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불전
- 여강 최재효
제2부
소금 장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여러 상단(商團)이 조직
되어 있어서 서로 경쟁이 치열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상단
은 박작상단(泊灼商團)과 오골상단(烏骨商團)이었다.
박작상단은 고구려 계통 상인들이 주로 소속이 되어 있었고,
단주(團主)는 어림(漁林)이라는 자로 수하를 200여명이나 거
느리고 있으며, 상선 50여척을 소유한 거상(巨商)이었다. 소문
에는 그가 고구려 조정 중신들과 연줄이 닿아 있어 그들이 어
림의 뒤를 봐준다고도 하였다.
오골상단은 한나라 상인들의 활동 무대인데 단주는 제갈소
(諸葛召)라고 하는 자로 애꾸였다. 그의 수하는 150여명 정도
이고 상선 30여척을 소유하고 있는데 수적으로 박작상단에
밀리고 있었다. 추돌 일행은 박작상단에 가입하여 활동하기
로 하고 어림을 만났다.
“너희들이 내 휘하가 된다면 나의 그늘 아래서 편하게 장사
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상단은 돈 보다 명예와 의리를 중
시한다. 내 한동안 너희들을 유심히 살펴볼 것이야.”
“단주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8척 장신의 거한(巨漢) 어림 단주는 세 명 중에 유독 추돌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추돌은 박작상단의 배를 빌려 소금을 싣고 압록수를 거슬러
국내성까지 소금을 팔러 다녔다. 그들은 소금뿐만 아니라 생
활용품도 취급하였다. 압록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길은 꽤
나 험난하였다.
여름에는 갑자기 불어난 물로 소금이 녹거나 뱃길을 이용할
수 없어 쉬는 날이 태반이었고, 겨울에는 여러 달 강이 얼어
수로 이용이 어려울 때도 많았다.
압록수를 오르내리며, 일 년 정도 장사를 하면서 추돌 일행은
단골들도 꽤 확보하였다. 추돌은 재모와도 마음이 잘 맞는 편
이었다. 그러나 추돌은 재모에게 자신이 고구려 을불 태자라는
사실은 철저히 비밀로 하였다. 재모도 추돌이 비범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가장 수입이 좋은 시기는 진달래가 피고 장마가 시작될 때까
지와 장마가 끝나고 첫눈이 내릴 무렵까지였다. 돈 관리는 오달
진데 있는 재모가 맡았고 소금의 출하는 재생이 맡았으며, 추돌
은 소금 판매 활로 개척에 전념하였다. 거래 물량이 많아지면서
추돌은 인부 5명을 고용하였다. 추돌이 대장 역할을 하고 재모
가 부대장을 맡았다.
“추돌 대장, 우리 저 주막에서 국밥을 먹으며, 목 좀 추기자.
오늘은 운이 좋아서 소금을 빨리 팔 수 있었어.”
재모가 물안개 속에 어리비치는 주막을 가리켰다.
“좋아, 나도 목이 칼칼하던 참이었다고.”
추돌 일행이 탄 배가 박작성에서 가까운 주막 앞에 정박하였
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었다.
박작성은 압록수 입구에서 백여리 떨어진 강 북안의 험준한
지대에 있는 고구려 군의 전략 요충지로 늘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가 주변의 성이라 이곳에는 고구려와 진나라의 상인들이 모
여드는 시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많은 상품들이 활발하게 거래
되고 있었다. 소금, 쌀, 비단, 인삼, 호피(虎皮), 각궁 등 다양한
물건들이 거래되어 고구려에서도 그 시장의 규모가 꽤나 컸다.
“대장, 흉측한 소식 들었소?”
재모가 탁주 한 사발을 비우고 추돌에게 물었다.
“무슨 소식인데?”
“모용부(慕容部)의 추장 모용외(慕容廆)란 놈이 또 국경을
넘었다는군. 그 자는 삼 년 전에도 쳐들어왔다가 북부소형(北
部小兄)인 고노자(高奴子) 장군에게 박살난 적이 있었지.
그런데 그 놈이 또 졸개들을 몰고 쳐들어 왔는데, 이번에는 고
국원(故國原)에 있는 서천왕릉을 도굴하려다 실패하였다네.
그 놈이 갈수록 못된 짓만 골라서 한다네.”
