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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불전(1)

* 창작공간/중편 - 을불 傳

by 여강 최재효 2018. 8. 1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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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불전





                                                                                                                                                     - 여강 최재효





                                         1



 수실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오십여 가구 삼백여명의 마을 사람들

은 서로 돕고 사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부자인 음모(陰牟)는 성격이 괴팍하고 의뭉스러운데가 있었다. 


 음모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아버지와 달리 심성이 곱고 인정이 많은 편

이었다. 음모는 많은 농토를 가지고 있었고 머슴도 여러 명 부리고 있었다.

머슴들 중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상쇠는 요즘 새로 들어 두 머슴 추돌과

재생을 자주 괴롭혔다.


 다른 머슴들은 못생기고 천덕꾸러기처럼 구는데 반해 추돌은 늘 조용하

고 성실하며, 비꾸러진데 없었고 꾀를 부릴 줄 몰랐다. 상쇠가 추돌을 미

워하는 이유는 추돌이 대갓집 도령처럼 풍신이 반듯하고 행동거지가

나지 않아 음모와 그의 딸에게 호감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힘든 일을 마치고 쉬려고 하면 상쇠는 다른 머슴들은 놔두고 꼭 추돌과

재생을 불러내 잠시 쉴 틈도 주지 않고 다른 일을 시켰다. 상쇠의 말을 듣

지 않으면 곧바로 발길질이 이어지거나 밥을 굶어야 할판이었다. 머슴들

은 주인 음모보다 상쇠를 더 무서워하였다. 


 “너희들 쇠꼴이 다른 머슴들이 해온 량보다 적다. 더 베어다 놓고 밥 먹

어.”
 상쇠는 막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 추돌과 재생에게 시비를 걸었다.


 추돌과 재생의 지게에 실려 있는 쇠꼴이 다른 머슴들 지게에 실려 있는 쇠

꼴보다 훨씬 많아 보였는데 상쇠는 심술을 부렸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지만 추돌과 재생은 점심먹지

못하고 지게를 지고 쇠꼴을 베러 가야했다. 추돌과 재생이 다시 쇠꼴을 베

어 짊어지고 돌아 왔을 때 이미 밥상은 치워지고 식모는 집에 없었다.

른 머슴들은 배를 두들기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추돌아, 어디 아프니? 얼굴이 말이 아니네.”


 주인집 외동딸은 밖에 나갔다가 추돌이 섬돌 아래에 쭈그려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그녀는 추돌이 비록 머슴의 신분이기는 하나 그의

음전하고 진득한 성품이 마음에 들었다.


 추돌은 신장이 8척이고 용의 수염(龍髥)에 호랑이의 눈동자(虎瞳), 원숭

이의 팔(猿臂)에 외뿔소의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늘 온화한 인상이나 한

번 화를 내면 주변에 아무도 다가가지 못했다. 추돌과 재생이 점심도 못

먹고 쇠꼴을 베어 이제 막 들어왔다고 하자 그녀는 직접 부엌에 들어가

밥상을 차려 내왔다.


 “상쇠가 너희를 골탕 먹이려고 못된 짓을 했나보구나.”
 그녀는 측은한 마음으로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 추돌과 재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추돌이 남의 집 머슴 노릇 할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추돌과 재생이 어디에서 수실 마을로 흘러 들어왔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녀가 몇 번이나 추돌에게 고향이 어디냐, 부모님은 살아 계시냐, 형제

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지만 그때 마다 자신은 사고무친의 외톨이

고아라며, 자세한 대답을 피하고 멋쩍은 듯 웃어넘기곤 했다.


 재생은 국상 상루(尙婁)가 추돌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붙여 놓은 종자

(從者)였다. 음모는 상쇠의 말만 듣고 추돌과 재생이 일은 안 하고 꾀만

부린다고 그들을 자주 혼냈다.


 추돌과 재생은 착살맞은 상쇠의 말만 믿고 자신들을 나무라는 주인에

게 서운해 하였지만 그의 딸을 봐서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나갔다. 한참

무더운 어느 여름날 밤이었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곯아떨어진 추

돌을 상쇠가 흔들어 깨웠다.


