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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의 달빛(4)

* 창작공간/중편 - 황해의 달빛

by 여강 최재효 2010. 4. 1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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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의 달빛(4)

 

 

                                                                                                                                                                                        -  여강 최재효

 

 

 


 “죽여 버릴 거예요, 그 연놈들을…….”
 잠자코 하늘만 쳐다보고 있던 장대철이 입을 열었다. 


 “아니, 이 사람아, 아내를 왜 죽여?  죽이려면 그놈을 죽여야지.”
 이씨가 거들자 대철이 주먹을 불끈 쥐며 허공을 갈랐다.


 “아닙니다. 마누라가 내가 없는 틈을 타서 그 놈과 몸을 섞고, 나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자체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두 연놈을 박살을 내

고 싶은 심정입니다.” 


 구름 속에 숨어있던 달이 살포시 얼굴을 내밀었다. 일전한 간격을 유지하며 배가

조금씩 좌우로 움직였다. 이씨는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양 뭔가를 골몰히 생각하더

입을 열었다.


 “그러면 그들을 징치하기 위한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가?”
“제가 이 배에 묶여있으니 어찌할 수가 없어서 답답합니다. 그래서 다음 주쯤 연극

해보려고 합니다.”


 “연극?”
 이 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연극이요. 부식수송선이 올 때쯤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죽는 시늉을 하여 그

배를 타고 인천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 씨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밤 11시쯤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찾아가서 상황을 파악한 후 행동을 하려 합

니다. 분명 이삼일에 한번은 만날 리라 추측합니다.”


 “자네 정말로 사람을 해칠 생각은 아니지? 그냥 만나봐서 혼만 내주고 오는 게 어

떤가? 그래도 자네에게 시집와 아이들 낳고, 자네 뒷바라지 해온 아내 아닌가? 그렇

다고 자네 눈으로 직접 그 남자와 섹스 하는 것을 목격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웬만

하면 따끔하게 혼내주고, 다시는 그 남자 만나지 않도록 조치만 취하고 오게.”
 이 씨는 점잖게 친 동생을 계도하듯 했다.


 “아닙니다. 전 요즘 사는 게 괴롭습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제 마누라와 자식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이렇게 도망 다니고 있고, 거기다가 마누라는 속도 없이 나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악마 같은 놈과 눈이 맞아 놀아나고 있으니 아저씨가

제 입장이라면 살맛이 나겠습니까?” 


 장대철은 일어나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향하여 찬바람을 쐬었다. 머릿속으로는

아내 윤성애와 강성태의 음탕한 장면이 활동사진처럼 흘렀다.


 설악산에서 꿈같은 휴가를 보낸 윤성애는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을 담보하고 잘 아는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마련하여 강성태에게 건넸다. 거금을 넘겨받은 강성태는 매일

점심 저녁을 윤성애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살다시피 했고, 그런 강성태가 자신을 진정

으로 사랑하는 줄 아는 윤성애는 마냥 행복해 했다. 으레 영업이 끝날 시간이 되면

강성태는 윤성애를 불러냈다.


 새해 첫날이 밝아왔다. 고기가 잡히지 않자 선원들은 낮잠을 자거나 도색잡지를

보며 시간을 소모했다. 장대철은 몇 칠을 고민하고 나름대로 복수할 계획을 치밀하게

꾸몄고, 메모지에 도표까지 그려가며 철저한 준비를 했다.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

에 든 대철은 새벽녘이 되자 배를 움켜잡고 나뒹굴기 시작했다.  


 “아이쿠, 어머니 나죽어. 나 좀 살려주세요.” 


 대철은 각본대로 행동으로 옮겼고, 이 씨는 덩달아 빨리 육지로 후송해야 한다며

수선을 떨었다. 네일 오후에 육지에서 보급선이 오기로 되어있었다. 선장은 평소

말이 없고 성실한 장대철이 아프다며 죽는 시늉을 하자 꾀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선장님, 이렇게 내버려 두었다가는 사람 잡겠습니다. 무슨 조처를 취해야 할 것

습니다.”  

 이 씨가 선장의 눈치를 보며 거들고 나섰다.


