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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황소서(4)

* 창작공간/중편 - 격황소서

by 여강 최재효 2018. 10. 1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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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최치원기념관

                                                        








                                격황소서





                                                                                                                                                            - 여강 최재효



                                                                           4 



 당황제를 몰아내고 장안에 입성한 황소(黃巢)는 연일 주연(酒宴)

을 베풀며, 자신을 믿고 따른 군관들과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그는 상양(尙讓)을 재상으로, 주온(朱溫)을 대장군으로 임명하는 등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또한 그는 당 왕조 시절 고위 관료를 지낸 자들과 당황제에게 아부하

면서 축재한 음황한 부호(富豪)들의 재산을 모두 적몰(籍沒)하여 가난

한 백성에게 나눠 주고 반항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참수하는 등 들떠

있는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전력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의 인기를 얻는데 급급한 황소는 장기적인 국가부흥을

위한 철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때그때 인기 영합정책에 의존하

나라를 통치하려 하였다. 오랜 전란으로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생산

시설 대부분이 파괴되고 물자 수송이 어려워 지자 백성들은 못사겠다

고 아우성이었다.


 관료생활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황소와 그의 부하들은 어디서

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황소는

차차 그의 음심(淫心)을 드러내면서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들었다.


 그는 당 황제가 버린 후궁들과 황실의 여인들을 차례로 불러 밤마다

욕(淫慾)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어여쁜 미인

들에 홀려 정사(政事)는 신하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어떻게 하면 여인

들과 좀 더 자극적인 환락(歡樂)과 음황을 즐길 수 있을까 골몰하였다.


 음탕한 짓을 하기에는 낮밤이 오히려 짧아 황소는 빨리 흘러가는

세월을 원망하였다. 그의 곁에는 항상 미인들이 줄서 있었다. 이미

도망간 당 황제의 손길에 길들여진 여인들이어서 그런지 남자 후리

는데 이골이나 있었다. 황소는 얼근한 몸으로 밤마다 여인들의 육덕

을 주무르며, 밭은 숨을 토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광활한 당 나라의 국토 중에서 황소가 차지한 지역은 겨우 수도 장

안과 그 일대 뿐이었다. 나머지 대부분의 국토는 여전히 당 나라 황제

가 임명한 절도사(節度使)들이 다스리고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여전

히 사천으로 도망친 황제 이현의 명을 따르고 있었다.


 당 황제가 황소에게 도읍지 장안을 빼앗겼다고 하여 당 나라가 멸망

것은 아니었다. 여러 달이 지나도록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새로

운 나라 대제(大齊)의 황제가 된 황소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큰 탓이

었는지 몰라도 백성들은 황소 황제의 행동에 점차 의구심을 갖기 시

작하였다.


 “폐하, 사천으로 도망친 당황제 이현을 뒤쫓아가 잡아서 처단해야 후

환이 없을 것입니다. 속히 추격대를 편성하여 파견하소서.”


 “폐하, 주온 대장군의 말이 옳습니다. 속히 황제 이현을 잡아 죽여야 합

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자가 나중에 군사를 몰아 장안성으로 향할 수 있

사옵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대장군 주온과 재상 상양이 황제 황소에게 주청하였다.


 “주장군과 재상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 그깟 놈이 무슨 재주로 다시 장안

으로 온단 말인가? 짐이 장안에 있는 한 절대 올 수 없다. 그냥 내버려 두

어도 그놈은 백성들 손에 맞아 죽고 말 것이야.”


 황소는 간밤에 마신 술이 덜 깬 상태라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신하들이

주지육림에 빠져 허욱적 대는 황제를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

었지만 황소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관하며,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

지 않았다.

 
 “폐하, 작은 우환 거리가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부르는 법이옵니

다. 이현을 빨리 잡아 죽이시고,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절도사들을 폐하

의 사람으로 교체하셔야 하옵니다.”
 주온이 황소에게 재차 간언(諫言)하였지만 황소 황제는 귀찮은 듯 건성으

로 듣고 대답이 없었다.


