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을
- 여강 최재효
인도 위에 덜 여문 은행 알이 터져 낭자하다
아침저녁으로 달리는 길가에 홍시가 농염하다
변덕 심한 날씨 탓에 아직도 속옷이 얇다
이런 이유로 나는 가을 속에서 갈등하고 있다
지천명 중반 이 후가 무척이나 험해 보인다
죽마고우 열 명 중 네 명이 옛사람이 되었다
요즘에 꾸는 꿈들의 근원이 거의 기괴하다
이 같은 이유로 나는 가을을 무척 경계하고 있다
무시로 첫사랑이 나타나 삿대질을 해댄다
멍 자국이 선명한 추억의 조각들이 시야를 흐린다
빈 술잔을 들고 밤을 새우는 날들이 늘어만 간다
말도 안 되는 사연들로 나는 방황하고 있다
짝 없이 허공을 나는 새들이 무척 자연스럽다
철창이 오늘처럼 듬직한 때가 언제 있었던가
나그네 하얀 미간에 지난 날 미련만 가득하다
해법 없는 난제로 가을밤이 꽤 춥고 지루하다
예로부터 꽃구경도 다 때가 있다고 했다
국화는 어째서 이제야 향기로운지 알 수가 없다
이 염부주에서 꽃을 몇 송이나 꺾어야 하는가
그대의 가을은 이 순간 어느 역을 지나가고 있는가
- 창작일 : 2017.10.25. 2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