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사부곡(2)

* 창작공간/단편 - 사부곡

by 여강 최재효 2016. 11. 27. 04:30

본문














                                                   









                                                           사부곡(2)





 

                                                                                                                                                                      - 여강 최재효






 3주가 지나니 병원 측에서는 퇴원을 하든지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하였다. 나는 아들

들과 상의하여 남편을 인천 남동구 구월동 소재 R요양병원으로 남편을 옮겼다. 전문 병원

은 많은 환자들로 넘쳐나고 분위기도 입원 환자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았다. 


 R요양병원은 모두 12인실인데 비교적 깨끗해 보였다. 조선족 출신으로 보이는 부부가

입원환자들 병수발을 받들고 있었다. 이 요양병원도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 환자들로 넘

쳐 났다. 세상에 환자들이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그동안 큰병 없이 살아온 나는 내

자신에게 감사하였다.


 ‘남들은 고관절 수술하고 2주후면 퇴원을 한다고 하는데, 그이는 속에 많은 병이 있어서

어깨수술도 못하고 있으니 이일을 어찌하나......’


 요양원에 누워있는 남이 아닌 남편을 볼 때마다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우리

나라 산업발전을 위하여 불철주야 연구에 매달리던 사람이 병상에 누워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다 보니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나는 집에서 전복죽을 쑤어서 남편의 입에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먹여주었다. 내가 떠먹여주는 전목 죽이 맛이 있다면서 미소를 짓는 남편을

보자 울컥하면서 속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나는 남편이 알까봐 얼른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울에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바라

보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내가 아닌 낯선 여인이었다. 빨간 루즈가 마음에 걸려 휴지로

지워버렸다. 눈물을 닦고 다시 남편에게 달려가 나머지 전복죽을 마저 들게 하였다.


 다음날 오전에 요양병원에 들리니 남편의 상태가 하룻밤 사이에 달라져 있었다. 조선

족 부부에게 물으니 밤새 남편이 잠을 못자고 잠꼬대를 하다가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다

가 종종 헛소리를 하기도 하였다면서 병간호하느라 무척 힘이 들었다고 한다. 


 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어제만

하여도 내가 쒀온 전복죽이 맛있다고 미소 짓던 사람이었는데. 남편은 이제 식사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영양주사제로 식사대용을 해야 했다. 이삼일이 지나자 남편의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와서 보더니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성미야, 빨리 한국에 들어와야 겠다. 아빠, 상태가 아주 안 좋단다.”
 나는 호주 시드니에 있는 성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안 좋은데?”


 “놀라지 마라. 엄마 생각인데 아빠가 얼마 버티기 힘들 것 같다.”
 성미는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딸에게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너무 성급한 판단을

한 게 아닌가?’ 고민하였다. 


 “여보, 성미가 내일 모레쯤 한국에 올 수 있대요.”
 나는 남편이 잠시 평온한 상태가 된 것을 보고 성미 이야기를 꺼냈다. 성미는 나의 외동딸

이자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예뻐하는 딸이었다.


 “성미가 무척 바쁠 텐데. 한국엔 왜온대?”
 “왜오긴요? 당신 딸이 당신을 보고 싶다고 온다는데.”


 “하긴, 우리 공주님 본지도 꽤 되었지. 꽤 예뻐졌겠지. 이번에 성미를 보면 다시는 못 볼 텐데......”
 남편은 성미가 온다는 말에 하얗게 미소를 지어보이다가 갑자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여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다시는 못 보다니요?”
 “아, 아니야. 그냥 해본 소리야.”


 남편은 힘없이 천정을 응시하더니 금방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 눈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알 수 있을것 같았다. 


 ‘아, 저이가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것일까.’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예견할 수 있는 예지력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예지력을 나는 지금 남편에게서 읽고 있었다.


 인생 80도 안 되었는데 저리 허약하게 변하다니. 나는 매일 매일 요양병원에 습관처럼 들

리면서 남편의 상태를 체크하였다. 병원보다 매 끼니가 훨씬 양호해 보였다. 남편은 그런

대로 요양원 생활을 잘 적응하였다. 


 낮에는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다가 식사가 나오면 밥을 먹는, 삶에 대한 아무런 의미가 없

는 사람 같아 보였다. 그저, 하루 세끼 목숨을 연명하기 위하여 먹고, 자고 또 먹고 배설한

다. 길가다 한번 실수로 넘어져 병상에 한 달 가까이 누워 있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 화가 났

다. 평소에 나처럼 운동이나 열심히 하였더라면 이렇게 병상에 누어만 있지 않을 것인데.


 3월 26일 오전이었다. 갑자기 용양원에서 호출이 왔다. 나는 부랴부랴 요양원으로 달려

갔다. 남편이 요양원에 있는 뒤로부터 나의 24시간은 항상 깨어 있어야 했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다. 밥을 먹어도 밥을 먹었는지 물을 마셨는지 모를 정도로 나는 반쯤 정신

을 놓고 사는 상태가 되었다. 남편이 완벽하게 병이 쾌차하여 집으로 돌아오기는 이미 틀린

것 같다. 나는 승용차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사모님, 사장님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호출하였어요.”
 조선족 부인이 마치 자신이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두 손을 싹싹 비볐다. 나는 병원에 연락

하여 남편에게 임시조치로 산소 호흡기를 착용토록 부탁하였다. 남편은 금방 안정을 찾았

고 나는 미음 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들게 하였다.


