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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의 달빛(2)

* 창작공간/중편 - 황해의 달빛

by 여강 최재효 2010. 4. 1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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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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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의 달빛(2)

 

 


                                                                                                                                                                                    - 여강 최재효

 

 

 

 

 

 장대철이 재빨리 택시에서 내려 호텔로 뛰어들었지만 두 남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달려가 층 번호판을 보았다. 엘리베이터 두 대는

각각 다른 층에서 멈춰있었다. 장대철의 심장은 평상시의 속도보다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프런트 안내원에게 방금 들어 온 두 남녀가 객실을 빌렸느냐고 물었지만, 보안상

알려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장대철은 몇 달 전 악몽이 떠올렸다. 다리에 힘이 빠지

고 천장에 매달린 대형 샹들리에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 것처럼 느껴졌다.


 장대철은 지금쯤 아내와 강성태가 어느 객실에 들어 서로 부둥켜안고 진한 입맞

춤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 잡은 쥐를 눈 앞에서 놓친 심정으로 후런트

옆 커피숍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커피숍에 들어서다가 장대철은 석고

상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어야 했다.

 

 커피숍 안쪽 창가에 아내의 등이 보였고 그 앞에 강성태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윤성애와 강성태는 객실로 올라간 것 아니었다. 스스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장대철

은 자신이 좀 전에 했던 생각에 아내에게 미안해 했다.


 웨이츄레스가 맨하턴으로 보이는 칵테일과 싱가포르슬링을 쟁반에 담아 장대철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윤성애는 칵테일을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지만 장대철과

처녀시절 연애할 때는 싱가포르슬링을 가끔 마셨었다. 장대철은 커피숍을 나와

커피숍 출입구 쪽에서 서성이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장대철은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놀라워하며, 법적으로 윤성애와 당연히 부부고,

그 부부의 한편이 눈 앞에서 다른 남자와 시시덕거리는 것을 보고도 어찌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을 나무랬다.


 아니 어쩌면 장대철 자신에게 예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관음증상이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다정히 밀애를 즐기는 모습에 짜릿한

흥분을 느끼고 있음을 장대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숨어 살면서 선뜻 남 앞에 나서지 못하는 대인기피증세가 생겨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십분 정도 지나자 커피숍 출입문이 열리고 윤성애의 모습이

나타났다. 줄담배를 피워대던 장대철이 얼른 피던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 아내의

다음 행선지를 주시했다.


 장대철의 예상과 달리 두 남녀는 후런트로 가지 않았다. 강성태가 자연스럽게

윤성애의 허리를 껴안으며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지하통로 계단으로 내려갔다.

R호텔 지하에는 물 좋기로 소문난 대형나이트클럽과 게임장 그리고 간이 바(Bar)

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장대철은 다시 두 남녀의 뒤를 밟았다. 두 남녀는 나이트

클럽으로 들어갔다.

 

 장대철이 재빨리 나이트크럽 안으로 들어서자 웨이터가 클럽 왼쪽 벽 앞 테이

블로 안내했다. 장대철은 눈이 띄지 않을 거리를 두고 반대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홀 안에는 이미 수많은 중년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뜨거웠다. 대부분이

가슴이 휑한 여인들이었고, 그 여인들 사이를 웨이터들이 분주히 오가며 부킹을

주선하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밴드마스터들이 귀청을 때리는 빠른 템포의 음악을 연주하자 홀 안에서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소개받아 마음이 흡족해진 여인네들이 남정네들의 손을 잡아끌며

밀물처럼 무대로 나오고 있었다.


 강성태가 윤성애의 손을 잡고 다정스런 연인들처럼 의기양양해 무대로 나왔다.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윤성애가 무대로 나와 몸을 흔들어대자 중년의 아저씨

들이 강성태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질투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이어 나훈아의 '영영'이 반주되자 무대 위는 십여 쌍만 남았다.

 

 그 중에 윤성애와 강성태가 지남철의 반대극이 서로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한 몸

이 되어 흐느적댔다. 장대철은 진한 위스키를 마시면서 아내에게 강한 배신감을

느끼며 당장 무대로 달려 나가 마시던 위스키 병으로 강성태의 머리통을 박살내고

싶었으나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강성태의 품에 안겨 행복한 자세로 본능의 감성대로 흐느적

대는 아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성태의 양팔이 윤성애의 가냘픈 허리를

조이고 있었다. 윤성애의 다리가 풀린 정도로 보아 이미 상당히 자극적인 행동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의적으로 강성태의 남성이 윤성애의 예민한 부분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춤을 추면서 자주 윤성애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알 수 없는 신음소

리를 내고 있었지만 음악 반주에 묻혔다.


