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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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의 달빛(최종회)
- 여강 최재효
윤성애는 두 아이들은 친정에 잠시 맡기고 윤영진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갔다.
그러나 윤영진의 태도는 예전 같지 않았다. 윤영진과 윤성애는 저녁 때 여의도
M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윤성애는 당초 자신과 약속했던 강성태가
건넨 투자액을 50:50으로 나누기로 한 금액을 하루 빨리 받아내기로 마음먹었
다.
윤성애는 강성태가 투자한 돈 중 절반인 12억5천만 원이 수중에 들어오면 무슨
사업을 해야 좋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강성태가 자신의 가정을 파괴한
만큼 그에게 철저한 복수를 하고 싶었다. 남편의 사업이 잘나갈 때 서로 호형호제
하고 자신에게도 깍듯하게 대하던 강성태가 남편의 사업체를 강제로 빼앗다시피
한 강성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저녁 7시 윤성애는 윤영진을 만났다.
“이야, 윤여사님 붉은색 스카프가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영화배우 뺨치도록
아름답습니다. 마릴린 먼로가 환생한 줄 알았습니다.”
“어머나? 놀리시면 싫어요.”
윤영진은 침이 마르도록 윤성애의 미모를 칭찬했다. 윤영진도 감색싱글차림의
말쑥한 차림이었다.
“오늘은 제가 윤여사님에게 저녁을 낼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
니다.”
윤영진이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량이라니요. 당치도 않으세요. 전 그냥 한식이 좋아요.”
윤성애는 윤영진에게 얻어먹는다는 것이 왠지 꺼림칙했다. 호텔 한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전통 한국 민화가 그려진 8폭 병풍이 펼쳐져 있는 아담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잠시 후 음식과 술이 들어왔다.
“자, 윤여사님 우리 건배합시다. 그동안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멋진
사업가가 되실 꿈만 꾸시면 됩니다.”
윤영진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윤영진
또한 강성태 뺨치는 호색한이었다. 체구는 작고 왜소해 보이지만, 언변과 돈으로
수많은 여인들의 속옷을 벗기는데 능수능란한 솜씨를 보여 왔다.
“이 술은 제가 좋아하는 이강주입니다. 일반 소주보다 좀 약하지만 그런대로
즐길 만합니다.”
윤영진이 윤성애에게 건배를 제의하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그의 수중에 돈이
있으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강주는 전북무형문화재제7호로 전주지방의 특산물인 배와 생강이 들어감으로
해서 이강주라 불리게 되었는데 조선시대는 3대 명주 중 하나 였지요. 고관대작들이
즐겨 마시거나 국가 중요행사에는 꼭 이술이 사용되었지요.”
조영진은 자신이 술에 대하여 잘 아는 척 했다. 잠자코 술만 마시고 있던 윤성애가
배당금에 대한 이야기가 없자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윤선생님, 아니 조선생님? 배당금은 언제 주실 거예요?”
윤영진의 눈빛이 빛나며 갑자기 분위기가 서먹해졌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내일이라도 윤여사님 계좌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윤여사님의 고마움에 제가 조금이나마 보답코자 하는 의미에서 저녁을 대접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마음 푹 놓고 저와 앞으로 윤여사님이 펼치실 사업에 대하여 이야기
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윤영진의 언변을 따라잡을 수 가 없었다. 테이블위에 소주보다 독한 이강주의
빈 호리병 늘어갈 수록 윤성애는 판단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윤여사님, 그 삶이 나중에 윤여사님에게 어떠한 위해를 가할지 모릅니다.
나 같아도 그냥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에 대한 방책을 생각해 두셨는지요?”
윤영진은 사건이 터진 후 윤성애의 안위가 걱정이 되었다.
“이에는 이로 맞서야지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인지?”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 그놈이 우리 애 아빠 사업체를 강제로 빼앗을 때 깡패들을
몰고 와서 폭행을 하고, 강제로 사업체를 넘긴다는 각서를 쓰게 했답니다. 나도
그대로 해줄 작정입니다.”
윤성애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아, 그건 너무 위험한 방법인데요.”
“조선생님, 그럼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요?”
윤성애는 술이 오르는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다.
“윤여사님,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해결사 아이들 동원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해결할게요.”
“어떻게요?”
“그냥, 그렇게만 아세요. 아무 탈 없이 처리할게요.”
“그럼 , 그 사람을 죽이기라도 하실 작정이세요?”
윤성애의 눈이 샛별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죽이다니요, 투자한 돈이 그만 갑자기 주가가 폭락해서,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보게 되었으니.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말라고 적당히 타이르려고요.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윤영진은 자신 만만한 표정이었다.