 “이 새벽에 뭘 어찌 한담?  날이 밝기 시작했으니, 기다렸다가 오후에 연락선으로

육지로 후송해야지 기다릴 수밖에…….”

 

 선장이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장대철은 선장이 옆에 있자 더욱 신음소리를 높이

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선장은 속으로 은근히 걱정을 하였다. 만약 잘못

되어 선원이 배에서 사망이라도 하는 날이면 조업에 큰 차질을 초래 할 뿐만 아니라

경찰조사 까지 받게 되면 자신에게도 신상의 불이익을 초래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이 씨를 불렀다.


 “이씨, 오후에 연락선이 오면 이 씨가 장대철을 데리고 육지병원으로 후송을 맡아

주시게. 그리고 병원에 도착하면 즉시 연락을 주시게.” 


 선장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가끔 배에서 원인모를 사유로 인하여 선원

들이 위급한 상황을 맞는 경우가 있었지만, 곧 숨이 넘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노련한

선장은 평소 대철과 가깝게 지내온 이 씨를 딸려 보내 간호를 부탁했다.


  오후 1시쯤 부식과 연료를 실은 보급선이 왔다. 이 씨는 간단히 짐을 꾸려 장대철을

부축해 배를 옮겨 탔다. 장대철이 죽겠다고 신음소리를 내자 보급선은 급히 바닷바람

을 가르기 시작했다. 4시간 만에 배가 인천에 도착하자 이시와 대철은 미리 연락을

받고 대기 중이던 119구급차에 옮겨 탔다.


  동인천인근 병원에 응급실로 후송돼 온 장대철은 묘한 흥분을 느꼈다. 바다에서

육지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후송과정이 환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의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대철을 진찰하던 의사는 신경성위경련으로 입원하여 며칠

간의 휴식이면 회복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밤이 되자 이 씨와 장대철은 병원

입원실을 나섰다. 쌀쌀한 한 겨울을 밤공기가 폐부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동인천역 광장으로 나온 두 사람은 인근 포장마차에 들려 간단히 한잔 하고 가기로

하였다. 며칠 전 내린 눈이 골목길 요소요소를 빙판으로 만들어 놨다. 실내포장마차

들어서자 졸고 있던 40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반색을 한다.


 “하이구, 이거 내가 복이 터졌구먼. 잠깐 졸면서 꿈속에서 귀인 두 분을 만나 음풍

농월을 즐겼더니 그 귀인들이 현몽을 하셨구먼. 어서 오세요.”
 손이 텁텁하게 생긴 주인 여자는 남자 다루는데 이골이 난 것처럼 보였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하고 뭐 뜨끈한 것으로 좀 주세요.”
 하루 종일 억지로 환자노릇을 했던 장대철은 시장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억지로

환자 아닌 환자 노릇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대철이 한잔 받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시장하지? 환자도 아무나 하는

게 아녀.”

 이 씨가 음료수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 주고 자신도 컵에 한잔 넘치도록 따랐다.


“자, 환자노릇 하느라 욕봤네. 건배함세.”


 뜨끈한 오뎅과 매큼한 닭발 안주가 나왔다. 두 사람은 새벽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

했다. 곧 빈 접시 생겨났다. 술과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처럼 보였다. 금방 빈

소주병 이 테이블에 차례로 진열되었다.


 “그래,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말 좀 해보게.”
 담배를 한 모금 달게 마시고 분수처럼 뿜어내며 이 씨가 장대철을 쳐다보았다. 급

하게 마신 술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장대철은 뭔가 골몰하는 모습이다.

 

 두 사람을 태운 택시가 만수동 윤성애가 운영하는 식당 근처에 멈추었다. 장대철과

이씨는 일단 근처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시계가 밤 10시 반을 알리고 있다. 장대철은

이 씨에게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의 위치를 메모지에 그려주고 윤성애의 인상착의도

 이야기 해주며 식당 안으로 들어가 보고 즉시 전화를 달라고 했다.

 

 이 씨는 호프집을 나오며 전화번호를 적고 장대철이 알려준 식당을 찾아갔다.