 장대철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면서 아내가 다른 남자 품에 안겨 희열을 느끼는

모습에 서서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 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에

이성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위스키 한 병이 거의 다 비워가자 음악이 다시 빠른

템포로 바뀌자 가슴이 휑한 중년들이 우르르 무대로 몰려 나갔다.


 윤성애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강성태의 손을 잡고 자신들의 테이블로 들어

왔다. 술잔을 비운 강성태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출구 쪽 화장실 안으로 사라

졌다. 장대철은 지금이 찬스라고 생각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아내 앞에

다가 갈 자신이 없었다. 위스키 마지막 잔을 마셨다. 오랜만에 안주도 없이 마신

독주(毒酒)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비수처럼 내리 꽂히는 무대

의 싸이키 조명이 꿈결처럼 보였다.


 강성태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이어 윤성애가 화장실로 향했다. 장대철은 얼른

따라들어 가고 싶지만 남자가 여성화장실에 들어간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장대

철은 어떻게 하면 아내를 불러낼까 고민하다가 계산대로 나가서 웨이터에게

메모지를 주며 윤성애를 불러 달라고 부탁하고 후런트에서 객실을 빌렸다.


[ 김사장입니다. 윤사장님에게 급히 전할 말이 있습니다. 잠깐만 1층 로비에서

뵐 수 있을까요? ]  


 장대철의 메모를 읽은 윤성애는 알지 못하는 사람한테 메모를 받고, 고개를 갸우

뚱하며 고민하는 눈치였으나 강성태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하고 외투를 들고

1층로비로 나왔다. 윤성애가 1층 로비에 모습을 나타내자 대철은 윤성애에게 다가

갔다.


 "여보! 나야. 나."

 윤성애는 뜻밖에 남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랬다. 


 "여보? 아니 당신이 여길 어떻게?"
 윤성애의 얼굴이 기쁨과 두려움으로 묘한 표정이 되었다.


 "여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나 지금 경찰에 쫓기고 있어, 어서 날 따라와,

어서"  

 장대철은 다짜고짜 윤성애의 손목을 잡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아내를 밀어 넣었다. 


 "여보, 나 같이 온 손님이 있는데, 잠깐 이야기 하고 나올게."
 윤성애는 강성태를 떠 올렸다.


 객실로 들어서자 장대철은 아내 윤성애를 침대 위로 넘어뜨리고 오랜기간

눌렸던 본능적 행동을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강성태의 품에 안겨 흐느적대던 아

내가 자신의 몸뚱이 아래에 깔려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장대철은

묘한 승리감을 맛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 이상 장대철의 손길에 의해 연주되던 윤성애의 오관(五官)이 서서

히 본래 주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 오관들이 어디 갔다가 이제 돌아왔느냐며

아우성이었다. 방금 전 달아오르다 만 윤성애의 혈관이 다시 부풀어지며 피의

흐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지하 나이트클럽에서 강성태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잊은 채 사업과 도피생활

로 인해 제대 가져보지 못한 운우(雲雨)의 정을 풀어 나갔다. 강성태는 30분이

되어도 윤성애가 나타나지 않자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네 번식이나  휴대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고객의 사정으로 받을 수 없다’는

안내 방송만 귀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강성태가 담당 웨이터에게 윤성애에게

메모지를 건네준 웨이터를 찾아 달라고 하자 곧바로 그 웨이터가 달려왔다.

강성태는 웨이터로부터 생김새를 물어보았지만 그 남자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윤성애에게 휴대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역시 똑같은

안내 방송만 흘러나왔다.


 독한 위스키에 취한 채 사자가 어린 양을 먹이로 잡고 이리저리 가지고 노는

것 처럼 장대철은 분냄새와 남자 체취가 진하게 밴 윤성애의 몸뚱이를 구석구석

탐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아내를 안아 본 장대철은 적에게 탈취 당했다가 회수

한 신병기를 다루듯 정성을 다해 윤성애를 연주했다.

