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에 내린 눈(2)
- 여강 최재효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물어봐도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대답없이 빙그레 웃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복숭아꽃 흐르는 물따라 묘연히 떠나가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에 있다네.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라는 시였다.
박씨녀는 유려한 초서체로 즉석에서 자신들이 시선(詩仙)으로 영웅시하는 이백
의 시와 언문으로 뜻을 풀이하여 단숨에 써서 보여주자. 이춘연의 눈이 휘둥그래
졌다. 이춘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손수 주전자를 들어 술을 따라 박씨녀에게
건넸다.
조선의 백성들을 무지몽매하다고 생각했던 이춘연이 은근히 충격을 받은 눈치였
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신들의 포로로 잡혀 온 조선여인의 미색이 뛰어나다고 생각
했지만 설마 이백의 산중문답을 즉석에서 써보일 줄 상상도 못했으며 자신이 조선
을 잘못 판단하였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다시 이춘연이 통역관에게 뭐라고 하자
다시 통역관이 박씨녀에게 뜻을 전했다.
'다른 시를 보여줄 수 있는냐'는 내용이었다. 박씨녀는 이춘연이 건넨 술 한잔을
마시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붓을 들었다.
月樓秋盡玉屛空(월루추진옥병공) 다락에 가을깊어 옥병풍 비고
霜打蘆洲下暮鴻(상타노주하모홍) 서리내린 갈대밭에 기럭이 앉네
瑤瑟一彈人不見(요슬일탄인불견) 거문고 한 곡조에 님 어디가고
藕花零落野塘中(우화영락야당중) 연꽃만 들 못위에 맥없이 지네
박씨녀가 최근 익힌 난설헌 초희의 규원(閨怨)이란 시였다. 박씨녀가 쓴 글을 한참
들여다 보던 이춘연의 눈이 다시 한번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통역관에게 무어라고
속삭이더니 통역관은 박씨녀에게 누구의 시냐고 물었다.
조선제일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의 시라고 소개를 해주었고 이춘연은 통역관의
설명을 듣고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었다. 조선에 이렇듯 뛰어난 여류시인이 있었는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까지 지어 보였다. 통역관과 이춘연이 다시 한참 오랑캐말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통역
관이 박씨녀에게 뜻을 전했다.
"군관께서 박소저와 이곳에서 함께 아침을 맞고 싶으시다고 하십니다. 부디 군관
님의 뜻을 거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절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피난길에 올랐을 때 한양거리
곳곳에 얼어죽은 조선백성들의 죽음을 보았고 특히 부녀자들의 죽엄은 더욱 잔혹했다. 속옷이 모두 벗겨진 채 강간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거절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나 같았다.
이춘연이 비록 자신의 미모와 시 두편에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밤을 함께 새울 것을
은근히 비쳤지만, 그가 마음이 상하면 언제라도 죽임을 당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박씨 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개를 끄덕여 승낙의 뜻을 전하자 이춘연의 입이
양 귀에 걸렸다. 통역관이 막사 밖으로 나가자, 이춘연은 술을 큰잔에 따라 박씨녀에게 건네며 건배하는 손짓을 했다.
곧 있을 육체의 향연을 위한 합환주(合歡酒) 였다. 박씨녀가 통역관과 막사를 빠져
나가자 오랑캐 병사 두명이 곧 언심이와 막녀를 끌고 다른 막사로 데리고 갔다. 막사
안에는 성에 굶주린 오랑캐 병사 50여명이 앉아있다가 새로 잡혀온 두 여인이 들어오
자 환호를 질러댔다.
순식간에 언심이와 막녀는 옷이 몽땅 벗겨지고 오랑캐병사들이 차례로 윤간(輪姦)
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남정네들을 받아들이는 두 애처로운 조선의 여인들은 눈을
감고 그들의 행동에 아무 저항도 못하고 누워있으면서 차례로 겁간을 당하고 있었다.