밤 10시 반이 훨씬 넘었지만 두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다. 한 테이블에는 50대 남자

둘이 술을 마시며 잡담을 하고 있었고, 다른 테이블에는 40대 초방의 한 남자가 뭔가

고민하는 모습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윤성애가 이 씨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손님, 저희 집에 처음 오신 것 같으신데?”
 자두보다 검붉은 립스틱이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네에, 처음입니다. 이 동네에 아는 친구가 있어서 찾아 갔는데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여기서 한잔 간단히 마시고 가려고요.”
 이 씨는 방금 전 장대철이 준 윤성애에 대한 정보를 맞춰보았다.

 

  “이집 사장님이신가 봅니다.” 이 씨가 점잔을 빼며 물었다.
 “코딱지만 한 가게에 무슨 사장은요.” 


 윤성애가 괜히 미안한 듯 두 손을 비볐다. 옆에서 술을 마시던 남자가 윤성애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는다.


  “코딱지만 하다니요? 이정도면 중소기업형 이지요. 저 여기 복지리하고 소주 한

주세요.” 

 이 씨는 동인천에서 마신 술에 취기가 오르는지 발음이 약간 허물어 졌다. 


 “음, 분명 저 옆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놈이 그놈이렷다!” 


 이 씨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술잔을 기울이며 자주 곁눈질로 남자의 상태를 살폈다.

윤성애가 초면의 이 씨에게 다시 다가와 앉았다. 그러면서 연신 옆 좌석의 눈치를

살폈다.

 

 “아주머니, 아주 미인이십니다. 처녀 적에는 남자들이 벌떼처럼 달라붙었겠습니다.

하하하”

 이 씨가 큰 소리로 웃자 옆 좌석의 남자가 째려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영업은 몇 시에 끝납니까? 주인아주머니가 너무 미인이라서 영업 끝나고 2차로

모시고 싶은데…….”
 이 씨가 은근히 윤성애를 유혹하는 말은 던져 보았다.


“어머나, 아이 망측해라. 전 아무나 따라가는 여자가 아니에요. 손님 전주가 있으신

것 같으신데. 조금만 드세요.”

 윤성애가 걱정이 된다는 얼굴표정이다.

 

  “그것은 주인 아주머니가 잘못 본것이지요. 제가 이렇게 볼품없고 나이가 들어보

여도 거시기는 아직 뻣뻣해서 꽤 쓸만하답니다.”
 이씨의 노골적인 다시한번 옆 좌석의 남자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자 이씨는

그 순간을 포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주머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던 혼자 술마시고 있던 남자가 윤성애를 불렀다. 


 “여기 술 한 병 주세요.”
 이씨는 그 남자가 확실히 강성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주 한 병을 들고 그 남자

테이블에 앉은 윤성애는 손수 술잔을 따라 주며 뭐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아주머니”
 이씨가 큰 소리로 윤성애를 향해 소리치자, TV 앞에서 졸던 주방아주머니가 달려

왔다.


“아니, 아주머니 말고 주인 아주머니를 불렀습니다.”
 이씨가 다시 큰 소리로 말하자, 강성태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윤성애가 강성태
에게 뭐라고 양해의 말을 하고 다시 이씨의 테이블로 왔다.

 

  “소주 한 병을 오이채에 담가서 주실 수 있지요?”

 이씨가 윤성애의 불룩한 유방을 쳐다보았다. 롱 드레스를 입은 윤성애의 볼륨 있는 몸매가 조각처럼 느껴졌다.

 

“네에, 잠시 만요.”

 풍만한 엉덩이를 씰룩대며 주방으로 향하는 뒷모습에 이씨는 아찔함을 느꼈다. 공중

전화를 발견한 이씨는 장대철이 있는 호프집에 전화를 했다.

 

  “손님 중에 이씨를 찾는 분 좀 바꿔주세요.”
 곧이어 장대철의 음성이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날세, 그 쥐가 밤이 깊었는데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오늘밤 좋은 먹이가

있나보이. 난 좀 더 있다 쥐가 나락을 까먹기 시작 할 때 다시 전화 하리다”
 이씨의 전화를 받은 장대철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연놈들,  오늘 밤 박살을 내고 말테다.”