 “추돌아, 재생이하고 나가서 저 개구리들을 울지 못하게 하거라.”
 추돌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상쇠는 강파른 얼굴을 하고 엉뚱한 지시를

했다. 다른 머슴들은 옆에서 코를 골며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음모의 집 앞에는 논이 있었는데 밤마다 개구리들이 논에서 울어대는

바람에 음모 부부가 잠을 푹 자지 못한다고 했다. 추돌은 기가 막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추돌은 재생을 깨우지 않고 혼자서 논으로 나갔다. 그가 논두렁

을 때는 근처에 있던 개구리들이 조용하다가도 추돌이 지나가고나면

사납게 울어댔다.


 추돌이 돌멩이나 흙덩이를 던져도 보고 소리도 질러보았지만 그때뿐

이었다. 추돌이 개구리들을 조용히시키려고 밤이슬을 맞아가며 밤새

도록 이리 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허기에 지쳐 곧 쓰러질 것 같았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밤새 개구리들과 전쟁

을 벌였지만 별로 소득이 없었다. 다음 날 밤부터 추돌과 재생은 개구

리들과 치열한 싸움을 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야살스런

집주인이나 상쇠가 두 사람을 낮에 쉬게 하는 것도 니었다. 추돌의

몸과 마음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 갔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가. 예전의 영화(榮華)는 한낱 꿈이었단

말인가.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추돌은 개구리를 쫓다말고 잠시 논두렁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

다. 새벽하늘이 무척 맑고 선명하였다.


 그때 별똥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달고 서천으로 사라졌다. 반달이 개

구리와 씨름하는 추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날도 지금 처럼 반달이

하늘 가운데 있을 때였다. 숙부가 내린 사약(賜藥)을 마시고 피를 토하

며, 죽어가던 아버지 돌고(咄固)는 아들에게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아들아, 빨리 궁궐을 빠져 나가 멀리 피해야 한다. 네가 만약 살아남

거든 아비의 복수를 하려고 애쓰지 말고 하늘의 명에 순응하면서 살아

가기 바란다. 아비 말을 명심하거라.” 


 추돌은 피를 토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

리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도리질을 하였다. 추돌이라는 이름은 숙

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하여 스스로 지어 붙인 가명이었다.


 ‘아버지, 지금 쯤 저 은하수를 건너고 계신지요? 소자, 그날 밤 일을 생

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목이 메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소자는 지

금 숙부를 피해 국내성에서 멀리 떨어진 비류수 인근의 향촌에 숨어 살

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추돌은 허리춤에 있는 옥패를 꺼내 들여다보았다. 옥패에는 붉은 글

씨로 ‘을불(乙弗)’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추돌의 눈

가에 어느새 말간 눈물이 번지고 있었다.


 추돌은 지난 악몽을 하나씩 곱씹었다. 그동안 숙부의 손아귀에서 벗어

나 목숨을 보전하기 급급하여 지난 일들을 회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응어리를 언제

속 시원히 풀어 볼 수 있을지 추돌은 답답하기만 했다. 


 서기 292년 약로왕(藥盧王)이 승하하였다. 그는 중천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23년간 고구려를 통치하였다. 그는 총명하고 인자하여 백성들로

부터 존경을 받았다.


 왕후 우씨(于氏)는 우수(于漱)의 딸이었고 국상(國相)은 상루(尙婁)였

다. 숙신족(肅愼族)이 고구려를 침입하자 약로왕은 동생인 달가(疸賈)를

출전시켜 단로성(檀盧城)을 함락시키고 숙신족 600 여호를 오천(烏川)

에 이주시켜 이미 항복한 숙신족 부락민들과 함께 살도록 조치하였다.


 왕은 공을 세운 달가를 안국군(安國君)에 봉하고 양맥(梁貊) 및 숙신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약로왕이 8월에 승하하니 그를 서천(西川) 언

덕에 장사지내고 고구려 조정은 그에게 서천왕(西川王)이란 시호를 내

렸다. 


