩)이며, 찬가이며, 가슴 벅찬 환희였다. 이 풍진 세상에서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 이 순간 장엄한 임은 생명이며, 죽음이며, 부활이며, 내일
이다.
지천명(知天命)을 살아오면서 나는 대략 일만 팔천 번쯤 임을 뵈었으니 어찌 나
의 생명이 아니랴. 지금까지 나는 임이 서산(西山)이나 서해(西海)로 지는 광경을
무수히 보아왔다. 그러나 한번도 임의 고고한 자태(姿態)를 지금처럼 자세히 본적
은 없었다. 이전에는 술 한잔 마시고 심심풀이로 서산낙일(西山落日)의 임을 뵙고
지나가는 농담을 건네는 수준이 었다.
휴일을 맞이하여 아침 일찍 배낭을 메고 서울 근교 산을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바람에 날리면서 나들이를 포기하고 TV를 보면서 이런 저
런 망상(妄想)에 빠져 있었다. 이렇게 좋은 봄날 집에만 있다는 게 억울했다. 간단
히 점심 식사를 하고 무작정 카메라를 메고 강화도로 향했다. 딱히 어디를 가겠
다고 목적지를 정하고 떠난 것이 아니어서 나는 운전하는 내내 어디로 향할지는
두고 고민하였다. 최근에 건설된 초지대교가 아닌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내로
들어섰다.
사냥 나온 야수처럼 읍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몇 년 전에 가본 적석사(積
石寺)로 향했다. 오후 들어 비는 그치고 서서히 해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적석사
에 들어 여래(如來)에게 인사를 드렸다. 날씨가 쌀쌀한 탓인지 사찰을 찾는 사람
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찰 뒷산에 마련된 서해 일몰(日沒)을 볼 수 있는 관망
대에 올랐다. 나는 희뿌연 안개 속에 있는 강화의 여러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느
라 연방 셔터를 눌러 댔다. 사진을 찍어대면서 10여 년전 민박(民泊)했던 강화도
장화리를 기억해 냈다.
“그래, 이왕이면 거기가 좋겠어. 그곳이 우리나라에서 바다에 잠기는 석양(夕陽)
을 감상하는 장소로는 최고라고 하지.” 오후 4시여서 여유가 있었다. 나는 전등사
(傳燈寺)로 다시 차를 몰았다. 전등사에도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10
년 전 놀러 왔을 때 보다 장화리는 많이 변한 듯 했다. 다행히 바다 위로 구름이 많
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수평선(水平線)을 보기란 쉬운 일
이 아니었다.
일몰의 장엄한 광경을 보기 위해 차를 방죽까지 몰고 갔다. 이미 서너 대의 승용
차들이 방죽에 서있었다. 그 차 안에는 나처럼 임을 송별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도
있을 테고, 일몰을 보며 환상적인 데이트를 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도 있을 테다.
하루 종일 걷느라 지친 임이 서서히 불콰해 지기 시작하였다. 지금 임의 모습은
읍내 추석 대목장에서 돌아오는 아버지 같았다.
봄부터 가을까지 논 밭에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면서 내년 봄까지 일용할 식솔
들의 양식이며, 자식들에게 옷과 학비에 소요되는 자금을 마련하느라 쉴 틈이 없
었던 아버지였다. 조생종(早生種) 벼를 심어 추석 전에 추수한 쌀을 읍내 장에 내
다 팔아 추석날 조상님에게 올릴 제물(祭物)과 자식들의 추석 빔을 잔뜩 사서 우
마차에 싣고 귀가(歸家)하는 아버지는 탁배기 한잔에 양 볼이 발그레했다.
눈 대중으로 임이 수평선 위 20여 미터쯤 내려왔을 때 수평선에 약하게 해무(海
霧)가 뒤덮여 있었다. 방금 전에도 없었던 구름으로 임의 오메가 상(像)을 기대했
던 나는 당황하였다. 그런데 엷은 황색을 띠던 임이 차차 붉은 모습을 띠면서 나의
가슴도 덩달아 뛰기 시작하였다. 임이 수면에서 고도 5미터 쯤 위치했을 때 나는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도 잊은 채 두 손을 모으고 임을 향해 수
없이 반절을 올렸다.
늦가을 무서리를 맞아 빨갛게 익은 홍시 같기도 하고 시집 가는 누이 양볼을 물
들인 연지 같기도 했으며, 기록 영화에서 본 핵폭탄이 폭발했을 때 모습 같기도
했다. 설렘과 두려움의 두 모습으로 다가오는 임의 거대한 붉은 심상(心想)은 삼
신 할미이며, 염라대왕이기도 했다. 나는 임이 수면에 닿을 때 몸을 떨면서 꼼짝
하지 못하고 시선을 임에게 빼앗긴 채 멀리 고기잡이 나간 지아비의 무사 귀환을
비는 망부석(望夫石)처럼 서있어야 했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망원렌즈를 최대 수치로 올려 감히 임의 모습을 담으
려 안간힘을 썼다. 이글거리며 바다와 서천(西天)을 동시에 빨갛게 달군 임의 경
외스러운 얼굴을 이렇듯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천지신명에게 고마워
했다. 내가 늘 버릇처럼 외치는 천지신명이란 바로 임을 포함한 달과 별 그리고
하늘과 바다, 바람, 산, 강을 말한다. 그 중에 으뜸이 바로 이 순간 나와 독대(獨
對)하고 있는 임이다.