언심이와 막녀는 생전 처음 남성을 대하면서 마치 자신의 하복부가 예리한 칼로 도려
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아-. 막녀가 통증을 참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자 오랑캐 병사는 더욱 신이난 듯 했다. 옆에서 자신과 똑같은 자세로 능욕을 당하는 언심이는 살려달라고 애걸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아량을 베풀 오랑캐들이 아니었다.
막녀가 20여명의 오랑캐병사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그만 기절을 했다. 은밀한 부위에
는 오랑캐병사들이 뿜어낸 분비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기절 한 막녀를 늑대 같은 오랑
캐병사들이 계속 달려들어 무지막지하게 음욕을 채웠다.
언심이가 큰소리로 울부짖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막무가내로 달라붙어 자신의
젖가슴과 음부를 탐하는 오랑캐를 어찌할 수 없었다. 막녀와 언심이의 음부에서 선혈
이 흘러 나왔지만 음욕에 눈이 뒤집힌 오랑캐들은 인정사정 두지 않았다.
걸레 같은 것으로 닦아내고 계속 달려들었고 결국 언심이도 혼절하고 말았다.
먼저 음욕을 채운 오랑캐들이 옆에 서서 동료병사들이 조선의 뽀얀 속살을 게걸스
럽게 탐하는 광경을 보면서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있었고, 한편에서는 술을 마시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두 조선여인은 밤새도록 비참하게 오랑캐병사들의 성노리개가
되어야 했다.
주전자가 비워지고 이춘연의 눈도 게슴츠레 풀려갔다. 20여일 가까이 압록강을
넘어 조선땅을 유린한 오랑캐군관 이춘연이 한양까지 내려오는 동안 평안도, 황해도
의 수많은 조선의 여인들을 겁탈한 이춘연이었다. 그렇게 전쟁의 포로가 된 조선의
여인들을 밤마다 능욕했지만 박씨녀 같은 여인은 없었다.
미색이 출중할 뿐만 아니라 시재(詩才)에도 뛰어났으며 학식이 풍부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이춘연은 이국여인과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다소 곳하게 자신의
곁에 앉아 다음 처분만을 기다리는 박씨녀가 측은하기도 하였지만 빨리 품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지자 아랫부위에 서서히 힘이 들어 갔다. 이춘연이 박씨녀의
손을 잡고 침상으로 올라갔다.
아무리 고귀한 귀골의 이춘연이지만 그 역시도 남자였다. 박씨녀의 옷이
하나씩 벗겨질 수록 몸을 뒤틀었다. 박씨녀는 조선양반집 며느리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오랑캐 손에 의해 옷이 벗겨지는 책임을 누구에게 있는지 속으로 물었다.
박씨녀의 속옷까지 모두 벗겨 지자 이춘연은 마른침을 넘겼다. 달아오른 이춘연의
넓은 가슴이 박씨녀의 몸을 지그시 누르며 뜨거운 혀로 박씨녀의 몸 구석구석을 핥아
내려 갔다.
아-. 남편 정진경 보다 기골이 당당하고 거친 황야의 호랑이 같은 이춘연의 바위 같은 몸을 받아들이는 박씨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사랑의 몸짓은 만국 공통어라 배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랜 전쟁통에서
긴장이 되었던 춘연은 조선 한가운데 한양에서 아릿따운 사대부가의 며느리를 만나
환락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윽-. 다양한 자세로 음욕을 채운던 이춘연은 긴 여운이 남는 신음을 토하고 박씨녀의 젖가슴 위로 쓰러졌다. 박씨녀는 자신의 몸속 깊이 이방인의 씨앗이 뿌려짐을 느끼
면서 눈물을 흘렸다.
몇칠전만 하여도 상상도 하지못한 상황이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자신이
왜 생면부지의 오랑캐 군관에게 정조를 유린당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록 통탄 할 노릇
이었다. 자신에게 음욕을 해소한 춘연이 코를 골며 잠에 취해 있었다.