 ‘아, 큰일이구나. 새로운 황제가 허구한 날 주색(酒色)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니 이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대장군 주온은 속으로 한탄하였다.


 “상재상, 오늘밤 주연에는 어떤 계집들을 부를 거요?”
 “폐하, 전 황제 이현이 총애하던 후궁 두 명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밤새도

록 즐기십시오. 그 두명의 후궁은 요분질에 있어서 당나라에서 최고라고 합

니다. ”


 “아무리 그짓에 일가견이 있다하여도 두 명은 너무 적은 것 같소. 네댓 명

을 부르고 맛 좋은 명주와 기린고기를 안주로 올리라 하시오. 그리고 계집

들을 모두 알몸으로 들게 해야 짐의 기분이 좋을 거요.
 “폐하, 그리하겠습니다. 기대하십시오.”


 황소는 기골이 장대하며, 두주불사(斗酒不辭)라 그의 신하중에서 술로

황소를 당할 자가 없었다. 황소는 낮이면 오늘밤에 여인을 불러 넘쳐

나는 음욕을 해소할 지 기분이 달 또있었다. 나라의 창고거의 바닥을 보

이고 있었다.


 관리들이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강제로 세금을 걷어 들이기는 하였으나,

오랜 전쟁으로 워낙 피폐해진 백성들의 살림은 최악으로 닫고 있었다.

백성들은 당장 일용할 양식도 없는 상태에서 강제로 세금을 걷어가는 관

리들을 보며, 를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새 황제 황소가 백성들을 위할 줄 알았는데, 밤낮 술에 취해 궁녀들

포동포동한 샅이나 빨아대고 있으니 큰일일세.
 “당 왕조나 황소의 나라나 마찬가지 일세. 그놈이 그놈이말이야.”


 “차라리 당나라 백성으로 있는 게 좋을 뻔했네 그려.”
 “무식한 소금 장사 놈이 황제가 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는가보네. 인간 망

종이야, 망종.”


 장안의 백성들이 서서히 황소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소식이 사천으로

피신한 당 황제 이현의 귀에도 전해지고 있었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장안으로 돌아갈 꿈을 꾸기 시작했다.


 “폐하. 실지(失地)를 회복하고 당 왕조를 재건할 기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전령자의 말이 맞소이다. 당나라는 망하지 않았소이다. 이제 어찌해야 좋

습니까?”


 사천 지역으로 피신 가서도 황제 이현은 여전히 모든 일은 환관인 전령자

(田令孜)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황제가 신책군(神策軍) 5백과 일부 신하만

대동하고 사천지역으로 피신한 것은 전령자가 사천 지역 출신이었기 때문

이었다.


 “폐하, 즉시 성지(聖旨)를 내려 각 지역 절도사들에게 군사 동원령을 내려

장안성으로 집결토록 하십시오.”
 “경의 말대로 하리다. 전국 절도사들에 파발을 보내 짐의 뜻을 전하시오. 절

도사들이 직접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장안으로 오라하시오. 짐이 직접 점

고를 해야 겠습니다.”


 황제의 성지가 각지의 절도사들에게 전해졌으나, 이미 대세가 기운 당 왕조

를 위해 움직이는 절도사는 한두 명 밖에 없었다. 황제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

대로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당 황제 이현은 전국의 절도사들이 여전히 자신의 신하라고 믿고 있었지만,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절도사들은 이미 이현의 명을 받는 관리들이 아니

었다.


 망하다시피 한 당 왕조를 배신한 절도사들은 자신이 관할하던 지역의 거대

군벌(軍閥)이 되어 그 지역을 통치하며, 왕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보였다. 미

약해진 당 조정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은 영남(嶺南), 서도(西道), 하서(河西),

(山南), 검남(劍南) 지역 등 황제의 총애를 받던 자들이 절도사로 있는

지역 뿐이었다.