술 취한 윤성애는 더 이상 마시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윤성진이 지루하게 돈 이야
기를 계속 꺼내며 술을 권했다. 이미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술기운이 윤성애
를 서서히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윤성애가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혼자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판단한 윤영진은 음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자색이 고운
윤성애가 술에 취해 스스로 통제 능력을 잃어가는 모습은 마취제를 맞고 잠들어
가는 사슴처럼 보였다.
“자, 윤여사님 좀 취하신 것 같네요. 제가 다른 장소로 모시겠습니다. 조용하고
노래도 할 수 있는 곳인데. 함께 가시지요?”
윤영진은 본격적으로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윤성애는 윤영진의 뜻대로 호락
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술은 대취했지만 의식은 또렷했다. 겨우 윤성애를 설득하여
식당을 나서서 근처 룸살롱 스타일의 노래방을 찾았다.
룸살롱스타일의 노래방은 말이 노래방이지 룸살롱과 다를 바 없었다. 룸 형식이기
때문에 밖에서는 안의 사정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윤영진이 양주와 맥주 간단한
안주를 주문하고 먼저 노래를 부르겠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나훈아의 건배를 부르고
이어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을 불렀다.
윤성애는 소파에 가만히 앉아 정신을 차리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지만 자꾸 천정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고, 샹데리아가 자신을 향해 떨어질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
다. 연거푸 노래 두곡을 마친 윤영진이 소파에 앉았다.
“윤여사, 자 우리 한잔 더 해요. 원샷입니다.”
윤영진이 스트레이트 잔으로 위스키를 따라 윤성애에게 건네며 건배를 제의했다.
이번에는 술이 싱겁다며 음료수잔에 스트레이트 잔으로 양주 한잔을 붓고 맥주를
부은 다음 휘휘 돌리더니 일명 휘오리주라며 자신이 먼저 원샷으로 마시고, 윤성애
에게도 휘오리주를 만들어 주며 마셔보라고 했다.
윤성애는 윤영진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 않게 하려고 술을 억지로 마셨다. 웬만한
남자들도 한두 잔이면 떨어지는 폭탄주였다. 다시 윤영진이 스스로 만들어 마시고,
이어서 다시 한 잔을 만들어 윤성애에게 주었다.
“염병, 그 놈에 돈이 뭐 길래. 내가 억지로 술을 마셔야 한단 말인가. 빌어
먹을......”
윤성애는 속으로 한탄했다. 그러나 칼자루를 쥔 자가 윤영진이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윤영진이 다른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강성태가 투자한 돈을 가지고
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정신이 자꾸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자꾸 천정이 빙글빙글 돌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눈이 감기는 것을 억지로 두 눈을
부릅떠 보았지만 곧 눈이 감겨왔다.
“자, 이번에는 윤여사님이 노래를 불러보시죠.”
윤영진의 목소리가 가물가물하게 귓전에서 맴돌았다. 윤성애는 소파에 엎드려 잠이
들어 버렸다. 윤성진이 좀 전에 휘오리주를 만든다면서 약간의 수면제를 탔는데 금방
그 효과가 왔다. 윤성애의 의식 속에는 이러면 안 된다는 의지만 있을 뿐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귓가에 윤영진의 음흉한 웃음소리와 웨이터를 부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윤성애가 호텔객실에서 깨어난 것은 다음날 오후 1시쯤이었다. 알몸인 상태로 혼자
누워있었다. 자신의 속옷이 몽땅 벗겨져 있었고, 은밀한 부위에 이빨 자국과 멍이
자욱이 선명하게 나있었다. 윤성애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 진 물이었다. 자신이 강성태의
육욕의 제물로 전락한 후 뼈저리게 후회하고 다시는 남자들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윤영진에게 유린당한 자신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이대로 울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빨리 윤영진을 찾아가서 돈을 찾아야
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머리가 띵하고 속이 메스꺼웠다. 다시 침대에
누워 어젯밤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려고 했으나,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속칭
필름이 끊긴 상태였다.
어제 밤 룸살롱 스타일의 노래방 까지 윤영진과 함께 간 것은 생각이 났지만 그
이후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랫도리에서 통증이 전해졌다. 손으로 아래
부위를 만져보니 피가 만져졌다. 간밤에 윤영진이 자신을 얼마나 거칠게 다루었
는지 짐작이 갔다.
“나쁜 놈! 내 그놈을 그냥.”
윤성애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다시 뺨으로 눈물이 흘렀다. 샤워를 하면서 거울을
보니 온몸이 멍과 이빨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샤워를 하다가 주저앉아 대성통곡
을 해보았지만 시원치 않았다. 겨우 몸을 추슬러 호텔을 빠져나와 윤영진에게 전화
를 걸었지만 수화기에서는 ‘고객의 사정으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라는 안내 소리만
흘러나왔다.
