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어화
- 여강(驪江) 최재효
너무 우스워서 정말 할 말이 없어요
천년바위처럼 한 곳에 뿌리 내리고
일 년에 재주 한번 부렸더니
걸어 다니는 꽃들이 밤낮으로 몰려와
오히려 우리에게 찬사를 늘어놓네요
자신들이 진정한 꽃인 줄 모르나 봐요
우리들은요 말 하는 꽃이 부럽답니다
가고 싶은 곳 얼마든지 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졸리면 언제든 잘 수 있잖아요
어쩌다 고흐 같이 재주 있는 꽃을 만나면
우리도 수백 년 사는 행운을 누리지요
우리들 소원은요 화병에 꽂히는 것도
향기 없는 그림 속에 들어가 앉는 것도
주선(酒仙)들 입방아에 오르는 것도
꽃들의 애경사에 한번 쓰이고 버려지는
슬픈 들러리가 되는 것도 아니랍니다
낮 동안은 해바라기로 태양의 정기를
밤에는 별바라기로 별들의 눈물을 마시고
또 어떤 날은 달바라기로 달빛에 취해
노래하는 꽃들처럼 한 세상 살고 싶어요
우리들은 절대로 꽃이 아니에요 아셨죠
- 창작일 : 2008.08.10. 15:30
[주] 해어화[解語花] - 말을 알마듣는 꽃이라는 뜻으로
미인을 가리키는 말로. 원래 양귀비를
뜻하였으나 후대에는 미색과 기예, 문학적 소질을
지닌 기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됨. 본 작품에서는
화초와 평범한 여인 이중 의미의 시어로 사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