차라리 이 오랑캐를 죽이고 자신도 자진(自盡)을 하여 치욕스런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어떤 경우라도 살아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박씨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이춘연이 박씨녀의 손을 잡고 다시
음욕을 채우려고 했다. 그러나 거절할 수 없었다. 이춘연의 손길이 다시 박씨녀의 젖
가슴과 은밀한 부위를 지분거렸지만 박씨녀는 몸을 움추리며 죽은 듯이 있어야
했다.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쳐 지나갔으며 아랫도리에서 통증이 전해졌다. 일어나
옷 매무새를 고치고 앉아있자 춘연도 일어나더니 종이에 무엇인가를 적었다.
[大淸滿洲八旗機務軍官 李春淵 - 대청만주팔기기무군관 이춘연] 이라고 쓴 종이에
자신의 직인을 찍어서 주었다.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 주는 정표 였다. 잠시후 통역관이 막사로 들어와 춘연
에게 무슨 보고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박씨녀에게
이춘연의 뜻을 전했다.
"박소저! 이춘연 군관께서 오늘 황제의 칙명을 받고 대 청국의 수도 심양(審陽)으로
급히 떠나십니다. 박소저와 함께 가고 싶다 하십니다. 어차피 여기 계셔도 청국으로
압송되십니다. 걸어서 한달 걸려 청국으로 압송될 경우 자칫 동상에 걸리거나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함께 가심이 좋을 듯 합니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서 이곳을 도망치려고 했으나 하룻밤을
만리장성을 쌓은 오랑캐군관을 따라가야 한다니 박씨녀로서는 정말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웠다. 박씨녀가 다시 막사로 돌아
왔을 때 언심이와 막녀는 신음소리를 내며 널부러져 있었다. 남정네를 모르는 처녀나
다름없는 언심이와 막녀로서는 간밤에 짐승 같은 오랑캐의 음욕을 해소시켜줘야
치욕스런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막사안에는 어제 처음 낯을 익힌 조선의 젊은 처자들 신음소리가 진동했다. 모두가
누워서 간밤 오랑캐들의 무지막지한 강간의 충격을 삭히고 있었다. 언심이와 막녀는
계속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자신은 고급군관인 이춘연 한 몸만을 받아냈지만 대부분의 처자들은 수 십명의
오랑캐병사들의 음욕의 제물이 되야 했다. 언심이와 막녀의 무명치마 자락이 벌겋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박씨녀는 아무말없이 그들의 곁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박씨녀가 막사안으로 들어
오자 마자 통역관이 들어왔다. 즉시 떠날 준비를 하고 뒤따르라는 것이었다. 준비
라고 해야 옷 보퉁이 하나면 되었다.
울던 언심이와 막녀가 자신들도 데려가 달라고 따라나서자 병사가 창으로 가로막
았다. 계속 '아씨'하며 따라 나오려고 하자 오랑캐 병사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다시
이춘연이 있는 막사 앞으로 가자 이춘연이 군복으로 갈아입고 투구를 쓰고 의젓한
모습으로 말 안장 위에 앉아있었다.
옆에 부장으로 보이는 두명의 군관과 병사 두명이 함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통역관이 박씨녀에게 오랑캐복으로 갈아입으라면서 호복(胡服)을 주었다.
박씨녀는 자신이 포로의 신분으로 혼자 청나라 군관을 따라 멀리 청국까지 가야
한다는 사실에 도망갈 것을 체념을 하고 하인으로 함께온 덕칠이를 데리고 가야겠다
고 생각하고 통역관에게 덕칠이를 함께 데려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통역관은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러면 가지 않겠다고 사정을 하자 통역관이
이춘연에게 박씨녀의 요청을 전했다. 곧 어디서 불려왔는지 덕칠이가 불려왔다.
"아씨!"