택시를 타고 윤영진이 자주 드나들던 사무실로 찾아가 보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서 조영진은 어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잠시 외국에 다녀온 다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윤성애는 날벼락 같은 소리에 그만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조영진은 자신을 윤성애에게 소개 시켜준 윤성애의 사회친구 김경
선과 제주도에 와있었다.
“자기야, 축하해. 세상은 참 살맛이 난다고. 나한테 보너스 좀 주는 거지?”
S호텔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던 김경선이 벤치에 앉아 낮잠을 즐기고 있던
조영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응, 알았어. 아파트 한 채 사줄게. 걱정 마.”
조영진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기야, 그리고 그 사진 언제 보여줄 거야?”
서울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올 때 조영진은 김경선에게 간밤에 윤성
애의 누드를 수십 장 촬영해 두었다고 했다. 만약을 위해 입막음을 하기위해 나름
대로 취한 조치였다.
강성태 역시 이상한 느낌이 들어 서울 여의도 K증권에 전화를 걸어 윤영진 팀장
을 보았지만 그런 사람은 근무하지 않는다는 직원의 이야기만 들어야 했다. 다시
윤성애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강성태는 윤성애의 식당에
들려 보았지만 그곳에 없었다. 주방 아주머니는 윤성애에게 아무 연락도 없었다고
했다.
강성태는 즉시 서울 여의도 K증권지점에 가보았지만 누구도 윤영진을 알지 못
한다고 했다. 순간 모든 것이 사기극임을 안 강성태는 K증권 사무실 집기를 때려
부수며 지점장과 면담을 요청하였지만, 지점장 역시 그런 사람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분명 이 지점 투자 상담실에서 며칠 전에 윤영진이라는 팀장과 상담을 하면서
25억 원 건넸고 그 자리에 여직원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지점장과 지점에
근무하는 사원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며 오히려 강성태가 다른데서 사기
를 당하고 자기네 지점에 와서 행패를 부린다며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며칠 사이에 25억 원을 거짓말처럼 사기 당한 강성태는 윤성애를 찾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별렀다. 흥신소를 통해 해결사들을 동원해 윤성애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지만 행방이 묘연한 조영진과 윤성애를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강성
태 자신이 돈을 빌린 친구들과 사채업자들에게 빨리 돈을 갚으라는 압력을 받게
되었다.
“내, 이년 놈들을 잡으면 간을 씹어 먹을 테다.”
미친 사람이 되다시피 한 강성태는 매일 술에 찌들어 살았다. 그리고 자신이
장대철에게 했던 일을 그대로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현재의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잠시 꿈을 꾼다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가 주유소로 걸려왔다. 당장 돈을 갚으라는 내용의 전화
였다. 강성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잠적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음날 오후
강성태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성태씨? 저에요. 성애.”
순간 강성태는 침착하게 행동했다.
“아, 성애. 오랜만이야. 어디 있는 거야? 나 당신이 무지 보고 싶은데 말아.
그 친구, 참 당신 사촌 오빠 말아 잘 있는 거지?”
강성태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말했다.
“네에, 잘 계세요.”
윤성애 역시 아무 일 없는 듯 말했다. 윤성애는 자신이 강성태에게 빌려준 돈이
라도 받고 싶었다. 자신이 빌려준 돈 정도는 강성태의 경제력으로 보아 금방 갚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죽 쒀서 개 좋은 일만 시킨 격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게 된 상황을 빨리 잊고 싶었다.
“저어, 성태씨. 나 지금 친정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시켜야 하는데,
먼저 내가 빌려드린 돈 줄 수 있어요? 당장 시급하거든요.”
윤성애는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
“그래? 그럼 빨리 줘야지, 당신이 급하다면. 그럼 내가 돈을 가지고 갈게. 어디로
가야 하는데?”
강성태는 침착하고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에요. 그냥 은행계좌로 부쳐주면 되는데......”
“당신도 보고 싶고 또 일이 잘 될 것 같아서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어서
그래. 지금 어디야 내가 당신한테 갈 테니.”
강성태는 끈질기게 만나자고 요구했다.
“그럼 , 그 돈 가지고 오실래요?”
“응, 그래 지금 당장 갈게. 당신이 보고 싶어 죽겠다고.”
“그럼, 제가 인천으로 갈게요. 주안역 앞에 T커피숍에서 오후 5시에 만나요.”
전화통화를 마친 윤성애는 약간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 강성태와 전화통화
내용으로 봐서는 아직 강성태가 조영진이 잠적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강성태는 어깨들 두 명을 시켜 T커피숍 인근에 대기하도록
하고 자신은 시간에 맞춰 커피숍으로 갔다. 강성태가 자리에 앉자마자 윤성애가
커피숍에 나타났다.
