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남자에게 고함
- 여강 최재효
이보시게, 세상에 흔적을 좀 남겼거든
나머지 자질구레한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뒷사람을 생각해서라도
세사(世事)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하지 않겠나
현미경과 청진기를 꺼내보시게
간밤에 비명횡사한 자들의 부음이 전파를 타고
천국행 승차권을 쥔 자들은 축배를 들고 있네
하지만 생사(生死)의 저울은 언제나 공평하지
한 계절 이글거리던 태양이 점점 식어가면서
중년 남자들의 밤이 자꾸만 길어지고 있지
한 남자는 옛일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고
또 다른 사내는 돌을 금덩이로 바꾸려 하네
낙엽이 아무리 몸부림치며 거부하여도
갈 곳은 벌써 정해져 있지
생물은 그림자처럼 왔다 바람처럼 가는 게 좋다네
들판에 나뒹구는 왕의 비문(碑文)이 슬퍼 보이는군
홀로된 별들이 망각의 바다에 떨어지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자들은 밤새워 기도를 하지
곁에 아무도 없다고 너무 고독해 하지 마시게
옆 사람은 잠시 머무는 허상(虛像)이 아니던가
- 창작일 : 2017.10.17. 2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