"덕칠아!"
덕칠이는 눈물을 훔치며 살아있는 박씨녀를 보자 반가워했다.
"자, 어서 떠나야 합니다. 말에 오르시지요."
통역관이 이춘연의 눈치를 보며 빨리 말에 오르라고 했다.
생전 처음 말을 탄 박씨녀는 곧 말에서 떨어질 뻔 했다. 이춘연이 다른 하급 군관
에게 뭐라고 지시를 하자 2륜마차가 준비되었다. 마차는 두 사람이 겨우 탈수 있는
작은 것이 었다. 덕칠이 앞에 앉아 말의 고삐를 잡고 마차를 몰았다.
이춘연 일행과 마차는 용산 포로수용소를 빠져 나와 바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한양의 대로를 질주했다. 광통교를 지나 구파발로 향하고 다시 벽제쪽으로 달렸다.
이춘연과 청군관들이 앞장서고 박씨녀와 덕칠이 탄 마차가 뒤를 따랐다.
맨 뒤에 말을 탄 병사 한명이 칼을 차고 뒤를 따랐다. 마차는 쉬지 않고 바람을 갈
랐다.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웠지만 이춘연 일행은 쉬지 않고 달렸다. 한양의 거리는
죽엄의 시가지였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길거리에는 얼 죽은 조선백성들의 시체가
즐비했는데 밤에 들짐승들의 먹이가 되었고 뼈가 튀어 나와 썩어 가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던 박씨녀는 비명을 질러댔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민가는 거의
폐허가 되어 있거나 또는 불에 타 전파되어 화려했던 한양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상하게 어린아이들의 시체가 눈에 많이 띄었는데 어른들이 포로가 되어 청나라로
잡혀가거나 도망을 가다가 어린 아이가 귀찮은 존재가 되자 버리고 간 아이들 모두가
얼어 죽은 것이었다.
한양성을 벗어나자 상황은 더 비참했다. 길가에는 조선의 선량한 백성들이 죽엄이
되어 나뒹굴었으나 누구하나 거들떠보거나 땅속에 묻어 주는이 없었다. 오랑캐들이
조선 백성의 씨를 말리려고 작정을 한 것처럼 보였다.
"아씨! 밖을 쳐다 보지 마세요."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광경이 계속 이어지자 덕칠이 걱정이 된 모양이다. 중간중간
청국 병사들의 검문 초소가 있었는데 이춘연 일행이 통과 할 때마다 군호(軍號)를 외치
며 예를 표했다.
고양과 파주를 걸쳐 꽁꽁 언 임진강을 건넜으며 저녁 무렵이 되서야 개성에 도착하였다. 개성 시가지도 예외 없이 초토화((焦土化)되어 있었는데 거리곳곳에 오랑캐의 창검에 목숨을 잃은 백성들의 시체가 쌓여 썩어가고 있었지만 그들의 시체를 수습할 사람이
없었다.
꿈속에서 한번 쯤 봤음직한 지옥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 많던 조선의 백성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민가는 거의 불살라져 잿더미가 되었으며 그나마 성한
집은 관아와 몇몇 잘 지어진 기와집뿐이었다. 시가지 여기저기에 청군들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조선병사들의 목이 잘려 장대에 걸려있었으며 나라에 충성을 바치다 죽은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는 듯했다.
개성 관아에 도착한 이춘연 일행은 간단히 요기를 하고 숙소를 배정 받고 하루밤
쉬어 가게 되었다. 박씨녀는 이춘연과 한방을 쓰게 되었다. 오랑캐 병졸이 가져온
식사로 대충 끼니를 때운 박씨녀는 지금의 상황이 꿈만 같았다.
박씨녀는 지금 자신이 긴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악몽이
찾아왔다. 오늘밤에도 오랑캐 장수 이춘연의 음욕(淫慾)을 풀어줘야 하는 박씨녀는
통탄해 하며 눈물을 흘렸다.