"성애, 여기야, 여기."
강성태가 손을 들어 반기는 척 했다.
"언제 오셨어요?"
윤성애가 강성태의 눈치를 살폈다.
"방금 왔어."
강성태는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만약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윤성애의 머리채를
잡고 죽이려 들었을 것이다. 자리에 앉자 윤성애는 돈 이야기부터 꺼냈다.
"성태씨, 돈은 준비 되셨어요?"
윤성애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응, 그럼, 내 후배한테 주유소로 가져다 놓으라고 했어. 주유소로 가지?"
윤성애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아니, 지금 안가지고 나오셨어요? 나 바로 어머니가 입원하고 계신 병원으로
가봐야 하는데……."
윤성애는 정말로 급한 것처럼 목소리까지 바꿔가며 제스처를 썼다.
"그럼, 일어나지? 우리 주유소로 가자고. 가서 줄께."
레지가 주문을 하러 왔지만 마음이 급한 두 사람은 그냥 커피숍을 나왔다. 강성
태가 나오자 어깨들이 차를 대기 시켰다.
"자, 타지? 성애."
강성태가 차 뒷문을 열어주며 탈 것을 권유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강성태의 휴대폰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 여보세요. 강성태입니다."
윤성애의 눈치를 보며 강성태가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 ? 돈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야 임마,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직도 돈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어쩌라는 거야?"
강성태는 이미 사전에 각본대로 윤성애를 다른 곳으로 유인하기 위하여 연극을
꾸미고 있었다.
"성애, 돈이 아직 준비가 덜 된 모양이야. 내가 돈 받을 녀석이 강화도에서 사업을
하는데, 그 녀석한테 직접 찾아가봐야 할 것 같은데. 어때 나하고 가볼 테야?"
윤성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 강화도 가면 확실히 돈을 받아 낼 수 있는 거예요?"
윤성애는 근심스런 얼굴로 강성태를 쳐다보았다.
"그럼, 걱정 마, 내가 그 녀석 사업장에 찾아가면 돈을 받아 낼 수 있어. 걱정 마.
꼭 받아 줄 테니."
강성태와 윤성애가 탄 차가 인천 서구청 앞을 지나 검단을 거쳐 김포를 지나 강화
도로 향했다. 차창밖에는 어둠이 깔렸다.
앞좌석에 탄 어깨 두 명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강성태와 윤성애의 대화를 듣고 있다.
차가 강화대교를 건너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함허동천을 지나 차는 계속 달렸다.
윤성애는 인가가 보이지 않고 사방이 적막에 쌓인 어둠만이 계속되자 불안해 했다.
"아니, 성태씨 어디로 가는 거예요?"
순간 강성태의 태도가 돌변했다.
"야, 이년아, 너 오늘 말 잘못하면 제삿날이 되는 줄 알아."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강성태의 폭언에 윤성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 성태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겁에 질린 목소리로 항의를 해보았지만, 윤성애를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야, 차 세워."
강성태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한적한 곳이 나오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윤성애
의 머리채를 잡고 차에서 끌어 내렸다.
"야, 이 썅년아, 바른대로 대, 너 그놈하고 어떤 관계야? 두 연놈이 짜고 나를
사기 쳐? 네 년이 나를 뭐로 알고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너 나를 잘못 알고
있어. 내가 어떤 놈인지 모르지? 네 남편을 파멸 시키고 너마져 파멸 시킨 놈이
바로 나야. 이년아. 알아들었어?"
강성태의 손바닥이 윤성애 뺨에 불을 일으켰다.
"바른대로 대, 이년아. 너 그놈하고 짜서 빼돌린 내 돈 어디 감췄어? 내가 바본 줄
알아? 서울 그 K증권에 가서 다 알아봤어. 나를 완벽하게 속였더군. 너 오늘 여기서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내손에 죽을 줄 알아."
그때 어깨 한명이 주사기를 보이며 위협을 했다.
"아줌마, 이게 뭔지 알아? 이건 독극물이야. 아줌마 혈관에 한 대만 놓아주면 십
분도 안 돼 저 세상에 가게 되지, 저 세상에 말이야."
윤성애는 주사기를 보자 겁에 질렸다.
"봤지? 똑바로 대. 그놈이 누구야? 그리고 내 돈 어디 있어?"
강성태가 겁에 질려있는 윤성애의 머리채를 잡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미 사태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한 윤성애는 일단 위기를 모면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성태씨, 그 남자 윤영진, 아니 조영진은 내 친구 애인이야 나하고는 상관없는
남자야, 그리고 지금 그 남자 어디 있는지 나도 몰라, 그 돈은 그 남자가 모두 가지
고 있어. 정말이야. 믿어줘."
