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울(1)
- 여강 최재효
내 뇌리 깊은 곳에서 황새울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 난 것은 그녀를 우연히 만난
순간 부터였다. 30년 이상 잊고 지내던 내 고향 지명이기 전에 내 유년의 잔재들이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처럼 유년 시절을 전원이나 심산유곡에서 보낸 이들은
비록 수돗물과 철근 콘크리트 숲속에 둥지를 틀고 표면적으로는 안식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에는 황새울 말고도 청마루, 벼르실, 물미, 평장계, 배실,
독방굴, 웅골, 모둘기 고개, 답울기 등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예쁜 지명이 수두룩
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과 내 유년의 동화들이 숨어있던 들녘은 중병을 얻어
신음하고 있어 어쩌다 고향을 가면 즐거움보다 묵직한 가슴을 안고 돌아 오기 일쑤
다. 고향 땅을 밟을 때마다 죄인이 된 느낌이다.
수백 년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아들이 또 그의 아들에게 물려준 문전옥답은
얄팍한 속셈에 의해 자갈밭으로 변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 고향의 들녘이 나를 먹여 살렸고 공부를 시켰고, 보이지 않게 멀리서나마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청운의 꿈에 날개가 돋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명절 연휴나
벌초 때 그리고 고향 친지들의 경조사가 있는 날 나는 혼자서 슬며시 내 추억이
묻혀있는 장소를 찾는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삼사십년 전의 영혼들의 불러 모은다. 물론 그 옛 영혼의
조각들 중에는 어린 나의 환영도 포함 된다. 벼 서너 가마를 가뿐하게 지게에 지고
환히 웃는 아버지, 지금의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젊고 활기찬 어머니 그리
고 누이와 형님들의 똘망한 눈망울을 본다. 부모 형제 뿐만 아니라 죽마고우를 비롯
하여 거웃이 충분히 자라지도 못한 상태에서 짝사랑했던 이웃집 누이도 초대된다.
이러저러한 잡동사니들도 자리를 함께하면 혼자 피식 웃기도 한다.
고향을 내려 갈 때마다 늘 그녀를 생각하면서 그녀가 살던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
다가 이내 무거운 한숨을 쉬고 체념해 버리곤 했다. 그녀를 우연히 만나면서 나는
사람의 염력(念力)이 얼마나 무섭고 강력한 것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수십 년을 늘 가슴 한 구석에 고이 간직했던 그 무서운 집념이 상상 속에서가 아닌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된 것이었다. 정말로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 나의 오랜 염원 때문인지 아닌지를 두고 나는 잠시 혼돈에 빠졌다.
현재 내가 고향을 떠나 수십 년을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을에 그녀
는 살고 있었다. 비나 눈이 내리면 아련히 먼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워했던 그녀 였다.
같은 하늘을 덮고 있었지만 그 거리는 마치 수만리나 되었었다. 모든 일이 한바탕
천둥 번개처럼 지나가 버린 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좀 더 있다가 그녀를 만나던지
아니면 영원히 우연이란 단어가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 없는 거야.’
종종 걸음으로 사라져 가던 그녀의 가녀린 어깨의 실루엣이 자꾸만 내 시야를
어지럽히는 것을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생생한 것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왜 그녀가 자신과 나를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그녀와 영원한 작별을 나눈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지만 그 해답을 알 듯 모를 듯
하여 머리가 지끈 거린다.
25년 만에 불야성 속 주지육림(酒池肉林)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친, 내 청춘의 사고
(思考)를 상당기간 지배했던 여인을 단 하룻밤, 그것도 12시간 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에 정리해야 하는 야릇한 운명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한
해방감을 맛 볼 수 있을 것 같아 마치 하늘을 나는 새가 된 기분이랄까.
그때, 나 역시 우리 아버지보다 아저씨에게 더 동정심이 갔었어. 우리 아버지는
폭군이었어. 술 마시고 들어오시는 날이면 우리 형제자매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거
나, 아니면 공부를 핑계대고 친구네 집을 전전해야 했어. 그런 독재자 같던 우리
아버지도 결국 술에게 항복하셨지. 벌써 이십년이 다 되어가네.
그녀는 내가 묻지도 않는 일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제 해묵은 짐을 벗고 싶어 했다.
