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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울(2)

* 창작공간/단편 - 황새울

by 여강 최재효 2009. 7. 12.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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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새울(2)

 

 

 

                                                                                                                                                      - 여강 최재효

 

 

 

 나의 고등학교 역사책 같은 이야기에 미선이는 괴로워하였다. 다행히 이장의

중재로 미선이 아버지는 며칠 후 경찰서에서 풀려났다. 동네에서 미선이 아버지는

아래 위도 모르는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미선네는 마을에서 고립되어

갔다. 미선이 아버지는 아버지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아버지는 그간

정을 생각하여 미선이 아버지를 용서하였지만 앙금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미선이 아버지는 읍내 복덕방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거의 농사일에는 관심을 보이

않았다. 벼가 한창 익어갈 무렵 미선네 논에는 벼보다 피와 깜부기 같은 잡초가

더 많아 동네 사람들은 농사일에 신경 쓰지 않는 미선이 아버지를 욕하였다.

 

 그 도가 지나쳐 미선이 아버지는 한 달에 이삼일 정도만 집에 들어 올 뿐이었다.

복덕방 사람들과 경기도 지역을 돌며 땅 장사를 한다는 소문이 동네에 파다하게 퍼

면서 미선이 어머니와 미선이 그리고 미선이 동생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되어갔다.

동네 사람들은 미선네 식구들을 마치 외계인 취급을 하며 미선네 가족들과 이야기

하는 것조차 꺼리게 되었다. 미선이 어머니의 마음 고생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미선이에게는 위로 오빠와 아래로 남동생 둘이 있었다. 오빠는 소아마비라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두 남동생들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소에게 풀을 뜨게 하거나 개

구리를 잡아 돼지에게 삶아 먹이는 일 밖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우리논과 붙

어있는 미선이네 논을 볼 때 마다 가슴이 아팠다. 고민 끝에 미선네 논에 까맣게 피

어난 피를 뽑아주기로 결심하였다.

 

 낮에는 동네 사람들의 눈이 있어 불가능하였다. 고등학교 학생인 나의 완력으로

충분히 어른 몫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정규 수업이 끝나면 보통 밤 10시까

지 보충수업을 해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서 집까지 20여리를 통학해야 했다. 집에 도착하면 보통 밤 11시쯤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나는 황새울로 향했다. 마침 달이 환하게 지상을 비추고 있었다.

 

 교복을 벗고 런닌셔츠와 팬티차림으로 나는 미선네 논으로 들어갔다. 논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내가 논 한가운데 서자 막막했다. 벼와 피가 함께 자라나는 논은 잡

초더미처럼 보였다. 정신없이 피를 뽑으면서 밀미기에게 물리는 게 아닌가 겁이 나

기도 하였다. 휘적거리며 벼가 일렬로 심어진 고랑을 헤쳐 나가는 나 자신이 한심

하기도 하였고 웃음도 났다. 볏 잎에 아롱아롱 맺힌 이슬방울들이 달빛을 받아 반짝

거렸다.

 

 차가운 밤이슬에 속옷이 젖어 몸에 착 달라붙었다. 지금쯤 집에 도착하여 어머니

가 차려주는 밤참을 먹고 밀린 공부를 하여야 할 시간에 내가 달밤에 누구를 위하

여 이런 짓을 하는지 아리송했다. 나의 이런 심정을 인선이가 알아줄 리도 만무했

고 설령 미선이가 알게 된다고 하여도 나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정신 나간 녀석으

로 볼 수도 있을 것같았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달님이 나를 빤히 내려다보시고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하고 꾸짖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나이가 이왕 하고자 마음먹었

으니 끝을 봐야한다고 굳게 다짐하고 피를 뽑았다. 천여 평이 넘는 미선네 논에 피

어난 피를 몽땅 뽑는다는 것은 어린 아이가 저수지 물을 몽땅 마시는 것과 같았다. 서

너 시간 피를 뽑고 나니 허리와 팔이 아팠다. 시간은 대충 새벽 3시는 넘었을 것 같

았다.

 

 그제야 집 생각이 났다. 집이 걱정되었다. 밤 11시 경이면 집에 오는 막내아들이

집에 오지 않으니 부모님은 잠을 못 주무시고 계실 것이 분명했다. 오늘 못한 것은

내일 그리고 내일 모레 다시 와서 뽑으면 될 것이므로 나는 논에서 나와 개울에서

손발을 씻고 교복을 입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마당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와

계시다가 나를 보자 반가워하시면서 한편으로 엄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나는 학교에서 시험공부를 하다가 깜빡 잠이 들어 이제 오게 되었노라고 둘러댔다.

어머니 몰래 속옷을 벗어 우물가에 내다 놓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여름방학 기간이라 정규 수업대신 오전 10시까지 학교에 가서 오전에는 자

(自習)을 하고 오후에 이과(理科)와 문과별로 영어, 수학, 국어 수업을 들으면

되었다.

