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곡(終)
- 여강 최재효
“엄마, 오빠말대로 해. 이러다 엄마 쓰러지겠어. 얼굴이 너무나 창백하고 컨디션도 많이
안 좋아 보여. 엄마, 좀 쉬어. 응”
성미가 나를 억지로 방으로 안내하려고 하였다.
“성국아, 성미야 그리고 며느리들도 이리 가까이 와봐라.”
나의 말에 네 아이들이 내 곁에 가까이 모였다. 두 며느리들은 내가 무슨 중대한 말을 하
려는 줄 알고 정색을 하였다.
“성국아, 성원아, 부모가 누구니?”
“네에?”
나의 예상 밖의 질문에 큰 아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얘, 큰 며느리야. 너는 부모가 누구라고 생각하니?”
“......”
“엄마, 뜬금없이 왜 그런 말을 해?”
성미가 나에게 ‘영양가 없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국이, 두 며느리, 성미에게는 부모가 있단다. 아니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모가
다 있지. 그런데 너희 부모 중에 오늘 아버지가 하늘 부르심을 받았단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의 부름을 받게 된단다.
너희 세남 매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분이 바로 아버지시다. 나는 너희 아버지와 결혼
하여 임신하고 너희 셋을 내 태중(胎中)에 열 달 동안 금이야 옥이야 태교(胎敎)하고 너희
를 세상에 나오게 하였다. 아버지와 나는 인륜(人倫)이다. 즉 나와 아버지는 헤어지면
남남이 된단다.
그러나 너희 남매는 아버지와 그리고 나와는 천륜(天倫)이지. 아무리 너희들이 나와 아버
지로부터 인연을 끊으려고 하여도 결코 끊을 수 없는 관계란다. 오늘 너희들은 두 천륜
중 하나의 천륜이 현실의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일 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
다고 아버지와 모든 인연이 끊어졌다고 볼 수 없는 거야.
비록 아버지는 이승에 안 계시지만 너희들은 항상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천륜을 잠시
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잊는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겠지. 내일 모레 아버지
를 장사지내고 나면 너희들도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야. 당장은 매일 같이 아버지 병간
호 하지 않아서 편할 테지만 마음만은 편치 않을 것이다.
너희가 김 씨 성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모두가 아버지를 아버지로 두었기
때문이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있다면 오늘밤 훌훌 털어
내거라. 아버지에게 섭섭한 것이 있었다면 역시 오늘밤 모두 지워버려야 한다. 지금 아버지
심장은 멈춰 고인(故人)의 신분이 되었지만 아직은 중음신(中陰身)의 상태여서 지금 나와
너희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계신단다.
내일 염(殮)을 마치면 비로소 이승과 영결(永訣)하는 것이 되니 행여 아버지에게 효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아버지에 대한 묵은 감정은 모두 버리거라. 그것은 너희 두 며느
리도 해당된다.
아버지는 1970년에 나와 결혼하여 반세기 가까이 부부로 살아왔다. 아버지가 경상도
부산분이라 나에게는 고집이 많은 남자로 비쳐졌지만 너희들이 보는 시각은 다를 것이야.
비록 겉으로는 다정다감한 아버지 같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속마음은 너무나 여리고 겁도
많은 분이셨단다. 지난 50여 년간 여러 번의 사업실패로 인한 인생의 패배감과 자괴감
으로 아버지는 많이 힘들어 하시고 괴로운 나날을 많이 보내셨다.
이제는 모든 것이 지난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너희들은 아버지를 버리거나 잊으면 절대로
안 된다. 물론 내가 살아 있으니 그럴 리는 없을 테지. 한때는 고생도 했지만 사업이 번창하
여 부도 누리고 12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큰 기업인으로 성장, 승승장구 했었지.
이제는 너희들도 자식을 낳고 살아보니 부모의 고충은 알 듯도 싶겠구나. 이틀 후면 우리는
아버지를 영영 볼 수 없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깨끗이 하고 아버지를 마음 편하게
보내드리자. 사람이 저승에 들어도 이승의 자식들이 서로 다투고 갈등을 일으키면 저승에
들지 못하고 구천(九天)을 헤매면서 악귀(惡鬼)가 될 수 있단다.
우리는 아버지가 극락(極樂)에 들어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여 장례를
치러드려야 한다. 장례를 모두 마칠 때까지 문상객들에게 공손하고 친절하게 대하여 한다.
상주(喪主)들이 술에 취하거나 추태를 부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나는 아버지 빈소에서 잘
테니, 너희들이나 방에서 자거라.”
“어머니, 안 돼요. 빈소는 저희들이 지킬 테니 들어가 쉬세요.”
“어머니, 언니말대로 그렇게 해. 여기서 있다가 감기 들려.”
큰 며느리와 성미가 깜짝 놀라며 나를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아니야, 나는 너희 아버지와 할 이야기가 있단다. 그러니 내 걱정 말고 너희들이나 들
어가 쉬려무나.”
“어머니, 여기서 밤을 새우시면 감기몸살에 걸리기 쉬워요. 들어가세요. 빈소는 제가 지
킬게요.”