물론 수십 년 된 소화불량의 원인을 제거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와 그녀는 정말로 주지(酒池)에 빠지고 육림(肉林)의 숲에서 두 가문의 대표 자
격으로 케케묵은 숙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각자의 친구들에게 그럴듯한
구실을 달아 제2의 장소에서 은밀히 만났다. 제1의 장소에서 이미 적당히 투입된
알코올 덕분에 25년간의 어색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도 우리는 호칭 문제에 대하여 서로의 이해 속에서 각자의 이름에 씨자를
붙이기로 합의했다. 독주(毒酒)가 있어야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주(前酒)로 나의 입에서 알코올 냄새가 약하다는 것을 눈치 챈 그녀는 알파벳이
쓰인 고급술을 주문하였다. 25년 만인데 그녀는 내 취향을 정확히 읽어 냈다.
위스키에는 대체로 미국과 카나다, 일본, 아일랜드 산이 있지만 그래도 스코틀랜
드산이 제일이지. 나는 그녀에게 우쭐해 하면서 아는 체를 했다. 그녀는 25년 전이
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는 듯 했다. 그때도 늘 말없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
는 스타일이었고 어쩌다 등굣길이나 동네 골목길에서 마주치면 나에게 환한 미소
로 자신의 의사를 전하곤 했다.
그녀에게 나름대로 멋과 공을 들여 보낸 편지가 열통이 넘었지만 그녀에게서 답
장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도도한 성격이라기보다 자신보다 한 살이나 어
린 이웃집 남학생에게 연애편지를 받고 많이 당황하거나 고민하고 있었을지도 모
를 일이다. 나는 아직도 왜 답장을 보내지 않았는지 무척 궁금했다. 나와 그녀에게
평생 상처가 될 일은 늦봄이었다. 그날 밤 동네는 발칵 뒤집혔다.
“미선 아버지가 동신 아버지를 삽으로 찍었다는 게 정말이여?”
“찍은 게 아니고 삽으로 홧김에 집어 던진 삽에 동신 아버지가 맞았다고 하던데?”
동네 사람들은 미선네 집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 오후에 황새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갑을논박하고 있었다. 읍내에서 검정색 지프차를 타고 나온 형사들이 미선
이 아버지 양손에 수갑을 채웠다. 한국 전쟁 이후 동네 사람이 경찰서에 잡혀가기
는 처음이었다.
땅을 친자식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순박한 마음씨를 지니고 살아가는 마을에 나타
난 검정색 가죽점퍼 차림의 형사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정 이장은 다리를 절룩거
리며 형사들에게 미선 아버지가 큰 벌을 받지 않도록 선처를 해달라고 매달리다 시
피 하였다. 술이 깨기도 전에 수갑을 찬 미선이 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벌
벌 떨고 있었다.
황새울은 꾀꼬리봉 골짝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로 항상 물이 부족한 적이 없어
논농사 짓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들녘이었다. 겨우내 눈이 오는 듯 마
는 듯 하더니 산과 들은 마르기 시작하였다. 논마지기를 소유한 사람들은 봄부터
농사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미선 아버지 보다 다섯 살 위였다. 미선 아버지
는 아버지를 늘 ‘성님’이라고 부르며 친동생보다 살갑게 굴곤 하였다.
공교롭게도 우리 논 위에 미선네 논이 있었고 우리 논 아래에 광식이네 논이
있었다. 가뭄이 심한 해에는 아버지와 미선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광식이 아버지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 신경전은 아버지들의 신경전을 넘어 온 가족
으로 확대되었다.
미선이는 나 보다 한 살 위였다. 황새울에 논도 마주하고 있었지만 집 또한 담장
하나로 경계선을 긋고 있었기 때문에 미선이 아버지가 술에 취하여 살림살이를 두
들겨 부수거나 큰 소리가 나면 나는 미선이가 걱정되어 애를 태워야 했다. 미선이
아버지가 잠이 들어 잠잠해지면 나는 그때서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나
는 늘 사랑채에서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미선네 집의 분위기를 즉시 알 수 있었
다.
