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곡(2)
- 여강 최재효
전쟁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마을은 차츰 생기를 찾고 있
었다. 설날이 다가오면서 동네 방앗간은 분주했다. 피난길에서 하나 둘
다시 돌아온 아낙들은 전쟁 통에도 불구하고 설은 쇠야 한다며 방앗간
에 몰려들었다. 방앗간 그동안 동네 소문의 주역들이 모두 모였다.
그중에는 인근 동네에서 온 아낙들도 있었다.
“경식이 삼촌도 그제 전사했다는 통지서가 왔대.”
“어머나? 노래 잘하고 잘 생긴 그 총각말여?”
“안됐네. 정말 아까워. 그럼, 순영이는 어찌 되는 거여? 둘이 죽고 못 사
는 사이라던데?”
“순돌네, 소식 들었어?”
“뭔 소식?”
“재녀 엄마가 곧 몸을 푼다는데.”
“에구, 서방은 전쟁터에 나가 있고 어린 것들 둘을 건사하면서 어찌
혼자서 몸을 푼단말여?”
“우리가 자주 들려 좀 들여다보자고.”
“아따, 능말에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 천석지기 시아버지, 말 만한 시
누이들이 있는데 뭔 걱정이여? 최씨네 집안에서 알아서 하겠지.”
“증광어멈은 남의 일이라고 그러는 게 아녀. 그이가 시집오자마자 내리
딸만 넷을 낳고 마치 죄인처럼 살아왔잖여? 시어머니한테 얼마나 구박
을 받았어? 그러니 혼자 또 몸을 풀어야 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요.”
“하긴 아들 귀한 집안에 시집와 딸만 내리 넷을 낳고 둘은 잃어 버렸으
니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겠어. 이번에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야
그간의 고생을 만회 할 텐데…….”
방앗간에 모인 동네 아낙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걱정했다. 명절이
지만 쥐 죽은 듯 적막하기만 한 집안에 남산만한 배를 쓰다듬으며 여
인은 속으로 울고 있었다.
‘여보. 살아계신 거지요? 어젯밤에는 당신이 전쟁터에서 돌아와 두 손
을 벌리고 아이가 꿈틀대는 배를 쓰다듬는 꿈을 꾸었어요. 곧 오시는 거
죠? 이 애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보세요. 이 애가 발
길질을 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아들일거에요.
지난달에는 하얀 수염을 한 웬 할아버지가 찾아와 지팡이로 내 배를
가리키자 갑자기 뱃속에서 흑룡이 나오더니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
기도 했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돌아오셔야 해요. 재희가 자
꾸 당신을 찾으며 보챈답니다.
재녀는 언니라고 동생을 다독거려주기는 하지만, 그 애도 당신이 보
고 싶은가 봐요. 이젠 며칠 있으면 당신의 다섯번째 사랑이 결실을 보
는데 당신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루도 빠짐없이 천지신명
님께 당신의 안위를 바라는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꼭, 꼭 살아서 돌
아 오셔야해요.’
해가 넘어가자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일찍 저녁을 해서 아이들을
먹이고 여인은 동네 어귀로 나갔다. 주막거리 부근 논밭에 군인들 막사
가 서너 개 보이고 호루라기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도 하고 군인
들이 부르는 군가 소리도 들려왔다.
전쟁에 나간 낭군도 저렇게 눈구덩이 속에서 훈련을 받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북두칠성이 손에 잡힐 듯 낮게 내려와 있었
다. 북두칠성 손잡이 끝 멀리 북극성이 홀로 반짝거리며 하늘 등대 역
할을 하고 있었다. 어쩌다 한 번씩 포성이 울리기도 했다.
“아, 이젠 전쟁도 거의 끝나가는 것 같은데 그이도 곧 돌아 오실테지.
저 군인들도 고향에 나처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 여인들
도 이 밤, 잠 못 들고 낭군 생각에 젖어 있을까?”
여인은 집에 돌아와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북두칠성을 바라보
면서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다.