 남아있던 생맥주를 벌컥벌컥 삼키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홀 안에 팝송, 크레이지 러브가 질척하게 흐르며 호프를 마시는 사람들의 가슴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자, 제가 한잔 따라 드릴게요.”
 윤성애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오이냄새가 상큼하게 풍기는 소주를 따랐다. 윤성

애는 이씨가 술잔을 비우는 순간에도 시계와 강성태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옆 좌

석의 남자손님들이 일어나자 홀 안은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아주머니, 저기 저 멋지게 생긴 남자분이 애인이신가 봅니다?”
 이씨가 모기 소리만 하게 속삭이자, 윤성애는 흠칫 놀란 얼굴이다. 


  “아 아니에요. 이 나이에 무슨 애인은…….”
 윤성애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아닙니다. 그냥해본 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이씨가 소주잔을 단숨에 마셨다. 강성태는 처음 온 손님이지만 윤성애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건드리는 이씨가 자꾸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자. 윤성애를 불렀다.

강성태가 윤성애에게 어서 식당 문을 닫자고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다시 윤성애가

이씨 곁으로 오더니 상당히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어, 손님 오늘은 이만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다음에 또 오시면 안 되겠어요? 집

에서 할 일이 있어서 일직 마치려고요.” 


 “어험, 그럼 나도 이만 일어나 봐야겠구먼. 너무 미안해 하지 말아요. 다음에 또 놀러

오면 되지.”

 이씨가 못이기는 척하고 일어났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다음에 제가 최고의 서비스로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오늘은 몸도 피곤하고 집안일 때문에…….”
 윤성애가 계산을 하면서 진실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식당을 나온 이씨는 식당에서 20 여 미터 떨어진 골목길에 설치된 공중전화를 걸어

장대철에게 즉시 이곳으로 오라고 연락을 취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장대철이 불콰한

모습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자네 집사람하고 그놈하고 어디 다른 곳으로 갈 모양이야, 날 강제로 쫓아내다

시피 했다네. 이제부터 사냥감을 절대 놓치면 안 되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네.”
 이씨가 마치 전투를 앞둔 전장의 지휘관처럼 행동했다. 이씨가 말을 마치자 윤성

애와 강성태가 다정하게 식당 문을 나섰다.

 

  “대철이 , 자네 집사람이 그 쥐새끼하고 나왔네. 잘 보시게 저놈이 맞는지“
  이씨가 소곤거렸다. 


 “맞습니다. 저놈이 강성태입니다. 저런, 염병할 년이 있나.”
 장대철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대로변으로 나온 남녀를 태운 택시는 겨울바람을 가르고  타고 간석5거리 방향으로

달렸다. 이씨와 장대철 역시 택시를 타고 뒤쫓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택시는 간석

5거리에서 속도를 늦추더니 R호텔로 들어갔다.

  

 호텔보이들의 안내를 받으면 로비로 들어선 강성태와 윤성애는 곧바로 지하 나이트

클럽으로 내려갔다. 눈에 쌍심지를 킨 장대철은 일정 간격을 두고 나이트클럽으로 들어갔다. 클럽은 년 초인데도 불구하고 가슴이 휑하거나 2차로 춤을 추러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무대는 귀청을 때리는 금속성음에 남녀는 몸을 맞기고 기분 나는 대로 흔들어 대고

있고 연기가 자욱한 테이블에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많아 보였다. 대부분이 은밀한

부킹을 기대하고 온 부류의 불나비들 같아 보였다.

 

 강성태는 윤성애 홀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로 안내되어 자리를 잡았다. 이씨와 장대

철 역시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시끄러운 비트음악이 브루스 풍으로 바뀌자 대부

분의 사람들이 테이블로 들어가고 서너 쌍이 조각상처럼 한 몸이 되어 은은한 조명

을 받으며 자신들의 애정을 만천하에 자랑하고 있었다.

 

  강성태 역시 윤성애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무대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먼젓번에 이어 두 번째로 자신의 아내가 외간남자와 그것도 자신을 파멸로 몰아

넣은 자와 춤을 추는 것을 보아야 하는 장대철은 괴로웠다. 분노의 불길이 가슴속

아래로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

 

  “대철이, 저들을 어찌 할 것인가?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니 어찌해 볼 수가 없

는데…….”
 이씨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 30분 정도 있다가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겁니다.”
 비장한 모습의 장대철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엇을 신고한단 말인가?”
 “제가 공중전화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전에 KBS텔레비전 ‘사건25시’에 공개

수배 되었던 자와 인상착의가 같은 사람이 현재 이곳 호텔 나이트클럽에 있다고 신고

를 하는 겁니다.”
 장대철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아, 그래서 자네 처와 저놈을 분리시킨 후 혼내주려고? 자네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었구먼. 기가 막힌 생각을…….”
 이씨는 잠시 후 벌어 질 사태를 상상해가며 흡족해했다.

