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기로에 서서
- 여강 최재효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어야 하거늘
봄꽃같던 언약은 홀연히 사라지고
뼛속을 스며드는 찬바람에 진저리 치는 밤
홀로 기망欺罔의 굴레에 갇혀 길게 탄식하네
앙상한 한 해살이 초화草花
갈색 시계視界 한가운데서 묵묵한데
반환점을 돌았어도 싱싱한 백년 잡화雜花
미풍에도 놀라워하며 허세를 부리네
사람보다 점잖은 산천의 초목草木
갈대보다 더 자주 바람에 몸을 맡기는 인목人木
내가 사람인지 나무인지 혼란한데
늙은 달은 집요하게 술을 권하네
사람들은 원죄의 굴레에 속박 당한 채
한 평생 검은 멍에를 뒤집어 쓰고 살기도 하고
날카로운 초겨울부터 후덕한 늦여름까지
뻔뻔한 얼굴로 어두운 그림자를 피하기도 하네
허허벌판 참새도 찾지않는 허수아비가 되는 시월十月
누구나 음유 시인이 되는 시월詩月
뜨거웠던 지난 여름 심장을 저울질 하는 시월試月
나를 까맣게 잃어버리고 상심해 하는 시월時月
봄부터 걸어온 열 갈래 길들을 뒤로하고
앞에 놓인 나머지 낯선 두 길 입구에 서서
나는 잠시 한눈을 팔며
눈물 마를 날 없는 아픈 시월을 위무하네
- 창작일 : 2017.10.13. 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