“천지신명님, 칠성님이시여, 우리 그이를 굽어 살피소서. 두 딸들이
있고 곧 다섯 번째 아이가 태어난답니다. 두 아이는 제명에 못살고 잃
었지만 이번에 나올 아이든 꼭 아들이어야 합니다.
그이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이를 굽어 살펴주
소서. 이렇게 빌고 또 비옵나이다. 이 뱃속에 아이가 유복자가 되는
신세는 면하게 해주소서. 이 가엾은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빌고
비옵니다. 천지신명님, 칠성님, 이 여인의 간절한 청을 뿌리치지마소서.”
여인의 기도소리는 차차 깊은 흐느낌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여러 날
밤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버렸다.
“임자, 며늘애 해산이 얼마 안 남았지?”
“한 엿새 정도 남았어요. 큰일이구만요.”
“뭐가?”
“생각해봐요. 막내는 전쟁터에 있지, 이 엄동설한에 어디 가서 미역을
구할 수 있나 만약에 애 낳다 잘못하면 의원을 갈 수 있나 참으로 큰일
이에요. 전쟁터에 뭐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지 원.”
“별놈의 걱정을 다하네. 그 애는 벌써 애를 네 명이나 집에서 쑥 쑥 잘
낳았는데 뭔 걱정을 해? 그러나 저러나 이번엔 꼭 아들이어야 해 벌써
다섯 번째 태어나는 아인데…….”
점점 다가오는 막내며느리의 해산이 두 노인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아
닐 수 없다. 날씨가 많이 풀리기는 했지만 밤이면 밖에 나가보면 산에
눈이 쌓여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눈보라가 동네를 집어 삼킬 것 같았
다.
다행히 포성은 예전 같지 않았으나 밤이면 지축을 흔드는 소리는 여
전했다. 어제는 아래성넙 김 주사네 둘째 아들이 전쟁에서 포탄에 맞
아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동네는 또 쥐죽은 듯 조용한 침묵에
잠겼다.
“내 점말 좀 다녀오리다. 어제 구한 고긴데 며늘애 몸보신이라도 시
켜야지.”
“영감은 재주도 용하시구려. 이 전쟁 통에 잉어는 어찌 구했어요? 집
에 계세요. 젊은 며느리 혼자 있는 집을 남정네가 가면 되우? 내 둘째
하고 다녀올 테니…….”
점심 때 쯤 시어머니는 잉어, 엿, 쌀강정을 준비해 둘째 며느리하고
집을 나섰다. 동네 어귀 논에는 군용 �차와 트럭이 서너 대 서있고
야전 천막이 쳐져있는데 군인들의 행색을 보니 미군은 아닌 듯 했다.
국군이 마을에 오기전 마을사람들은 시커먼 미군과 맞닥뜨리면 기가
죽었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통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머니, 동서를 집으로 내려오라고 하세요. 만삭의 몸으로 혼자서
어린애들 둘을 돌보는 일도 꽤 힘들 텐데.”
“그 애가 고집이 좀 세니. 내 말을 들어야지. 먼저도 피난가라니까
며칠 만에 다시 돌아왔잖니?”
“그건 동서가 전쟁 통에 길바닥에 애를 낳을까봐 걱정돼서 그랬겠지
요. 저희도 아범이랑 애들 데리고 피난 갔다가 그냥 돌아왔잖아요.”
“그건 네가 몰라서 그런다. 그 애가 제 낭군 군에 갔다고 이젠 얼굴도
안 보이는구나. 여자는 그저 남에 집에 시집왔으면 그 집 가문을 이어
줘야 하는 거여. 그 애가 죽은 애들까지 이 집안에 시집와서 딸만 넷을
낳았다 그게 말이 되는 거야? 너도 어서 아들을 낳아야해. 딸년 하나
낳고 몇 년 째소식이없는거니?”
“어머니, 그 그건 아범이 워낙 바빠서 있는지라…….”
“바쁘긴 뭐가 바빠? 매일 술독에 빠져 살다보니 그런 거 아녀?”
둘째 며느리는 시어머니 말에 찔끔하면서 땅만 내려다보며 걸었다.