성국이가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였다.
“그래, 그럼 한 시간만 내가 여기서 아버지와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누고 방으로 들어갈
테니 그리해주렴.”
“어머니, 딱 한 시간이에요.”
나는 성국이에게 시간을 약속하고 빈소에 앉아 남편의 영정(影幀)을 바라보았다. 하얀 국
화에 둘러싸인 채 남편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편의 얼굴은 해맑은 어린아이 같았다. 남편
은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여보, 성국이 엄마, 미안하오. 나 먼저 가오. 지난 50여년 가까이 나와 부부로 사느라 정
말 고생이 많았소. 당신이 잘 알다시피 나는 겁쟁이요. 당신한테 큰소리를 많이 쳤지만 실은
속으로 늘 겁이 났었소.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술을 퍼먹고 큰소리 칠 수 있는 상대는
당신 밖에 없었다오.
내가 바보처럼 큰소리를 처도 나의 지청구를 모두 받아주니 내가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
지 모르오. 만약 당신이 내 지청구를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나와 당신은 벌써 헤어졌을 거
요. 다시 한 번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말을 전하오.
내가 먼저 가서 좋은 집을 짓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당신은 아이들과 손자들 재롱을 많
이 보고 천천히 오시구려. 이승에서처럼 당신 속을 절대로 썩혀주지 않을 거요. 그동안
내가 당신에게 잘 해주지 못한 것을 저승에서 다시 만난다면 모두 보상해 주고 싶어요.
여보, 성원이 엄마, 나를 미워하지 마오. 내가 왜 사랑스러운 당신을 미워하겠소. 세상
일이 잘 안 풀리다보니 종종 당신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아이들에게 심하게 굴기는 하였
지만 나의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오. 나도 당신에게 자상하고 좋은 남편이고 싶었지만 마
음대로 되지 않아 늘 마음이 무거웠다오.
아이들에게도 잘 이야기해주오. 핑계 같지만 나는 아이들을 잘 대해주고 싶었소. 하지
만 우선 사업을 크게 일으켜 세워 만세반석(萬歲盤石)에 올려놓은 다음 당신과 아이들
에게 모두 물려주고 싶었다오. 그러나 중간에 폭풍우를 맞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다 보
니 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구려.
당신이 내 마음을 잘 알거요. 부귀영화(富貴榮華)란 뜬구름과 같아서 당시에는 내 것
이라고 착각을 하고 살지만 세월이 지나다 보면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라오. 황금은 적당
히 있으면 되는 것을 너무 욕심을 내거나 집착을 하면 황금은 나에게서 점점 멀리 가버
리지, 이제야 내가 그 진리를 깨달았나 보오. 미안하오. 나를 용서하오.”
나는 고인(故人)이 된 남편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들으면서 남편과 함께한 지난 50여
년의 희로애락을 떠올렸다.
“신부 정숙양은 신랑 창선군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한 평생을 길이 사랑하며, 귀중히
여기고, 도와주고 위로하며, 순종하고 고락간에 변치 않고, 생전에 일정한 부부의 대의
를 따라 아내 된 본분을 다할 것을 이 자리에 모인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약합니까?”
“서약합니다.”
나는 천근만근의 눈꺼풀을 억지로 뜨고 남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천진
난만한 남편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빙그레 웃으며 나에게 손짓을 하였다.
‘어이구, 순진한 영감......’
남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두 눈가에 미지근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병원에
누워 있을 때는 밉기도 하고 딱하기도 했던 사람이 이제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깨어 있는 것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얘들아, 나는 아버지가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구나. 내일이면 장례를 치러
야 하는데 장지(葬地)를 어떻게 해야 좋겠니?”
“......”
한때 200억 재산가였던 남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육신을 영면(永眠)에 들 수 있는 땅 한 평도 준비되어 있지 않
았다. 나는 남편을 어떻게 장사지내야 할지 몰랐다. 남편의 형제들과 아들, 딸, 며느리
들과 상의하였지만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없었다. 가족회의로 시간이
점점 흘렀지만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였다.
“요즘 대세가 화장(火葬)이란다. 전 국민의 80퍼센트가 화장을 선호하고 있단다.
고인은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화장은 깨끗하고 후손들에게도 편하니 나는 아버지
를 화장으로 치렀으면 한다.”
“엄마, 다른 방법 없어?”
성미가 훌쩍거리다가 불쑥 말을 하였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큰아들과 며느리들은 나의 의견에 찬성을 하였으나 부산에서 올라온 남편의 형제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긴 시간 의논 끝에 남편의 장지는 인천 부평동에 위치한 부평가족공
원 평온당(平穩堂)으로 정해졌다.
“가족 분들 가까이 오셔서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세요. 이제 보시면 영영 볼 수 없
습니다. 그리고 이별의 말씀을 한마디씩 하세요. 고인께서 다 듣고 계십니다.”
젊은 남자 염꾼이 남편의 염을 어느 정도 마치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한번 볼 수 있는 기
회를 주었다.