나는 아침에 바다나 산 위로 당당하게 솟아 오르는 임보다 저녁에 서럽도록 붉
은 임을 더 숭배(崇拜)한다. 어떤 날은 임이 온통 세상을 빨갛게 색칠 해놓고 엄
숙하게 서천으로 모습을 감추면 동시에 동천(東天)에서 또 한 분의 천지신명님이
교교한 자태(姿態)로 솟아오르며 세상을 다시 은빛으로 물들여 놓는다. 그 경이
로움을 대할 때 나는 내가 이승에 살아 있음을 느끼는 가장 행복하면서 희열을
만끽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두분 모두 생긴 모습은 비슷하다. 한 분은 억겁의 세월을 스스로 발광(發光)하며
존재하고 또 한 분 역시 수십 억년을 큰 임의 얼굴빛을 받아 발산하는 섬세하면
서 가려린 여인 같은 분이다. 나는 작은 임을 더 사랑하나 어떤 날은 큰 임도 존경
한다. 신기한 것은 두 임의 크기는 수 백배 차이가 나는 데 지구에서 볼 때 두임의
크기는 거의 비슷해 보인다. 일식(日蝕)이나 월식(月蝕) 때 보면 확연하다. 누구의
조화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우리는 두 얼굴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나보다 크고 위대해 보이는 상대를 만
나면 고개를 숙이고 은연중 상대에게 굴복하며, 그렇지 못한 상대를 보면 은근히
깔보고 없수이 여긴다. 나 보다 똑똑하거나 잘 난 상대에게 비굴하면서 꼬리를
내리거나 그의 말에 전적으로 수긍하며 따른다. 그 반대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게 우리들의 비열한 속성이다. 지금까지의 삶의 대부분이 그래왔다. 어찌보면 살
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아니던가.
나는 불혹을 넘기면서 월랑(月郞)이 되었다. 낮보다 밤이 좋았고 당당한 해보다
은은한 달님을 사모하였다. 그 중병(重病)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지
속될 듯하다. 청운(靑雲)의 뜻을 높게 품었을 때 나는 고개를 당당하게 세우고 낮
의 임을 경배하였다. 그러나 중년(中年)이란 무거운 명패(名牌)를 차게 되면서부터
밤의 임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다거나 삶의
의욕을 상실해서가 아니다. 강렬한 빛 보다 눈과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달님의 하
얀 입김이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해보다 두 눈 부릅뜨고 대면할 수 있는 밤
의 제왕이신 달님을 가슴에 안겨 오면서 사랑하게 되었다. 아마 그렇게 된 이유는
나의 성격이나 행동 습성에서 기인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오늘 나는 두 눈 뜨
고 낮의 제왕인 임의 황홀한 모습에 넋을 잃고 감상에 젖어 당당하게 바라보았다.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저 하늘에 떠 있는 두임의 영향을 받고 산다. 두 임중 한 분
이라도 없다면 인간은 지구에서 살아갈 수 없다. 어찌 보면 우리 인간 역시 이방인
아닌가?
그 생명의 시원(始原)을 알 수 없는 저 우주 어느 별에서 발생한 생명의 인자(因
子)가 혜성(彗星)에 묻어 이 지구에 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세포에서 고등동물이
되기 까지 수억 년이 걸려 지금의 문명인이 되었을 테다. 한 임이 적당한 온기와
수분을 주었고 또 한 임은 지구의 자전축을 지지하고 공전을 도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토양을 생성하도록 했다. 한 임은 구심력으로 또 한 임음 원심력으로 지구
를 지탱하고 있다.
한 평생 집과 돈 그리고 먹거리에 연연하다 아까운 세월을 다 보내고 마는 우리
는 과연 저 이글거리며 바닷속으로 숨는 임을 똑바로 바라볼 자격이 있는 걸까.
중력과 구심력으로 태양계(太陽系)라는 대가족을 일구고 끊임없이 자비의 빛으로
생명력을 이어가게 해주는 저 임을 과연 나는 정당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인지 임
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거대한 불덩어리로 화한 임은 천지의 모든 것을 태울 기세
로 맹렬했다. 보랏빛 해무(海霧)로 오메가 형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다른 차에
서 내린 사람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합장한 채 바위처럼 서있는 늙은 소년의 얼굴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 순간
저 임의 헌헌한 얼굴보다 더 경이적인 것이 있을까. 떠오르는 해의 모습이 주황색
계통의 빛을 낸다면 바닷물을 부글부글 끓게 만들고 서천을 온통 서럽도록 붉게
물들이는 석양(夕陽)은 눈물이 나도록 진한 홍염(紅焰)이었다. 노을 속으로 한떼의
기러기들이 남쪽을 향해 날고 있었다. 나의 시선이 잠시 그들에게 머물렀다.
그 기러기들은 늙은 소년을 대신하여 허공을 날고 있었다. 거대한 불꽃으로 타고
있는 임은 늙은 소년에게 또 다른 희망이며, 내일이며,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성주
괴공(成住壞空)의 영원한 진리 속에서 생사를 반복하는 동안의 반면교사(反面敎師)
가 틀림없다. 소년은 어떤 곳에서 해이며 달일 수 있다. 해와 달의 윤회(輪廻)를 보
며 늙은 소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즉시(卽詩)로 임을 송별하고 있었다.
어머님 나를 낳으시고
아버님 나를 기르시니
아아, 그 은혜 죽어도 잊을 수 없으리
달님 나를 낳고
별님들 나를 살찌우게 하였으니
그 공덕 어이 잊으리
눈 뜨면 지상에 부모가 있고
가슴 열면
천지에 무수한 어버이 있으니
감히 누가 외롭다 말하는가
내 혈관에 방금
신선한 피 수혈한 저기 거룩한 붉은 아비
이승에 하찮은 자식 하나 살려 놓고
헐떡이며 저승에 소리 없이 드나니
오오, 그 크신 은혜
어찌 죽어서도 잊을 수 있으리
- 창작일 : 2011.2.28. 18:30
강화도 장화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