‘뭐라, 그놈들이 할아버님 능(陵)을…….’
추돌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뻔 하였다.
“그게 사실인가? 그 오랑캐 놈들이 정말로 선대왕의 묘소
를 파헤쳤단 말이야? 이거 큰일이네. 큰일이야.”
추돌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추돌의
결기있는 행동에 재모가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니, 추돌 대장, 왜 그리 흥분을 하고 그러나?”
추돌은 밥을 먹다말고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재모는
그런 추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금 장수가 정치 이야
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이상했다.
“대장은 의협심이 강해서 그래. 부대장이 이해하시게.”
재생이 나서서 재모의 관심을 돌렸다.
“부대장, 또 다른 소식은 없는가?”
추돌이 두 눈을 부릅뜨고 다 식은 국밥 그릇에 숟가락을
푹푹 찔러 넣었다.
“삽시루 왕이 그의 조카 을불 태자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다는데, 난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어. 삼촌이 왜 조카를 죽
이려고 하는지 말이야. 지금도 삽시루 태왕 졸개들은 을불
태자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더군.”
이번에도 추돌은 씩씩거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 그래.”
추돌과 재생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시치름한 표정을 지었다.
“대장, 이상하이. 왕이나 조정 이야기만 하면 민감하게 반응을
하니 말이야. 혹시 고구려 왕실과 무슨 연관이 있으신가?”
재모는 도저한 눈빛으로 추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소금 파는 장사치가 왕실과 무슨 관련이 있겠나? 자자, 한잔
들자고. 여기는 주루나 주막이나 할 거 없이 여인들이 반반한
데 돈 몇 푼 집어주면 치마를 훌렁훌렁 벗는다니 우리도 한번
시도해보세.”
이번에도 재생이 나서서 얼른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재모는 탁주잔을 잡고 추돌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함께 일한
지 벌써 일 년이 넘어가지만 일할 때는 몰랐는데, 추돌이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이상하게 흥분하면서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재모는 그것이 늘 마음에 걸리기는 하였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으려 하였다.
“나라의 백성으로서 왕이 정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관심
가지는 것은 당연한 거야. 지금 삽시루처럼 황음무도하고 유
능한 신하들을 시기하거나 의심하여 죽이려 든다면 누가 충
성을 하겠는가?”
추돌 대장이 잔을 비우고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재생이 주
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추돌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
이 없었다.
“그렇지. 지금의 삽시루 왕은 내가 봐도 무능해. 그런데 다
행히 창조리라는 국상이 왕의 실정(失政)을 잘 막아 주고 있
다고 하네.”
추돌과 재모는 정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재생은
추돌이 혹시 술김에 ‘나는 왕이 찾고 있는 돌고의 아들 을불
태자다’하고 말을 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모용외가 두 번째로 고구려 국경을 넘어 고국원으로 내달렸
다. 그는 고구려를 다시 침범하여 서천왕 능(陵)을 도굴한 의
도는 서천왕의 시신을 탈취하여 고구려가 함부로 자신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거나, 장차 고구려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음황한 모용외와 그의 왁살스러운 군사들이 서천
왕 능을 파헤칠 때 무덤 속에서 풍악(風樂) 소리가 들려오자
혼비백산한 군사들이 놀라 도망가거나 상당수의 군사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기도 하였다. 이에 겁을 집어먹은 모용외
는 능 도굴을 중단하고 군사를 돌려 철수하였다.
선비족은 대륙에서 살던 유목 민족으로 동호(東胡)의 후예
들이며, 원래 흉노족보다 강성했으나 흉노족에 복속되어 있
었다가 흉노족이 멸망하고 나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서진(西晉)이 팔 왕자의 난으로 국력이 쇠퇴해지자 단부(段
部), 우문부(宇文部) 탁발씨(拓拔氏), 모용부(慕容部) 등 선
비의 크고 작은 부족들이 남으로 밀고 내려왔다. 그들은 문
약에 빠진 대륙 정권들을 무시하고 다양한 정권을 건설하
였다. 이른바 오호십육국(5胡16國) 시대를 맞은 것이다.
모용외는 모용부를 이끄는 추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미
가 을씨(乙氏)로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 때 좌보(左輔)
벼슬을 지낸 을두지(乙豆智)의 후손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그는 한술 더떠 모용외는 자신이 추모왕 주몽의 적손(嫡孫)이
라고 공공연히 망말을 하고 다니면서 고구려에 대한 야욕을
품고 있었다.