 

 나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일주일을 두고 밤마다 미선네 논에서 피와의 한판 전쟁을

벌여야 했다. 내가 미선네 논에 난 피를 다 뽑고 났을 때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읍내 복덕방 사람들과 어울려 땅 장사를 하러 타향을 떠도는 미선이 아버지가 밤에 황새울 논에 와서 피를 뽑고 간다는 기가 막힌 소문이었다. 나는 그 소리가 우습

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였다.

 

 미선이와 미선이 어머니는 나의 선심(善心)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그렇다고 미선네 집을 찾아가 밤마다 내가 황새울에 가서 피를 뽑았다

말하는 것은 더욱 이상할 것이다. 나는 한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가슴을 쳐야

했다. 나는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갈 때 용기를 내어 미선이를 불러내고 싶었다. 고등

학교 3학년인 미선이는 대학입시 시험인 예비고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었다.

 

 나는 미선이를 불러내기 위하여 저녁 늦게 담장에 붙어 서서 미선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우리 집 담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미선네 우물이 있었다. 집집마다 펌

프를 설치하였는데 미선네 집에서 펌프질하는 소리는 사랑채 까지 들렸다. 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물을 푸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미선이 역시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마

치고 밤늦게 집에 도착하였다. 겨우 삼일 만에 많은 시간을 허비한 끝에 미선이가

물을 푸러 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선아, 미선아-."

  혹시 누가 들을까 걱정되어 모기소리 만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미선이에게 간신

쪽지를 건네면서 나는 내일 밤 10시 황새울에서 잠시 만나자고 하였다. 그러나

미선이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대답도 없이 가버렸다. 나는 과연 '미선이가 내

일 황새울로 나올 것인가? 아니면 괜히 부질없는 짓을 한 것은 아닌가?' 골몰하면

서 밤을 새웠다. 다음 날, 나는 담임 선생님에게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학교에서 일찍 나왔다. 황새울로 직행하여 우리 논에 있는 원두막으로 갔다.

 

 아버지는 자채쌀을 생산하기 위하여 황새울에 조생종 벼를 심었다. 자채벼는 일찍

수확하기 때문에 대개 추석 전에 추수하여 제수마련 자금으로 요긴하게 쓸 수 있어 농촌에서 인기가 높았다. 만생종 벼보다 일찍 여물어 여름방학이면 학교 가는 날을

제외하고 늘 원두막에서 살아야 했다. 미선이에게 황새울에서 보자는 뜻은 원두막

에서 만나자는 뜻과 같았다. 미선네도 자채벼를 파종하였기 때문에 논 옆에 원두막

을 설치하였다.

 

 어떤 날은 나와 그녀가 서로 빤히 쳐다보며 참새를 쫓아야 했다. 나는 미선네 논에

앉는 참새들도 마치 우리 논에 앉은 것으로 생각하여 참새를 쫓았다. 새를 쫓으면서

도 나의 시선은 그녀가 있는 원두막으로 쏠렸다. 밤 12시가 넘도록 미선이는 나타

나지 않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논에서나 등하교 길에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물론 그녀가

나보다 한 학년 높은 고등학교 3학년이란 이유가 나를 안심시켰다.

 

 그녀가 예비고사를 보기 이틀 전날, 나는 핑크색 종이에 그녀의 선전(善戰)을 기원

하는 편지와 함께 엿을 전했다. 그해 겨울 미선이 아버지는 읍내에서 다방을 경영하

는 젊은 마담과 살림을 차렸다는 소식이 동네를 벌집 쑤셔놓듯 했다. 동네 사람은

모이면 미선이 아버지 이야기였다. 한해 농사를 대충지은 미선이 아버지는 황새울

논을 팔았다. 미이는 결국 대학대신 취업을 해야 했다. 그 이후 나는 다시는 미선

이를 보지 못했다.

 

 미선이 어머니는 이듬해 동네 창피하다며 이듬해 친정이 있는 장호원으로 이사를

갔고 미선이 아버지는 읍내에서 보란 듯 젊은 여인을 끼고 살았다. 미선이 아버지

는 젊은 마담 사이에서 딸 하나를 낳았다. 미선이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고향에 볼

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미선이 아버지를 만나면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그냥

휙 지나쳐 버렸다.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미선이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나는

울화통이 터졌다. 미선이를 비롯한 자식들은 철저히 미선이 아버지를 외면하였다.

땅 장사로 돈 푼께나 만진다고 기고만장하던 미선이 아버지는 어느 해 교통사고로

그만 한쪽 다리를 잃고 말았다. 동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미선이 아버지가 죗값

을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세월이 좀 지난 추석명절 때 우연히 미선이 아버지를 길에서 만났다. 걸인이 되다

시피 한 미선이 아버지에게 지폐를 몇 장 건넸다. 가슴이 아팠지만 내가 미선이 아

버지를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한편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아버지를 저리 버

리듯 하는 자식들이 얄미웠지만 본인이 지은 업이기 때문에 할 수없는 일이라고 생

각하였다.


