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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곡(2)

* 창작공간/단편 - 사모곡

by 여강 최재효 2008. 8. 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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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곡(2)     

 


                                                                                                                                           - 여강 최재효

 


   
 전쟁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마을은 차츰 생기를 찾
 있

었다. 설날이 다가오면서 동네 방앗간은 분주했다. 피난길에서 하나 둘

다시 돌아온 아낙들은 전쟁 통에도 불구하고 설은 쇠야 한다며 방앗간

에 몰려들었다. 방앗간 그동안 동네 소문의 주역들이 모두 모였다.

그중에는 인근 동네에서 온 아낙들도 있었다.

 
 “경식이 삼촌도 그제 전사했다는 통지서가 왔대.”
 “어머나? 노래 잘하고 잘 생긴 그 총각말여?”
 “안됐네. 정말 아까워. 그럼, 순영이는 어찌 되는 거여? 둘이
죽고 못

는 사이라던데?”


 “순돌네, 소식 들었어?”
 “뭔 소식?”
 “재녀 엄마가 곧 몸을 푼다는데.”


 “에구, 서방은 전쟁터에 나가 있고 어린 것들 둘을 건사하면서 어찌

혼자서 몸을 푼단말여?”
 “우리가 자주 들려 좀 들여다보자고.”


 “아따, 능말에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 천석지기 시아버지, 말
만한 시

누이들이 있는데 뭔 걱정이여? 최씨네 집안에서 알아서 하겠지.” 


 “증광어멈은 남의 일이라고 그러는 게 아녀. 그이가 시집오자마자 내리

딸만 넷을 낳고 마치 죄인처럼 살아왔잖여? 시어머니한테 얼마나 구박

받았어? 그러니 혼자 또 몸을 풀어야 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요.”


 “하긴 아들 귀한 집안에 시집와 딸만 내리 넷을 낳고 둘은 잃어 버렸으

니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겠어. 이번에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야

그간의 고생을 만회 할 텐데…….”


 방앗간에 모인 동네 아낙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걱정했다.
명절이

만 쥐 죽은 듯 적막하기만 한 집안에 남산만한 배를 쓰다듬으며 여

인은 속으로 울고 있었다.



 ‘여보. 살아계신 거지요? 어젯밤에는 당신이 전쟁터에서 돌아와 두 손

을 벌리고 아이가 꿈틀대는 배를 쓰다듬는 꿈을 꾸었어요. 곧 오시는 거

죠? 이 애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보세요. 이 애가 발

길질을 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아들일거에요.


 지난달에는 하얀 수염을 한 웬 할아버지가 찾아와 지팡이로 내 배를

리키자 갑자기 뱃속에서 흑룡이 나오더니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

기도 했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돌아오셔야 해요. 재희가 자

꾸 당신을 찾으며 보챈답니다.


 재녀는 언니라고 동생을 다독거려주기는 하지만, 그 애도 당신이 보

고 싶은가 봐요. 이젠 며칠 있으면 당신의 다섯번째 사랑이 결실을 보

는데 당신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루도 빠짐없이 천지신명

님께 당신의 안위를 바라는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꼭, 꼭 살아서 돌

아 오셔야해요.’


  해가 넘어가자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일찍 저녁을 해서 아이들을

이고 여인은 동네 어귀로 나갔다. 주막거리 부근 논밭에 군인들 막사

서너 개 보이고 호루라기소리가 요란하울려 퍼지기도 하고 군인

들이 부르는 군가 소리도 들려왔다.


 전쟁에 나간 낭군도 저렇게 눈구덩이 속에서 훈련을 받고 있을 거라

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북두칠성이 손에 잡힐 낮게 내려와 있었

다. 북두칠성 손잡이 끝 멀리 북극성이 홀로 반짝거리며 하늘 등대 역

할을 하고 있었다. 어쩌다 한 번씩 포성이 울리기도 했다.


 “아, 이젠 전쟁도 거의 끝나가는 것 같은데 그이도 곧 돌아 오실테지.

저 군인들도 고향에 나처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 여인들

이 밤, 잠 못 들고 낭군 생각에 젖어 있을까?”
 여인은 집에 돌아와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북두칠성을
바라보

면서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다.


