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허몽
- 여강 최재효
내 청춘같이 싱싱했던 꽃잎 죽은 듯 시들고
서산에 해 서둘러 지고나면 휘파람 길게 이어지는데
여인(麗人)의 눈가에 쌓여만 가는 짙은 우수의 흔적들을
어찌하면 조용히 지울 수 있을지
그대는 낙엽지면 돋아나는 검붉은 상흔(傷痕)들을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하고
마치, 할머니 옛날 이야기처럼 가볍게 넘기며
아무것도 아닌 듯 지나칠 수 있는가
풋사랑은 목숨을 갉아먹는 불치(不治)의 병이고
짧은 이별은 목숨을 이어주는 명약(名藥)일 진대
까맣게 눈이 먼 선남선녀(善男善女)는
일부러 양쪽 귀를 틀어막고 웃고 있는 듯 하네
아아, 사악한 천사여, 그대 본분은 축복이 아니 듯
오오, 착한 악마여, 그대 임무 역시 분노가 아닌데
세상에 혼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는 것을 보면
쓰디 쓴 독주 한 잔이 틀림없는 해약(解藥)같다네
천지에 붉은 봄꽃 흐드러졌을 때
엉뚱하게도 생사의 암영(暗影)이 그에게 달려들었지
연가는 허공에 슬픈 메아리로 남고
산너머 만가(晩歌)가 발길을 재촉했다네
- 창작일 : 2017.11.3. 2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