 약로왕은 장남 삽시루를 할 수 없이 태자라는 자리에 앉히는 하였지

만 그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들 돌고에게 마음

이 있었으나 삽시루의 생모 우후(于后) 때문에 할 수 없이 삽시루를 태

자의 위에 올려놓은 채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우후는 상당한 미색으로 음황하며, 욕심이 많은 폐첩(嬖妾)이었다. 돌

고의 생모인 고(高)씨도 약로대왕에게 많은 총애를 받고 있었지만 우후

처럼 뒷 배경이 미미하여 영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약로왕이 갑자기 승하하는 바람에 왕의 의중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후는 군권을 쥐고 있었던 왕의 아우 달가의 모든 권한을

강제로 빼앗고 몇몇 대신들과 모의해 왕의 밀조(密詔)를 위조하여 자신

의 아들인 삽시루를 보위에 앉혔다. 삽시루가 보위에 오르면서 조정의

분위기는 완전히 변하고 말았다.


 삽시루 왕은 우후를 태후로, 부인 연씨(緣氏)를 후(后)로, 소실인 다씨

(多氏)를 소후(小后)로 봉하였다. 그는 태자로 있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

을 의심하고 자신과 뜻이 맞지 않으면 죽이거나 멀리 내치는 등 마구발

방 전횡을 일삼았다.


 삽시루는 태왕의 위에 오르자 곧 왕권 강화에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음흉한 삽시루는 선대왕들처럼 잃어버린 민족의 고토(古土)인 고조선이

있던 거대한 대륙의 땅을 찾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서기 3세기 무렵은 고구려에게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서기 246년 위

나라 장군 관구검(毌丘儉)의 침략으로 도성인 국내성(國內城)이 점령당

하기도 하였다. 중천왕 때에 양맥(梁貊) 골짜기에서 벌인 두 나라 간의

전쟁은 고구려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싸움이기도 했다.


 양맥 골짜기는 동천왕이 관구검과 싸워 패배한 뼈아픈 기억이 있던 장

소이기도 했다. 중천왕은 이곳에서 위나라 군사 8천 명을 참살하였다.

고구려의 대승으로 두 나라간 힘의 균형이 유지 되었고 한동안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후한이 망하고 오랜 기간 각축을 벌이던 위(魏), 촉(蜀), 오(吳) 삼국은

잠시 조조가 건국한 위나라로 통일되는 듯 하다가 마침내 사마씨(司馬氏)

가 세운 진(晉)에게 멸망하면서 중국 대륙이 통일되었다. 진이 대륙을 통

일함으로써 정세는 안정되었지만 그 틈을 이용하여 북방 유목민족은 더

욱 강성해졌다.


 그들은 겨울이 되면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진나라와 고구려를 침범하였

다. 특히 숙신족이 고구려 변방을 수시로 침범하여 식량을 탈취하고 백

성들까지 무차별로 죽이는 만행을 일삼곤 하였다. 이때 숙신족을 궤멸시

키고 숙신 부족이 사는 지역을 평정한 이가 서천왕의 아우 달가 장군이

었다.


 달가는 연전연승하며 숙신을 단로성으로 몰아붙였다. 그는 교묘한 유

인책으로 숙신의 주력군을 성 밖으로 끌어내고 기습하여 격파한 뒤에

곧바로 단로성을 점령하였다. 한동안 고구려는 안팎으로 고요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비극은 약로 서천왕이 갑자기 승하하고 그의 아들 삽

시루가 보위에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삽시루 왕은 어려서부터 교만하

고 방종하여 남을 믿지 않았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삽시루에게는 대제국 고구려를 다스릴 자질이

부족한 듯 했다. 그의 소심한 성품 때문에 즉위 초부터 숫백성과 조정

의 중신들로부터 신망을 얻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태왕 삽시루의 고질병인 의심증은 날로 더욱 심해지고

무람하였다. 그 의심은 숙부인 안국공 달가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숙신족을 토벌한 숙부 달가는 백성들과 조정의 중신들로부터도 신망

을 얻고 있었다. 삽시루 왕은 숙부 달가와 이복(異腹) 아우 돌고가 자

신의 왕위를 흔들 수 있는 있는 최대 정적(政敵)이라고 판단하였다. 


 “안국군은 과인이 태자시절부터 불충하였다. 또한 오래 군권을 쥐고

있으면서 불궤지심을 품고 나라를 위태롭게 한 소지가 있다. 선대왕

때에도 왕의 아우인 일우(逸友)와 소발(素勃)이 왕위를 노리고 역모를

꾀한 적이 있었다. 이에 과인은 나라를 위태롭게 한 달가를 일벌백계

로 처단하여 대의멸친코자 한다.”


