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후에
- 여강 최재효
이승에 잠시 머물던 것에
천지신명에게 늘 감사하며
부모님에게 가실 수 없는 응어리 만든 불효는
저승에 들어도 오래 가슴 아파하리
비록 일수유一須臾 였지만
바람에 쓸려버릴 발자국 남긴 것에 만족하리
복사꽃 아래서 놀다가
비바람 불고 나서 깜짝 놀라곤 했었지
밤새워 통음痛飮하는 일도
오석烏石에 이름 석 자 새기는 객기도
덧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머리에 이미 잔설殘雪이 수북이 쌓여 있었지
간사한 바람에 떠밀려
동서로 흘러 다니던 황금 같은 시절이라니
청풍명월에 몸을 맡기고
석잔 술에 취하던 날이 얼마나 있었던가
백년 후 우연히 다시 돌아온다면
청산 한가운데 한거閑居를 짓고 살면서
청학과 바위를 벗 삼고
달을 연모戀慕하면서 흔적 남기지 않으리
- 창작일 : 2014.04.06. 01:00