모용부는 다른 부족들보다 월등히 세력이 강하여 서진의
조정에서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고 선비도독(鮮卑都督)에
임명하고 금은보화를 내려 달랠 정도였다.
모용외는 서진과 고구려의 중간 지역인 요하(遼河)에 근
거지를 두고 고구려를 자주 침범하였으며, 부여를 침범해
부여왕 의려(依慮)를 자살하게 했다.
그는 대륙의 북방을 뒤흔들어 자신들의 세력을 불리려 하
였다. 그러나 무능한 삽시루가 고구려의 태왕이 되면서 고
구려는 모용부와 길고 긴 전란에 휩싸이게 된다. 만약에 삽
시루가 선대왕들처럼 무용(武勇)이 있거나 고조선의 실지
(失地)를 회복하려는 의지가 있었더라면 감히 모용외가 고
구려를 넘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삽시루는 태왕이 되자마자 숙신족을 정벌하여 고구려 백
성들의 영웅이 된 숙부 안국공 달가를 죽이고 말았다. 달가
가 죽자마자 모용외는 마음 놓고 고구려를 침범하였다.
삽시루 왕은 모용외에게 쫓기다가 하마터면 모용외의 칼
을 맞을 뻔하였다. 혼군(昏君) 삽시루는 숙부를 죽이는 것
도 모자라 이복 아우인 돌고까지 죽이고 말았는데, 그의
시기심이 국가적 대환난을 불러들인 것이나 마찬가지였
다.
삽시루 왕은 숙부인 달가를 죽이고 그의 처 음씨(陰氏)를
심복에게 첩으로 주었다. 음씨는 죽은 국상 음우(陰佑)의
딸로 절세가인이라고 소문난 여인이었다.
삽시루 왕은 을불 태자가 자주 만나 사랑을 했던 여인 초희
(草姬)를 건드렸다. 그녀는 죽은 국상인 상루(尙婁)의 손녀
로 을불과 미래를 약속한 사이이기도 했다.
또한 왕은 초희의 생모인 부씨(芙氏)까지 건드렸다. 음황
한 삽시루 왕은 이때에 왕후 연씨(緣氏) 사이에 아들 연(椽)
과 안(顔) 그리고 딸 둘을 두고 있었다.
안국군 달가의 옛 부하들과 돌고 왕자를 따르던 가인(家
人)들은 삽시루 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고구려 초기
는 형제상속이 만연했던 터라 형제 사이에서도 왕위를 두
고 생사를 가르는 권력 다툼이 치열했다.
달가와 돌고는 그런 와중에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삽시루
왕의 행태가 날로 방탕해지자 백성들은 은연 중 사라진 을
불 태자에게 희망을 걸기 시작하였다.
삽시루 왕이 고구려를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매년 가뭄이
극심하였다. 고구려의 경제적 기반은 반목반농(半牧半農)
의 형태였다.
압록수나 비류수 주변 평야지대는 농업이 주류인 반면
정복지인 숙신이나 동호(東胡) 또는 선비(鮮卑) 지역은 유
목이 근간이었다.
수년째 가뭄이 들자 외침은 빈번해 지고 전국적으로 역병
까지 유행하여 백성들은 동요하였다. 백성들은 삽시루 왕
이 실덕(失德)하여 실정(失政)으로 이어진 결과라고 거칠
게 비난하였다.
“백성들이 살기 어렵게 된 것은 모두 삽시루 왕 때문이다.
정사는 내팽개치고 황음(荒淫)에 빠져 방종한 결과다. 더 늦
기 전에 어둔한 왕을 갈아치워야 한다.”
“나라의 영웅 안국군을 무참히 죽이고 돌고 장군을 죽인
패도(悖道)한 삽시루 왕을 몰아내야 고구려가 살 수 있다.
삽시루를 몰아내자.”
“삽시루 왕이 보위에 오래 앉아 있을수록 백성들만 죽어
나간다. 빨리 삽시루를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추저분한 삽시루를 왕위에서 끌어 내리고 을불 태자를 왕
으로 받들자.”
“우리가 살길은 오로지 을불 태자를 왕으로 추대하는 것 밖
에 없다.”