 그러나 어느 중신도 나서서 삽시루을 밀막지 못했다. 삽시루 왕은

마침내 수하들을 동원하여 비열한 방법으로 국민 영웅인 숙부 달가

를 죽이고 말았다. 삽시루 왕의 의심병은 더욱 악화되어 아우인 돌

고와 어린 조카 을불 태자에게도 미쳤다.


 “모용외가 국경을 넘어 들어와 과인이 잠시 신성(新城)으로 피신할

때 돌고는 과인의 승낙 없이 군사를 움직였으며, 부왕의 후궁인 다비

(茶妃) 을씨녀(乙氏女)녀를 범해 을불이라는 자식까지 보았다.


 게다가 과인의 모후인 우후(于后)까지도 넘본 패악한 자다. 이럴진

대 과인이 국가의 대계를 세우고 백성들의 모범적인 생활 방식의 틀

을 세우기 갈망하는 이때 어찌 이 같이 무도한 자를 살려 둘 수가 있

단 말인가?”


 삽시루 왕은 왕실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이복 아우 돌고에게 사

약을 내렸다. 돌고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돌고는 부왕의 후궁이

었던 을씨(乙氏) 사이에서 을불을 얻었다. 부왕의 승낙 하에 돌고는

을씨를 단림궁주(檀林宮主)로 칭하고 처로 맞이하였다.


 을불은 돌고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약로왕의 아들이기도 한 아주 묘

위치에 있었다. 약로왕은 을불이 도저하고 기골이 범상하지 않음

을 알고 그를 태자로 봉하였다. 태자가 둘인 이상한 정국에서 약로왕

이 급사(急死)하였다.


 삽시루 왕은 동생의 아들이며, 조카인 태자 을불이 궁궐에서 도망치

자 이에 불안을 느끼고 전국 방방곳곳에 방을 붙이고 집요하게 추적하

고 있었다. 그러나 을불 태자는 잡히지 않았다.


 백성들은 왕의 숙부 달가와 아우 돌고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음 속으로 을불 태자를 측은하게 여기고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에 을불 태자는 백성들의 비호 아래 장기간 잡히지 않

고 권토중래할 기회를 엿볼 수 있었다.


 삽시루가 보위에 오르면서 국상으로 있던 상루(尙婁)가 사망하자 대

사자(大使者) 신분의 창조리(倉助利)가 국상을 맡게 되었다. 6등급에서

1등급으로 급상승한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만큼 창조리의 역량은 뛰어났다. 창조리는 추모왕(鄒牟王) 주몽이나,

대무신왕(大武神王), 태조왕(太祖王)처럼 주변국들을 모두 정복하여 고

구려를 대륙의 최강자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들이 정복한 주변국들은

옛 고조선의 잃어버린 땅에 있었던 나라들과 한나라의 괴뢰 정권들로

유명무해진 군현(郡縣)들이었다.


 창조리는 고구려 제5대 모본왕과 제7대 차대왕의 선례를 많이 연구한

지략가이면서 웅숭깊고 명철한 정치가였다. 모본왕 해우(解憂)가 정사

를 살피지 않고 방탕을 일삼자 신하 두로(杜魯)는 왕을 살해하였다.


 또한 음황한 차대왕(次大王) 역시 신하인 명림답부(明臨答夫)에게 제거

되었다. 중도 하차한 왕들은 하나같이 현실에 안주하며, 방탕과 안락을

추구하려 들었다. 두 명의 왕이 비명횡사한 뒤로 고구려는 새롭게 국력

이 신장되는 계기를 맞기도 했다.


 추모왕 이후부터 태왕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의 숙제가 있었다. 그것은

주변국들에게 빼앗긴 고조선의 실지 회복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구

려 태왕들은 고조선의 실지 회복에 직접 나서지 않았다.


 밤마다 개구리들과 싸우느라 지친 추돌은 머슴 일을 그만 두고 싶었다.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매일 밤잠을 설쳐가며, 개구리들과 밤을

새울 수는 없었다. 추돌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내고 무릎을 쳤다.