 

 “만약 저놈이 경찰들에게 연행되면 아저씨가 제 처에게 접근하여 밖으로 유혹해

나오세요. 그런 다음 내가 다가가 다짜고짜 몇 대 두들겨 팬 뒤에 집으로 데리고 가

던지, 아니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리고 가서 혼을 내주려고 합니다.”
 장대철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비쳤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듣고 있던 이씨가 다른

제안을 했다.

 

  “대철이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화장실에 불을 지르고 비상벨을 누를 테니, 자네

는 혼란한 틈을 타서 자네 처를 납치하듯 데리고 나오게 그러면 내가 대로변에 차를

한대 대기 시켜 놓을 테니. 자네 생각대로 저놈이 경찰에 연행되고 내가 자네 처에게

접근 한다하여도 나에게 넘어갈 여자는 아닌 듯 하이.”
 장대철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씨의 방법대로 하기로 했다.

 

  몇 번의 음악이 바뀌고 한창 홀 안의 열기가 높아질 때, 장대철과 이씨는 번갈아

화장로 들락거리며 웨이터들의 눈을 피해가며 불쏘시개를 옮겼다. 취객 두 사람이

소변을 보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두 사람이 나가자 이씨는 재빨리

신문지, 박스, 휴지를 한 군데로 쌓고 불을 지르고 나오며 안으로 문을 잠가버렸다.

 

 이삼 분의 시간이 흐르자 웨이터 들이 우르르 화장실 쪽으로 뛰어가고 매캐한

연기가 삽시간에 홀 내로 번지기 시작했다. 요란한 음악이 멈추고 이어 손님들은

빨리 밖으로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최근 화재사건의 악몽을 떠올린 취객들은 앞뒤 사정없이 출입문을 향해 뛰었고

이곳저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한 몇몇 사람들이 넘어지기도 하고 뒷

사람은 그들을 밟고 지나가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아비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씨는 출입구 한편에 붙어있는 소화전의 비상벨을

눌렀다. 손님들은 비상벨 소리에 더욱 놀라며 공포에 빠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

고 있던 강성태는 아비규환 속에서 윤성애를 잃고 혼자살기 위해 잽싸게 출입구

쪽으로 뛰었다. 이틈을 노려 장대철은 윤성애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누, 누구야?” 
 매캐한 연기 속에서 갑작스런 추행에 놀란 윤성애는 비명을 질렀으나 누구하나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쉿, 나야, 여보, 나라고.”
 장대철이 윤성애의 귓속에 대고 소리 질렀다. 


 “여, 여보? 당신이 여길 어떻게?”
 얼굴이 하얗게 질린 윤성애는 당황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 나를 따라 나와.”
 장대철이 아내 윤성애의 손목을 잡고 거칠게 인파를 헤쳐 가며 밖으로 탈출을 시도

했다. 어디에도 강성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비명소리 비상벨 울리는 소리로 웬만한 말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호텔을 빠져

나온 이씨는 주차장에서 철사로 문을 따서 차량 한대를 절취하고 대로변에서 대기

하고 있었다.


 호텔입구에는 벌써 신고를 받고 달려온 소방차가 시끄러운 사이렌을 울리며 집 앞

을 시도하며 빠져 나가려는 승용차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장대철의 우악스런

손에 손목을 잡힌 윤성애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장대철 뒤를 따라 겨우 나이트

클럽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뭐라고 항의조로 말을 붙여봤지만 사이렌소리와 자동차 경적소리 그리고 비명소

리에 묻혔다. 호텔 입구까지 끌려 나오다 시피한 윤성애는 모든 것이 혼돈스러웠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이, 대철이 여길세, 여기 얼른 타게.”
 검정색 중형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리던 이씨가 소리쳤다. 