윤성애는 떨리는 음성으로 겨우 말했다.
"그럼, 처음부터 네년이 그놈과 짜고 왜 나한테 사기를 치려고 한 거야, 왜
그랬어?"
강성태가 다시 윤성애의 뺨을 후려 갈겼다. 화가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렸다.
"그, 그건 단순히 성태씨에게 큰돈을 벌게 해주려고 했던 거예요. 정말이에요 믿어
주세요. 믿어주세요."
윤성애의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년이 아직도 나를 병신으로 취급하고 있군, 야, 이년 좀 정신 나게 해줘라."
강성태의 지시가 떨어지자, 어깨 두 명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윤성애를 안고
차 뒷좌석으로 들어갔다.
"이러지마 , 왜 이러는 거야."
윤성애의 비명소리가 밤하늘의 정적을 깼다. 두 어깨는 차 뒷좌석에 윤성애를
밀어 넣고 옷을 몽땅 벗겼다. 강성태는 차 옆에서 담배를 피워 물며 이상야릇한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년, 맛 좀 있게 생겼는데. 오우, 이것 좀 봐 정말 죽이게 생겼다."
한 녀석이 윤성애의 유방과 엉덩이를 만져가며 중얼거렸다. 윤성애는 잘못하다
가는 정말로 이곳에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보았지만 두 남자
들의 완력을 당할 수 없었다.
아-.
어깨 한 녀석이 반대편에서 윤성애 두 팔을 잡고 한 녀석은 바지를 내리고 거대한
물건을 꺼내 윤성애를 강간하기 시작했다.
"야, 이놈들이,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
윤성애의 절규가 밤하늘을 갈랐고, 바닷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윤성애의 몸속 깊은 곳에 더러운 것을 배출한 후 다음 어깨가 위치를 바꿔가며
계속 윤성애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윤성애는 강성태가 이렇게 악랄할 수 있으리
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어떻게 하던지 강성태로 부터 돈을 받아내고 멀리
도망을 갈 작정이었지만, 모든 것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떻게 하던지
여기서 살아남는 일이 급선무였다. 두 번째 어깨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뜨거운
것을 윤성애의 몸속 깊이 분출했다.
"그 년, 쫄깃한 게 정말 죽이는데……."
두 번째 어깨가 바지를 추스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두 명의 거한을 몸으로
받아 낸 윤성애는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강성태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윤성애는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형님, 이년을 어떻게 하죠? 기절했는데요."
한 어깨가 걱정스러운 듯 강성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년 흔들어 깨워, 어떻게 해서든지 오늘밤 안으로 돈이 어디 있는지 알아
내야해."
강성태의 지시가 떨어지자 어깨 한 녀석이 윤성애의 젖무덤을 쥐고 흔들어
보고, 소리를 질러보지만 윤성애는 죽은 시체처럼 의식이 없었다.
사내가 계속해서 끈적끈적한 액체와 피로 번질거리는 은밀한 부위를 지분거
리며 깨워보았지만 윤성애는 기척이 없었다. 강성태는 혹시 윤성애가 숨이 넘어
간 것이 아닌가 은근히 걱정을 했다. 한참 후 윤성애가 신음소리를 냈다. 윤성애
의 아랫도리에서 하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강성태가 다가와 다시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윤성애, 내 한때는 네년을 예뻐해 주었는데, 나를 배신해? 지금이라도 그놈
있는 곳을 대. 사실대로 말하면 없던 일로 하고 네 년을 살려줄 수 있어, 안 불면
넌 오늘밤 여기서 생을 마쳐야 할 거야."
강성태가 차분한 목소리를 설득을 했다.
"다, 당신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난 당신에게 돈을 벌게 해 주려고
한 것 분인데,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윤성애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네년이 이미 네 남편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다 알고, 그 놈과
짜고 내 재산을 빼돌리려고 한 거 아냐? 나에게 복수하려고 말이야, 내가 네년
속을 다 알고 있는데 변명을 해. 나를 너무 우습게보았군. 빨리 말해, 그놈 어디
있는지. 내 돈을 가지고 있는 그 쥐새끼 같은 놈이 어디 있는지 말해어서."
강성태의 주먹이 윤성애의 복부를 강타했고 윤성애의 외마디 비병소리가
해안가에 울려 퍼졌다.
"서, 성태씨, 정말 난, 나 몰라요. 그 남자가 지금 어디 있는지 정말로 몰라요.
나도 그 남자에게 속은 거라고요. 낮에 여의도 그 남자가 일했던 사무실에 가봤
지만, 그곳에 없었어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남자가 외국에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말이에요. 제발 내 말을 믿어주세요."