 

 남정네들의 땀내와 비릿한 생선냄새로 찌든 선원생활에서 갑자기 무릉도원

같은 분위기 전환에 장대철은 꿈 속을 걷는 듯 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법적으로

부부라는 타이틀이 붙은 암수의 본능행동이 절정을 치달았다. 장대철은 아내의

대담한 체위요구와 불같은 행동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제대로 주인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장대철의 열락의 신음소리를 끝으로 객실 안은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벽에

설치된 대형 반사유리에 아내와 자신의 나신(裸身) 적나라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은은한 오렌지 불빛 향긋한 향수, 멍텅구리 배와는 거리가 먼 것 들이었다.

 

 윤성애는 옆에 널브러져 있는 남편 정대철이 강성태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성적

기교면에서 열세(劣勢)에 있지만, 그 동안 저지른 강성태와의 불륜을 어느 정도

희석시켰다고 생각했다.


 윤성애는 정신이 들자 지하 나이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강성태가 생각

났다.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휴대폰을 열어보니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와있었다.


 [내일 아침에 전화 드릴게요. 오늘은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먼저 갑니다.

죄송해요 - 윤성애]

 강성태에게 메시지를 띄우고  나오니 장대철이 담배를 피우며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보, 당신 어떻게 된 거에요? 경찰에 쫓긴다는 이야기는 또 뭐에요? 그리고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 거예요? 마누라와 아이들이 어찌 지내는지 궁금

하지도 않으셨어요? 대답 좀 해봐요.” 


 윤성애는 속사포처럼 장대철의 대답할 시간도 없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장대철이 담배 한 개비에 다시 불을 붙이고 길게 한 모금 빨아 천정에 대고

연기를 뿜어냈다.


 “여보, 그동안 난 외국에  나갔다왔어. 외항선원이 되었어. 오늘 배가 잠시 인천

항에 정박을 해서 당신과 아이들 소식이 궁금해서 집에 오다가, 만수동이 집인

같은 선원이 술이나 한잔 하자고 이 호텔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다가 당신이 화장

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웨이터 편에 메모지를 건넨 거야. 그런데 당신은 그 시각

에 그곳에 누구랑 온 거야?” 


 장대철은 아내가 강성태와 함께 온 것을 모르는 척 둘러댔다. 윤성애는 속으로

남편이 강성태를 보지 못했다는 판단이 서자 안도했다.


 “전 당신이 잘 아는 경식이 엄마하고 동네 언니들하고 심심해서 술이나 한 잔

하려고 왔어요.  맥주 두잔 정도 마시고 있는데, 당신한테 메모지를 받은 거예요.” 


 윤성애는 당당하게 말하면서 죽어있는 대철의 은밀한 부위를 쓰다듬었다. 장대

철은 속으로 깊은 배신감과 묘한 희열을 동시에 느끼며, 이 침대에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강성태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악몽을 떠 올리며 아내와 강성태의 격렬

한 정사(情事)를 그려보았다.


 윤성애는 장대철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지만, 장대철은 새벽에

배로 돌아가 몇 달은 더 외항선원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의 손길에 그동안

굶주렸던 장대철의 육욕(肉慾)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자

어스름한 여명이 창가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장대철은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을

윤성애에게 건네주며 아이들 건사를 잘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큰 형님과 상의

하라고 당부를 했다.


 장대철이 택시를 잡아 윤성애를 태워 보내고 자신도 임시 숙소인 여인숙으로

돌아왔다. 장대철이 방에 들어오는 인기척에 이 씨가 잠에서 깼다. 이씨는 장대철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새벽녘에 도둑고양이처럼 살며시

돌아 온 장대철을 보자 안심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어선이 이틀 만에 수리를 마치

고 다시 먼 바다를 향해 출항했다.


 젊은 선원들은 이틀간의 휴식을 아쉬워했다. 아내를 만나러 갔다가 뜻밖의 장면을

목격한 장대철은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렸다. 밤이면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고 잠들기 전에 아내와 강성태가 이 순간 격렬한 정사를 가지

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버릇처럼 되어버렸다.