나라 안팎이 아우성이었다. 백성들이 모이는 저자거리나 빨
래터 장터 등에서는 백성들의 원성이 날로 더해가기만 하였
다.
백성들의 불평불만이 크다는 것을 조정 중신들은 다 알고 있
었지만 누구도 삽시루 왕에게 고하는 자가 없었다. 고했다가
기분이 상한 왕에게 어떠한 처벌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중신들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만 갔다.
‘삽시루가 실덕과 실정으로 백성들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지
고 있다. 새로운 국상 창조리는 상당한 역량을 지닌 자라 들었
는데,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혼군을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인가.’
추돌 역시 날이 갈수록 고민이 많아졌다.
“재생아, 나는 한 달간 재모 부대장과 산골로 돌아다니며,
소금과 방물을 팔러 다녀와야겠다. 산골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장사치들 통행이 뜸해서 물건이 잘 팔릴 것이야. 나와 재모 부
대장이 없는 동안 집안 단도리 부탁한다.”
가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추돌은 재모와 내륙 지역을
돌며 민심을 살펴보고 싶었다.
이참에 추돌은 재모에게 자신이 을불 태자라는 사실을 알리
고 자신의 뜻을 말해 줄 게획이었다. 또한 내륙에 사는 백성
들이 삽시루 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추돌과 재모는 조랑말 두필을 준비하여 물건을 잔뜩 싣고
내륙 지방으로 향했다. 뱃길이 닿는 지역은 소금과 생필품을
쉽게 살 수 있었지만 내륙 지역은 상인들의 발길이 쉽게 닿
지 못했다.
두 사람은 압록수에서 남쪽으로 하루 반나절을 걸어 낙랑
국과 가까운 국경지역 마을에 도착하였다. 창동이라는 지역
으로 마을 규모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재모가 요령을 흔들어 소금을 팔러 왔다고 알리자 금방 마
을 아낙들이 몰려들었다. 두 사람은 마을 한가운데 소금과
물건들을 내려놓고 장사를 시작하였다. 추돌은 물건을 팔면
서도 마을의 규모와 마을 사람들의 행색을 유심히 살폈다.
“품질 좋은 소금 한 됫박에 한 냥이오.”
“이보시오. 어디서 가져온 소금인데 그렇게 값이 싸오?
다른 상인은 한 됫박에 두 냥을 받던데.”
“우리 대장께서 창동 마을 분들은 마음씨 곱고 착하니 소금
값을 싸게 드리라고 하였소이다.”
재모는 마을 주민들이 반색을 하자 신이 났다.
“대장님이 참으로 인심이 좋고 헌거롭게 생겼소이다. 세상에
나, 내 육십 평생에 물건 값을 깎아주는 장사치는 처음 봅니
다. 삽시루 왕이 대장님처럼 인덕도 도탑고 사람들 속을 알아
주면 얼마나 좋을꼬.”
나이든 여인이 싼값으로 소금을 사면서 중얼거렸다.
“이보시오. 삽시루 왕이 그리도 정치를 못하오?”
추돌이 나이든 여인에게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숙부와 동생을 죽이고 죄 없는 조카 을불 태자까지 죽이
려드는 자가 왕이 되었으니, 매년 흉년이 들고 역병이 창궐
하지요. 어서 빨리 우리 을불 태자님이 고구려를 다스려야
하는데, 도대체 태자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시기에 나타
나지를 않으시나.”
추돌은 귀를 의심하였다. 분명히 여인의 입에서 을불 태
자라는 이름이 튀어 나왔다. 여인은 아무 거리낌 없이 무
서운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고 있었다. 추돌은 오랜만에
을불이라는 이름을 듣자 두 눈에 눈물이 갈쌍갈쌍하였다.
‘깊은 산골 촌부가 나의 이름을 입에 올리다니…….’
추돌은 마을 사람들에게 싼값에 물건을 팔고 다른 마을
로 이동하였다. 계동, 엄우촌 등지를 돌고 마지막으로 사
수촌(思收村)에 들렀다.
그런데 그만 해가 떨어지고 말았다. 마을에 주막이 없었다.