윤성애가 눈물로 사정했지만 강성태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네년이 끝까지 날 속이려들어? 정말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보군, 죽고 싶어
서 말이야."
강성태는 윤성애 머리채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윤성애의 절규가 다시 밤하늘
에 울려 퍼졌다. 강성태는 당장 윤성애를 죽이면 자신이 살인자가 될 것이고
결국 돈도 찾을 수가 없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좋아 믿지, 믿어 보지 네년 말을……."
강성태는 윤성애를 발가벗긴 채 입 안에 자갈 한 개를 넣어 테이프로 붙여버
리고, 두 손과 발을 결박한 채 뒤 트렁크에 싣고 강화도 읍내로 향했다. 두 어깨
와 주점에 들려 술을 마시며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심했다.
"그년 말대로 그 놈이 내 돈을 가지고 해외로 튀었다면, 출입국관리소에 사람
을 통해 알아보면 되겠군. 내 그놈을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살려두지 않으리라."
독한 술을 마시며 강성태는 중얼거렸다. 윤성애는 차가운 차 뒤 트렁크 속에
결박된 채 하혈을 계속하며 신음하고 있었다. 서서히 몸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몸부림 쳐 보았지만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강성태와 두 어깨들은 도우미 아가씨를 불러 시간가는 줄 모르고 흥에 취해
있었다. 새벽이 훨씬 넘어서 주점에서 나온 강성태 일행은 뒤 트렁크에 결박
되어 있는 윤성애의 상태가 궁금했다.
"야, 트렁크 열어봐, 그 년 자고 있나."
강성태의 지시에 어깨 한명이 뒤 트렁크를 열자마자 소리 쳤다.
"형님, 이리와 보세요."
윤성애는 의식이 없었다. 트렁크 바닥에는 윤성애가 쏟은 피가 흥건했다.
다급해진 강성태가 왼쪽가슴을 만져 보았지만 심장박동을 감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윤성애는 아직 숨이 넘어가지 않았다.
"야, 이년 죽었나보다. 이일을 어쩌면 좋냐?"
강성태가 당황해 했다. 이리저리 윤성애의 상태를 점검한 후 담배를 한대 빼
물었다.
"아, 이일을 어떻게 한다. 바보 같은 년, 목숨이 그것 밖에 안 돼? 염병할, 이거
큰일 났네. 이일을 어찌한다."
그때 어깨 한명이 강성태에게 교통사고로 위장하자고 제의 했다. 그러기 위해서
윤성애가 사는 인천으로 데리고 가서 교통사고로 위장하기로 했다.
강성태 일행은 아직 숨이 넘어가지 않은 윤성애를 싣고 차량 통행이 뜸한 곳을
찾았다. 시체와 다름없는 윤성애에게 옷을 입히고 휴지로 입과 은밀한 부위를
깨끗하게 닦고, 차도에 눕혀 놓고 자신들의 차로 밟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일주일 후 늦은 저녁시간 식사를 마친 장대철은 육지에서 온 보급선이 건네준
지난 신문들을 읽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짤막한 소식란에 윤성애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읽고 또 읽어보아도 분명 자신의 처, 윤성애가 교통사고로 사망했
다는 내용이 분명했다. 경찰은 사인이 아무래도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것 같아
계속 수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럴 수가 ,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장대철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동료 선원들이 그 기사를
돌려가며 읽어 보았다. 이 씨는 즉시 이 사실을 선장에게 알렸다. 장대철은 강성
태가 안내 윤성애를 죽였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틀 후 보급선이 오늘 날을
맞춰 특별 휴가를 받은 장대철은 육지로 나와 윤성애의 사체가 안치된 병원을
찾아 직접 윤성애의 사체를 확인하고 관할 경찰서를 찾았다.
수사담당 형사에게 그동안의 강성태와 자신과의 악연을 모두 털어놓고 이번
사망사고도 분명 강성태의 짓이 분명하다고 진술했다. 즉시 강성태는 전국적으로
지명수배령이 내려졌다. 이 소식은 곧 강성태에게 전해졌고, 강성태는 외항선을
타고 도주할 결심을 했다. 부검결과 두 남성의 정액이 윤성애의 질(膣)내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죽은 자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두 아이들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윤성애는 인근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생을 마감했다. 장대철은 화장한
윤성애의 유골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두 아이들을 친척집에 맡기고 장대철은
술로 살았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왜 하필이면 소설 같은 일이 나에
게 일어난단 말인가. 왜? 어째서?"
아무리 절규해보아도 가슴속에 맺힌 원통한 심정을 풀길이 없었다.
"여보, 정말 미안하오. 고생만 시키다가 비명횡사를 한 당신에게 정말로 미안
하오. 당신의 원한을 어찌 풀어줘야 할지."
