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곡(終)
- 여강 최재효
전쟁은 끝난 것처럼 보였으나 여전히 전사 통지서가 동네에 배달
되었다. 이번에는 여인의 남편보다 나중에 전장에 투입 된 윗 마을
김 씨네 둘째 아들이 철의 삼각지인 강원도 김화에서 인민군과 치열
한 전투 중에 사망하였다는 소식이었다.
쇠약한 몸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겨웠다. 어느날 갑
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하혈까지 비쳤다. 깜짝 놀란 시아버지
가 예전에 의무병을 지냈다는 긴지로씨를 불러 진찰토록 했다.
“어르신, 아씨가 깊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듯합니다. 워낙 몸이
쇠약한데다가 정확한 병명을 모르겠으나 홧병을 얻어 가슴에 응어
리가 생기고 그것이 하체로 옮겨와 병이 생긴 듯 합니다. 그 응어리
가 풀어지면 곧 나을 것도 같습니다만 …….”
“그 응어리를 어찌 풀어야 한단 말인가?”
“곁에 낭군이 있으면 될 것도 같긴 해요.”
“이 사람아 농담하나? 막내는 지난 해 전쟁터에 나갔네. 지금 전쟁
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 애를 데려 온단 말인가?”
긴지로씨는 간단한 비상구급 약만을 남겨두고 가버렸다.
어린 시누이들이 여인의 집에 머물며 병간호를 하였다. 그렇게 보름을
넘긴 어느날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여인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천지신명께 빌었다.
매미 울음소리도 멈춘 깊은 밤 보름달이 뒷동산 위로 환한 얼굴로 나타
나 가엾은 여인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정월 대보름날 뒷동산에 달이 뜨면
여인은 낭군과 산에 올라 달에게 한 해의 소원을 빌곤 했다. 달의 모습은
한결같았지만 사람의 몸과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천지신명님, 달님, 제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세요. 우리 그이가 하루 빨
리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밤길을 밝혀주세요. 행여 유혹에 빠져 돌아
오는 발길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도록 굽어 살펴주세요. 이 여인에게
이제는 희망이 없습니다.
주변의 모든 시선들이 너무 무섭습니다. 제가 마음의 끈을 놓지 않도록
저를 단단히 붙들어 주세요. 하루 빨리 그이를 보지 않으면 이 가련한 여
인은 이대로 영원히 주저앉아 버릴 것 같습니다. 하루 속히 그이가 집으
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이렇게 빌고 또 빕니다. 천지신명이시여!”
여인은 정신이 들때면 천지신명께 빌었지만, 전장에서 편지 한 장 없었
다. 여인은 서서히 희망의 끈을 놓고 있었다. 자리에 누운 지 석 달이 넘
어서자 여인은 식음을 전폐하다 시피 했다. 두 딸아이들은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돌봐주고 있었고, 이삼일에 한 번씩 막내 시누이가 여인의
병세를 살피기 위해 왔다가곤 했다.
“언니, 어서 일어나셔야지요? 이러다가 불쑥 오라버니가 돌아오는 날
이면 어쩌시게요?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셔야지요?”
막내 시누이는 여인이 더 이상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것을 직감하면서
도 어서 일어나라고 했다.
“아가씨, 혹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면 우리 애들 잘 부탁해요.”
“언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언니가 어디 먼데라도 간단 말이에요?”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잖아요. 사람은 갈 때가 되면 다 아는 법인가봐
요. 자꾸만 꿈속에서 오빠가 나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 모습이 보
여요. 혹시, 혹시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언니, 오빠는 살아 계세요. 곧 집으로 돌아오신다고요. 왜 그렇게 나
약한 말씀을 하세요?”
시누이와 올케가 한참 입싸움을 하고 있을 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
가 들렸다.
“계세요?”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밖에 누가 오셨나봐요?”
“언니, 내가 나가 볼게요.”
빗장을 질러놓은 대문 밖으로 군복 차림의 남자가 서있었다.
“저어, 이집 아저씨하고 함께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어 인민군과 싸우
던 사람입니다. 아저씨 이야기를 전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나는 저 멀
리 항거리 사는 사람입니다. 진작 찾아와 말씀을 전해 드렸어야 하는
건데 보시다시피 삼 개월 전에 상이용사로 제대하여 그동안 치료를 받
느라고 늦었습니다.”
제대할 당시 남자는 여인에게 전해달라는 낭군의 편지를 가지고 있
었는데 그만 귀가길에 분실하여 할수 없이 전쟁터에서 함께 생활하며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 해주겠다고 했다.