  영양제를 맞게 하고 찬 손발을 핫팩으로 찜질도 해주었다. 또 10여일이 무의미하게 지

났다. 나는 여전히 버텨주는 남편이 속으로 고마웠다. 또한 딸이 호주에서 어서 오기를 손

꼽아 기다렸다. 하루가 여삼추(如三秋) 같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오늘이 며칠이지?”
 남편은 간신히 눈을 떠서 나에게 날짜를 물었다.


 “4월 4일이에요”

 “방금 전에 우리 성미가, 우리 성미가 손을 흔들면서 저 문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어.

그 앤 언제 온대?”


 남편은 매일 성미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있는 듯 했다. 흰머리에 양 볼이 앙상

한 남편이 힘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쯤이면 성미가 올거에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으래-, 빨리 봤으면......”


 나는 날마다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는 남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남편은 지금 딸 성미를 보고 싶은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호주에 가 있는 딸

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4월 4일 종합병원으로 옮기라는 연락을 받고 그날 오후 5시쯤

나는 남편을 앰뷸런스를 이용하여 가까운 K병원 응급실로 이송하였다. 


 “보호자님, 환자의 상태가 아주 안 좋습니다. 더 두고 봐야하지만......”
 남편을 살피던 의사가 나에게 낮은 목소리로 남편의 상태를 전했다. 의사의 목소리에서

나는 남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잠시 안정을 찾은 남편은 깊은 잠에 취한 것인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냘픈

숨만 쉬고 있었다. 그날 저녁 7시 인천공항에 도착한 딸 성미는 8시 40분쯤에 바로 K병

원으로 왔다.
 “아빠, 나왔어. 나, 성미야. 이게 어찌된 거야. 아빠가 왜 이렇게 되었어?


 큰아들 성국이가 공항에 가서 성미를 태우고 바로 K병원 응급실로 곧장 달려온 것이었

다. 남편의 상태를 보던 딸은 크게 충격을 받았는지 울먹였다.


 “우리 서, 성미, 내 딸, 김 성미로구나.”
 딸의 흐느끼는 소리에 남편이 살포시 눈을 떴다.


 “아빠, 빨리 완쾌해서 나랑 소래포구에 가서 소주 한잔 해야지, 이렇게 누워있으면 어떻게

해.


 남편은 미소를 띠면서 ‘응, 그래’하고 그이는 웃는 얼굴로 말을 했다. 성미랑 소주 한잔

해야지 하는 마지막 말 한마디가 마지막인가 보다. 성미는 남편의 상태가 이럴 줄은 몰랐

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성미야, 아빠 꼭 나을 거야. 울지 마. 아빠랑 소주 한잔해야지.”
 남편은 성미의 손을 꼭 잡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아빠......”


 성미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주위에 있던 다른 환자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쏠렸다.


 “성미야, 그만해. 아빠 금방 좋아지실 거야.”
 나는 성미 등을 토닥거리며 참으라고 하였지만 딸 성미는 금방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아빠, 미안해. 아빠가 이렇게 안 좋은 줄 몰랐어. 이럴 줄 알았더라면 빨리 왔을 걸.

정말로 미안해 아빠......”
 “서, 성미야, 내 딸 김-성-미.”


 남편은 겨우 딸 이름을 한번 불러보고는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졌다. 남편은 간신히

딸의 이름을 불렀다. 부녀(父女)의 눈물어린 상봉을 지켜보던 아들과 며느리들은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2년 만에 이루어진 부녀의 만남을 바라보면서 피의 진한 인연(因緣)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성미를 데리고 휴게실로 갔다. 성미는 아직도 울음을 참지 못하

고 흐느꼈다.


 “성미야, 이제 참으렴. 아빠는 네가 우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니. 네가

보았다시피 아빠는 얼마 남지 않은 듯 하구나.”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 난 아빠가 저 정도인지 몰랐어. 한두 달 입원해 계시면 쾌차하실 줄 알았어.

한국은 의술도 선진국 수준이고 의약품도 좋아서 오래 안 갈 줄 알았어. 내가 진작 빨리

들어올걸......”
 성미는 자책하면서 괴로워하였다.


 “성미야, 자책하지 마.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이 있는 거란다. 100살을 살도록 운명

지어진 사람도 있고, 태어난 지 30년 살다 가는 사람도 있단다. 아빠는 눈길에 넘어져서

저렇게 되었지만 지금까지 아빠는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평생을 사신 분이야. 아빠가

만약에 어떻게 되더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거라.”


 “엄마, 안 돼. 아빠는 100살까지 사셔야 해. 그동안 나 때문에 얼마나 많이 속이 상해셨

을까. 오래 오래 사셔서 딸의 효도를 받으셔야 해. 이렇게 아빠가 가신다면 얼마나 억울

하고 원통해.”
 성미는 또 눈물을 쏟기 시작하였다.


 “그래,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니. 그래도 아빠는 한때는 큰 회사를 운영하시며, 사원

120여명을 거느리면서 산업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기고, 송도 갯벌타워에 이름을 남기신

분이야.”
 나는 휴게실에서 딸을 달래느라 한참 애를 먹었다.









                                                                                      - 계속 -














































































 
























'* 창작공간 > 단편 - 사부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부곡(終)  (0) 2016.11.27
사부곡(3)  (0) 2016.11.27
사부곡(1)  (0) 2016.11.27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