몇날 며칠을 윤성애의 영정을 붙잡고 통곡 했지만 슬픔은 장대철의 더욱 가슴을
시리게 했다. 며칠 후 장대철은 강성태와 그 일행이 부산의 어느 허름한 여인숙
에서 검거되었다는 소식을 형사로 부터 들었다. 장대철이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강성태와 대면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장대철은 인간의 탈을 쓴 강성태의 뻔뻔스러운 얼굴을 보고 싶었다. 자신에게
간까지 빼줄 것처럼 이중인격자인 강성태의 말로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담당
형사는 절대 대면을 시킬 수 없다고 했다.
사건 담당 형사는 수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사기를 친 조영진을 전국에 수배령
을 내렸고, 이 소식을 들은 조영진은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등 동남아로 도망 갈
생각을 했다. 이런 낌새를 눈치 챈 김경선은 만약 조영진이 검거 될 경우 자신
에게도 범인도주를 도운 죄로 처벌을 받을 것이라 판단했다.
윤성애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 한 후 김경선은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늘 술로
시간을 보내며 심한 자책감에 빠졌다. 마음이 그리 독하지 못한 김경선은 조영
진이 맡긴 사진과 조영진의 은신처를 쓴 메모지를 발신인 불명으로 봉투에 넣어
관할 경찰서로 발송했다. 김경선은 윤성애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가까운 사찰에 가서 그녀의 명복을 빌어 주겠다고 결심했다.
장대철은 울적한 마음을 달래보기 위해 배를 타기 전 가끔 들렸던 사찰을 찾
았다. 아미타여래께 절을 하며 아내 윤성애의 왕생극락을 빌고 빌었다. 아침에
절을 하기 시작하여 오후 늦게까지 쉬지 않고 절을 하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노스님이 장대철의 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방으로 불러 드렸다.
“시주께선 무슨 사연이 있어,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부처님께 절을 하시는
지요?”
얼굴에 검버섯이 군데군데 있는 노스님은 은은한 얼굴을 하고 자애로운 미소
를 입가에 뗬다.
“스님, 제가 스님에게 신경을 쓰게 했나봅니다. 죄송합니다.”
장대철의 눈에 눈물이 뎅그렁 맺혔다.
“아니오, 시주께서 이곳을 찾으신 것은 다 인연이 있어 오신 것이거늘, 누가 탓하
겠소.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으신 것 같아, 이리로 뫼시라 하였습니다.”
노스님은 손수 작설차를 끓여 장대철에게 권했다.
“스님, 저의 억울하고 원통한 사연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마음을 가라앉힌 장대철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말씀해 보시지요.”
장대철은 강성태를 만나게 되어 돈을 빌리고, 채무자로 전락되어 자신의 전 재산
을 한 순간에 양도한 사연과 자신이 선원이 되고, 아내 윤성애와 강성태가 내연의
관계가 된 사연, 그리고 아내가 강성태에 의해 죽임을 당한 내용을 모두 털어
놓았다.
“아, 업보로다. 모두가 업보로다.”
노스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장대철과 강성태 아내 윤성애의 대략적인 인적사항
을 묻고 한참 있다 입을 열었다.
“인간은 삼세윤회를 하지요, 즉 전생, 금생, 내생을 삽니다. 이 삼세는 인(因).연
(緣).업(業).과(果)의 필연적 연기법의 법칙에 의해 연결돼 되어있지요. 인은 씨앗
이요, 연은 연지, 곧 씨앗이 뿌려지는 밭이며, 업은 밭에 뿌린 씨앗이 결실을 볼 때
까지 가꾸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요.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요, 내일은 오늘의 연장
이며, 전생은 금생의 과거요, 내생은 금생의 미래입니다.
전생에 좋은 씨앗을 뿌렸다면 금생에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요, 금생에 악의
씨앗을 뿌렸다면 내생에 악의 열매를 거두게 되지요. 즉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
악과(惡因惡果) 이것이 사바세계의 생리입니다.
삼세의 인연 또한 시간과 공간의 파장으로서, 전생에 하던 일과 생각했던 일을
금생에도 하게 되고, 금생에 하던 일과 생각하던 일을 내생으로 연장 확대되어
가지요.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사라지는 종연생종연멸(從緣生從緣滅)
은 만고의 법칙입니다.“
노스님은 다시 한참동안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된 것이 모두 이미 정해졌던 일이란 말인가? 나와 아내
와 강성태는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었던 것일까?”
장대철은 노스님의 말씀을 듣고 장대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몇 번을 생각해
보았으나,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 만에 노스님이 눈을 떴다.
“스님, 그럼 저와 아내 그리고 강성태는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입니까?”