“여보, 부디 좋은 데로 가세요. 미리 가셔서 나중에 우리가 다시 만나 부부가 될 보금
자리를 꾸며 놓으세요. 여보, 성국아버지, 성원이 아버지, 성미 아빠, 사랑해요.”
나는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참았던
눈물이 폭포수같이 쏟아지자 옆에 있던 큰며느리가 손수건을 을 건넸다.
“아버지, 부디, 좋은 데로 가세요. 저희 세 남매 키워주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승의 일을 모두 잊으세요. 아버지, 존경합니다. 아버지......”
성국이가 눈물을 훔치며 흐느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운명하시는 것도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
성원이는 큰 소리로 흐느끼며,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였다.
“아빠, 아빠, 저 성미에요. 아빠 사랑하는 딸 성미에요. 아빠, 사랑해요. 영원히 아빠를
사랑할거에요. 아빠, 부디 좋은 데로 가세요, 아빠…….”
성미의 울음소리에 모두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빈소에는 어제보다 더 많은 문상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오후에는 친정의
친인척들이 대거 문상을 하였고, 성국이 성원이 회사 사람들도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나는 남편이 평소 친하게 지냈던 문상객들을 대접하느라 눈, 코 뜰 새가 없었다.
밤 8시쯤 되자 빈소는 만원이었고 문상을 마친 일부 문상객들은 앉을 자리가 없어
그냥 돌아가야 했다. 나는 예전에 남편과 나에게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을 기다렸으
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괘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였다. 갑작스런 일에 정작
알릴 사람에게 미처 연락이 안 된 것 같았다.
2016.4.8일. 아침 일찍 운구차량과 대형버스가 장례식장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며느리 그리고 친인척들을 모이게 하여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치게
한 다음 남편의 장례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간단히 제사를 지내고 남편을 부평 승화
원으로 옮겼다. 승화원으로 향하는 아침 하늘에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여 날씨가 무척
을씨년스러웠다.
연수동에서 부평 승화원까지 가는 길이 남편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이었다. 생전에
수만 번도 더 왔다 갔다 했을 길이었다. 그 길이 왜 그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나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남편과 내가 가장 좋았던 때를 기억해 냈다.
“정숙씨, 나오셨군요. 우선 이것부터 받으시죠?”
경상도 남자는 붉은 장미꽃다발을 나에게 건넸다.
“어머나, 장미꽃다발을......”
“10월에 장미꽃을 구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받아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아무튼......”
“정숙씨,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정말로 그대를 사모하고 날마다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러지 마세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정숙씨가, 제 청을 수락하시면 일어나겠습니다.”
“어머나,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어서 일어나세요.”
“결혼을 승낙할 때까지 안 일어날 겁니다. 정숙씨, 제발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경상도
사나이가 이렇게 사정합니다.”
“알겠어요. 어서 일어나세요.”
“정숙씨, 고맙습니다. 제 청혼(請婚)을 받아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1970년 가을 부산 사나이는 나에게 붉은 장미 한 다발을 안기고 청혼을 하였다.
‘그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47년이 흘러가버리다니......’
나는 첫 데이트 당시의 부산 사나이 모습을 떠올리면서 속으로 비틀즈의 렛잇비(let
Be) 가사를 기억해 보았다.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 Let it be
내가 근심의 시기에 처해 있을 때 / 어머니께서 다가와
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 "순리에 맡기거라"
승화원에 도착한 지 3시간 후에 남편은 한 줌 재가 되어 하얀 도자기에 담겨 큰아들
에게 인도되었다. 작은 아들이 남편의 영정을 들고 뒤이어 큰 아들이 남편의 납골함
을 안고 뒤따랐다. 나와 딸 성미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은 말없이 뒤를 따르며 죄인이
된 심정으로 평온당으로 향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
나무문수보살마하살
나무지장보살마하살
......
나는 속으로 수도 없이 부처님들의 명호(名號)를 외치며, 눈을 떴다. 아미타여래(阿彌
陀如來) 좌우에서 협시(挾侍)하고 계신 붓다의 마을 마덕스님께서 나를 은은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계셨다. 나는 정신이 들어 힘을 주어 일어섰다. 그때까지 두 며느리들이
나를 좌우에서 부축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위패가 모셔진 곳을 향하여 이배(二拜)
를 하고 술잔을 올렸다.
‘아아, 지난 50여 년간의 삶이 허망하게도 꿈이었다니. 푸른 하늘 아래서 꽃비를 맞으
며 웃던 그 시절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나는 중얼거리며 붓다의 마을 극락전을 나섰다. 여전히 주재 스님의 목탁소리가 내 귓
전을 울리고 있었다. 나의 휘청거리는 걸음걸이에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들이 불
안해하였다. 나는 분명히 길고 긴 백일몽(白日夢)을 꾸고 있는 게 분명했다.
_()_ 끝까지 읽어주신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본 소설은 제 주변의 지인 이야로 실화(實話) 입니다.
곧 다른 작품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016.11.27일 인천 구월동에서
여강 최재효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