두 사람은 외지인들에게 돈을 받고 잠을 재워주는 어떤 노파
의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추돌은 하룻밤 묵는 값으로 한 사람당 소금 반말을 주기로
하였다. 추돌은 인심을 써서 두 됫박을 더 얹어 주었다. 그
러자 노파가 추돌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두 됫박만 더 달라
고 떼를 섰다.
“소금이 많이 남은 것 같은데 두 됫박만 더 주시구랴.
밖에 있는 조랑말도 내가 풀과 물을 주고 밤새 돌봐 줄
테니까 조금만 더 생각 좀 해줘봐.”
“할머니, 저희들도 장사를 해야지요. 두 됫박 더 드렸잖
아요.”
“조금만 더 인심을 써. 마음씨도 곱고 착해 보이는 사람들
같은데.”
추레하게 늙은 여인은 죽기살기로 달려들며, 소금을 더 달
라고 생떼를 썼다.
“할머니, 안 됩니다.”
재모가 억지를 부리는 노파를 제지하자 노파의 안색이 금
방 변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젊은 사람들이 부모도 없나. 늙은이가 불쌍하지도 않아.”
노파는 움푹 들어간 눈알을 부라리면서 두 사람을 한참
동안 쏘아보고는 사라졌다. 그 눈빛이 얼마나 사납고 음습
해 보였던지 재모는 몸서리를 쳐댔다.
피곤에 지친 두 사람은 금방 코를 곯았다. 팔고 남은 소금
이 네 말 정도였다. 소금을 다 팔면 가까운 박작상단이 운
영하는 중간 거래소에 들러 소금을 받아 오면 되었다.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두 사람이 길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고 막 집을 떠날 때였다. 노파가 갑자기 추돌의
허리춤을 잡고 소리를 질러댔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동네 사람들, 도둑놈들을 잡았어요.”
“할머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누가 도둑이란 말입니까.”
노파가 입에 거품까지 물면서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이
웃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도둑이 들었다는 노파의 소
리에 놀란 사람들은 지게작대기, 낫, 도끼, 몽둥이를 들고 나
왔다.
“이 자들이 내 신발을 훔쳐 갔다오. 어서, 관아에 알려주
시오.”
노파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마을 사람들에게 하소연 하
였다. 마을 젊은 남자들은 금장 추돌과 재모에게 달려들어
몽둥이찜질이라도 할 기세였다. 관아에서 소식을 듣고 병
졸 네 사람이 달려왔다.
“젊은 놈들이 할 짓이 없어 나이 드신 분 물건을 훔쳐?”
병졸들이 두 사람을 보고 눈알을 부라렸다.
“저희는 소금 장수로 방값을 주고 하룻밤 잤을 뿐입니다.
훔친 게 없습니다.”
재모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지만 병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놈들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짐을 뒤져봐라.”
병졸 한명이 조랑말에 실린 짐을 뒤지자 정말로 노파의 가
죽신 한 켤레가 나왔다. 노파는 가죽신을 보자 땅바닥을
치며 울었다.
“아이고, 늙어서 혼자 사는 것도 원통해 죽겠는데, 이제
는 젊은 놈들에게 도둑질까지 당하다니. 이놈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것이여.”
노파는 서럽게 울면서 눈물까지 흘리자 마을 사람들이 혀
를 차며 노파를 가엽게 여겼다.
“이놈들을 당장 끌고가자.”
“이보시오. 저 노파가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간계를 부린
거요. 우리말을 믿어 주시오.”
추돌과 재모가 계속 변명을 하였지만 병졸들은 두 사람과
조랑말을 관아인 압록재(鴨綠宰)로 끌고 갔다.
압록재는 압록수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마을들을 다스리면
서 각종 죄에 연루된 죄인들을 치죄하는 관아였다. 그곳의
최고책임자는 재(宰)였는데 그는 비록 미관말직이지만 백성
들에게는 염라대왕 못지않게 무서운 존재로 통했다.
‘이거 예상치도 못했던 일에 연루되어 자칫 내 신분이 들통
나는 날에는 지금까지 고생한 고생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관아에 끌려가면 관리들이 우리를 조사할 텐데. 재모가 나에
대하여 말을 잘해 줄 테지.’
추돌은 잡혀 가면서도 머릿속에 별의별 잡념이 떠올랐다.
추돌은 재모와 눈이 마주 칠 때마다 고갯짓을 하면서 이번
고비를 잘 넘기자고 다짐을 하였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