여인의 남편은 낙동강 전투에서 인민군들이 물러가자 다시 최전방
으로 배치되어 전투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
르지만 남편은 자나 깨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생각 뿐이라고 했다.
“그럼, 지금 하신 이야기는 삼개월 전 이야기로군요.”
여인은 시누이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의 이야
기를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고향에 편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전선이 자주 이
동하는 바람에 일정한 전쟁터에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상황은 아주
좋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전우들이 죽어나갑니다.
전장에서 살고 죽는 것은 다 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집 아저씨
도 운이 좋으면 살아서 돌아오시겠지요. 앞으로도 휴전될 때까지 한
참을 더 치열한 전투가 있을 겁니다. 그때 까지 마음 굳게 먹고 기다
리세요. 혹시 모르지요. 전쟁이 더 빨리 끝 날지도…….”
여인은 남자의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아, 다 틀렸구나. 다 틀렸어. 그렇게 천지신
명께 빌고 빌었건만 그이는 살아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어이할꼬.’
남자는 뜬금없이 나타나 촛불처럼 꺼져가는 여인의 한 가닥 희망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휑하니 가버렸다. 여인은 남자가 간 뒤로 멍하니
누워서 남편이 군에 갈 때를 생각했다.
곧 돌아온다던 남편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고 상상도 못했던
나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자 주변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쏠려있
는 것 같아 날이 갈수록 괴로웠다.
‘아, 나는 살아있어야 할 가치가 없는 여자로다. 내가 최씨 집안으로
시집 온 이후로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어. 아들이 귀한 집안에
딸만 내리 다섯을 안겨 주었으니 시댁에서 나를 고운 눈으로 안 보겠지.
이제는 어찌해야 하나. 마지막 희망도 사라졌으니 이제 어찌 한다? 내
몸도 어디가 잘못되어서 자주 하혈을 하니. 아, 이제 모든 게 끝이로구
나.’
여인이 자주 하혈을 하며 여러달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시부
모도 체념한 채 며느리에 대한 관심도 서서히 멀어져가고 있었다. 친정
에서 올케가 와서 여인의 병간호를 돕고 있었다.
“아가씨, 어린 것들을 생각해서라도 빨리 일어나야 해요. 만약에 아가
씨가 잘못되면 두 아이들은 어쩌게요?“
“올케, 고마워요. 그러나 내 몸은 이미 어려운 지경에 다다른 것 같아요.”
“아니에요 아가씨. 힘을 내셔야해요.”
“올케-.”
“아가씨, 울지마셔요. 곧 서방님께서 대문 활짝 열고 들어 오실지도 모르
잖아요.”
“이제는 다 끝났어요. 나에게는 이제 아무 희망도 없다고요.”
여인은 날이 갈수록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갔다. 급기야 물 한 모금 간신
히 넘기는 상태까지 다다르자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까지 돌았다.
“증광어멈, 소식들었수?”
“무슨 소문?”
“재녀엄마가 다 죽게 되었다는구먼.”
“아니, 며칠 전까지 좀 괜찮아졌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겨우 물 한 모금 넘긴데?”
“어이구, 저 일을 어째? 서방은 전쟁터에 나가 소식도 없는데. 어린 두
딸들은 어쩌라고.”
“긴지로 아저씨가 매일 재녀엄마를 진찰한다는데 가망이 없다고 말한데.”
“저런, 쯔쯔쯔...... 이러다 전쟁 통에 초상 치르는 거 아녀? 동네에 젊은
사람도 없는데 만약 초상이라도 난다면 어찌하지?”
“동네 어르신들도 그걸 걱정하고 있다고 하더구먼.”
소문을 금방 동네 전체에 퍼졌고 음울한 기운이 동네를 감싸고 있었다.
어느덧 북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여인의 병세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웃 아낙들이 수시로 집을 들락거리며 병세 파악에 촉각
을 곤두세우고 그때그때의 상태를 동네 사람들에게 알렸다. 뒷집에 사
는 이장은 반장들을 불러 모아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반장들이라고
해야 전부 노인들이었다.
“에,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재녀엄마의 병세가 아주 안 좋습니다. 며칠
안으로 초상이 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이장님, 동네에 맨 늙은이들만 있으니 어떻게 장례를 치른대요?”
“험, 그, 글쎄요. 실은 나도 그것이…….”
“이장님, 능현리 시댁에서는 어찌 준비를 하고 있는지 먼저 알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낮에 잠깐 최씨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그 어른도 전쟁 통에 어떻게
장례를 치러야할지 크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하긴, 신작로 구석이나 산에도 아직 시체들이 넘쳐나고 있으니, 이런
난리통에 예전처럼 꽃상여를 맨다는 것이 좀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긴
혀.”