 “그래, 그거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재생아, 너 내일부터 나를 따

라 나서라. 하루면 충분하다.”
 “태자님, 아니 추돌아, 무슨 일인데?”


 재생은 추돌이 무슨 엉뚱한 일을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추돌이 생각

해 낸 것은 다름 아닌 뱀을 잡아다 논에 풀어 놓는 거였다. 다음날 새벽

부터 추돌은 재생과 머슴 두 명을 더 꼬여서 뱀을 잡으러 다녔다. 마을

에서 시오리 쯤 떨어진 곳에 뱀골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봄부터 늦가을

까지 뱀들이 우글거렸다.


 하루 종일 수고한 덕분에 추돌은 뱀 수백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추

돌은 밤에 뱀 한 가마니를 집 근처 논에다 풀어 놓았다. 그러자 신기하

게도 그날 밤에 집 근처 논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뚝 그치고 말았다.


 그 다음날 추돌은 나머지  뱀들을 모두 풀어 놓았다. 재생은 상쇠가

혼자 쓰고 있는 방에도 뱀 두 마리를 몰래 집어넣었다. 추돌 일행이

잡아 온 뱀은 무재주, 꽃뱀, 물뱀 등 독이 없는 것들이었다. 한동안

마을에는 개구리 우는 소리가 뚝 그쳤고 상쇠를 비롯하여 마을 사람

여러 명이 뱀에 물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여름이 지나 추수

철이 되었다.


 “재생아, 우리 이렇게 있다가 아무 재미도 못 보겠다. 그리고 여기 너

무 오래 있다가 관리들에게 잡힐 지도 몰라. 우리 다일을 찾아보자.”
 그렇지 않아도 재생 역시 추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태자님, 무슨 일을 하시게요.”
 “너 입조심 안 할래? 태자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네가 입을 잘못 놀리

면 우리 두 사람 관아에 잡혀가서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야?”

 추돌이 재생에게 따끔하게 혼을 냈다.


 “태자, 아니지. 추돌님, 추돌아, 미안해.”
 “추돌아, 하고 불러. 그리고 요즘 소금 장사를 하면 재미가 좋다는 소

문을 들었다. 추수 끝나면 이 마을을 뜨자.”


 추돌과 재생은 가을걷이가 끝나면 밀린 새경을 받아서 멀리 압록수 주

변으로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추돌은 최근에 압록수 하류에 새로이 염

전(鹽廛)이 확장되어 소금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풍문을 

들은 바가 있었다.


 “너희들이 알다시피 올해는 농사가 시원찮아서 새경 줄 돈이 없다. 내

년에 주마. 그때까지 더 머물든지 아니면 내년 이맘때 와라.”

 집주인 음모는 새경을 주지 않으려고 이런저런 핑게를 대며엉뚱한 소리

를 하였다.


  “아저씨,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쌀가마니는 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직 방아를 찧지 않은 쭉정이들이야.”
 “저희를 바보로 아십니까?”


 음모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나중에 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추

돌은 집주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추돌과 재생은 새경을 안 주면 관

아에 신고하겠다고 집주인을 협박하여 겨우 밀린 새경의 반 정도를 받

아 낼 수 있었다. 음모는 새경을 주면서 그 동안 약값이며, 옷값 등을

떼고 주었다.


 ‘이 정도 돈이면 소금 장사를 하는데 겨우 밑천은 되겠구나. 빌어먹을

놈 같으니, 집주인 놈은 벼룩의 간을 빼먹을 놈이로다.’ 
 추돌은 새경을 받자 수실 마을을 나섰다.


 “추돌아, 가다가 할 일이 없으면 다시 돌아와. 네가 떠나면 나는 쓸쓸

하고 허전해서 무슨 낙으로 살아가야 하니.”


 “아가씨, 미안합니다. 오래 있고 싶었는데…….”
 “아버지에게 말씀드려서 상쇠를 내쫓으라고 할 테니. 가지마.”

 음모의 딸은 추돌이 떠난다니까 너무 아쉬워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추돌의 마음도 역시 무겁고 답답하였다.


