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곡(3)
- 여강 최재효
‘아아, 어머니. 제가 오늘 왜 이렇게 땅을 치고 슬피 울어야 하나요?
딸을 낳은 것이 왜 죄를 짓는 일이 돼야 하는 건지요? 전, 전 도저히 납
득할 수 없습니다. 제가 딸을 낳고 싶어 낳은 것도 아닌데 어찌 저 혼자
만 죄인이 돼야 하는 건지요?’
다섯 번째 딸을 낳고 여인은 밤 늦게까지 울었다. 어린 두 딸들은 고모
들이 친할머니가 있는 능현리로 돌아가고 텅 빈 집에는 몸 푼 여인과 갓
난아이, 친정 올케만 남아 정적에 묻힌 집안을 지키고 있었다.
“시누, 가슴아파하지 말아요. 이 나라는 여자가 시집와서 아들을 낳지
못하면 죄인이 된답니다. 아직 나이도 있는데 뭘 걱정해요. 고모부가 전
장에서 돌아오시면 다시 사랑의 씨앗을 뿌리면 되잖아요. 이제 전쟁도
막바지에 이른 듯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그건 언니가 몰라서 하는 소리에요. 오빠는 군대에 안 갔으니 하시는
말씀이라고요. 동지섣달 긴긴 밤을 혼자서 지새보면 그런 말 하지 않을
거예요. 어린 두 딸들이 아비를 보고 싶다고 칭얼대고 뱃속에 아이는
점점 더 무거워 가는데 그 이 한테는 편지 한통 없어요.
이런데 내가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들리느니 전장에서 동네 청년들
죽었다는 이야기 뿐인 걸요. 내일이라도 그이가 전사했다는 통지서가
날아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불안해서 밤잠을 잘 수 없어요.”
“시누, 무슨 그런 불길한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 일 없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러나 저러나, 어서 원기를 회복해야 할 텐데…….”
“언니, 나는 이 집안하고 전생에 무슨 원한이 있나봐요? 아무리 생각
해도 기가 막혀요. 어째서 다섯 번씩이나 내 뱃속에서 딸만 나오는 거
죠? 이 집안이 삼신할미에게 밉보였거나 애비가 하늘에 무슨 큰 잘못
을 하였나 봐요.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생기는지 모르겠어요. 이번에
내가 아들을 낳았으면 시부모님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시누, 별말을 다 해요. 두 사람 아직 젊은데 뭘 벌써 걱정을 하고 그
래요. 어떤 여자들은 칠 공주, 팔 공주를 낳고도 잘 사는데.”
‘아냐, 아냐. 언니가 우리 시어머니를 몰라서 그래요. 이제부터 나는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집안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나 때문
이라고 손가락질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언니, 난, 난 정말이지 자신이
없어요. 시댁 식구들의 비수 같은 눈초리를 피할 길이 없다고요.”
“시누-.”
며칠이 또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두 딸들은 시댁에 맡겨진 채 였다.
여인은 차라리 두 애들이 친 할머니 손에 있는 것이 더 편할 거라 생각
했다. 모든 것이 정상인 것처럼 보였다.
어쩌다 시댁에서 고모들이 올라와 반찬거리를 가져왔다. 날이 차차
풀려 어느새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다. 멀리 황학산은 산불이 난 듯 했
다.
“아, 그이는 잘 있는 것일까? 포성도 멎었는데 어째서 그이에게서는
소식도 없는 것일까? 혹시? 아니지, 아니야. 절대 그럴 리 없어. 아내가
있고 세 딸자식을 둔 사내가 그리 쉽게 죽을 리 없어. 아아, 천지신명
이시여, 어서 그이를 돌아오게 해주세요. 꼭 돌아와야만 한답니다.”
포성은 멎었지만 전쟁은 예상처럼 빨리 끝나지 않았다. 다섯째가 태어
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출생신고도 할 수 없었다. 시부모는 아이가 태
어난 뒤로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농사철이 되었지만 그 많은 전답을 건사할 사람은 군에 간 아이들 아버
지였지만 반년이 다되도록 편지 한통 없었다. 여인은 점점 학(鶴)이 되어 갔
다. 서울서 오랜 기간 경찰에 몸담았던 둘째 시아주버니가 있었지만 농사
일에는 서툴렀다. 큰 시아주버니 역시 농사일에는 재주가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좀 넘어서였다. 갑자기 아이가 불덩이였다.
얼굴 여기저기에 빨간 반점 같은 것이 피어났다. 전쟁 통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막내 시누이와 읍내 의원을 데리고 가보았지만 오랫동안 문
이 닫혀있었다.