 절도사 중에 대표적인 군벌로 성장한 자들은 선흡(宣歙)의 진언(秦彦), 절

동의 유한굉(劉漢宏), 태원(太原)과 상당(上黨)을 차지한 이극용, 봉상(鳳翔)

의 이창부(李昌符), 회남(淮南)을 장악한 고변(高駢), 하양(河陽)과 낙양을

장악한 제갈석(諸葛爽), 허채(許蔡)의 진종권(秦宗權), 치청(淄青)의 왕경

무(王敬武) 등 이었다. 그들은 병권과 행정을 장악하고  지역에서 마치

황제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황제의 성지를 받고 행동을 보인 절도사는 회남을 장악하고 있는 고변

뿐이었다. 다른 절도사들이 움직이지 않자, 그 시 군사를 거두고 본거

지인 양주로 돌아가 사태를 관망하기로 했다. 그는 하나의 화살로 날아

가는 두 마리 기러기를 맞출 정도로 명궁이면서 호쾌한 무인이었다. 또한

그는 문재(文才)도 뛰어나 시(詩)를 잘 지어 문인들과 교류가 많았으며,

그의 집에는 늘 문객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綠樹陰濃夏日長(녹수음롱하일장) - 푸른 나무 그늘 짙고 여름날은 길고 긴 데
  樓臺倒影入池塘(루대도영입지당) - 거꾸로 된 누대 그림자 연못 속에 들어 있네
  水精簾動微風起(수정렴동미풍기) - 수정 발 움직이며 산들바람 일어나니
  一架薔薇滿院香(일가장미만원향) - 한 시렁 장미꽃 향기 온 집안에 가득하네 


 위 시는 고변이 지은 시중 백미(白眉)로 꼽히는 산정하일(山夏日)로 그의

유유자적한 심사를 잘 나타내고 있다. 수십 명이나 되는 절도사 중에서 시를

쓰고 창작활동을 하는 등 문무겸한 자는 고변 뿐이었다.


 고변은 도통순관(都統巡官)으로 승차한 해운 최치원이 어떤 사람이며, 무슨

재주가 있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해이 시재(詩才)도 갖춘 인재라

는 말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자신에게 충성을 하며, 열심히 일하는 신라인 해운에게 고

변은 최대한의 예의로써 대하였다. 한편으로는 해운이 선주(宣州) 율수현위

(溧水縣尉)를 역임하였다지만 아직도 당나라 문물에 서툴고 당인(唐人)들의

속을 잘 알지 못할 거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하였다. 고변은 해운이 올리는

각종 문서를 꼼꼼히 검토하였지만 사족(蛇足)이 될 만한 흠결은 거찾아

볼 수 없었다.


 “황제 폐하께서 그대에게 무척 애정을 갖고 계시오, 지난번 폐하께서 절도

사들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장안으로 집결하라조서를 내렸을 때 도통사가

보여준 충정에 폐하께서는 무감동을 받으셨소.”


 여름이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황제의 최측근인 환관 전령자가 은밀히  

변을 아 왔다. 그는 고변에게 황제의 밀조(密詔)를 건넸다. 밀조의 내용은

고변이 앞장서서 장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황소를 조속히 토벌하라는

내용이었다.


 “내 휘하의 군사만으로 황소의 대군을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전령자

께서 나와 연합하여 장안성을 공격할 다른 지역 절도사를 연결해주시오. 아

니면 군사를 충원해주시던가요.” 


 고변이 예고도 없이 찾아온 전령자에게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예전에는 고변

이 감히 전령자에게 대들 수 없었다. 음험한 전령자의 눈 밖에 나면 지방으로

좌천되거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도통. 병사가 많다고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하는 건 아니오. 폐하께서 벌써

그대를 제도행영병마도통사에 임명하셨으니 ,이제는 제대로 이름값을 해야지

요. 그대는 문무에도 뛰어나다고 들었소이다. 그대가 다스리고 있는 회남 지역

여덟 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사정이 좋습니다.