 “그 연놈들, 가만두지 않을 테다.” 
 장대철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강성태가 자신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더니 이제는

아내 윤성애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결론에 이르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연말이 되었지만 남정네들만 득실거리는 배에는 이렇다 할 연말의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겨울이지만 자주 폭풍우가 치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럴 때는 온

종일 낮잠으로 소일을 해야 했다. 선장은 날씨를 탓하며 대낮에도 술로 시간을 보내

고 있었다. 강성태는 R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윤성애의 돌출 행동에 대하여 불쾌한

심기를 삭이며, 윤성애가 운영하는 식당마저 자신의 수중에 넣으려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저녁, 설악산 천궁호텔 근사한 레스토랑에 두 남녀가 다정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미 일주일 전부터 강성태는 윤성애와 1박2일로 강원도

설악산 콘도로 놀러갈 계획에 의해 설악산에 놀러온 것 이다. 이태리산 쉐리와인

잔을 부딪치며 윤성애는 마냥 행복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강성태에게 애교를 떨고

있다.


 “성태씨, 오늘밤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을 위하여 건배해요.”
 윤성애의 건배제의에 강성태 역시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후 이어질 뜨거운

일을 상상하고 쌉쌀한 쉐리와인의 맛을 음미하고 있다. 낮에 잠시 내리다 그친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문대위에서는 하얀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20대 초반의 피아니스트가

‘아드리느를 위한 발라드’를 연주하며 묘한 미소를 지어가며 손님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윤성애는 지그시 눔을 감고 마치 자신이 공주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은은한 조명, 봄바람같이 들려오는 감미로운 음율, 자신을 끔찍이 아껴주는 남자,

환상적인 분위기, 쌉쌀한 와인 모든 것이 자신과 강성태의 꿈결 같은 밤을 위한

소품들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치룰 뜨거운 정사(情事)를 상상하자 아랫도리가

촉촉해져 옴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꼬았다.


 "성애, 뭘 그리 생각해?”
 강성태가 부드러운 눈길을 주자 윤성애는 끈적끈적한 미소와 윙크로 메시지를

전했다. 강성태는 지금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

하고 윤성애의 옆 좌석으로 옮겨 앉았다. 은은한 눈길로 윤성애의 마음을 사로잡

았다고 판단한 강성태는 바싹 엉덩이를 윤성애에게 밀착 시켰다. 쉐리와인 잔을

들고 건배를 제의하자 윤성애는 붉은 입술을 강성태의 뺨에 살짝 댔다 떼었다.


 “성애, 나 부탁하나 있는데 들어줄래?”
 강성태가 윤성애의 눈치를 보았지만 윤성애는 눈을 뜨지 않고 현재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 하는 자세였다. 한참 만에 윤성애가 입을 열었다.


 “성태씨, 부탁이 뭔데?”
 강성태는 요즘 갑자기 자금사정이 나빠져 주유소 운영에 힘이 든다는 것과

혹시 여유자금 있으면 보름만 빌려달라는 뜻을 전했다. 와인 한 모금을 입에

물고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윤성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응, 알았어. 걱정 마, 내일 인천가면 바로 해줄게.”
 빨간 입술이 세상의 남자들을 집어 삼킬 것 같았다. 강성태는 진실로 감격해

하는 제스처를 써가며 기뻐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창밖은 좀 전보다 양이

많아진 눈에 의해 은백색의 장관을 연출했다.


 “자, 대철이 한잔 받아.”
 선장은 크리스마스이브라고 조촐한 주연을 마련했다. 선원들이 빙 둘러 앉아

낮에 잡은 광어회와 잡어로 끓인 매콤한 탕을 가운데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이미 낮부터 소주잔을 기울이던 젊은 측 몇몇은 눈이 게슴츠레 풀려

있었다.


 선장과 선원들 사이에 독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어서 선장이 소주

파티를 연 것은 아니다. 날씨가 좋지 않고 마침 크리스마스이브이기에 울적한

선원들의 심사를 달래주려고 한 것일 뿐이었다. 저녁을 먹지 않은 빈속에 쓴

소주 몇 잔을 털어 넣은 장대철은 금방 현기증을 느꼈다.


 선장에게 잠시 바람 좀 쐬겠노라고 하고 갑판위로 나왔다. 눈은 그쳤으나

바닷바람이 얼굴을 강타했다. 담배 한대 꺼내 물고 하늘을 보았다. 구름 사이로

반달이 숨바꼭질하며 장대철을 보고 웃고 있다. 길게 한 모금 빨고 구름과자를

만들어 허공으로 뿜어냈다.


