乞神
- 여강 최재효
하루가 스물 네번으로 나뉜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일 년이 삼백예순다섯 날인 것도 그렇고
하지만 욕망으로 주체하지 못해
밤마다 우주를 유영(遊泳)하면서
틀에 짜인 염부주를 잊는
불쌍한 영혼이 있습니다
은하가 좁다고
오리온 성단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얼굴을 찌푸리며 시뻐합니다
두 뼘의 자판(字板) 위에
생사(生死)가 구별되고
빅뱅(Bigbang)이 일어나기도 하며
제3의 나 자신이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대양(大洋)을 단숨에 삼키려 합니다
유한(有限)이란 말이
이렇게 뼈에 사무치는 줄
달 없는 언덕을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 창작일 : 2008. 1. 9. 23:30
[주] 1. 乞神 - 걸신, 빌어 먹는 귀신
2. 염부주 - 閻浮洲, 남섬부주라고도 함.
불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수미산 주변에
네 곳의 땅이 있는데, 그 가운데 남쪽에 있는 땅을 이르는 말이다.
이곳에만 인간이 산다고 알려져 있다. 그밖에 나머지 세 곳의 땅은
동쪽의 동승신주(東勝身洲), 서쪽의 서구부주(西瞿浮洲), 북쪽의
북구로주(北俱盧洲)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곳은 북구로주로서
승처(勝處)라고도 불린다.
3. 시뻐하다 - (동)마음에 차지않아 시들하게 생각하다
4. 빅뱅 - 우주를 탄생시킨 대폭발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