간신히 물을 대어 모내기가 끝낼 수 있었지만 세 집사이의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
졌다. 아버지는 새벽부터 논에 나가 물꼬를 살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미선이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서 아침을 들고 논에 나오기 때문에 더욱 아버지와 미묘한
갈등을 겪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자전거에 삽 한 자루 싣고 황새울을 들려
청마루와 벼르실을 한 바퀴 휘휘 돌고 오면 어머니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나와 형님
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낼 시간이었다.
“논에 물이 모두 빠져 버렸어. 아무래도 광식이 아버지 아니면 그 아래 논주인들
소행 같은데......”
아침 이슬에 바지자락이 촉촉이 젖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한마디 하고 우울한
표정이었다.
“미선네 논에는 물이 많어유?”
“물이 좀 있긴 한데 어제 미선 아버지에게 말해서 우리 논에 물을 댔잖아.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물이 몽땅 빠져 버렸어.”
미선네가 며칠 먼저 모를 냈고 다음날 아버지는 모를 냈다. 다음날 광식이네가 모
를 심었다. 맨 위에 자리한 논에 물이 조금 밖에 없거나 윗논에 물이 많아도 윗논이
아직 모를 심지 않은 상태에서 아랫 논에 모를 심기 위하여 윗논에서 물을 함부로
끌어다 댈 수 없었다. 아버지는 미선이 아버지에게 부탁해 물꼬를 열었다. 미선네
논에도 물이 풍족한 상태는 아니었다. 황새울에서 맨 위에 논이 있는 인선네는 종
종 위세를 부리곤 하였다.
겨울부터 시작된 가뭄은 미선네 논에 있는 샘물까지 마르게 하였다. 도미노 현상이
벌어졌다. 맨 윗논이 마르자 차례로 아랫논에 영향을 미쳤다. 맨 아래에 있는 논에는
모내기 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버지는 미선네 논에서 어느 정도 물을 댄 뒤에
물꼬를 틀어막았다.
문제는 광식이네와 그 아랫에 있는 논이 문제 였다. 논에 물이 풍족하면 아버지는
물꼬를 터서 아랫 논에 물을 대주었을 것이지만 우선 며칠 전 모내기를 한 상태여서
모가 뿌리를 단단히 내리기 위해서는 당분간 물이 풍족해야 했다.
미선이 아버지는 모내기를 마치고 이런 저런 핑계로 읍내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늦
은 밤이나 새벽에 술이 어량해서 귀가하곤 했다. 미선이 아버지는 동네에서 유일하
게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검정색 선글라스를 쓰고 긴 가죽 장화를 신고 멋을
한껏 내고 읍내에 드나들었다.
동네 사람들은 미선이 아버지가 바람이 났다고 하였으나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며칠 후 미선이 아버지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새벽같이 황새울에 나타났다. 마침
아버지도 황새울에 들려 논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미선이네 논
과 우리논의 바닥이 보일 정도로 논이 말라 있었다.
“성님, 이러실 수 있는거요?”
“자네가 보다시피 우리 논에도 물이 없지 않은가?”
미선이 아버지는 밤새도록 읍내에서 술을 퍼마시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황새울을 들렸다. 미선이 아버지는 입에서 독한 술 냄새를 풍기고 있
었다. 욱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미선이 아버지는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아무리 성님이지만 이건 아니네요.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이보시게, 아우님, 오해하지 마시게. 우리 논을 보시게나. 논이 바닥을 보이지 않나?”
미선이 아버지는 아버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
의 논 물꼬를 열어 물을 몽땅 빠지게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미선이 아버지는 자신의 성질을 이기지 못해 들고 있던 삽으로 논 두럭을 내리치
고 삽을 휙 집어 던졌다. 공교롭게도 삽이 허공을 두어 바퀴 돌다가 논에서 잡초를
뽑던 아버지 허벅지를 강타했다. 술에 취한 채 미선이 아버지는 아버지가 다친 것
을 모르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버렸다.
피투성이 되어 집에 돌아 온 아버지를 본 어머니와 형님들은 아버지를 읍내 의원
으로 모셨다. 읍내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매형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아버지에
게 자초지종을 듣고 매형은 곧 바로 미선이 아버지를 폭행죄로 경찰서에 신고하였
다. 이른 아침부터 소문이 퍼진 동네는 충격에 휩싸였다. 나의 이야기를 듣던 그녀
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만, 그만해요.”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