 지금 장안의 백성들은 서서히 황소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하더이다. 지금이 장

안을 회복할 수 있는 적기입니다. 석 달 내로 장안성을 함락시키고 황소의 목을

베어 황제 폐하께 바치도록 하시오. 이것은 나의 부탁이며, 황제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의뭉스럽게 생긴 전령자는 고변을 노려보았다.


 “일단 폐하의 어명이 계시니 군사를 움직여 황소를 토벌해보겠습니다. 그러나

석 달은 너무 촉박합니다.”
 고변은 먼 하늘을 바라보며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고도통, 한시가 급하오. 작전을 잘 짜면 석 달도 깁니다.”
 ‘전령자가 나를 직접 찾아온걸 보면 황제가 어지간히 다급모양이구나. 나를

허울뿐인 제도행영병마도통에 앉혀 놓마음대로 부려 먹으려고 하지만 나만

움직인다고 황소놈이 신경이나 쓸까?’
 고변이 머뭇거리자 전령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반드시 그놈을 잡아 죽여야 당 왕조가 재기할 수 있습니다. 황제 폐하의 기대

를 저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장안성에 종(宗廟)와 황실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고도통이 큰 공세워보시오. 대대로 가문에 영광이 있을 겁니다.”


 전령자는 착살맞게 황제 이현이 내리는 성지(聖旨)를 건네고 휑하니 가버렸다.

고변은 전령자가 간 뒤에 군관 회의를 소집하였다.


 고변은 금군(禁軍)의 장교에서 출발하여 안남도호(安南都護), 정해군절도사

(靜海軍節度使), 천평군절도사(天平軍節度使), 서천절도사(西川節度使), 형남

절도사(荊南節度使)를 역임하고, 당항(黨項)과 남소(南詔)의 토벌에 공을 세웠

다.


 황소가 난을 일으켜 장안을 향해 파죽지세로 북상할 때는 고변은 절동(浙東)

에서 황소군을 격파하여 복건(福建)과 광동(廣東)으로 향하던 황소의 반란군

의 진출을 막아 황제로부동부지방 군총사령관인 제도행영병마도통에 제수

되었다. 그러나 황소가 장안성에 입성하여 황제를 자처하고 두문불출하고 있

자 전선(戰線)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방금 전에 황제의 특사가 다녀갔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절도사 휘하의 군관

들과는 다릅니다. 나는 황제가 특별히 임명한 제도행영병마도통입니다. 장안

성에 틀어 박혀 있는 황를 제거하고 당 황실을 재건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

다.


 황제께서 앞으로 석 달 안으로 장안성을 접수하고 황소의 머리를 가져오라

하십니다. 제장들의 고견이 있으면 말해보십시오.”
 고변의 말에 군관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좌군장입니다. 장군, 석 달은 너무 촉박합니다.”
 “중군장입니다. 좌군장 말이 맞습니다. 장안성을 함락시키려면 최소 다섯 달

은 소요될 겁니다. 또한 우리군만 움직인고 될 일도 아닙니다.”   


 “선무군관입니다. 두 군관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군은 황소의 육십만

대군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장안까지 이동하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립

니다. 이미 한여름이라 병력을 이동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선무군관의 말에 제장들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 찼다.


 “우군장입니다. 장안성을 치기 전에 전투 경험이 많은 낙양의 제갈석(諸葛爽),

허채(許蔡)의 진종권(秦宗權), 치청(淄青)의 왕경무(王敬武) 절도사와 연합을

도모하면 황소의 대군을 능히 대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군장의 의견이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무슨 방법으로 석 달 내로 그들을

움직여야 할지 난감합니다. 그밖에 또 다른 의견 있습니까?”
 고변의 말에 군관들은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장군, 도통순관 겸 승무랑 겸 전중시어사 겸 내공봉인 최해운 공의 의견도 들

보시지요? 해운공은 경서(經書) 뿐만 아니라 병서(兵書)를 연구하여 병법에

도 능통합니다.”
 고변의 참모장 역할을 하고 있던 고운(顧雲)이 해운 최치원을 지목하였다. 