"차라리, 차라리 죽어 버림만 못한 이 인생을 오늘밤 끝내고 말까?"
답답한 심정을 말하고 싶어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욱 죽을 지경이었다. 이춘연이
약한 술냄새를 풍기며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종이에 뭐라고 쓰고 박씨녀에게 보여
줬다.
'我好' '나는 당신이 좋다'는 뜻으로 해석한 박씨녀도 화답을 해야 했다. '
願施慈悲' '원하옵건데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뜻이지만 이를 알아들은 이춘연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다시 이춘연이 종이에 뭐라고 쓰더니 박씨녀에게 보여주었다.
'我慾解春情' '춘정을 해소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아, 저 오랑캐군관에게 오늘밤에도 육신을 짖밟혀야 하나..."
주르르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그러나 호랑이 발톱과 이빨을 감추고 있는 오랑
캐군 관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들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이춘연이 침상으로 박씨녀
를 살며시 잡아끌었다.
오랑캐의 옷을 걸친 자신이 미웠지만 살겠다고 이를 악물고 결심한 이상 어떤 치욕을 당하더라도 살아서 가족에게 돌아가야 했다. 거대한 오랑캐의 몸둥이가 가냘픈 조선의 속살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오랑캐의 뜨거운 혀가 조선의 뽀얀 속살을 구석구석 탐하며 마음껏 음욕을 채워갔다.
순간 박씨녀 뇌리에 남편 정진경의 얼굴과 두 아들 그리고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
얼굴이 다가왔다 사라지고 다시 정진경이 손가락질하며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집요한 오랑캐군관 이춘연의 전희가 끝나고 곧이어 뜨거운 이방인의 육신이 자신의
몸속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정력이 출중한 오랑캐에 의해
육신이 더렵혀져야 하는 현실을 잊고싶었다.
그러나 피정복민의 입장에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적의 군관에게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랴. 긴 시간동안 여러 가지 체위로 방사를 즐기던 이춘연이 긴 신음을 토하며
박씨녀의 젖가슴위로 쓰러지며 꼭 안아주었다.
날이 밝았지만 밤새 무쇠 같은 오랑캐군관 이춘연의 몸을 받아 낸 박씨녀는 찌뿌둥한 몸을 단장했다. 이제는 한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접어야 할 것 같다는 판단을 한 박씨녀는 적극적으로 이춘연을 대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들자마자 군관들이 빨리 떠날 차비를 하라고 했다. 이춘연과 박씨녀 일행은 북으로 달렸고 중간중간 오랑캐군 연락소에 들려 간단한 물자를 보급 받고 말과 마차를 교체했다.
청의 황실과 관계 있는 이춘연의 신분이 빛을 발휘했다. 청군이 한양을 향해 질풍처럼진격하면서 자신들의 군수물자 보급을 조선군들의 습격에 대비해 안전하고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100리 단위로 중간 연락소를 설치한 것이다.
연락소의 하급군관들이 청태종의 칙서(勅書)를 지닌 이춘연 일행을 깍듯이 예의로서 맞이해 주었다. 해질녁 까지 말과 마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황해도 평산의 멸악산을 지나 봉산에 당도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멸악산 근처의 산간 마을을 지날 때였다. 50여호 남짓한 마을 같았으나 모두 불타고 폐허가 되었는데 어린 아이들의 얼어 죽은 사체가 도로변에 방치되어 있었다.
부녀자들로 보이는 십여구의 사체는 몽땅 속고쟁이가 벗겨진 채였는데, 몇몇 사체의
내장이 튀어나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청나라 오랑캐군졸들이 조선의 부녀자들을 집단으로 강간하고 창검으로 잔인하게 살해한 후 길가에 방치시켜 놓은 것이다.