두 여인은 말없이 빙판길을 걸었다. 둘째 며느리는 평소에 은근히 동
서를 경계해온 터였다. 자신도 시집오자마자 딸을 낳아 비록 시부모
를 모시고 살지만 늘 마음이 무거웠다.
막내동서가 시집와 내리 딸만 둘을 낳자 시부모의 역정은 막내 동서
에게 집중되었고 잠시 자신에 대한 질책을 면할 수 있었다.
“어, 어머니 올라오셨어요?”
“아니, 네 그 꼴이 뭐니? 며칠 동안 잠도 못자고, 세수도 못한 부수수
한 몰골을 하고 있으니. 그래, 애들 밥은 제대로 챙겨주고 있는 거여?
네가 먹기 싫다고 애들까지 굶기는 건 아니니?”
“아이들은 제 때 다 챙겨먹여요.”
“그런데 너 몸 풀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어디 아픈 데라도 있
는 거냐? 왜 얼굴빛이 안 좋아 보인다?”
“아녀요. 아프긴요? 아무데도 안 아파요. 제가 신경을 쫌 썼더니 그런가
봐요.”
“이번에는 꼭 아들을 낳아야 혀. 네가 이 집안에 시집와서 아들을 못 낳
으면 넌 이 집안에 큰 죄를 짓는 거야. 생각해봐라 벌써 네가 딸만 넷을
나았어. 둘은 얼마 살지도 못하고 죽었고. 네 시아버지도 이번에는 네가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안겨줄거라 큰 기대를 하고 있단다.”
“어머님, 그게 어디 마음대로 돼는 일이에요?“
“아니, 얘가 지금 무슨 소리냐? 위로 내리 딸만 넷을 낳았으면 이번에
는 미안해서라도 아들을 나야지. 우리집안 대대로 아들이 귀한 집안이
야.”
‘어머님도 딸만 여섯을 보셨으면서…….’
“그래, 동서 마음 편하게 먹고 좋은 생각만 해. 그래야 태아에게도 좋
을 거야.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들일거야. 삼신 할머님이 무심
하지 않다면 이번에는 꼭 해주최씨 가문에 아들을 점지해 주시겠지.”
‘아아,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한단 말인가? 아들 못 낳은 게 마
치 내가 죽을 죄라도 지은 것처럼 난리들이니 만약 이번에도 내가 아
들을 못 낳는다면 난, 난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얘야, 이건 네 시아비가 구해 온 건데 해산하고 푹 고아서 들어야
금방 몸을 회복할 수 있어 명심하고 꼭 고아서 들어야 한다. 알겠니?”
“네에, 고마워요 어머님.”
“애들은 어디 갔니?”
“윗집에 놀러 갔어요.”
“그리고, 너 몸 풀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혼자 집에 있기 뭐하면 내
려가자. 네 곁에 누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어머니, 저 그냥 이집에 있을래요. 엿새 정도후면 애를 낳아야하는데
하루 전에 친정에서 올케가 온다고 했어요. 그러니 이집에서 마음 편히
애를 낳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네가 그리 원하니 어쩔 수 없다만, 만약 손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기
별을 주려무나.”
시어머니와 큰 동서는 집안을 대충 정리해 놓고 가면서 매사에 조심하
라고 당부했다.
금방 닷새가 지나갔다. 이천에서 올케가 와 집안일을 거들었지만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이번에는 꼭 아들을 낳아야 하는 천근 바위 같은 의무
가 가슴을 억눌렀다.
드디어 아이가 나올 날이 되었다. 새벽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시어머니와 시아버님이 올라오셨고 시집 안 간 시누이들도 올라
와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점심때가 좀 지나서 열 달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하늘은 스스로 돕
는 자를 돕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채에서 떡
두꺼비 같은 손자의 탄생을 기다리던 시아버지는 불편한 심기로 떠
나가 버렸고 시어머니와 시누이들도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
버렸다.
흑-. 늦은 밤 까지 여인의 통곡소리가 음습한 집안을 맴돌았다.
어린 두 딸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엄마 곁에 다가와 새로 태어
난 동생을 들여다보며 좋아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