 ‘최치원이 병법에도?’
 고변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옆에서 말없이 회의록을 작성하고 있는 해운을 바

라보았다.


 “해운이 문재(文才)에만 탁월한 줄 알았는데, 손무(孫武)와 오자서(伍子胥)하

고도 친한 줄 미처 몰랐소. 여러분, 그럼 도통순관(都統巡官)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고변의 말에 회의실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새치름하게 앉아있는 해

운에게 쏠렸다. 고운은 해운이 어떤 비책을 내놓기를 갈망하였다. 잠시 뜸을 들

이던 해운이 입을 열었다.


 “평시에는 천자는 인덕(仁德)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하나 지금은 준전시 상황

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패도(覇道)로 나라를 다스려 조속히 환란을 바로 잡아

야 할 것입니다. 적과 싸우는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아군의 수가

군보다 열배 많으면 적을 포위하고, 다섯 배 많으면 즉시 공격하며, 배가 많으

면 적을 분열시켜 각개 격파해야 합니다. 또한 아군이 적과 동수이면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하고, 아군이 적보다 열세하면 방어만 하고 싸우지 아니하며, 아

군이 보다 아주 열세의 입장이면 도망쳐야 합니다.


 전쟁의 가장 기본은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길 수 있을까요? 손무가 말하기를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부지피이지기

승일부(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한번 싸우고 한번 지

며, 부지피부지기매전필패(不知彼不知己每戰必敗),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 마다 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아군은 지금 황소의 육십만 대군의 삼분지 일 밖에 안 됩니다. 우군장

의견처럼 장군께서 조속히 황제의 성지를 빌미로 낙양의 제갈석(諸葛爽), 허

채(許蔡)의 진종권(秦宗權), 치청(淄青)의 왕경무(王敬武) 절도사와 연합전

을 구축해야 합니다. 연합 전선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사태를 관망

며,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백성들을 움직이는 방법은 격문(檄

文)을 한 장 잘 써서 그 필사본을 대량으로 만들어 전국에 살포하면 그 효과

가 엄청 날 것입니다.”


 해운의 달변에 그만 고변과 군관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변은

정신이 나간 듯 멍하니 해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과연, 과연 최해운입니다.”
 고운이 박수를 치자 다른 군관들도 일제히 큰 박수로 해운의 의견에 찬동하

였다.


 어떤 군관은 해운을 존경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열렬한 지지를 보내기도

하였고 또 어떤 군관은 해운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참 지나서 정신이 든 듯 고변은 만면에 미소를 띠혼자 박수를 쳐댔다.


 “해운은 시에만 능통한 줄 알았습니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더니 나를

두고 한말 같습니다. 내 곁에 제갈량과 장자방을 두고도 몰라봤습니다. 도통

순관(都統巡官) 의견에 따라 제갈석(諸葛爽), 진종권(秦宗權), 왕경무(王敬

武) 절도사에게 특사를 파견하겠습니다.


 그럼, 황소의 죄를 꾸짖고 전국의 군웅(軍雄)들 가슴에 의협심을 불러일으

킬 훌륭한 격문을 누가 쓰시겠소?”
 고변이 좌중의 둘러보았다.


 “장군, 당연히 최해운 도통순관(都統巡官)이 쓰셔야지요? 해운의 필력(筆

力)은 이미 황제와 조정의 만조백관들께서 인정하지 않으셨습니까?”  
 고운이 해운을 또 지목하고 나섰다. 다른 군관도 고운의
말이 당연하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하, 그렇지요. 이 사람도 해운의 문장을 벌써 인정하였습니다. 그럼, 최

도통순관이 빠른 시일 내에 격문을 써주시오. 부탁하오.”
 “알겠습니다. 이삼일 안으로 작성하지요.”


 ‘이삼일 안으로?’
 이번에도 고변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경이로운 시선으로 해운을 바라보았

다. 고운은 문우이며, 과거급제 동기생인 최치원의 시원한 답변에 통쾌한 기

분을 느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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