장대철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했다.
“놀라지 마시오, 전생에 시주님의 처는 강성태와 부부의 연을 맺고 있었소. 시주
님은 그 집안의 머슴이었고, 시주께서 주인댁 아씨를 사모한 나머지 모든 것이 뒤
엉키게 되었소이다.”
장대철은 야구방망이로 뒷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제가 전생에 큰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장대철은 믿을 수가 없었다. 불심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노스님의 말씀을 부인
할 수도, 인정 할 수도 없었다.
“시주께서는 집주인의 처를 사모한 나머지 집주인 몰래 아씨를 유혹해 야반
도주를 하여, 그 남자의 가슴에 원한을 사게 되었고 결국 그 집안은 패가망신을
하였으며, 그 남자는 결국 한을 품고 죽게 되었지요. 그 남자가 바로 시주님의
처를 죽인 강성태라는 남자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장대철은 노스님이 들려주는 자신의 전생담(前生談)에 큰 충격을 받았다.
노스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시주님뿐만 아니라 우리주변에는 악연으로 고통을 받는 일이 허다하지요.
내가 아는 여신도 한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처녀시절 어느 날 부엌에 들어갔
다가 팔뚝만한 굵기의 두발이 넘는 능구렁이가 부엌대들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깜작 놀라 비명을 질렀습니다. 일 하던 머슴들이 다려들어 쇠꼬챙이로
찔러 죽여 불에 구워 술안주로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곧 시집을 갔고, 똬리를 튼 능구렁이를 태몽으로 꾸고 외동아들을 출산
하였습니다. 아들은 공부를 잘하여 의대를 졸업하였고 대학병원서 인턴. 레지
던트를 거쳐 병원개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고관대작을 지냈
고 집안은 남부러울 것이 없는 다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아들과 아들친구들이 개 한 마리를 가지고 산으로 들어가서 잡아
먹고 인근의 여관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아들은 유독
혼자 자겠다며 고집을 부려 독방을 사용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늦게까지 일어나지 않아 친구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간밤
에 연탄과열로 비닐장판과 함께 검게 타버려 죽어있었습니다. 죽은 모습이 뱀
처럼 몸이 동그랗게 오그라든 채 타죽은 것이었지요. 그것은 그녀가 처녀시절
부엌에서 본 그 능구렁이가 머슴들 손에 불어 구워 술안주가 된 바로 그 모습
이었지요.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고, 가슴을 찢는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남편
에게 이혼을 당하고 혼자 살며 자신의 업보를 참회하고 있답니다. 뿌린 대로 거
두게 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노스님은 염주를 들고 경전을 암송했다.
장대철은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뒤 더욱 자책감에 빠져들었다. 아내의 유골
함을 들고 장대철은 다시 배로 돌아왔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배로 돌아 온 정대철은 말이 없었다. 사람이 완전히 변해있었다. 이씨가 말을
붙여도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시키는 일만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몹시 내리기 시작하더니 저녁나절 하늘이 말끔히
개였다. 선원들은 낮부터 술을 마시거나 낮잠을 자거나 또는 개인적인 일을
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낮에 마신 술로 피곤했던지 동료선원들은 일찍 잠을
청했다. 밤이 이슥해졌지만 장대철은 아내에 대한 생각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내 윤성애의 유골이 든 함을 꺼내들고, 소주 한 병을 들고 갑판으로 나왔
다. 반달이 처연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저놈의 달은 왜 또 나온 거여?”
장대철은 혼자 중얼거렸다.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고 하늘을 향해 뿜어 대자
바닷바람에 실려 공중으로 산화했다. 낮에 마신 술이 아직 채 깨기도 전에
장대철은 소주 한 병을 안주도 없이 나발을 불었다.
“여보, 당신이 이 못난 놈 때문에 일찍 갔구려. 정말로 미안하오. 내 더 살아서
뭣하겠소.”
장대철은 복 받쳐 오르는 서러움과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견딜 수 없었다.
이씨가 잠을 자다가 장대철이 보이지 않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장
례식을 치루고 온 다음부터 시무룩하고 예전과 달리 말이 없는 장대철을 측은
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이 잠자다 말고 어디 간 거야?”
이씨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갑판으로 나갔다. 바로 그때 ‘풍덩’ 소리가 들렸다.
갑판에는 빈 소주병과 빈 유골함이 있었으며 주변에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장대철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럼, 이 사람이 바다로 투신을 했단 말인가. 대철이, 대철이, 이 사람아
어디 있어, 대철이......”
이씨의 울음 섞인 절규가 밤하늘에 메아리 치자 반달은 서서히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끝 -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다른 작품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0. 4. 27. 20: 30분
인천 소래신도시에서 여강 최재효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