 “여보, 자 어서타.”
 장대철이 반강제로 윤성애의 엉덩이를 뒷좌석에 밀어 넣으려고 애를 썼다.

 

 “싫어요, 나 안가요.”
 윤성애가 차에 타지 않으려고 버둥댔지만 남자의 억센 완력을 당하지 못했다. 


 “안 탄다고? 이년아, 그 놈하고 붙어서 오입질 하려고?”
 이번에는 장대철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놈‘이란 말에 윤성애는 놀란 표정을 하고

잠자코 있었다.

 

  “자, 대철이 사모님을 어디로 모실까?”
 이씨가 뒷좌석을 쳐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아니, 다 당신은 ?”
 윤성애는 다시한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형님, 만수동 방향으로 갑시다.”
 “오케이 알았네, 한번 밟아 볼까나.” 


 이씨가 콧노래를 부르며 차를 몰았다. 윤성애는 잠시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사태

의 전후를 눈치 챈듯했다. 말없이 차창 밖을 내다보며,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강성태

를 원망했다. 분명 남편 장대철이 자신이 강성태와 놀아 난 것을 모두 알고 있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했다.

 

 “당신, 날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야?”
 잠자코 있던 윤성애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넌, 오늘 죽어야 해, 내손에 죽어야 해.”
 장대철이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칠 기세였다.

 

 차는 차갑게 식혀진 도로 위를 질주했다. 만수동 수인산업도로  소래포구로 갈라지는

곳이 나오자  장대철은 소래포구 쪽으로 가자고 했다. 이씨는 묵묵히  차만 운전하며

백미러로 뒷좌석을 종종 응시하며 부부사이에 예측 못한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차가  남동구청 앞을 지나 소래포구를 향해 달렸다.  좌측으로  최근 개발되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있고 늦은 밤인데도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불빛으로 동네는

환해 보였다.

 

 광명시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다리 밑을 지날 즈음 장대철은 다리를 끼고 좌측으로

가자고 했다. 그곳은 폐염전이 있는 곳으로 지금은 해양생태공원으로 활용되어

이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곳이었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해서 진입을 시도했다.

 

 수백 미터를 간격으로 소금저장창고가 있는데 밤에는 마치 시골의 상여를 보관

하는 곳집처럼 보였다. 겨울이 아니면 사랑하는 남여가 은밀한 만나기에는 기가

막히게 좋은 곳이었다.


 "자, 내려!"

 장대철이 윤성애를 강제로 끌어내렸다. 


 "날 어쩔 셈이야? 여기서 죽이려고 하는 거야?"
 윤성애의 앙칼진 목소리가 겨울하늘로 흩어졌다. 


 "죽이다니, 내 마누라를 내가 함부로 죽이면 되나?"
 장대철이 비아냥거렸다.

 

 "대철이 난 저쪽으로 가 있을 테니, 천천히 이야기 하게."
 차가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장대철은 담배를 빼물고 길게 연기를 밤하늘

로 날려 보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하늘만 응시했다. 얼마 있지 않아 장대

철이 정적을 깼다.

 

 "당신, 그놈하고 몇 번이나 잤어? 바른대로 말해 날 속이려고 하지 마, 어느 정도는

다 알고 있으니까. 만약 속이려 한다면 여기서 내가 당신한테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장대철은 은근히 겁박을 했다.

 

 "당신, 전에도 갑자기 나타나더니, 오늘은 또 도깨비처럼 나타나 다짜고짜 사람을

짐짝 취급해 이곳으로 데리고 와 뭘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 말 같지도 않은 말 하지

도마. 내가 무슨 창녀야 ?"
 윤성애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장대철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네년이 좋은 말로 하니까 안 듣는구먼."
 장대철이 윤성애의 뺨을 서너 대 갈겼다. 윤성애는 그만 얼굴을 감싸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야, 이 새끼야. 네가 남편이면 남편 노릇을 해야지.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가 나타

나서 뭘 잘했다고 때리는 거야. 때리길?"
 윤성이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윤성애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어 장대철의

솥뚜껑 같은 손이 윤성애의 얼굴을 강타했다.

 

 "너 같은 년은 죽어야해, 죽어야해."
 땅바닥에 고꾸라진 윤성애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허허벌판에서 그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윤성애가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써도 허공에 묻혀 멀리

가지 못했다.