 “천지신명님, 칠성님이시여, 우리 그이를 굽어 살피소서. 두 딸들이

있고 곧 다섯 번째 아이가 태어난답니다. 두 아이는 제명에 못살고 잃

었지만 이번에 나올 아이든 꼭 아들이어야 합니다.


 그이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이를 굽어
살펴주

소서. 이렇게 빌고 또 비옵나이다. 이 뱃속에 아이가 유복자가 되는

신세는 면하게 해주소서. 이 가엾은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빌고

비옵니다. 천지신명님, 칠성님, 이 여인의 간절한 청을 뿌리치지마소서.


 여인의 기도소리는 차차 깊은 흐느낌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여러 날

밤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버렸다.


 “임자, 며늘애 해산이 얼마 안 남았지?” 
 “한 엿새 정도 남았어요. 큰일이구만요.”
 “뭐가?”


 “생각해봐요. 막내는 전쟁터에 있지, 이 엄동설한에 어디 가서
미역을

할 수 있나 만약에 애 낳다 잘못하면 의원을 갈 수 있나 참으로 큰일

이에요. 전쟁터에 뭐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지 원.”


 “별놈의 걱정을 다하네. 그 애는 벌써 애를 네 명이나 집에서
쑥 쑥 잘

았는데 뭔 걱정을 해? 그러나 저러나 이번엔 꼭 아들이어야 해 벌써

다섯 번째 태어나는 아인데…….


 점점 다가오는 막내며느리의 해산이 두 노인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아

수 없다. 날씨가 많이 풀리기는 했지만 밤이면 밖에 나가보면 산에

눈이 쌓여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눈보라가 동네를 집어 삼킬 것 같았

다.


 다행히 포성은 예전 같지 않았으나 밤이면 지축을 흔드는 소리는

전했다. 어제는 아래성넙 김 주사네 둘째 아들이 전쟁에서 포탄에 맞

아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동네는 또 쥐죽은 듯 조용한 침묵에

잠겼다.


 “내 점말 좀 다녀오리다. 어제 구한 고긴데 며늘애 몸보신이라도 시

야지.”
 “영감은 재주도 용하시구려. 이 전쟁 통에 잉어는 어찌 구했
어요? 집

계세요. 젊은 며느리 혼자 있는 집을 남정네가 가면 되우? 내 둘째

하고 다녀올 테니…….


점심 때 쯤 시어머니는 잉어, 엿, 쌀강정을 준비해 둘째 며느
리하고

집을 나섰다. 동네 어귀 논에는 군용 �차와 트럭이 서너 대 서있고

야전 천막이 쳐져있는데 군인들의 행색을 보니 미군은 아닌 듯 했다.

국군이 마을에 오기전 마을사람들은 시커먼 미군과 맞닥뜨리면 기가

죽었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통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머니, 동서를 집으로 내려오라고 하세요. 만삭의 몸으로 혼자서

어린애들 둘을 돌보는 일도 꽤 힘들 텐데.”
 “그 애가 고집이 좀 세니. 내 말을 들어야지. 먼저도 피난가
라니까

며칠 만에 다시 돌아왔잖니?”


 “그건 동서가 전쟁 통에 길바닥에 애를 낳을까봐 걱정돼서
그랬겠지

요. 저희도 아범이랑 애들 데리고 피난 갔다가 그냥 돌아왔잖아요.”


 “그건 네가 몰라서 그런다. 그 애가 제 낭군 군에 갔다고 이젠 얼굴도

보이는구나. 여자는 그저 남에 집에 시집왔으면 그 집 가문을 이어

줘야 하는 거여. 그 애가 죽은 애들까지 이 집안에 시집와서 딸만 넷을

낳았다 그게 말이 되는 거야? 너도 어서 아들을 낳아야해. 딸년 하나

낳고 몇 년 째소식이없는거니?”


 “어머니, 그 그건 아범이 워낙 바빠서 있는지라…….
 “바쁘긴 뭐가 바빠? 매일 술독에 빠져 살다보니 그런 거
아녀?”


 둘째 며느리는 시어머니 말에 찔끔하면서 땅만 내려다보며 걸었다.