 아내를 만나고 온 뒤 부터 대철의 뇌리 속에는 간석동 R호텔 나이트클럽

에서 아내와 강성태가 한 몸이 되어 블루스를 추는 장면과 행복에 겨워하는

아내의 모습으로 꽉 차 있었다. 어망을 끌어 올리다가도 자신을 비웃는 듯

한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 그 연놈들을 그냥두지 않겠어, 그냥두지 않겠어.” 


 다시 담배 한 모금 길게 빨고 반달을 향해 뿜어냈다. 반달이 다시 구름 속

으로 숨어 버렸다. 장대철은 아내와 믿었던 시형 동생인 강성태에게 배신을

당하니까 달조차 자신을 조롱한다고 생각했다. 빈속에 마신 소주가 서서히

장대철을 취하게 만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대철이, 여기서 뭐하나? 한 잔 더 하지 않고?”
 이 씨가 언제 갑판위로 올라 왔는지 말을 걸어왔다. 이 씨는 장대철이 아내

를 만나고 온 이후부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잠을 자면서도 가끔 알 수 없는

말로 잠꼬대를 하는가 하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낮에 일하다가도 먼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만 쉬어대곤 했다.

 

 분명 아내를 만나러 간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 씨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이 씨의 양손에 소주

한 병과 회 한 접시가 있었다.


 “이봐, 대철이 나하고 여기서 한잔 더 함세.”
 이 씨가 소주를 따라 장대철에게 건네자 눈물을 훔치고 받아 마셨다. 바닷

바람이 휘익 불어왔다.


“사나이가 그리 약해서 뭐에 쓰나.”
 이 씨는 장대철이 왜 눈물을 흘렸는지 속을 훤히 들여다 본 것처럼 
장대철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이 씨도 담배 한대를 빼물고 길게 빨아댔다. 두 사람이 한

동안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다가, 이 씨가 입을 열었다.


 “이봐, 대철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속 시원히 말해보게, 이 늙은 몸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일세.”
 이 씨가 반쯤 피던 담배를 바다로 휙 던졌다.    


 "아저씨, 이렇게 억울하고 원통할 수 가……. “
 대철은 마치 오랜 기간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리듯 서럽게 소리 내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장대철을 바라보는 이 씨는 착잡했다. 장대철에게 배를 타게 된

동기를 모두 듣게 된 이 씨는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 신음

소리를 내기도 하였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하며 죄 없는 담배만 희생

시켰다.


 갑판에는 장대철과 이 씨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흰빛을 발하고

있었다. 다시 바람이 사납게 불기 시작하자 배가 좌우로 기우뚱 거렸다. 달도

모습을 감추었다. 사방이 다시 칠흑 같은 어둠으로 덮였다. 억겁동안 구천을

떠돌던 원귀(寃鬼)들의 원통한 울음소리 같은 바람소리가 배전에서 들려 왔다.


 "그래, 대철이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인가"
 이 씨가 마지막 소주잔을 비우며 말을 이었다. 장대철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

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이 씨가 담배에 불을 붙여

주자 장대철은 아무생각 없이 받아 빨아 댔다. 무슨 철천지원수의 피를 빨아

마시듯…….


 “내 이야기 한번 들어 볼 텐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면 이 씨가 잠깐의 어색함을 깼다.


 “아저씨도 무슨 사연이 있으세요?”
 “사연? 사연이라......”


 “......”
 이 씨가 다시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우고 나서 입을 열었다.


 “벌써 5년이 흘러갔네그려. 그렇게 내 인생이 반전 된 사건이 있었던 일이.”
 “무슨 일이 있으셨는데요?”
 “들어보시게, 내 화려했던 옛 이야기를......”


 “네에, 아저씨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 보다 인생의 선배이시고, 그 동안

사회에서 즐겁고 괴로운 일도 많으셨으리라 믿습니다. 부디 제가 이 험한 세상

을 헤쳐 나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무겁게 흘렀다.