회의에 모인 늙은 반장들은 호상(護喪)이 아닌 젊은 여인의 초상을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에 저마다 한 마디씩 걱정을 토했다.
여인이 곧 세상을 뜰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졌다. 시부모
는 아침부터 올라와 여인의 동태를 살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서러움
과 세상의 눈초리가 무서워 엄청난 마음 고생을 했을 며느리가 얄밉기
도 했지만, 이제 이승에서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같은 여
자로서 연민의 정을 느꼈다.
“얘야, 눈 좀 떠 보거라. 네가 이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면
우리는 모두 죄인이 되는거다. 군에 간 막내를 어떻게 보니? 아직 인
생이 구만리 같은 애가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되겠니? 저 어린 것들은
어떻게 하고?“
“아가, 네 시어미 말이 맞다. 네가 낯선 곳에 시집와 마음 고생만 하
였구나. 이제 일어나야지?“
시아버지도 눈가가 촉촉이 젖어 막내 며느리의 초췌해진 모습을 내
려다 보고 있었다.
“언니, 일어나셔야 해요. 이렇게 허무하게 가시면 안 돼요. 오라버니
가 아직 전쟁터에 계신데 언니가 저승에 가시면 오라버니는 어떻게 해
요. 언니, 제발 일어나셔야 해요. 우리가 모두 잘못했으니 이제 일어나
세요.“
평소 말이 통했던 막내 시누이가 여인 앞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자
주위가 숙연해졌다. 그나마 시댁에서 마음 터놓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막내 시누이 뿐이었다.
‘아가씨, 고마워요. 눈을 뜨려고 해도 눈이 잘 떠지지 않아요. 입을
떼려고 해도 잘 떨어지지 않고요. 이러다가 나는 모든 사람 가슴에
못을 박는 죄인이 되면 어찌하나요? 이럴 줄 알았더라면 모두에게
잘 해주는 건데…….‘
여인은 안간힘을 써보지만 의식이 점점 더 가물거릴 뿐 손가락 끝
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막내 시누이가 여인의 손을 잡자 여인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손에 힘을 주어 응수했다. 올케의 화답을 알아차린 막내 시누이는 더
큰 소리로 여인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섯째 시누이가 두 딸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와 여인의 곁에 앉
게 했다. 대충은 엄마의 처지를 눈치를 채고 있던 아이들은 엄마의
충격적인 모습을 보자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엄마-”
두 아이들은 계속 엄마를 부르며 싸늘하게 식어가는 여인의 손을
잡았지만 여인의 손은 점점 굳어만 갔다.
“언니, 용서하세요. 그간의 어머니 아버지는 결코 언니가 미워서
그리하신 게 절대로 아니에요. 큰 오빠, 작은 오빠는 장가 가자마자
딸만 낳으니 아버지 어머니가 크게 낙담하셨고 막내 오빠에게 큰
기대를 걸었으나 오라버니와 언니 또한 아버지 어머니 소원을 들어
주지 못하니 어머니께서 역정을 내신 것 뿐이에요. 언니에게는 전혀
잘못이 없어요. 자식을 여자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오라버니와 언니의 사랑의 결실이 다섯 명의 조카로 나타나신 것이
에요. 이제 언니가 다시는 건너 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신다면 남아
있는 모든 가족들은 두고두고 가슴에 응어리를 안고 살아가야 해요.
언니 가슴에도 한이 남아있다면 더 좋은 세상에 가셔서 모두 푸셔야
해요. 힘들고 지친 이 세상의 일일랑 모두 잊고요.“
‘고, 고마워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그래도 아가씨 뿐이네요.
아가씨, 이제는 숨 쉬기조차 힘들어요. 정신도 가물가물하고요. 우리
불쌍한 두 애들 잘 부탁해요.
이대로 내가 숨을 놓는다 해도 편하게 저승으로 갈 수 없을 것 같아
요. 비록 내 육신이 이승을 떠난다 해도 내 영혼은 그이가 저 대문 안
으로 들어 올 때까지 나는 이 집을 떠날 수 없어요.
이제, 먼 길을 떠나야 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나봐요. 웬 검정 옷을
입을 사람들이 나를 잡아끄네요. 아, 이젠 이승을 영원히 떠나야 할까
봐요. 아이들, 내 불쌍한 두 아이를 잘 부탁해요. 잘 부탁해요.