그 사체들의 반은 팔다리가 없어진 것으로 보아 밤이면 산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있었으며 끔찍한 광경은 가는 곳마다 계속되었다. 곳곳에 조선 백성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를 잘라 여러개 묶어 나무 위에 매달아 그들의 잔학성을 보여주었다.
"육실헐놈들 !"
마차에서 말을 몰던 덕칠이 동족으로서 참혹한 광경을 보고 치를 떨었다. 이춘연
일행은 늦은 밤까지 달려 황해도 황주의 어느 폐허가 된 사찰에 도착했다.
천성산 성불사(成佛寺)라고 쓰인 현판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근처에 오랑캐군 막사
있었다. 성불사는 임진년 왜란 때 모두 소실 돼어 절터만 남아있었다. 일행은 융숭한
저녁을 대접받고 잠자리에 들었고 박씨녀는 한양에서부터 의례 그래왔던 것처럼
이춘연의 품안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다음날도 북으로 질주는 계속되었다. 대동강을
건너 평양성에 도착한 것은 해가 거의 질무렵 이었다.
평양성 주변은 오랑캐 군사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었으며 성입구에서부터
철저한 신분확인이 이루어 졌다. 조선의 백성들은 마치 대죄를 지은 것처럼 성밖
출입이 자유롭지못했다. 눈이 무릎까지 쌓인 길가 곳곳에도 얼어죽거나 오랑캐의
창검에 목숨을 잃은 무고한 조선백성들의 주검이 널려 있었다. 평양성내 민가는
거의 부서지고 소실되어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전에 집이 있었던 자리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개성과 같이 관아건물 몇 채만 온전할 뿐이었다. 관아 옆에 대형 천막 십여동이
쳐져 있었고 그 앞에 창을 든 오랑캐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자세히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안에서 들려오는 통곡소리와 신음소리
로 보아 분명 조선백성들이 수용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박씨녀는 그 천막
안 상황이 어떨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나쁜 놈들! "
박씨녀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왔다. 분명 그 안에는 전국 각지에서 잡혀
온 조선의 부녀자들이 억류되 있을 것이란 짐작이 갔다. 오랑캐군사들 조선을
침범했을 때 군사들만 조선 땅에 들어 온 것이 아니었다.
인간사냥을 하는 상인들도 대거 조선으로 들어왔다. 그들 역시 오랑캐군사들과
결탁되어 어린아이들과 노인들만 제외하고 닥치는 대로 조선백성들을 잡아갔다.
특히 젊은 여자들은 그들에게 최상의 상품가치가 있었다.
그 청국 상인들은 오랑캐군사들과 별도로 조선백성들을 청국으로 잡아갔는데
대개가 심양이나 북경(北京)등 대도시에서 열리는 인간시장에서 조선의 백성
들을 매매하였다. 매매된 조선의 백성들은 또 다른 상인에 의해 안남국(安南國)
이나 인도(印度) 등지로 팔려 나갔다.
평양에서도 이전의 매일 밤처럼 박씨녀는 이춘연의 품안에서 밤을 하얗게
지새야 했으며 점점 멀리 한양에 있는 남편 정진경의 얼굴마저 희미해져 갔다.
밤이면 오랑캐 군관의 환락의 제물로 전락해야 하는 자신이 처량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가야 하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청천강을 건너 신의주를 거쳐 오랑캐의 땅을 밟았다. 그렇게 매일 수 백리를
달려 열흘만에 오랑캐의 수도인 심양에 도착했다. 이춘연의 집은 심양의 중심
에 있었다. 박씨녀와 덕칠은 처음에 이춘연의 집 노비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이춘연의 부친은 하북성을 비롯 주변 3개의 성(省)을 통치하는 총독(總督)의
벼슬을 하고 있었고 이춘연의 집에는 노모와 비복등 10명이 있었으며 이춘연의
부친은 달포에 한번정도 집에 들렸다. 총독이면 조선에서 경기와 강원도충청도
3개도를 관장하는 관찰사 세 명의 역할을 하는 높은 벼슬이었다.