 추돌은 상쇠가 괴롭히기 보다는 수실 마을에서 반년 이상 살았으니 떠

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한 마을에 너무 오래 있다 보면 자신들의

신분이 노출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돌은 울고 있는 주인집 딸을 다독거리며,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날 것

이라고 하였다. 추돌과 재생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뱀에 물려 여름

내내 고생을 하던 상쇠는 두 사람이 떠난다고 하여도 무엇이 눈꼴틀린

지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다. 


 “바보, 추돌이는 바보야.”
 추돌과 재생은 주먹밥을 건네며 울고 있는 주인집 딸을 뒤로하고 무작

정 압록수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뒤돌아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

다.


 둘은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다. 천길이나 되는 높은 산을 넘고 강을 건

넜다. 어느 나루터에 이르니 어느새 땅거미가 기어 다녔다.


 “댁들은 어디를 그리 급히 가슈.”
 “압록수 가에 염전이 있다고 해서 가는 길이오. 댁은 어디 가오?”

 추돌과 재생이 배에서 내려 주막을 찾고 있는데 웬 사내가 다가와 말

을 걸었다.


 그자의 행색이나 풍신을 보니 나이도 비슷하고 삿되보이지 않았다. 일

감을 찾아 아다니는 사람 같아 추돌과 재생은 내심 반가웠다. 둘은 하

종일 걷느라 말 한마디도 못해 입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나도 그곳을 찾아가는 중이라오.”
 “그거 잘되었구려. 우리 길동무나 합시다. 우리는 수실촌
에서 왔습니다.

나는 추돌이라 하고 이쪽은 동무 재생이라 하오.”


 추돌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사내도 흔쾌히 손을 내밀고 악수에 응해 주

었다. 추돌이 사내를 자세히 보니 남을 속이거나 야바위를 칠 사람 같지

는 않아 보였다. 추돌은 궁에서 도망친 후에 사람을 잘 믿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사방에 삽시루 왕이 자신을 찾는 방을 붙여 놓은 관계로 행동이 조심스

러워 지고 누구도 쉽게 믿지 못했다.


 “나는 동촌에 사는 재모(再牟)라 하오.”

 “이름도 참 좋구려. 그런데, 그곳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잰걸음으로 하루는 족히 걸릴 거요. 날이 저물었으니 저 주막에서 하룻

밤 묵고 갑시다.”


 뽀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가에 수양버들이 늘어섰는데, 그 사이에 주

막이 한 채 보였다. 세 사람은 마치 십년지기라도 듯 다정하게 주막으

로 향했다.


 주막에는 여러 패들이 평상과 마당에 멍석을 깔고 식사를 고 있었다.

행색을 보니 모두가 먼 거리를 옮겨 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사치들 같았

다. 소금은 나라에서 귀히 여기는 물품이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는 음식, 마시는 물 그리고 반찬에 소금이 들어가

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금과 쌀값이 거의 비슷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소

금을 대량으로 거래하는 거상(巨商)은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자자했

다.


 전쟁이 나면 소금의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때문에 나라에서

는 소금을 군수물품으로 취급할 정도였다. 예전부터 압록수와 해수(海

水)가 만나는 요서지방은 질 좋은 소금으로 유명하였다.


 세 사람은 이른 새벽에 길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

다. 봉놋방 하나에 예닐곱 명의 사내들이 같이 잠을 자야 했다. 재생,

재모는 돈이 든 봇짐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새벽닭이 울자 세 사람은 별을 보며, 길을 재촉하였다. 산을 넘고 내

를 건너 또 하루를 걸어야 했다. 세 사람 모두 발바닥퉁퉁 부르트

고 다리가 아팠으나 앙버티며 걸었다. 해가 서천을 거의 다 지나갈

렵이었다.


 “재모, 저기가 압록수 염전인가 보오.”
 “오오, 그런 것 같소. 나의 인생을 새롭게 쓸 염전이 맞소.”
 재모는 한 마장 쯤 떨어진 염전을 바라보며, 신이 난 듯 했다.


 염전은 압록수 하류에 있는 소금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큰 시장이었다.

파시(罷市)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포구에는 배와 마차 그리고 인파로

붐볐다. 세 사람 모두 염전이 열리는 이곳은 처음이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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