 “내가 일찍 시골서 서울로 올라와 안 해본 일이 없었네. 공사장 막노동판에서

부터, 구두닦이, 남대문시장에서 지게꾼, 식당종업원, 풀빵 장사 등 일일이

세면 100가지도 넘을 걸세. 나이 30세가 좀 넘어서 애들 엄마를 만나 결혼을

하였지. 같은 식당에서 일하다 만났어. 그 여자는 참으로 착했어. 내가 하자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믿고 따랐지. 신혼살림은 창신동 어느 허름한 단칸방에서

시작했지. 참으로 좋았어.
 

 내 인생에서 그때 1년간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야.

둘이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 식당 종업원 10년 만에 서울 변두리에서 중국집을

운영했지. 그때야 뭐 메뉴가 다양하지도 않았어. 그저 자장면 하나만 잘 말면

되었으니까.  식당을 내고 나니까 얼마 안 되어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거야. 평일은 거의 의자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자장면을 만들었어.

 

 특히 주말이나 일요일이면 밀려드는 주문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댔지. 배달하는

아이들만 4명이었으니까. 이제야 나도 세상에 나와 어깨 좀 펴고 사나보다

하고 생각했지. 중국집 개업하고 3년 만에 인근 상가에 크게 중국집을 차렸지.

식당을 두개 운영하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분간이 안 되더군.

 

 2년 만에 근처에 또 대형 중국집을 열었어. 식당 3개를 운영하는 사장이었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앞만 보고 달리니 돈은 저절로 굴러들어 오

더군. 대형식당 3개에 종업원만 40여명이 넘었으니 웬만한 중소기업 보다

규모가 컸었어.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아이들도 아무 말썽 없이 잘 자라 주더군. 내가 서울서

중국집을 운영하여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고향에 까지 알려 지면서 알지도

못하는 친인척들이 찾아오고 초등학교 졸업하고 수십 년간 소식도 없던 친구

들이 찾아오더군.

 

 사람은 돈 좀 벌었다고 소문나니까 저절로 사람이 모여들더군. 그래서 고향

초등학교에 기부금도 좀 내고, 어려운 친구들도 약간 도와주었어. 고향에

서는 나의 좋은 평판이 자자했어. 그런데 말이야.“


 이 씨는 다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더니 하늘을 향해 길게 연기를 뿜어

댔다. 바닷바람이 다시 세게 불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이브라고 하지만

선장이 건넌 소주 몇 잔에 속을 달랜 장대철은 늘 아내와 즐겁게 보냈던 옛

이브 날의 그리웠다.


 “아저씨, 그런데요?”
 장대철이 이 씨의 이야기를 처음엔 건성으로 듣는 듯 했다가 이 씨가 진지한

자세로 자신의 이력을 말하자 점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릎에 눕히고 옛날이야기를 해주다 잠시 멈추면 안달이 난 손자

가 할아버지를 채근 하듯이.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늘 어르신들이 하던 말씀이 진리

라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네.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뒤에 말이야. 내가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이 씨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닦았다.


 “아, 아저씨…….”
 갑판위에 두 사람은 마치 정물화처럼 꼼짝 않고 앉아서 각자의 살아 온 지난

세월을 반추하는 듯 했다. 눈물을 닦고 난 이 씨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좀 살만하니까 마누라가 폐암에 걸렸지 뭐야.”
 “네에? 폐암이요?”
 “아주머니께서 담배를 피우셨나요?”


 “에이, 이 사람. 그게 아니고 어려운 환경에서 소리 없이 내 뒷바라지를 해주던

사람이었어. 술은 입에도 못 대고. 폐암은 꼭 담배를 피운다고 걸리는 게 아니야.

열악한 작업 환경이나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서 발병 할 수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요?“

 “백방으로 마누라를 살리기 위해 뛰어 다녀봤지만 이미 말기에 접어 든 상태

였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었지. 바보같은 여자가 미리 나에게 말해줬으면

좋으련만 몸 컨디션이 안 좋으면 약국에 가서 엉뚱한 약만 사먹고 곧 괜찮아지

겠지 하고 그냥 넘기곤 했어.

 

 스스로 병을 키운 셈이지. 자신도 그렇게 될 줄 몰랐던 거야. 결국 폐암말기

진단 받고 3개월 만에 마누라를 하늘로 보냈어. 살만하니까 마(魔)가 끼더군.”
 이씨는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더니 길게 빨아댔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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