이춘연은 사나흘 집에서 박씨녀와 함께 생활 하다 전장터인 조선 땅으로 떠
났다. 후원 별당에 기거하게 된 박씨녀는 말이 통하지 않는 오랑캐 비복들의 보살
핌을 받으며 지내야 했고 덕칠이는 늘 가까이서 박씨녀의 수발을 들어 주었으며
이춘연의 노모는 멀리 조선 땅에서 자식이 데려온 박씨녀에게 관심이 많았다.
좋은 의복과 책 그리고 소일거리를 가져다 주며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친딸
처럼 대해주어 박씨녀가 지내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박씨녀는 오랑캐의 나라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오랑캐의 말을 배워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비복들이 찾아오
면 그들을 잘 대해주며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적고 익히고 의사
전달이 잘 안 될 경우 종이에 써서 물어보곤 했다.
청나라에 온지 한 달이 지나자, 이춘연의 노모는 조선에서 온 박씨녀가 하루종일
후원에 갇혀 꼼짝 못하고 지내는 것이 측은하여 하루는 심양 저자거리를 구경시켜
주기 위해 비복들을 거느리고 나들이를 나갔다.
마차를 타고 구경하는 저자거리는 한양의 운종가에 비해 그리 번화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활기에 넘쳐 있었고 신흥국가의 수도답게 푸른 눈과 노랑머리 그리고
피부가 검은 각종 인종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박씨녀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해 보였다. 어느 큰 광장에 이르자 사람들이 벌떼
같이 몰려있었다. 박씨녀는 이춘연의 노모에게 무엇인지 구경을 하고 가자고 청
하였다.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넓은 광장에서 인파에 둘러 쌓여 매매되던 것을
보던 박씨녀는 충격을 받았다.
치마 저고리를 입은 조선의 젊은 처자들이 손이 꽁꽁 묵인 채 길게 늘어서서 가슴
에 번호표를 달고 외모의 상태에 따라 100냥에서부터 500냥의 값이 매겨져 있었
는데 대개가 몹씨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으며 남루한 차림으로 보아 조선 땅에서
잡혀 온 동포들이 분명했다.
어떤 처자는 발에 동상이 걸려 벌겋게 부어 진물이 흘러 썩어가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한 사람 거들 떠 보지않았다. 어쩌면 자신도 이춘연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런
몰골로 이 시장에 서서 물건 취급을 받아가며 매매 될 운명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은근히 이춘연이 고마웠다. 대개가 10세 후반부터 20세 후반의 조선 처자들은
눈에 초점이 없었다.
그들이 여기 까지 오는 데에는 말로 형언 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음이 뻔했다.
수백 수천의 오랑캐 몸뚱아리를 받아 냈었을 것이고 추운 겨울 이 머나먼 오랑캐 땅
까지 오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조선백성들이 거리의 고혼(孤魂)이 되었으리라.
박씨녀의 눈에 이십세 초반의 한 처자가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얼굴에 기품이
있어 보였는데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데 아마도
포로로 잡혀 오는 과정에서 동상에 걸린 듯 했다. 목발을 하고 있는 그녀의 눈동
자에 고단함과 서러움이 배어 있었다.
"나쁜 놈들 같으니..."
박씨녀는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해댔다. 그 처자를 어떻게 하든지 함께 있고 싶
었다.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 헤집고 그 처자에게 다가갔다. 오랑캐 복장을 한 박
씨녀가 다가가자 그 처자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경계를 하였다.
"놀라지 마세요, 나도 조선 여자입니다."
박씨녀가 그 처자에게 관심을 보이자 떼놈 상인이 달려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쏼라거렸다. 그러자 이춘연의 노모가 다가와 그 처자를 사고싶느냐고 물었다.
