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일기
- 驪江(여강) 최재효
이미 여러 번 장을 지지고 말았다
세상에 나를 이길 자는 없었다
입과 발이 따로 놀던 어수룩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야 세상에서
나 혼자만 눈이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외눈박이라는 것을 모르던 시절
나를 스쳐간 모든 인연들이 아직도
주변에 슬픈 얼굴로 건재하다는 사실이
자꾸 담장을 높이게 한다
스스로에게
또 손에 장을 짓겠다고 다짐해본다
돌아보면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저기 저 먼 곳에
칼날처럼 번뜩이는 한숨이 있다
술잔을 더 맹신(盲信)하던 용기는
신성한 장소를 넘보게 되었고
늦게 배운 도둑질처럼
자주 임의 존호(尊號)를 입에 올리며
서둘러 지난 이력을 부정하기도 한다
뼈아픈 노래를 영원히 삭제할 수 있다면
이대로 주저앉아도 좋을 것을......
이제 막, 생(生)에 반달을 보았을 뿐이다
- 창작일 : 2008.07.28. 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