할 수 없이 약국에서 간단한 해열제만 구입하고 돌아와야 했다. 아이
는 왕복 이십 리 길을 다녀오는 내내 울며 보챘다.
“아아, 이를 어쩌나? 이러다 이 아이가 잘못되면 정말로 큰일 인데.”
“언니, 내가 업을 테니 애를 이리 주세요.”
“아니에요. 괜찮으니 그냥 걸으세요.”
“그럼, 모들기 고개에서부터 내가 업고 갈게요. 인명은 재천이라는데
조카가 뭐 어떻게 되겠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고마워요. 고모도 전쟁 끝나면 얼른 시집가야죠?”
“어머? 오라버니가 아직 전쟁터에 계신데 어떻게 시집을 가요?”
“그이는 곧 돌아오실 거예요. 그러니 동네 참한 신랑감 있으면 잘 봐
두세요.”
"아이, 언니두 참-."
읍내 약국에서 사온 해열제를 아기에게 먹이고 아이를 재웠다. 다행히
아이는 보채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여인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려놓
고 천지신명을 찾았다.
“여보, 살아 계신 거죠? 아직 아이의 이름도 못 지었답니다. 어서 오
셔서 당신 아이에게 예쁜 이름을 주어주세요. 포성이 멎은 지 오랜데
어찌 못 오시는지요?
혹시, 돌아오시는 길에 어떤 여인에게 눈길을 주시고 계시는 건 아
니겠지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이시여, 우리 그이를 어떠
한 시험으로 부터도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이렇게 이 가련한 여
인 매일같이 빌고 비나이다."
여인이 밤이슬을 흠뻑 맞으며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드리고 막 방에
들어왔을 때 아기의 상태가 이상했다. 해열제를 먹이고 잠들 때만 해
도 숨소리가 잔잔했는데 얼굴에 빨간 반점 같은 것이 다시 피어나더니
보채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기의 숨소리도 고르지 못했다. 한번 울
면 숨이 넘어갈 듯 했다.
“아아, 아가야. 울지마. 네가 울면 엄마도 울고 싶어진단다. 아가,
제발 울지 말거라. 아가, 아가-.”
밤이 깊어지면서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 처량했다. 할 수 없이 여인
은 아기를 들춰 업고 시댁으로 내려갔다. 새벽 세시가 훨씬 넘은 시
각이었다. 갓난아기를 업고 대문을 두드리자 큰동서가 문을 열어주
었다.
“아니, 동서 이 꼭두새벽에 아기를 업고-.”
“형님, 어서 어머니를 깨워주세요. 아기가, 아기가 이상해요. 형님,
어서요.”
잠에서 깬 시부모는 악을 쓰며 우는 아기를 달래 보았지만 아기를
달래지 못했다. 온 시댁식구를 깨어 일어났지만 우는 아기를 보고 시
큰둥할 뿐이었다.
“언니, 어떻게 좀 달래 봐요.”
막내 시누이가 야박한 어조로 구박하듯 여인을 쏘아봤다.
아기는 이제 울다 지쳤는지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러다 갑자기 아기의 숨이 멎은 듯 하다가 간신히 숨을 넘기기를 수
십 번 반복하였다. 이상한 느낌을 감지한 시어머니는 손수 바늘로 손
가락을 찔러 피를 빼 아기 입가에 물려주었다.
아기는 다시 숨을 고루 쉬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그러나 아기의 평
안은 오래가지 못했다. 날이 샐 무렵 아기는 심하게 보채며 울다가
이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기를 두세 번 반복하다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가, 아가. 어찌 된 거니? 응, 아가, 아가-.”
여인은 자지러질듯 통곡했다. 울음 소리에 놀란 시댁 식구들이 모두
사랑채로 달려 나왔다.
“아기야, 아기야. 숨 좀 쉬어보렴. 응, 아기야. 어이구, 어이구. 아기
야. 이 할미가 잘못했다. 어서 눈 좀 떠봐. 응? 아기야-.”
시머머니와 시아버지는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다. 몰려든 둘째 시아
주버니와 동서 그리고 시누이들도 조용히 흐느꼈다.
“아가야.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해다오. 내가 너를 죽게 했구나.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해다오. 아가야. 아가야-.”
새벽에 여인의 통곡소리를 듣고 시댁의 이웃들도 무슨 일인지 궁금해
몰려들었다.
“김 주사, 최부자댁에 이 밤에 무슨 변고라도 난거여?”
“군에 간 저 집 막내있잖어?”