두 여인은 말없이 빙판길을 걸었다. 둘째 며느리는 평소에 은근히 동

서를 경계해온 터였다. 자신도 시집오자마자 딸을 낳아 비록 시부모

를 모시고 살지만 늘 마음이 무거웠다.


 막내동서가 시집와 내리 딸만 둘을 낳자 시부모의 역정은 막내 동서

에게 집중되었고 잠시 자신에 대한 질책을 면할 수 있었다.


 “어, 어머니 올라오셨어요?”
 “아니, 네 그 꼴이 뭐니? 며칠 동안 잠도 못자고, 세수도 못
한 부수수

한 몰골을 하고 있으니. 그래, 애들 밥은 제대로 챙겨주고 있는 거여?

네가 먹기 싫다고 애들까지 굶기는 건 아니니?”


 “아이들은 제 때 다 챙겨먹여요.”
 “그런데 너 몸 풀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어디 아픈
데라도 있

거냐? 왜 얼굴빛이 안 좋아 보인다?”


 “아녀요. 아프긴요? 아무데도 안 아파요. 제가 신경을 쫌 썼더니 그런가

봐요.”


 “이번에는 꼭 아들을 낳아야 혀. 네가 이 집안에 시집와서 아들
을 못 낳

면 넌 이 집안에 큰 죄를 짓는 거야. 생각해봐라 벌써 네가 딸만 넷을

나았어. 둘은 얼마 살지도 못하고 죽었고. 네 시아버지도 이번에는 네가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안겨줄거라 큰 기대를 하고 있단다.”


 “어머님, 그게 어디 마음대로 돼는 일이에요?“
 “아니, 얘가 지금 무슨 소리냐? 위로 내리 딸만 넷을 낳았으
면 이번에

미안해서라도 아들을 나야지. 우리집안 대대로 아들이 귀한 집안이

야.”


 ‘어머님도 딸만 여섯을 보셨으면서…….
 “그래, 동서 마음 편하게 먹고 좋은 생각만 해. 그래야 태아에
게도 좋

거야.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들일거야. 삼신 할머님이 무심

하지 않다면 이번에는 꼭 해주최씨 가문에 아들점지해 주시겠지.”


 ‘아아,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한단 말인가? 아들 못 낳은 게 마

치 내가 죽을 죄라도 지은 것처럼 난리들이니 만약 이번에도 내가 아

들을 못 낳는다면 난, 난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얘야, 이건 네 시아비가 구해 온 건데 해산하고 푹 고아서
들어야

금방 몸을 회복할 수 있어 명심하고 꼭 고아서 들어야 한다. 알겠니?”


 “네에, 고마워요 어머님.”
 “애들은 어디 갔니?”


 “윗집에 놀러 갔어요.”

 “그리고, 너 몸 풀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혼자 집에 있기 뭐하면 내

려가자. 네 곁에 누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어머니, 저 그냥 이집에 있을래요. 엿새 정도후면 애를 낳
아야하는데

하루 전에 친정에서 올케가 온다고 했어요. 그러니 이집에서 마음 편히

애를 낳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네가 그리 원하니 어쩔 수 없다만, 만약 손이 필요하면 언
제라도 기

별을 주려무나.”
 시어머니와 큰 동서는 집안을 대충 정리해 놓고 가면서 매
사에 조심하

고 당부했다.


 금방 닷새가 지나갔다. 이천에서 올케가 와 집안일을 거들었지만 왠지

음이 불안했다. 이번에는 꼭 아들을 낳아야 하는 천근 바위 같은 의무

가 가슴을 억눌렀다.


 드디어 아이가 나올 날이 되었다. 새벽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시어머니와 시아버님이 올라오셨고 시집 안 간 시누이들도 올라

와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점심때가 좀 지나서 열 달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하늘은 스스로 돕

는 자를 돕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채에서 떡

두꺼비 같은 손자의 탄생을 기다리던 시아버지는 불편한 심기로 떠

나가 버렸고 시어머니와 시누이들도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

버렸다.
 

 흑-. 늦은 밤 까지 여인의 통곡소리가 음습한 집안을 맴돌았다.

어린 두 딸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엄마 곁에 다가와 새로 태어

난 동생을 들여다보며 좋아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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