 나는 고향에 내려가면 어머니에게 꼭 미선이 아버지 안부까지 묻곤 한다. 미선이

아버지는 홀로되어 허름한 동네 폐가에 거주하며 거동도 불편하여 매일같이 동네

이장이 보살핀다고 했다.

 

 “그만, 그만해요. 이미 다 끝난 이야기에요.”

 미선이는 25년 전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 이야

기가 나오자 머리를 감사며 좌우로 흔들어 댔다. 물론 이승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미선이의 빈 잔에 독한 위스키를 가득 채웠다. 나는 옛 이야기를 집어 치우고

최근의 그녀의 상황을 듣기로 하였다. 나의 반복되는 질문에 그녀는 말 없이 잔을

들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자주 건배를 하였다. 

 

 내가 잔을 들면 그녀는 나를 따라서 잔을 들었고, 그녀가 잔을 들면 나는 그녀 잔에

내 잔을 키스한 뒤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나의 속사포 같은 질문에 그녀는 계속

아무 말 없이 잔만 기울였다. 나는 음악이 시끄럽고 담배 연기가 싫어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어디 시원한 장소로 자리를 옮겨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바(Bar)에서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장소를 바꾼다고 그녀가 입을 연다면 나의 기

술이 업그레이드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독한 발렌타인 21년산이 빈병이 되

었다. 나는 언더락스 잔에 콜라를 따라 위스키와 믹서해서 마시는 취향이 있다. 그

러나 그녀는 스트레이트로 마셔댔다. 뱃속에 들어간 알코올 도수로 따지면 그녀의

혈관에 상당히 강한 알코올이 수혈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자세는 부서지

지 않았다.

 

 늦봄이지만 한강바람은 옷깃을 저미게 했다. 이미 정상적인 시간에 집에 들어가기

틀렸다. 나의 권유에 따라 택시를 함께 타고 나온 한강에는 우리 말고도 여러 커

플들이 가로등이 환한 둔치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무작정 앞만 보고 걸었다. 무언

의 고요를 깬 것은 그녀였다.

 

 “다리 아파요. 이렇게 걷기만 할 거예요?”

 “어디 포장마차라도 있을 텐데......”


 나는 2차로 마신 술이 깨기도 전에 3차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리번거렸다.

뽀얀 물안개 저쪽 포장마차 같은 것에서 불빛이 반짝거렸다. 묵시적으로 그녀 역시

또 다른 술과의 전쟁을 기대하는 눈치가 역력해 보였다. 차가운 강바람이 불어와 살

갗을 자극할 때마다 그녀는 가냘픈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나는 얇은 점퍼를 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1킬로미터의 길은 너무 길어

보였다. 한때 나는 그녀를 마음속의 연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방적인 나

행보에 그녀는 크게 동요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막 뛰어가다가 다시 앞을 보면 그

녀는 저 멀리 달아나 있었다. 그렇게 3년을 밀고 당기는 지루한 신경전이 벌어졌었

지만 나와 이렇다 할 만한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 나의 정성어린 여러 통의 편지에

도 그녀는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

 

 20여분 넘게 걸었다. 강변에 임시로 마련된 간이 포장마차가 틀림없었다. 작은 화

물차였다. 화물칸을 개조해 이동식 포장마차를 만들었다. 포장마차 주변에 파라솔

을 꽂은 탁자 여러 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미 데이트 족들에게 점령되어 있었다.

주인은 우리를 보자 얼른 새로운 탁자를 만들었다.

 

 나는 뜨끈한 오뎅국물과 닭발 그리고 소주를 주문하였다. 그녀 역시 나의 주문에

이의가 없었다. 그녀는 나의 집요한 질문공세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듯 했다. 나는

제풀에 지쳐 소주를 자작하듯 했다. 그녀가 두잔 마실 때 나는 나머지를 모두 비웠

다. 소주 한 병과 파전 한접시를 새로 주문하였다.

 

 “25년 만에 만났는데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아요? 많기도 하겠지요. 25년 만에

만났으니......”

 그녀는 약간 취기가 오른 듯 발음에 받침이 자주 빠졌다. 나의 질문공세에 그녀는

결심한 듯 했다.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해요.”

 “그럼, 당신의 궁금증을 밤을 새우더라도 풀어줘야겠네요.”

 나는 그녀의 잔에 차가운 소주를 채웠다.


 “내가 당신의 궁금증을 풀어주면 당신도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세요.”

 그녀의 눈동자는 희미한 불빛에도 영롱하게 빛났다.


 “그러지. 우리서로 해 묶은 궁금증을 풀면서 강바람을 마시고 안주로 소주를 마시

도록 하지.”

 “그거 좋겠네요.”

 

 

 

  

 

 

 

 

 

                                                                                - 계속 -

 

 

 

 

  [주] 밀미기 - 꽃뱀으로 주로 논이나 밤에 서식한다. 유혈목이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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