아, 안녕히…….‘
해가 막 대포산 뒤로 넘어갔을 때 막내 시누이 손을 잡고 있던 여인
의 두 손이 풀리면서 숨이 멎었다. 여인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두 딸과
고모들 그리고 친정에서 온 올케와 오빠는 집이 떠나가라 통곡하였다.
“어이쿠, 얘야. 이리 허망하게 가면 이 두 늙은이들은 네 낭군을 무
슨 낯으로 본단 말이냐. 어이쿠, 어이쿠-“
시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울음을 터트리고 시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상갓집으로 몰려들었으나 대부분 노인과 아
녀자들 이었다. 젊은 남자들은 모두 군대 가거나 군대관련 일에 종사
하고 있었다. 이장과 반장들이 모였으나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상여를 꾸민다하여도 상여를 멜 장정들이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는 여인의 시아버지는 이장을 만나 며느리 장례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이장, 이 난리 통에 장례다운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
야. 그러니, 내일 아침 날이 밝거든 며늘애를 청마루 선산에서 화장
으로 장례를 치르려고 하네. 내 뜻을 이해해 주시게.“
“아니, 어르신. 왜 화장을요?”
“생각해보시게, 이 난리 중에 상여를 꾸미고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동네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뿐만 아니라, 신작로나 산에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전사한 사람들 시신들이 널려 있으이. 하물며
집안에서 병을 앓다 죽은 아이를 어떻게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장례
를 치를 수 있단 말인가?“
“어르신, 그래도 어떻게 화장을 두 딸들이 있는데…….”
'제사지내 줄 아들이 없고 막내 아들도 전쟁터에서 생사가 어찌될지
모르거늘 매장을 해서 뭘 어찌 한단 말인가?'
"어르신?"
“내가 장례에 필용한 돈은 얼마든지 내 줄 테니, 가까운 군 막사에 가서
석유 구해주시게. 장작은 집에 얼마든지 있으니 휘발유만 좀 있으면 화장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게야.“
“잘 알겠습니다. 어르신의 뜻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그럼 준비를 하
겠습니다.
이튿날 아침 여인의 시신은 우마차로 청마루 선산으로 운구 되어 시부
모와 동네 어른들의 입회하에 화장장으로 치러졌고 유골은 청마루 양지
바른 곳에 묻혔다.
반년이 흐른 뒤 전쟁터에서 최씨 집안의 막내아들이 기적처럼 살아 돌
아왔다. 제대하기얼마 전 풍문으로 아내의 부음을 들은 사내는 밤마다
헛꿈을 꾸며 아내의 환영을 봐야했다. 군에서 이 소식을 알고 예정보다
약간 빠르게 제대를 시켜 준 것이다.
“여보, 여보. 미안하오. 군에 있으면서도 당신에게 편지 한 장 제대로
띄우지 못한 이 못난 사람을 용서하오. 정말로 미안하오. 그날 눈보라
속에서 작별이 영원한 이별일 줄이야.“
사내는 여인의 혼을 모신 초례청에 엎드려 일어날 줄 몰랐다. 곁에 어
린 두 딸들이 손가락을 입에 물고 삼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눈물을 닦고 있었다.
사내는 두 달여 동안 술로 자신을 학대하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
각에 마음을 굳게 먹고 어린 두 딸아이들에게 그간의 못 베푼 부정(父情)
을 베풀었다. 야속하지만 세월은 지나간 비극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마
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내는 얼마 후 점봉리에 살던 정씨 가문의 옥녀라는 처자와 백년가약
을 맺게 되었다. 아들 셋과 딸 둘은 얻은 사내는 집안을 크게 일으켰다.
십팔세 꽃다운 나이에 해주 최씨 가문에 시집와 칠십년 동안 한 가족의
희노애락을 말없이 지켜본 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소리내어 울
고말았다.
- 끝 -
_()_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지장보살
어머니, 최씨 가문을 용서하소서. 비록 당신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이제야 당신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지어 바칩니다. 너무 늦은 감은 있지만 당신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렸으면 합니
다. 조유덕(趙有德), 늘 당신의 이름 석 자를 이 막내아들은 가슴에 품고 살았나이다. 저의 자
랑스러운 어머니 이십니다.
혹여, 당신께서 아직도 이승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고 머물고 계시다면 이제 모든 것을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시고 영면하시고 극락왕생하시기 바랍니다. 1952년 한국 전쟁 중에 돌아가신
큰어머님, 평생 큰 어머님께 큰 죄를 지으신 듯 늘 허공에 시선을 주시던 아버님(1995년 10월
作故), 두 분께 본 원고를 바칩니다.
막내아들 최재효 三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