박씨녀가 측은하다며 자신이 끼고 있던 금가락지를 빼서 사고 싶다고 하자 춘연의
노모가 오랑캐상인에게 뭐라고 흥정을 하자 300냥의 값을 치르고 그 처자를 샀다.
박씨녀는 금가락지를 빼 이춘연의 노모에게 건네자 이춘연의 노모는 얼른 받아 챙겼다. 그 처자 역시 한양에서 잡혀온 19살의 양반집 규수였으며 이름은 소연이라고 했으며 자색이 고왔다.
자색이 고운 까닭에 많은 오랑캐에게 그 만큼 시달림을 받았을 것이다. 소연은 무지
막지한 오랑캐에게서 해방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박씨녀와 춘연의 노모에게 큰절을
올렸다. 박씨녀는 조선에서 잡혀온 수 백명의 처자들 중에 혹시 막녀와 언심이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심이 일었다.
덕칠이와 수많은 동포 처자들을 천천히 흩어가며 살펴 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이 불쌍한 동포들을 모두 사서 방면해 주소 싶었다. 긴 행렬 맨 마지막 쯤 살피던
박씨녀의 눈에 막녀와 비슷한 처자가 들어왔다. 산발한 머리와 퉁퉁부은 얼굴과 손,
발 다 헤진 치마 저고리는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 처자가 입고 있던 옷이 눈에
익었다. 가슴에는 100냥이란 패가 걸려있었다.
“저어 혹시, 한양에서......?”
분명 막녀였다. 틀림없이 자신과 함께 오랑캐에게 잡혀 모진 고통을 당했던 막녀가
분명했다.
“마, 막녀야, 너 막녀지 ? 막녀가 분명하지?”
“막녀, 나 덕칠이야, 덕칠이, 알아보겠어? 응?”
“그래, 막녀야. 나하고 덕칠이야. 정신 좀 차려봐.”
박씨녀가 막녀의 손을 잡아주며 얼굴을 쓰다듬자 막녀가 박씨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무 말이 없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듯 했다. 오랑캐의 씨앗을
잉태한 했는지 배가 불룩해 있었다.
“막녀야, 정신차려, 나 알아 보겠니? 응?”
박씨녀는 울부짖었다.
“아, 아씨......”
막녀는 겨우 입을 열었다.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닌 듯 했다.
반가움에 앞서 죄책감이 엄습했다. 자신이 챙기지 못해 막녀가 이런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박씨녀를 알아 본 막녀는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다.
“언심이는 어찌 되었지, 막녀야?”
“언심이는, 언심이는 대동강을 건널 때 그만 얼음이 깨져 강물속으로 ......”
막녀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소리없이 흐느꼈다. 기운이 없어서 크게 울지도 못했다.
몇 달만에 만난 상전 앞에서 기쁨의 눈물 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박씨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이춘연의 노모가 그만 가자고 했지만 박씨녀는 막녀를 두고 갈 수 없었다.
“어머니, 저 애는 조선에 있을 때 저와 함께 살았던 친척입니다. 저 애를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제 가락지를 주고라도 사겠습니다. ”
그러나 온후해 보이던 이 춘연의 노모는 차가운 인상이 되더니 상인에게 뭐라고 묻더니 안된다고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춘연의 노모는 막녀는 이미 오랑캐 병사의 씨앗이 뱃속에서 자라고 있으며 동상
으로 잘 걷지도 못하고 정신이 반쯤 나가 하인으로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다.
“막녀야, 막녀야....... 막녀야, 나를 용서해다오.”
“아씨, 아씨, 저 좀 데려가 주세요. 아, 아씨...... ”
막녀는 소리내어 울려고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인들이 억지로 박씨녀와
막녀를 떼어 놓았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구경꾼들도 눈시
울을 붉혔다. 박씨녀는 대성통곡을 하며 막녀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아,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이란 말이냐? 이것이?”
인간시장에서 본 막녀의 모습은 박씨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밤마다 살려달라는 막녀의 꿈을 꾸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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