 

  "죽여라, 죽여. 도깨비처럼 몇 달 만에 나타나 마누라 죽이려고 왔니 이새꺄?"

 장대철이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다. 장대철이 채무에 쫓겨 도망 다니는 동

안 윤성애는 예전의 윤성애가 아닐 정도로 변해있었다. 입술이 터지고 아이라인과

마스카라가 눈물에 녹아 내려 윤성애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 졌다.

 

 "너, 바른대로 말 안 해? 너, 그 새끼하고 몇 번이나 잤냐고?" 
 장대철이 다시 때리려는 자세를 취하자 윤성애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손

으로 얼굴을 감쌌다. 화가 머리끝 까지 벋친 장대철이 씩씩거렸다.

 

 "그래, 이 새끼야. 너 없는 동안 매일 잠잤다, 어쩔래?"
 장대철은 머리가 띵했다. 그래도 윤성애의 입으로 '잠 잔적이 없다'는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장대철이 다시 발길질을 해대고 이어 뺨을 때리자. 윤성애의 비명이

밤하늘을 갈랐다.


 "사람 살려! 누구 있으면 사람 살려요."
 윤성애의 울부짖는 소리가 멀리까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본디 심성이 착했던

장대철이 아내 윤성애의 불륜을 목격하자 자신의 성정을 통제하기 힘들었다.

 

 사람을 때려 본적이 없던 장대철이었다. 윤성애의 울부짖는 소리에 이씨가 달려

왔다. 혹시나 해서 차를 두고 어둠속으로 살며시 와서 보다가 정도가 심하다고

느끼자 말려야 하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대철이, 이 사람아 , 자네 집사람을 죽일 작정인가? 이러면 안 돼. 말로 풀어야지,

 말로."
 이씨가 윤성애에게 폭력을 가하려는 장대철을 말렸다.


 "아저씨, 그냥 두세요. 내 오늘 저년을 죽여 버리고 나도 죽으렵니다. 그냥 두세요."
 장대철이 울부짖었다.

 

  "이 사람아, 두 사람이 죽는 다면 자네 자식들은 어떻게 하고?"

이씨가 자식이라는 말을 꺼내자.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두 아이들의 얼굴이 뇌리에

떠올랐다. 


 "아이들? 내 새끼들? 그렇지 나에게 두 자식이 있지?"
 장대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아, 이쯤에서 멈추고 어디 다른데도 가서 천천히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아주머니의 이야기도 들어보도록 하게."
 이씨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윤성애를 일으켰다.

 

 "자네,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하면 안 돼, 내 얼른 차를 가지고 올 테니까. 가만히 있게."
 이씨가 차를  정차시켜둔 곳으로 뛰어갔다. 


 "자, 어서 아주머니를 모시고 차에 타게."
 이씨가 어느새 차를 가지고 왔다. 뒷좌석의 두 사람은 말없이 캄캄한 차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차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내 전에 이 근처 소래포구에 와 본적이 있는데 그곳으로 갈 테니 어디 조용한

장소에 가서 대화로 풀게 대화로 말일세."
 이씨가 중재자의 입장이 되었다. 윤성애는 차에서도 계속 흐느꼈다.

 

 "아주머니, 그만 참으세요. 대철이가 웬만해서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은

참지 못했나 봅니다."
 이씨가  침묵만 흐르던 차안의 정적을 깼다. 차가 소래포구로 들어섰다. 늦은 밤

이라 대부분의 횟집과 식당들이 문을 내린 상태였다. 신도로를 따라 포구 쪽으로

더 내려가자. 횟집 한곳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씨가 그 식당 앞에 정차했다.

 

 "어서 오세요."
 40대 중반의 여종업원은 밤늦게 찾아온 손님을 별로 반가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자, 아주머니 올라가시죠." 
 장대철과 윤성애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이씨가  간단한 회 종류와 뜨끈한 국물

그리고 소주를 한 병  주문했다.

 

 "자, 일단 한잔 받게, 오랜만에 묘하게 상봉을 해서 그렇지, 두 사람은 부부 아닙니까.

부부요."
 이씨가  냉랭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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