“어, 지난해 동짓달에 갔지 아마. 그런데 무슨일이 있어? ”
“한 달 전에 그 사람 처가 또 딸을 낳잖아 왜? 그 딸아이가 방금 세상
을 떴다는 거여?”
“으잉? 왜?”
“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저렇게 아비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었
지 뭐여. 참으로 아기와 아기 엄마만 불쌍하게 되었네.”
“전쟁은 다 끝난 것 같은데 어찌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누?”
“아니 이 사람아. 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녀. 38선에서는 치열한 싸움
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는데 철의 삼각지는 하루에도 서너 번 주인이 바
뀐다고 하는 소문이 있어.”
“그러면 애 아버지는 언제 올지 모르겠구먼. 소문에는 낙동강 전선에
배치되었다는 것 같은데 …….”
“그쪽 군인들이 모두 38선에 투입되었다는 소리도 있어.”
“큰일이네. 갓난아기가 죽었으니 어쩌지?”
“뭘 어째. 전쟁 통에 멍석에 둘둘 말아 최 씨네 선산에 묻어주면 되지.
이 전쟁 통에 죽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이여? 지금도 모들기 고개나 신작
로 도랑에는 시체들이 굴러다닌데.”
날이 밝자마자 싸늘하게 식은 아기는 이불로 쌓여 조그만 나무 상자
에 넣어졌다.
“아버님, 안 됩니다. 아기가 죽은 게 아니에요. 더 기다려주세요. 아기
가 다시 살아나면 어쩌게요. 아버님,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조금만요.”
여인은 나무 관에 넣어진 아기의 차가운 시신을 어루만지며 통곡하였
다.
“제수씨, 조카는 이미 이승사람이 아닙니다. 어서 해가 뜨기 전에 대문
밖으로 나가야 해요. 진정하세요.”
“안돼요. 안돼요. 내 아기에요. 내 뱃속에서 아비 없이 열 달 동안 키운
내 아기란 말이에요. 더 기다려봐야 해요. 이 애가 다시 숨을 쉴 수도 있
단 말이에요.”
아기의 시신을 두고 시댁식구들과 옥신각신하던 연인 결국 아기의 관
을 내어주고 말았다. 둘째 시아주버니와 동네 장정 한명이 아기를 지게
에 지고 청마루 선산으로 향했다. 동구 밖까지 울며불며 아기를 돌려달
라고 따라 오던 여인은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저런, 저런. 아이고, 이일을 어째. 재희 엄마도 저러다 어찌되는 거
아녀?”
“잠시 기절한 거 같은데 뭐. 집안 식구들이 업고 집으로 들어갔으니 곧
깨어나겠지. 아이고, 죽은 아기만 불쌍하게 되었네. 아기는 아비 얼굴도
보지 못하고 저승으로 갔으니, 저승가서도 한이 될 텐데. 이일을 어쩌누?
에구, 에구 불쌍한 것 같으니.”
동네 아낙들은 멀리서 참담한 광경을 목격하고 눈물을 찍어 냈다. 아
침 밥짓는 연기 속에 동네는 다시 고요해 졌다. 전쟁 중이라 사람 죽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다 보니 갓난아기의 죽음은 동네 사람들의 동정
을 받지 못했다.
다섯 번째로 낳은 딸을 잃은 여인은 날마다 통곡을 했다. 시누이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하는 여인을 달래보았지만 여인은 울음을 그
치지 못했다.
“아가야, 정말로 미안하구나. 이 어미가 못나서 너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냈구나. 너는 건강하게 자라서 전장에서 돌아오는 네 아버지를 즐겁
게 해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다니. 네 아버지를 보면 뭐라
고 말해야 하니. 응. 아가. 나도 이런 세상에 흥미가 없구나. 아가, 아가.”
여인은 아기를 먼저 보낸 죄책감에 보름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점점 사람 꼴이 말이 아니었다. 며칠 있으면 그만 마음의 안정을 찾고
몸을 추스를 줄 알았던 막내며느리가 보름째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
다는 말에 시부모는 며느리에게 그만 일어나 정신 차리고 몸을 추스
르라고 하였지만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얘야, 내가 미안했구나. 이제 일어나 이 미음이라도 들어보렴. 아가,
너마저 이러면 어찌하니. 얼른 일어나야지. 그 애가 내일이라도 전쟁터
에서 돌아와 이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니. 어서 일어나야
지. 어린 것들도 있는데 네가 이러고 누워 있으면 안 된다.”
시부모의 충고도 이미 세상에 미련을 버리기 시작한 여인에게 아무 소
용이 없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